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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스로 반대의 길을 걸어가는 작가, 이승택

17.04.27 0

Wind, Graphite and watercolor on paper, 48.7x76.4 cm, 197


요즘에 인턴을 하고 있다. 2014년에 하던 일을 그만두고 이듬해 가족들의 반대를 이기고 대학원에 들어갔다. 회사를 그만두는 것도, 대학원에 들어가는 것도 모두 반대하며 인연을 끊자고 하던 아빠는 열심히 하는 모습을 보고 인정해주었다. 그렇게 대학원에 입학해 얼마나 많은 자기 비판에 시달렸는지, 무엇을 위해 대학원에 왔는지도 잊어버린 채 2년이 지났다. 그리고 수료생이 되어 원하던 기관에 합격해 인턴을 하고 있다. 뒤돌아보면 나의 20대 후반은 10대와 20대 초반에 없던 늦은 사춘기의 상처를 꿰매느라 정신 없이 흘러버린 것 같다.

바람 민속놀이,헝겊, 퍼포먼스, 100 x 8000 x 2000 cm, 1971

 

20대 중반, 어렵지도 쉽지도 않게 회사에 들어가 좋은 사람들과 만나고 힘든 일을 했다. 위 역류, 위염, 장 트러블과 있지도 않던 생리통, 목에 오던 담까지 2년 동안 참 많은 질병이 나와 함께 했다. 하지만 신기하게도 회사를 나오니 질병이 사라졌다. 그러나 대학원에 입학하자 내게 생긴 또 다른 질병은 어딘가에 소속되지 않은 불안함이었다. 불안함은 가끔 내 일상을 잡아먹었다. ‘대학원’이라는 세 글자로 설명할 수 없는 다양한 감정이 밀려 올라오곤 했던 것이다. 그러나 내가 선택한 길이기에, 좋아했던 것을 배우는 일이기에 회사처럼 그냥 그만둘 수 없었다. 그냥 인생에서 처음 맛보는 소속되지 않은 불안함을 지켜보는 수밖에 없었다.


인턴을 하면서 잠시 잊고 있던 ‘소속의 행복’을 느꼈다. 기간이 정해져 있기는 하지만, 그래도 인턴을 하면서 소속의 행복을 다시 느낀 것이다. 예전에는 그렇게 버리고만 싶던 ‘소속감’에서 행복을 느낀다는 게 조금 이상하기도 했지만, 어쨌거나 요즘에는 어딘가에 소속되어 있다는 게 행복하다. 어느 날은 문득 사원증을 목에 걸다 예전 회사가 주던 소속감 속에 행복하고 안일해하던 내 모습이 불현듯 떠올랐다. 입으로는 회사를 욕하지만 차마 퇴사는 할 수 없었던, 그 거대한 곳의 구성원으로서의 내 모습이 너무나도 안전해 보였던 기억들이 말이다. 그래서 잠시 동안 기관에 속해있다고 또 안일함을 보이는 내 모습이 처량하게 느껴졌다. 얼마나 스스로에 대한 자신감이 없으면 몇 개월 기대어 사는 이 곳에서 나를 또 포장하려고 하는 것일까. 생각해보니 내가 너무나도 나약한 인간 같아 슬퍼졌다. 흔들리면서 피지 않는 꽃은 없다지만, 이렇게 매번 흔들려도 되는 걸까. 이처럼 스스로가 나약해 보일 때면 우리나라에 실험미술이 소개되지 않았던 시절부터 자신만의 길을 걸어온 이승택 작가가 떠오른다.

 

Painting Water, 2000 x 800 cm, 1980

 

이승택은 한국 최초의 아방가르드 미술가다. 재야 작가로 50년을 살았던 그는 백남준아트센터 국제예술상(2009) 수상 이후 이름을 알리며 독자적 작업세계로 전세계 미술인의 극찬을 받고 있다. 작가의 작품은 런던 테이트모던 2층 전시장에 주세페 페노네(Guiseppe Penone) 등 세계 유명 작가들의 작품과 함께 ‘테이트콜렉션’으로 전시되어 있기도 하다.

이승택은 1932년 함경남도 고원군에서 태어났다. 고원에서 19살 때까지 살다 한국전쟁을 겪으며 남한으로 내려왔다. 그는 고등학교 재학 시절부터 미술에 남다른 소질을 보이며 철학에 관심을 가졌다. 홍익대학교 조각과에 재학하며 니체의 철학에 심취했고 이는 이승택 작품 세계의 핵심인 ‘부정’의 기반이 되었다. 그는 존재하는 것들을 부정하고 거부해야 새로운 것을 창조할 수 있음을 깨달았다. 출처: 국제 갤러리 작가소개

 

지구놀이, 풍선 퍼포먼스, 1990

 

작가의 작품을 보다 보면 ‘어떻게 이런 생각을 예전부터 했을까’부터 ‘어떻게 이런 작품을 놓지 않고 지속해 왔을까’라는 물음이 떠오른다. 그리고 남의 눈치 보지 않고 스스로의 방향대로 꾸준히 걸어온 그에게 존경심이 느껴진다.

