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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을 말하는 그림들

17.07.06 0

예술작품을 감상할 때면 작가 개인이 겪은 일화나 그로 인한 정서가 고스란히 전해지지 않을 때가 있다. 작품은 행복을 이야기하는데 나는 행복하지 않을 때, 작품 속 인물은 비극의 절정을 맞이하는데 나는 삶이 즐거울 때가 그렇다. 특히 보편적인 정서가 아닌 특수한 상황에서의 감정을 다룰 때면 더욱 공감하기가 어렵다. 그럴 때면 한 번도 겪어보지 못한 감정에 쉽사리 공감할 수 없는 것이 당연하다고 생각하면서도 작품으로부터 멀어져 완전히 타자의 입장이 될 때면 너와 나, 아니 작가와 관람자 사이에 균열이 생기는 것을 느낀다.

 

<In Bed the Kiss> 툴르즈 로트렉(Henri de Toulouse-Lautrec), 1982

 

하지만, 보편적인 감정을 소재로 다룬 작품을 보면 왠지 모르게 친근한 마음이 들어 더 깊이 관찰하고 다가가게 된다. 이는 작품의 예술성과 관람자의 지적 수준과는 별개의 문제다. 우리가 흔히 겪고, 그래서 공감할 수 있는 감정 중 하나는 바로 ‘사랑’이다.

 

<The Honeymooners> 에드워드 프레데릭 브로트놀(Edward Frederick Brewtnal), 1890

 

옛부터 지금까지 남녀 간의 사랑은 작가들에게 많은 영감을 주었고, 그만큼 예술적 소재로 꾸준히 활용되어왔다. 그래서 시간이 흐르고 다양한 작품이 등장하는데도 불구하고 사랑은 표현의 형태만 달라졌을 뿐 계속 소비되고있다. 하지만 모든 사랑을 하나의 속성으로 묶을 수는 없다. 미술의 역사적 관점에서 보면, 시대마다 요구하는 사랑의 형태와 사랑에 대한 인식이 조금씩 달랐기 때문이다. 오늘은 그중에서도 미술작품에서 나타나는 작가의 사랑관을 통해 당대의 제도와 관습, 혹은 개인의 사랑 이야기 그리고 사랑을 보는 작가의 시선을 이야기하고자 한다. 우선, 사랑과 결혼을 일치시켰던 사회의 관습적 요구가 담긴 그림을 들여다보자. 그림 속 다정한 연인들의 모습은 친근하지만, 그곳에 내재한 당대의 시각들은 우리가 말하는 사랑과 조금 다른 형태를 지닌다. 

 

<The Measure for the Wedding Ring> Michael Frederick Haliday, 1855

 

<The Wedding Breakfast> 조지엘가힉스(George Elga Hicks), 1862

 

19세기는 결혼과 여성의 역할에 대한 인식이 지금과는 달랐다. 결혼한 여성만이 사회가 요구하는 ‘도덕적 여인’의 표본으로 인정받았고, 결혼한 후에도 가정에 충실한 여성의 행실은 도덕적 임무를 수행하는 덕목으로써 당연하게 여겨졌다. 이러한 여성상은 당대의 회화 작품에서도 드러난다. 특히 19세기 런던에서는 모든 여성을 ‘가정 안의 여인’과 ‘가정 밖의 여인’으로 나눌 정도였다. 이 시대에서 결혼은 단순한 제도가 아닌, 여성이 갖춰야 할 필수 덕목이었고, 이는 개인의 선택이 아닌 관습에 따른 여성 이데올로기로 작용했다. 그만큼 ‘사랑’과 ‘결혼’, 혹은 ‘가정 안의 여성’은 우리가 명화라 부르는 작품들에서도 흔히 다루는 주제였다. 이와 같은 여성에 대한 이분법적인 시각은 특히 영국의 빅토리아시대 그림에서 더욱 두드러진다.

 

삽화, C.J. Culliford, Scene in Regent Street.출처: http://www.lauraagustin.com

 

위의 그림은 1862년 1월 7일, 런던의 <타임즈>에 실린 삽화로, 한 딸아이의 아버지가 자신의 딸이 런던 시내를 거닐다 낯선 남성으로부터 매춘부로 오해를 산 것에 대해 분개하며 상황을 묘사했다. 이는 당대 중산계층의 여성들이 혼자 돌아다니는 것이 드문 일이며, 외출할 때에는 반드시 남성을 동반해야 했음을 나타낸다. 결혼하지 않으면 ‘매춘부’라는 오해까지 살 정도로 ‘가정 밖에 있는 여인’은 주변으로부터 따가운 시선을 받아야만 했다. 그림에서도 알 수 있듯, 그녀들의 위치는 결혼 여부에 따라 나눠지며 동시에 사회 전반에 내재한 이중 잣대에 자유롭지 못했다. 황당하기 짝이 없는 이러한 시선들은 동시대를 살아가는 우리에게 조금 낯설지만, 사랑과 결혼, 여성과 남성이라는 보편적인 소재를 다뤘다는 사실만으로 공감을 안겨줄 수도, 반감을 살수도 있다.

