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ome  /  Story  /  피플

[전지적 작가 시점] 지극히 행복하며 지극히 동화적인, 은비

17.03.17 0

<전지적 작가 시점>은 노트폴리오에 작품을 게재하는 작가를 선정해 그의 작품을 인터뷰하는 자리입니다. 그동안 작가가 어떤 의도로 이런 그림이 그렸는지, 무슨 생각으로 이런 표현을 했는지 궁금하셨죠? 앞으로 진행되는 <전지적 작가 시점>을 통해 작가보다 작품 중심의 이야기를 들어보시기 바랍니다.

 

은비(Eunbi)

연극 <옥탑방 고양이> illustration for a poster & process, 2016

 

은비의 그림은 사랑스러운 색감과 사랑스러운 등장인물의 등장으로 따뜻한 인상이다. 

순전히 개인적인 취향과 성격이 작업에 그대로 반영되는 것 같아요. 취향이 어떻다고 딱 한 문장으로 딱 정의 하기는 어렵지만, 일상에서 따뜻한 느낌을 받을 때가 많거든요. 아날로그적인 물건이라든가 빈티지, 세련되고 모던한 디자인, 혹은 일상에서 마주하는 자연이나 색감이 독특한 사물 등등. 일상에서 감상을 받은 것들이 작품에 드러나서, 그림이 곧 개인적인 취향의 집합체라고 생각해요.


작업의 키워드가 되는 소재는 무엇인가.

워낙 다양한 분야에 관심이 많은데요, 그중에서도 ‘이야기’로 발전시킬만한 것들을 소재로 삼아요. “그래서 나중에 어떻게 되었을까?”같은 질문처럼 비하인드 스토리를 이어가는 느낌으로요. 그래서 친구들과의 수다에서 영감을 받기도 하고, 영화를 보다가 캐릭터를 상상하며 받기도 하고, 예전에 낙서해둔 크로키 북에서 기억을 가지고 올 때도 있어요.

 

 

동화같은 판타지한 세상에서 리얼리티한 장면으로 전환되는 부분에 필요한 컷들


은비의 작품을 보면 동화책을 읽는 느낌이다. 관련한 작업계획은 없나.

너무너무 하고 싶어요. 아무래도 영상과 관련된 작업만 하다 보니 출판과 관련된 작업도 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그래서 글쓰기 수업도 듣고, 스토리 하나도 구상해두었는데 서랍 속에 고이 묶어두었어요. 나중에 천천히 하나씩 배워가며 탄탄하게 만들려고요. 그림책 작업은 제 목표 중에 하나기도 해요.


보고만 있어도 마음이 몽글몽글해지는 그림이 참 많다. 색감 선정에 많은 신경을 쓰고 있는 듯한데, 평소 작업 시 색채 작업은 어떻게 이루어지나.

실제로도 색감선정에 많은 신경을 쓰고 있어요. 다만 저만의 규칙이 있다면, 각 그림의 주제와 전달하려는 분위기에 어울리는 메인컬러를 선정한다는 거예요. 또, 웬만하면 많은 컬러를 사용하지 않으려고 하죠. 그림의 쓰임에 따라 사용하는 색은 모두 다르지만, 전체적으로 1~2가지의 메인컬러와 포인트 컬러를 잡아주면 깔끔하고 보기가 좋거든요. 가끔은 완전히 반대되는 배색을 조합할 때도 있는데, 그럴 때면 정말 상상도 못했던 조합을 발견할 때도 있어요. 이 모든 과정이 재미있어요.

 

A Korean girl with bonnet, 2016

평소 작업을 살펴보면 전래동화나 인물 등 전통이나 한국적인 표현에 관심이 많은 것 같다.

20대 때 해외의 낯선 나라를 여행하면서 그곳의 친구들에게 해줄 수 있는 최고의 선물이 그림이었어요. 그러다보니 자연스럽게 한국적인 요소들이 반영된 것 같아요. 환경적인 요소가 있다면 한국화를 전공하신 어머니의 영향이 커요. 어머니께 그림을 배웠는데, 사찰에 방문해서 야외스케치를 많이 했거든요. 기왓장쯤은 눈감고도 그릴 수 있을 만큼 엄청 많이 그렸던 기억이 있어요. 우리나라 문화에 대한 전문지식 수준은 아직 부끄러운 수준이지만, 이러한 경험들이 쌓여 한국의 아름다움을 눈치껏 알게 했다고 생각해요.


