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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술 말하기] 잃어버린 자신을 찾는 여정, 김누리의 <Incubator>

17.06.05 0

앞으로 노트폴리오 매거진에 게재할 <미술 말하기>는 필명 ‘십사’로 활동하고 있는 박주원의 평론글입니다. 평론을 통해 미술사학적 관점에서 살펴보는 다양한 작품 속 이야기와 그녀만의 해석을 만나보세요. 글의 원본은 ‘대안공간 눈’에서 확인하실 수 있습니다.  

 

잃어버린 자신을 찾는 여정

<소리> 혼합매체, 55X55cm, 2017

 

나는 여성의 글쓰기에 대해, 여성의 글쓰기가 할 일에 대해 말하고자 한다. 여성은 여성 자신에 대해 써야 한다. 즉 여성에 대해 써야 하며 여성들 자신이 쓰게 해야 한다. 여성들은 자신의 몸에서 멀어졌었다. 그만큼 격렬하게 여성은 글쓰기로부터 멀어졌다. 여성은 스스로의 몸짓으로 자신을 텍스트 안에, 이 세계와 역사 속에 두어야 한다.

출처: Hélène Cixous(1976), 「메두사의 웃음(The Laugh of the Medusa)」, 윤인숙 옮김, 윤난지 엮음, 『페미니즘과 미술』 (눈빛, 2009), p. 185.

 

<시작으로부터ⅳ(from the beginning ⅳ)>,과슈, 잉크, 40X40cm,2016

여성성에 대해 매 순간 생각하면서 사는 여성이 과연 몇이나 있을까? 매 순간 ‘나는 여자다’라는 것을 몸에 각인하고 사는 여성이 있다면, (여성을 포함한) 사람들은 그 여성에게 “정말 인생을 피곤하게 사는 사람이다.”라고말할지 모른다. 그렇다. 다들 원래는 여성성이니 남성성이니를 많이 생각하지 않고 산다. ‘인생을 피곤하게 살지 않는 방식으로’ 혹은 그냥 일상의 여러 잡다한 일들이 겹치고 겹쳐 내가 누구인지, 나의 본질이나 나의 성(性)에 대해서는 이해를 하지 않고 넘어가는 경우가 허다하다. 왜냐하면 그것이 일상생활에서 몇몇의 경우를 제외하고는 굳이 생각하지 않아도 되는 것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여성과 남성은 같은 시간과 공간 속에서 인생을 여행하는 인간이라는 점이 같다고 배워왔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여성성과 남성성의 구분이 조금 어려웠고, 여성이라는 본질이 무엇인지를 생각해볼 겨를도 많지 않았던 듯싶다.


그렇게 남자와 평등하다는 생각을 갖고 자란 우리 세대의 여자들은 ‘결혼’이라는 것을 마주치면서 뜻하지 않게 자기 정체성을 고민하게 된다. 그리고 그제서야 여자들은 내가 여성이라는 것을 깨닫게 된다. ‘남성과 여성’. 두 글자 중에 단지 한 단어만이 다를 뿐인데 둘의 인생은 너무 많이 다르다. 한 쪽은 주체, 한 쪽은 타자의 인생으로 계속 뻗어나간다. 한 쪽은 중심과 사회, 한 쪽은 타자와 가정이라는 것에 초점을 맞추며 살아간다. 선택의 갈림길에서 ‘여성’이기에 어쩔 수 없이 선택하게 되는 것이 많아지면서, 우리 시대를 사는 여성들은 자기 정체성을 규정하는데 애매함을 갖게 된다. 이러한 자신에 대한 혼란스러운 물음은 소설 『82년생 김지영』에서도 드러난다.

이제 여자니까 공부를 못하거나 덜 배워도 된다고 생각하는 부모는 없는 듯했다. 여자도 똑같이 교복 입고, 가방 메고, 학교에 다니는 것이 당연해진 지 오래고, 여자아이들도 남자아이들과 다름없이 적성을 고민하고, 직업인으로서의 미래를 계획하고, 그에 다가가기 위해 노력하고 경쟁했다. 오히려 여자라고 못할 것이 없다는 사회적 지지와 응원의 목소리가 높아지던 시기였다. 김은영 씨가 스무 살이던 1999년에는 남녀 차별을 금지하는 법안이 제정됐고, 김지영씨가 스무 살이던 2001년에는 여성부가 출범했다. 하지만 결정적인 순간이면 ‘여자’라는 꼬리표가 슬그머니 튀어나와 시선을 가리고, 뻗은 손을 붙잡고, 발걸음을 돌려놓았다. 그래서 더 혼란스럽고 당황스러웠다.

출처: 조남주, 『82년생 김지영』, 민음사, 2016, p. 72.

 

<시작으로부터ⅲ(from the beginning ⅲ)>,과슈, 잉크, 40X40cm,2016


김누리 작가의 작품과 『82년생 김지영』이라는 소설에서 동일하게 등장하는 ‘여성 정체성’에 대한 물음은 우리 시대의 여성들이 답을 내지 못하고 살아가는 질문이다. 성장하면서 정리한 스스로가 생각하는 ‘여성’과 사회가 바라는 ‘여성’의 모습이 너무나도 다르기 때문에 여성들은 쉽게 답을 낼 수가 없다.


