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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판 ‘마담 드 퐁파두르의 실현’, 셀피

17.06.12 0

1720년대 이후, 파리에는 패션화가 유행했다. 패션화는 프랑스 원어로 ’따블로 드 모드 (Tableaux de mode)‘로 귀족과 사회 지도층의 엘리트, 그리고 행정가들이 살롱이나 궁정에서 담소하는 모습을 그린 그림이다. 그림은 주로 패셔너블한 귀족들의 삶을 보여주는 것이 목적이었다. 패션화 중에는 개인 초상화 작업도 눈에 띄는데, 그 중 하나가 ‘모리스 켕탱 드 라 투르(Maurice Quentin de La Tour)’가 그린 악보를 들고 있는 <퐁파두르 후작부인(Madame de Pompadour)>이다.


<퐁파두르 후작부인(Madame de Pompadour)> 모리스 캉탱 드라 투르, 1755


초상화는 인물의 부유함과 그의 신분에 걸 맞는 기품 있는 의상을 표현했다. 또한, 단순히 부(富)이상의 지적 소양과 다재 다능함을 표현하고자 했다. <마담 드 퐁파두르(Madame de Pompadour)>의 경우도 마찬가지다. 여기서 주목할 점은 그녀가 초상화를 통해 자신의 삶과 관심사를 드러내고자 했다는 점이다. 마치 현대판 ‘셀피’처럼 말이다.

 

<프랑수아 부셰, 마담 드 퐁파두르(Madame de Pompadour)의 초상>
캔버스의 유채, 스코틀랜드 국립 미술관, 출처:
네이버 지식백과 

 

요즘은 패션피플부터 일반인까지, 너나 할 것 없이 셀피에 열광한다. 위키피디아는 셀피를 ”디지털 카메라 혹은 카메라 폰으로 본인의 모습을 찍은 사진”이라고 정의한다. 이와 비슷하게 옥스퍼드 사전은 “스마트폰으로 본인의 모습을 직접 찍어 SNS에 올린 사진”이라고 정의하기도 한다. 엄밀히 따지자면, 역사적으로 처음 등장한 셀피는 1839년경 로버트 코넬료가 자신의 앞마당에서 찍은 사진이었다. 또한, 러시아의 마지막 황녀인 아나스타샤가 열세 살 무렵에 찍은 ‘거울 셀카’가 있기도 하다. 이렇듯 과거부터 이미 셀피가 존재했지만, 본격적으로 셀피가 주목 받기 시작한 건 비교적 최근의 일이다. 전면 카메라가 달린 스마트폰의 개발과 페이스북, 플리커, 인스타그램과 같은 SNS의 등장이 셀피의 시대를 연 것이다.

 

네덜란드 출신 미국 사진작가 로버트 고넬료,
1939년 10월 촬영, 출처:
아시아투데이

 

러시아의 마지막 황녀 아나스타샤의 셀피, 출처: 서울신문

 

처음에는 연예인들의 예쁘고 잘생긴 얼굴 위주의 사진이 셀피의 주를 이뤘다. 이후, 셀피문화가 일반인들에게도 확장되면서 자신만의 패션이나 라이프스타일을 SNS에 올리기 시작했다. 이러한 현상은 불특정다수의 평소 스타일과 개성, 취향을 자유롭게 대중에게 공개함으로써 사람들이 자신의 스타일을 좋아하고 ‘따라하고 싶다’는 생각이 들도록 유도했다. 이렇듯 자신의 패션을 보여주는 현상 또한 <마담 드 퐁파두르>의 초상화를 떠올리게 한다. 그녀 역시 화려하고 세련된 로코코 의상으로 초상화에 등장해 당대의 패션과 유행을 선도했기 때문이다.

 

<마담 드 퐁파두르(Madame de Pompadour)의 초상> 캔버스에 유채, 1756


이렇듯, 초상화 속에 드러난 의상과 스타일은 당시의 위계질서와 사회상을 보여주기도 한다. 무엇보다 초상화에서 귀족들의 삶 속 ‘이면’을 드러내지 않는 점이 눈에 띈다. 마치 현대의 TV드라마가 부유층의 ‘풍족한 생활’에 주목함으로써 사치에 대한 환상을 부풀리듯, 초상화에는 귀족으로 사는 어두운 이면이 결코 드러나지 않는다.