# kiss: 성춘향전

구스타프 클림트의 키스 버전, 성춘향과 이몽룡

 

전래동화를 바탕으로 해외 명화를 패러디했다는 점이 인상 깊다.

<키스:성춘향전> 은 게스트하우스를 운영하시는 지인의 의뢰로 시작됐어요. 처음엔 로이 리히텐슈타인의 <눈물>과 <M-Maybe>란 작품을 한국적으로 표현했는데, 성에 안찼어요. 팝아트 스타일의 느낌이 확고해서 제 고유의 스타일을 담을 수가 없는데다 더 재미있는 장치가 필요했거든요. 그렇게 두 번째로 들어온 의뢰가 클림트의 <키스>였는데, 공통된 주제를 가진 <성춘향전>을 그림에 넣어보면 재미있을 것 같았어요. 무엇보다 한국 전래동화를 명화에서 재발견하는 것도, 그림을 통해 외국친구들에게 이야깃거리를 알려주는 것도 좋을 것 같았어요.


그런데 하필 많고 많은 전래동화 속 커플 중에서 춘향이와 몽룡이를 <kiss>의 등장인물로 삼은 이유가 있나.

<춘향전>은 한국판 로미오와 줄리엣이잖아요. 클림트의 그림으로 표현하기에 아주 적절하다고 생각했어요.


작업 당시 가장 신경 쓴 부분.

사람들이 작품을 접했을 때 원작을 떠올리게 함과 동시에 춘향이와 몽룡이를 인식하게 하는 부분이요. 다행히 국내에서 클림트 그림이 인기가 많아서, 많은 분들이 단번에 알아봐주셨어요.

<키스> 구스타프 클림트  

 

구스타프 클림트의 키스 버전, 성춘향과 이몽룡


원작 클림트의 <키스(kiss)>와 <성춘향전>의 다른 점이 있다면 춘향이 몽룡의 목을 감싸고 있고, 감싸 쥔 손에는 꽃을 들고 있다는 점이다. 이렇듯 <kiss>와 <성춘향전>의 공통점 및 차이점은 무엇인가.

두 작품의 공통점을 살리기 위해, 클림트의 <키스>에서 느껴지는 전반적인 맥락은 유지하고자 했어요. 황금빛이라든가 연인, 약간은 수동적인 여성의 자세, 도형적인 소재 등등이요. 차이가 있다면 아무래도 한국적인 느낌을 내려고 한 부분이죠. 클림트는 남성과 여성대비의 느낌을 각진 도형과 원형으로 표현했는데, 저는 그 각진 도형을 우리나라의 조각보 이미지를 빌려 표현했어요. 여성을 표현할 때는 우리나라 들꽃의 느낌을 더했어요. 자세히 보시면 알겠지만, 꽃들은 도라지꽃, 패랭이꽃 등 실제 한국에서 나는 3~4개의 야생화예요. 사실 손에 든 꽃은 크게 의미가 없어요. 단지 원작에서 여성의 무릎꿇은 자세로 수동적인 느낌을 표현했다면, 전 그 수동적인 느낌을 꽃으로 표현하고 싶었어요. 무엇보다 자연적인 이미지가 들어가길 원하기도 했고요.

 

여러 색감의 성춘향과 이몽룡, 출처: 작가 제공

 

춘향과 몽룡을 둘러싼 황금빛 표현이 인상 깊다.

한복 중에 모두 황금인 건, 임금님의 옷인 ‘곤룡포’외엔 본적이 없어요. 그래서 다른 컬러로 표현해야할지 많이 고민했죠. 물론, 시안 중에 여러 색상의 한복이 있었지만, 클림트 <키스>의 가장 중요한 포인트가 황금빛이라 포기할 수 없었어요. 그래서 황금빛을 메인컬러로 정하고, 메인 컬러를 보조하는 컬러로 검정계열 색상을 선택했죠. 무엇보다 빛을 발하는 느낌이 제일 중요했어요.

 

<오필리어(Ophelia)> 존 에버렛 밀레와 <심청전>

 

또 다른 명화 패러디는 없나.