‘결혼 후 여성성이 시작된 느낌이다’라는 김누리 작가의 말이 무엇인지 같은 기혼자로서 크게 공감한다.결혼과 함께 여러 가지 역할이 여성에게 주어지면서 여성은 자신만이 존재하던 인생의 길목에서 큰 흔들림을 느낀다. 모두에게 흔한 일이지만 모두에게 쉬운 일은 아닌 ‘결혼과 출산’이라는 일들을 겪으면서, 원래 인간관계에 관한 작업을 하던 작가는 자신의 이야기에 집중하게 되었다고 한다.


작가는 여성이기에 겪을 수밖에 없는 보편적이면서도 개인적인 혼란함과 ‘나의 본질을 찾는 과정’을 담담하게 작품으로 풀어낸다. 작가의 전시 제목은 <Incubator>, 무엇인가를 자라게 하고 배양하기 위한 목적으로 쓰이는 기계의 명칭이다. 작가는 임신을 한 당시, 스스로도 임신을 통해 일어난 여러 변화들이 급작스러웠는데 주변 사람들은 모두 자신을 걱정하는 것이 아닌 ‘아이’만을 위한 걱정을 했던 기억이 생생하다고 했다. 스스로도 ‘엄마’가 되기 위한 10개월의 배움의 과정이 필요했기에, 그러한 감정을 전시의 제목인 ‘Incubator’로 표현했다고 언급했다. 작가는 결혼, 임신, 출산이라는 과정이 정확히 어떤 것이라고 말을 해준 사람들이 없어서 잘 몰랐기에, 이것들이 정말 힘들었을 때는 누군가 자신을 골탕먹이는 것이 아닌지 생각해보았다고 했다. 그런 혼란한 감정들이 작품에는 원형과 뻗어나가는 선으로 표출된다.


작가의 작품에 자주 등장하는 원과 선들은 재료에 따라 말아져 있기도 하고 퍼져나가는 모습으로 그려져 있기도 하다. 어디로 뻗어나갈지 모르는 방향성을 지닌 이 원형과 선들은 우선 세포의 모습이고, 또한‘여성’으로 태어났기 때문에 겪게 되는 나비효과와 같은 일들-며느리로서의 역할, 임신, 출산, 결혼하고 나서 겪는 여러 감정들-을 뜻한다. 무한대로 뻗어나가는 선들과 퍼져나가는 원형은 여성이라는 존재가 지닌 기원의 모습과 무거움의 감정을 모두 표현하는 듯 보인다.

 

<으로부터(from)> 펜 드로잉, 48x48cm, 2017

엘렌느 식수(Hélène Cixous)의 말처럼, 작가는 원래 멀었고, 잘 알지 못했던 스스로에 대해 고찰하는 작업을 보여주었다. 작가는 원래 사회나 자연과 같은 거대한 이야기보다는 자신의 이야기에 집중하는 작업을 해왔었다고 말했는데, 작업을 보면 모든 여성이 밖으로 말하지 못하고 갖고만 있는 이야기가 보인다.남자들이 직장에서 버려지지 않기 위해 고군분투한다면, 여성들은 ‘나의 본질’을 잃지 않기 위해 여러 조건들과 싸우고 고군분투하며 살아간다. 까딱하다가는 사회의 인식과 규율에 스며들어, 마치 집으로 돌아오는 길을 모르는 헨젤과 그레텔처럼 자신의 본질을 잃을 가능성이 크기 때문이다.


작가의 작품은 ‘여성’으로서의 자신을 알고 자기 자신의 상황을 인지하는 과정을 보여주며, 잃었고 잊었던 존재의 본질을 찾아가는 여정을 느끼게 한다. 인지하지 못했던 자신의 본질을 찾아가는 과정은 험난할지 모른다. 애초에 누군가가 도와줄 수 없어 더 험난하다. 모든 것을 버리고 나만의 나를 찾는 과정이 아니라, 모든 것을 짊어지고, 인생의 모든 것과 함께 떠나야 하는 여정이기 때문에 더 버겁다. 그러나 작가는 정직하고 최선을 다해서 자신을 찾아가고 있다. 인생을 걸쳐서 꼭 필요한 여성의 역할을 배우는 과정 속에서 작가는 작품을 통해 자신의 본질을 찾아나가고 있는 것이다.

<위대한 유산(Great Expectations)>, 혼합매체, 가변설치, 2016

누군가의 할머니, 엄마, 혹은 외할머니, 길거리 모퉁이에서 아이의 발걸음에 맞춰 걸어주는 어머니, 지하철에서 급히 뛰어가는 또각 구두를 신은 여성들의 모습에서 자신을 잃지 않기 위해 고군분투하는 김누리 작가를 만난다. 그래서 김누리 작가의 작품은 위로가 된다. 모든 여성이 잃어버렸던 자신을 찾고, 다시는 낡은 규칙에 얽혀 자신에게 돌아오는 길을 잃어버리지 않기를 바란다.

 

십사

안녕하세요, 십사입니다.
미술, 만화영화, 춤, 피천득님, 법정스님을 좋아합니다.
살아있음을 기쁘게 여기며, 지혜롭고 성실하게 살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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