 

<퐁파두르의 방>, 출처: 네이버 지식백과

 

때문에 대부분 셀피를 유쾌하게 받아들이지만, 한편으로는 ‘중독’이라 부를 만큼 심각하게 생각하기도 한다. 그도 그럴게, SNS 세상 속 사람들은 항상 웃는 얼굴로 세계 각국을 여행 다닌다든가, 잘 꾸며놓은 집에서 비싼 음식을 먹으며 자신이 ‘행복하다’는 것을 계속해서 강조하기 때문이다. 처음에는 그저 사진 몇 장을 찍어 한 장 두 장 올렸을 것이다. 그러다 어느 순간 ‘보여주기’식의 셀피가 되면서, 현실의 상황과는 반대되는 감정과 상황을 게재하기도 한다. 이처럼 초상화와 셀피는 인간의 ‘과시욕’을 드러내는 방식에서 무척이나 닮았다. 그렇다면 이면이 드러나지 않기에 초상화와 셀피는 무의미한 것일까?



<프랑수아 부셰, 마담 드 퐁파두르(Madame de Pompadour)의 초상>
캔버스에 유채, 18C경, 출처:
네이버 지식백과

 

다시 <마담 드 퐁파두르> 초상화를 보자. 그림 속에는 화려하고 세련된 의상을 입은 한 부인이 꽃무늬 천을 씌운 소파에 앉아 있다. 그녀는 악보를 넘기다가 문득 다른 쪽을 바라보고 있는 참이다. 책상에는 여러 권의 책이 꽂혀 있으며, 왼편에는 가구에 기대어 놓여 있는 기타가 희미하게 보인다. 화면 오른편에는 지구의와 동판화, 그리고 판화 포트폴리오가 놓여 있다. 퐁파두르 부인은 루이 15세의 정부로 간택된 이후, 자신의 이미지를 ‘벨 사방(학식있는 여인)’으로 알리기 위해 끊임없이 노력했다. 그런 증거가 바로 그녀의 초상화마다 등장하는 사물이다. 그녀는 자신이 문화와 예술을 사랑하는 애호가이자 후원자임을 증명하고자 했다. 무엇보다 이 초상화로 인해, 그녀의 패션과 엘리트다운 삶을 닮고자 하는 욕망이 많은 사람들을 사로잡기도 했다. 그런걸 보면, 과거의 초상화 역시 셀피처럼 등장인물의 이미지를 향상시키고 타인에게 욕망을 심는 매체로서 이용된 모양이다.


살롱에서 몰리에르를 읽는 사람들, 장 프랑수아 드 트루아, 1730, 출처: 네이버 지식백과


하지만 이 ‘현대판 초상화’는 단순히 얼굴과 패션뿐만 아니라 사람들의 일상적인 삶까지 모두 담아낸다. SNS 발달과 셀피 유행이 맞물려 일반인들의 라이프 스타일까지 집중하게 된 것이다. 그만큼 특정인에게만 쏠리던 ‘리빙’과 ‘라이프 스타일’에 대한 관심이 대중에게로 확산되면서 과거와는 다른 문화를 만들고 있다. SNS상의 공동구매와 자기 방식대로 해석한 아이템의 활용이 그것이다. 실제로 같은 상품일지라도 각자 개성대로 꾸민 집의 사진을 등록하고 검색하는 횟수가 증가하고 있다고 한다. 이 모든 현상을 아울러보면, 셀피는 시대상을 드러내는 척도이자, 과시의 창구인 동시에 새로운 문화를 창조한다. 마치 과거의 초상화가 그랬던 것처럼 말이다. 그런 맥락에서 셀피는 과거 패션화의 연장이 아닐까.

리아뜰(LeeAtel)

늘 아뜰리에 안에 머무르기를 꿈꾸며,
읽고 쓰고 그리고 감상하는 시간을 무척 아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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