앞으로 밀레와 르누와르 그림으로 작업할 예정이에요. 전반적인 작업과정은 <성춘향전>과 같아요. 르누아르의 그림은 <두 자매>로 장화홍련전에 빗대어 표현하려고 하고, 밀레의 <오필리어>는 심청전으로 풀어가려 해요. 평소에도 두 작품을 좋아하는데, 원작의 요소를 바꾸는 과정이 굉장히 재미있어요. 오필리어가 왜 죽어야 했는지, 심청이가 왜 인당수에 빠져야 하는지에 대한 공통적인 질문에서 시작한 작품이에요. 그림을 보면서 계속 이야깃거리를 만들 수 있을 것 같아 시리즈로 작업할 예정이죠.


# 벚꽃 엔딩

<벚꽃엔딩 01>, 벚꽃에 취해 용기를 내다, 2015

<벚꽃엔딩 02>, 누군가의 화려한 엔딩을 지켜보다, 2015

<벚꽃엔딩 03>, 나의 벚꽃엔딩, 그들만의 축제, 2015

 

<벚꽃엔딩 04>, 어느가족의 봄소풍, 2015

 

자세히 살펴보면 벚꽃 시리즈에 등장하는 인물들이 각자 다른 이야기를 가지고 있는 것 같다.

<벚꽃엔딩1>은 벚꽃놀이를 즐기는 젊은 남녀가 벚꽃아래서 ‘고백엔딩’을 보는 거예요. 다만, 남자가 먼저 고백하는 게 아니고 여자가 고백하는 장면이죠. 이 그림은 바로 <벚꽃엔딩2>와도 연결되는데요, 이 장면을 바라보는 실연당한 남성의 이야기에요. 좋아하는 여성에게 맥주를 사주려고 돌아오는 길에 그 여성이 다른 남자에게 고백하는 장면을 목격하고 만 거죠. <벚꽃엔딩3>은 야근을 하느라 벚꽃놀이를 못보는 직장인, <벚꽃엔딩4>는 3과 비슷한데 벚꽃놀이를 간 가족을 그렸어요. 그런데 자세히 보면, 아빠는 테블릿 pc를 통해 딸과 화상통화를 하고 있죠. 가족과 소풍을 가기로 약속한 날, 갑자기 일이 생겨 회사에 출근한 거예요. 화상통화가 뭔지 모르는 어린 딸은 아빠에게 꽃향기를 맡아보라며 꽃을 내밀고 있어요.

 

벚꽃아래 사랑을 속삭이고,

 

그것을 지켜보는 누군가와

 

야근을 하는 사람,

그리고 아빠에게 꽃을 권하는 딸

 

유독 포근하고 사랑스러운 시리즈다.

제가 직장인이었던 시절, 봄마다 벚꽃은 찾아오는데 일에 치여 제대로 벚꽃 구경도 못하고 여름을 맞이했던 때가 생각났어요. 그게 너무 아쉬워서 벚꽃이야기를 꼭 만들어야겠다고 다짐했죠. 그런데, 봄마다 울려 퍼지는 버스커버스커의 <벚꽃엔딩>처럼 핑크빛이 아닌, 그 반대의 이야기를 하고 싶었어요. 그랬더니 서너 개의 이야기가 생각나더라고요. 그래서 이야기를 여러 개로 나누고 그리고 싶은 것부터 주제에 맞게 하나씩 작업했어요.

 

<벚꽃엔딩> 시리즈 중에서 가장 마음에 드는 그림과 이유가 궁금하다.

<벚꽃엔딩03>이 제일 마음에 들어요. 제가 애니메이션에 쓰이는 캐릭터나 배경 디자인, 컨셉아트를 많이 하다 보니 이런 스타일이 생소한데, 다른 그림보다 함축적인 의미를 간결하게 표현한 것 같아요. 다른 스타일의 그림을 시도했다는 점에서 마음에 들어요.

 

<벚꽃엔딩 03>, 나의 벚꽃엔딩, 그들만의 축제, 2015


보통 ‘벚꽃’하면 분홍색처럼 따듯한 색이 떠오르는데, <벚꽃엔딩03>은 푸른색의 차가운 느낌이다.