"…그러나 이렇게 넘쳐나는 다양한 아이디어보다 더 중요한 것은, 반드시 한국 현대미술의 역사에서 커다란 족적을 남겨야겠다는 일념으로 가득 차 있었다는 점인데, 나는 작가로 첫발을 내딛은 순간부터 한국 현대미술의 역사에 살아남는 독자적인 작품세계를 구축한 작가로 남고자 했던 것 같다. 무엇보다도 현대 미술사조에서 나만의 독창성을 가져야 한다는 것과, 내가 하고 있는 것을 나만의 작업에 솔직히 드러내는 것을 중요시하고 우선순위에 두었다. 그래서 앞만 보고 달려갔고, 지금도 그러한 생각을 실천하려고 노력 중이다. 그런 까닭에 기존의 미술을 무조건 거부하고, 미술 아닌 미술 즉, 비(非)미술, 비(非)예술을 추구했었다. 그러다 보니 진지한 사색을 통해 나왔지만, 재미있고도 흥미로운 과정의 실험 작업에 몰두 할 수 있었고, 다양한 부류의 실험미술을 오랜 기간에 걸쳐 방대하게 남길 수 있었던 것이다." 출처: 작가노트, 이승택. 갤러리현대, 2014년 도록 발췌

 

“나의 저항 정신은 어릴 적 부친으로부터 영향 받은 것이었습니다. 부친은 일본에 여행을 다녀온 분이었습니다. 동경을 보고서는 한양이 촌락처럼 작아 보이고, 더구나 함남 고원의 우리 마을은 손바닥처럼 작고 답답함을 느끼게 하는 것이었지요. 만주에서 독립운동을 하지 못하신 것을 한스럽게 생각한 부친은 지금 생각하면 가업을 돌보지 않은 한량이었지만 저에게는 저항을 일깨워 주신 장본인이었지요. 사람들이 나의 조각을 보고 비조각이라고 부르는 데에는 이유가 있습니다. 나는 조각의 형식적 틀을 싫어했습니다. 내 작업을 대중들이 좋아하면 그만둡니다. 다시 새로운 걸 찾아야죠. 무언가 남들이 하는 것을 피해가다 보니까 내 자신의 본질 문제로 남게 된거죠. 내 자신의 본질을 추구하는 것이 저항이고 자유인 셈입니다.” 출처: 미술세계, <이승택-저항으로 일관해온 '비조각'의 세계>, 1984, 9월호, pp. 75-80.

 

바람, 생목&헝겊, 1969


동풍, 사진과 부분 그림, 1974

 

작가는 서구에서 들어온 사조에 매몰되지 않고 스스로의 길을 개척해나갔다. 기존의 규범에 부합하는 것, 권위적이고 제도 안에 합당한 것들로 자신의 작업을 포장하지 않은 것이다. 특히, 니체의 철학에 영향을 받은 그는 작업을 통해 자기만의 정신 세계를 표출하고자 했다. 그래서 그는 미술계의 비주류 작가로 분류되곤 했는데, 그러한 과정에서 자신만의 작품 세계와 잣대를 이끌어가기 위해 많은 고민을 했다. 그러나 자신의 내면에 대한 깊은 고민은 매몰된 것이 아닌 창조적인 그만의 개성을 표출하게 도와주었다.


녹, 이끼 색소 그림 (도로공사장에서). 1983

 

대부분의 인간들은 바람에 날려 빙글 돌다가 방향을 잃고 땅바닥에 굴러 떨어지는 낙엽과 같은 존재요. 하지만 드물게도 별처럼 확고한 자기의 궤도를 가는 사람이 있소. 그들은 바람에 조금도 흔들리지 않고, 자기 내부에 그들 나름대로의 법칙과 궤도를 가지고 있소. 출처: <싯다르타> 헤르만 헤서

 

<싯다르타>에 나오는 이 구절이 이승택 작가의 인생을 말해주는 것 같다. 누군가의 길을 따라가지 않고 자신만의 길을 가는 이승택 작가는 2017년 뉴욕의 레비 고비 갤러리에서 첫 개인전을 열었다. 

 

이승택 화백의 개인전을 찾은 뉴요커들, 출처: 한국경제

 

1932년 생이지만 작가는 아직도 최선을 다해 작업하고 있으며, 미국에서 첫 개인전을 개최했다. 어떤 신문에서는 ‘노익장을 과시하는 작가’라는 수식어로 그를 나타냈지만, 개인적으로 이미 이승택 작가의 열매는 맺혀있었고, 단지 외국에서 그 열매를 알아본 것이라 생각한다. 몇 십 년 전부터 이루어진 그의 작업들은 단순히 ‘노익장’이라는 단어로 설명할 수가 없다. 수많은 아류들과는 정 반대로 자신만의 본질을 찾아간 작가의 작품은 여러모로 귀감이 된다.


“어느 시대에나 본질은 같다. 본질적인 것을 추구하면 시대적인 것을 초월할 수 있다.”라고 말하는 이승택 작가의 말은 언제나 문제없어 보이지만 휘어지는 게 무서워 곧게 살아가기만 하는 우리 시대의 사람들에게 큰 울림을 준다. 그렇다면 생각해보건대, 현실에 안주하지 않고 정체하지 않으며 자기만의 길을 가는 사람이 이 시대의 진짜 예술가가 아닐까. 만약, 우리 모두 자기 인생의 예술가라고 말할 수 있다면, 소속되지 않는 불안함에 자신을 매몰시키지 말고, 스스로의 방법으로 인생의 방향을 찾아나가는 이승택 작가와 같은 예술가가 돼야 할 것이다.

십사

안녕하세요, 십사입니다.
미술, 만화영화, 춤, 피천득님, 법정스님을 좋아합니다.
살아있음을 기쁘게 여기며, 지혜롭고 성실하게 살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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