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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결혼을 포기했다.

17.03.07 0

<나도 이제 결혼한다2> 이홍민, oil on Canvas, 89.4 x 130.3cm,2015

 

나는 결혼을 포기했다.


가까운 지인들에게 이런 말을 내뱉고 나면 ‘그런 애들이 제일 일찍 가더라!’, ‘지금은 그렇지 나중에 외로워서 어떻게 살 건데?’라는 반격 아닌 반격을 듣곤 한다. 그에 대한 논리 정연한 답변을 준비해야 할 가치를 느끼지 못해 따로 정리해두진 않았지만, ‘네가 정말 그럴까?’라는 의심의 눈초리는 피할 수가 없다. 그도 그럴게 어쩌면 나 스스로도 정말 비혼자로서 평생을 살 수 있을지, 경제적인 상황이나 현실적인 문제에 대해 어떻게 대처할 것인지 구체적인 그림을 그리지 못했기 때문일 것이다. 그래서 글을 앞두고 고민해보건대, 아무래도 내가 ‘자발적인 비혼주의자’가 된 건 사회와 제도에 의해 어쩔 수 없이 비혼주의를 택해야 하는 ‘타의적인 이유’가 있기 때문이다.

 

<청혼> 이홍민, oil on Canvas, 97 x 130.3cm, 2015

이홍민 작가는 이처럼 결혼에 따르는 여러가지 사회 현상을 그 특유의 그로테스크함으로 표현했다. 그의 작품은 <나는 결혼했다>, <청혼> 등, 결혼하면 떠오르는 환상적인 단어를 제목으로 하고 있지만, 정작 그림은 이질적인 모습을 하고있다. 이를 통해 우리는 결혼이 가진 이면을 살필 수 있다. 재밌는 점은 '결혼(結婚)'의 '결'이 '맺을 결(結)'이 아니라 '이지러질 결(缺)'이란 사실이다. 


지난 3월 6일, EBS 다큐프라임은 청년의 노동과 그들의 가혹한 삶을 다룬 <청년, 평범하고 싶다>를 방영했다. 어느새 나보다 어린 나이와 어린 얼굴을 하고 있는 ‘청년’들은 하나같이 공감되는 말들을 쏟아내서 가슴이 먹먹해졌다. 학부시절, 한창 사회를 공부했을 시기엔 ‘3포 세대(연애, 결혼, 출산 포기의 줄임말)’라는 말이 신조어로 등장했던 때라, 부모세대엔 당연히 ‘해야만 했던 것’들을 포기한다는 것이 쉽게 이해되지는 않았다. 물론, 그런 선택을 할 수밖에 없게 만든 사회문제에 대해 조금은 이해하고 있었지만, ‘비혼’이니 ‘비출산’이니 하는 문제는 말 그대로 ‘나와는 먼 이야기’였던 것이다.

 

<맨 얼굴> 이홍민,oil on Canvas, 2015

이홍민: 결혼에 관한 이야기를 하고 싶었다. 한자어로 유희를 준 건 단지 전시될 그림을 담기 위해서였다. 결혼을 하지 않은 사람이 결혼을 이야기 한다는 게 부담이 되기도 했지만 ‘결혼’ 하나에 온갖 잡다한 문화들이 조잡하게 결합되어 있는 현상을 되짚고 싶었고, 미혼자로서 결혼에 부차적으로 드는 여러 가지 부담도 표현하고 싶었다. 물론, 그에 대한 분노의 표현도 있지만 젊은 세대의 혼인율이 떨어질 수 밖에 없는 사회문제도 다루고 싶었다. 출처: 노트폴리오 매거진 인터뷰 중

 

그러나 비혼이 현실로 다가온 건 대학을 졸업한 지 얼마 안 된 시점이었다. 갓 사회에 나왔을 때 나를 반긴 것은 ‘고강도 저임금’의 업무였고, 근로계약서도 제대로 작성하지 않은 채 불안한 발걸음을 떼야만 했다. 회사라는 곳은 학교에서 배워온 ‘정의’와 ‘상식’에 많이 어긋나 있었다. 당연히 작성해야 할 근로계약서를 먼저 요청해야 했고, ‘이상한 분위기’에 압도되어 계약서를 요청하는 행위 자체에 대해 혹시 예의에 어긋나는 일인지 고민해야만 했다. 어렵게 운을 떼었을 땐, “계약서를 작성하지 않는 것이 이쪽 업계의 관행이야.”라는 선배의 말은 덤이요, 어느새 나는 기성세대가 조작적 정의를 내린 ‘요즘 것들은’이 되어있었다. 연봉을 협상할 때조차도 터무니 없는 금액을 제시하고는 “동종 업계보다 많이 주는 거야”라는 고맙지 않은 배려의 말을 들어야만 했다. 그 ‘배려’를 합당한 근로시간과 임금으로 제공해준다면, 더할 나위 없이 감사할 텐데 말이다.