<벚꽃엔딩03>는 슬픈 그림이에요. 그림을 보면 알 수 있듯, 직장인들은 야근 때문에 벚꽃놀이 같은 건 생각할 틈이 없죠. 벚꽃이 왔는지도 모른 채 일하고 있으니까요. 창밖에 흩날리는 벚꽃은, 그 벚꽃을 즐기는 다른 사람들의 모습으로 형상화해 함께 흩날리도록 표현했어요. 창밖 아래의 환한 빛은, 가로수 길에 핀 벚꽃에 반사되어 나온 분홍빛이에요. 이런 안타까운 직장인의 비애를 전달하고자, 푸른빛을 강하게 사용했어요.


<벚꽃 엔딩> 시리즈를 통해 어떤 메시지를 전달하고 싶었나.

봄과 벚꽃은 항상 새로운 사랑이 싹트고 설레며 따듯한 계절이라고 생각하지만, 어떤 사람에게는 슬픔의 계절이자 그저 스쳐가는 계절이라는 걸 표현하고 싶었어요. 화려함 속에 어딘가 부족한 행복이라 해야 할까요. 아름답고 행복해 보이는 벚꽃의 계절 속에 숨은 현실적인 이야기를 하고 싶었어요.

 


# 너와 나의 멍이냥이

텀블벅 프로젝트로 진행했던, 2017년 달력 <너와나의 멍이냥이>


유기견/묘를 위한 텀블벅을 기획하게 된 계기가 궁금하다.

주변에서 유기견에 대한 달력을 제작해보자는 의견은 많았는데 정작 시도는 못하고 있었어요. 그러다가 동물관련 웹툰을 그리는 작가친구의 권유에 동참하게 됐죠. 제작에 드는 자금을 모으기 위해 텀블벅을 이용하게 됐는데, 텀블벅 펀딩은 오랫동안 생각했던 시스템이었어요. 저희처럼 자본 확보가 어려운 아티스트들에게는 너무나도 좋은 기회의 장이니까요.

텀블벅 프로젝트로 진행했던, 2017년 달력 <너와나의 멍이냥이>


<너와 나의 멍이냥이> 프로젝트와 관련해서 재미있는 에피소드가 있다고 들었다.

친구 둘을 포함한 세 명이서 디자인부터 포장까지 셀프로 진행하다보니 실수가 많았어요. 몇 번이고 많은 검수작업을 했는데도 웃긴 오타를 낸 거죠! 제가 ‘성탄절’을 ‘성찬털’이라고 쓴 거예요. 그것도 제품을 받아보신 분들이 제보를 해주셔서 알았어요. 애교개그로 넘어가주셨기는 하지만, 어이가 없어서 웃기기도 했고 정말 죄송했어요. 다음번에는 조금 더 철두철미하고 정교하게 작업하겠습니다!

레나 작가와 곰태작가의 <너와나의 멍이냥이>

 

애초 목표였던 금액 200만원을 훌쩍 넘는 5,178,000원을 기록했다.

목표금액 200만원만 넘기면 될 거라고 생각했는데, 제작비만 200만원이 좀 넘게 들더라고요. 후원금이 두 배 이상 모이지 않았다면 후원도 못했을 텐데 너무나 다행이었어요. 후원금은 평소에 삼송보호소센터에서 자원봉사를 하는 대학동기에게 전해주었어요. 보호소 보일러가 마침 고장이 나서 다가올 겨울이 걱정이었는데, 수리할 수 있어서 감사하다는 소장님의 문자를 받고 너무나 기뻤어요. 남은 달력은 자원봉사 분들에게 무료로 나눠드렸고요. 처음으로 제 그림으로 사회적 기여를 할 수 있어서 친구들도 저도 너무나 벅찼고 뿌듯한 경험이었어요.


앞으로 이와 관련된 프로젝트를 또 진행할 의향이 있나.

물론 또 하고 싶어요. 이번엔 유기견이 주인공인 스토리가 있는 달력을 구상중인데 고민이 많아요. 만약 진행한다면, 올해에도 반응이 좋았으면 좋겠어요.


은비(Eunbi)

 

http://notefolio.net/eunbi
http://instagram.com/eunbi.hello
http://hieunbi.tumblr.com

김해인

읽는 사람이 즐거운,
언제나 유쾌한 글을 쓰고 싶습니다.

0 Comment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