 

<found> 단테 가브리엘 로제티,1859

 

 <Woman’s Mission> 조지 엘가 힉스, 1863

‘가정 밖의 여인’과 ‘가정 안의 여인’은 작품 속에서 이렇게 상반된 모습으로 나타난다.

 

결혼은 필수가 아닌 선택이 된 현대의 삶에서 이 작품들을 마주한다면, 혹은 색채와 형태 위주로 감상하는 것이 아닌 그림을 ‘이해하려고’ 한다면, 이러한 프레임이 불편할 수도 있다. 그러나 이와는 반대로 결혼에 구속되지 않고 자유롭게 사랑을 나누는 모습을 그린 작품도 있다. 이는 보는 이로 하여금 따뜻한 시선을 갖게 한다. 샤갈은 결혼식을 마친 신혼부부와 연인이 하늘을 자유롭게 나는 모습을 그리며 ‘사랑’에 초점을 둔 작품을 그렸다. 2차 세계 대전으로 암울한 시기를 겪었던 그는 자신의 그림에 어떤 우울함도 비추지 않은 채 사랑이야기를 함으로써 현실을 외면했다. 그만큼 그에게 사랑은 현실의 도피처인 동시에 아름다운 세계로 가는 이상향이었다.

 

(L) <에펠탑의 신랑 신부> 샤갈(Marc Chagall), 1938, (R) <산책> 샤갈, 1918

물론, 사랑하는 사람을 모델 삼아 그림을 그리는 것은 예술가들 사이에서 흔한 일이다. 하지만 이를 낭만적으로 볼 수만은 없는 이유는, 피카소처럼 자신이 사랑하는 사람의 슬픔을 자양분으로 삼아 걸작을 탄생시킨 경우도 있기 때문이다. 아래의 작품 속 여인은 에스파냐 내란 중에 만난 피카소의 다섯 번 째 여인 ‘도라 마라’다. 피카소는 전쟁의 비극으로 인한 여인들의 슬픔을 주제로 그림을 그리던 시절, 자신의 연인을 모델로 삼아 그 슬픔을 상징화하기에 이른다. 이 작품 외에도 <잠자는 여인>, <독서하는 여인>등, 연인의 감정 변화에 주목한 걸작들을 많이 남겼다.

 

<우는 여인> 피카소(Picasso), 1937

 

<잠자는 여인> 피카소(Picasso)

 

<독서하는 여인> 피카소(Picasso)

 

여자는 한없이 울고 있는데 그는 그 모습을 작품에 담아 슬픔을 표현했다. 피카소는 분할된 형태 안에서도 여인의 슬픈 시선을 온전히 담아냈다. 비록 작품에는 사랑하는 ‘둘’의 모습이 담겨있지 않을지라도, 사랑하는 사람을 어떻게 표현했느냐를 관찰하고 감상하다 보면 우리는 한 번 더 작가의 세계관과 그의 사랑관을 들춰볼 수 있다. 하지만 씁쓸하게도 피카소의 그녀는 유일한 여자가 아닌 ‘수많은 여자들 중 한 명’일 뿐이었다.

 

영화 <르누아르(Renoir)> 중 한 장면, 출처: 네이버 영화

 

사랑에 관한 기록과 사랑하는 사람을 그린 작품, 혹은 현재의 사랑을 표현한 작품은 결국 모두 ‘사랑’이라는 씨앗에서 피어난 결과물이다. 그만큼 우리는 알게 모르게 사랑의 다양한 측면을 미술과 소설, 희극과 같은 장르에서 자주 접할 수 있다. 이와 같은 과정 속에서 내가 어떤 모습의 사랑을 접할 때 진정으로 공감할 수 있는지 생각해보는 것도 나쁘지 않을 것이다.

이윤정(Lottie)

그림을 쓰고 글을 그린다.
아날로그를 사랑하다 디지털 시대의 위협을 받고 현대적인 것과 친해지는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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