 

<붉은 결혼> 이홍민, oil on Canvas, 162.2 x 97.0cm, 2015


비겁하게도, 난 노오오력이 부족해서 그리고 지금의 으른들보다 끈기가 부족해서 정식계약을 앞두고 회사를 그만뒀다. 그 후로 여전히 먹고 살길을 찾느라 나이가 들었고, 불과 몇 년 사이에 학위를 하나 더 얻었지만, 그럼에도 이렇게 살다가는 ‘정말로 답이 없다’는 걸 체감했다. 지금 내가 버는 급여만으로는 나 스스로를 온전히 책임질 수 없으며, 앞으로 그러지 않으리라는 보장도 없어서다. 당장의 생활을 유지하기조차 힘이 드는 현실에 한 사람 몫을 더한다는 건 사실상 힘든 일이다. 지금부터 열심히 돈을 벌어도 내 이름의 집을 살 수 있을지 모르겠고, 지금 이 순간에도 사회가 요구하는 최소한의 ‘어른다운’ 행실도 하고 있지 못해서다. 그러게 왜 회사를 그만두고 다른 선택을 했냐고? 확신할 수 있는 건, 분명 그 삶을 지속했어도 ‘고강도 저임금’에 ‘육체적/정신적 건강’마저 잃고 ‘저녁이 없는 삶’을 살았을 거라는 사실이다.

 

2017 시대탐구 <청년: 3부 평범하고 싶다>, 출처: ebs

 

<청년>에서 한 인터뷰이는 말한다. “우리나라는 삶의 질을 선택하면 돈을 못 벌고, 돈을 잘 벌면 삶의 짊이 없어요. 이걸 해결하는 방법은 서로 계약을 잘 지키면, 상호간의 약속을 지키면 될 텐데 말이에요.” 연달아 명문대를 졸업하고 ‘고작 9급’ 공무원이 된 청년은 말한다. “자가가 있고, 내 차가 있고, 내 가정을 꾸리고, 그냥 그렇게 살고 싶죠” 하지만 이런 청년들을 바라보는 대다수의 사람들은 사회 구조를 비판하기보다 청년 개인차원으로 화살을 돌려 그의 근성을 폄하한다. 출판되는 많은 심리학 서적들마저 이런 상황에서 개인의 마음을 달래는 법을 이야기하고, 우리들은 자연스레 사회문제를 ‘세상을 보는 내 시선의 문제’ 즉, 개인의 문제로 인식하게 된다.

 

출처: sbs 뉴스캡처


청년실업문제와 불합리한 노동환경에 맞먹는 이유로 ‘타의적인 비혼주의’가 된 건, 여성을 바라보는 사회의 그릇된 시선 때문도 있다. 얼마 전, 인구영향평가센터장 원종욱 선임연구원은 낮은 결혼률과 저출산 원인으로 고스펙, 고학력 여성을 꼽았다. 불필요한 스펙을 쌓기 위해 졸업이 늦춰져서 결혼이 늦어지니 휴학, 연수, 자격증 취득을 취업에 불리하게 만들겠다는 것도 어이없는데(청년들은 취업을 하기 위해 어쩔 수 없이 고스펙을 쌓게 된다), 여성들의 하향결혼을 유도하도록 ‘은밀하게’ 문화콘텐츠를 개발하겠다니. 그것도 너무나 진지한 표정으로 말하는 그를 보며 부들부들 치를 떨었다.

 

출처: 경향신문 <정부야 아무리 나대봐라. 내가 결혼 하나. 고양이랑 살지>

 

나도 사람인데, 왜 결혼하고 싶지 않겠나. 어릴 때부터 주입식 교육으로 ‘학습된 환상’에 불과할지라도 살면서 한번쯤 웨딩드레스도 입어보고 싶고 사랑하는 사람과 가정도 꾸리고 싶다. 나를 닮은 아이를 낳고 내 아이를 돌보다 다시 직장에 돌아가고 싶다. 그리고 아이가 제 스스로 무언가 할 수 있을 때까지 저녁이 있는 삶을 살고 싶다. 하지만 이런 꿈은 내가 몸을 담고 사는 사회에선 ‘유토피아’와 다름 없기에, 온전한 나로서 자발적인 선택을 할 수는 없을 것이다. 그래서 나는 결혼을 포기했다.

 

김해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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