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기자기한 애교심의 표출

17.07.11 0

여중 여고를 나온 탓일까. 처음 ‘대학’이란 곳에 입학했을 때, 아니 입시를 치르기 위해 고사장으로 들어가는 순간부터 이질감을 느꼈던 건 다름아닌 ‘남학생’때문이었다. 물론, 입시학원이든 외부활동에서 만난 남자인 친구들이 있었지만, 함께 정규교육과정을 듣는다는 사실이 어쩐지 낯설다고 해야 하나. 지금 생각해보면 아무것도 아닌 일인데, 막 성인이 될 무렵 19살의 감성은 그랬다. 그래서인지 지망했던 대학 모두 ‘여대’였고, ‘여대’여야만 했다. 결론은 일반대학에 진학해 누구보다 스스럼 없이 남학우들과 잘 지냈지만, 여대에 속한 여학교에서 학창시절을 보내며 ‘여대’에 대한 환상이 있었던 건 분명하다.


성신 일러스트, 출처: 성신여자대학교
 

살짝 언덕진 교문을 내려오는 언니들은 어찌 그리 빛났던지, ‘나도 대학생이 되면 예뻐질까?’라는 기대를 품었다. 수업을 마치고 함께 내려오던 언덕길의 얼굴들과 같은 공간에서 떡볶이를 먹으면서도 뭐가 그리 재미 있는지 마냥 웃는 언니들의 미소는 늘 빛이 났다. 당시에는 그런 빛이 ‘여대’에만 존재하는 거라 생각했다. 그런데 또 다시 이런 환상을 일깨우는 사건이 발생했으니, 바로 여대에서 제작했다는 굿즈 때문이다.

 


한양대학교 캐릭터 ‘하이리온’, 출처: 한양대학교

‘대학’과 관련된 ‘흥미로운 디자인’을 떠올려보라 하면, 한 때 화제가 되었던 교수(敎獸)인 사자를 타이포그래피로 형상화한 한양대 재학생의 작품이 기억이 난다. 해당 캐릭터는 시각적으로도 의미적으로도 대표성이 뛰어났는데, 기발한 아이디어만큼 학교의 공식 로고로 채택되었다. 그만큼 재학 중일 때만해도, 특색 있는 로고 대신 고딕체로 바르게 “ㅇㅇ대학교”라고 적힌 펜과 노트, 그리고 디자인적 요소는 찾아보기 힘든 과잠이 내가 생각하는 굿즈의 전부였다.

 

사진출처: 이화기념품점 & @ewha_photo


그래도 왠지, 그런 거 하나쯤 걸치고 사용하고 있으면 없던 애교심도 생기고 동기들과도 더욱 돈독해지고, 덩달아 소속감도 느꼈던 것 같다. 그만큼 학교 관련 굿즈에는 ‘나는 이런 사람이에요’라는 자신의 정체성을 드러내고자 하는 욕망이 반영된 동시에, 사용자의 의도대로 은연 중에 자신을 나타내는 임무가 주어지기도 한다. 때문에 한편으론 굿즈의 기능이 고루하기 짝이 없다고 생각할 수도 있지만, 이들의 물건에는 단순히 “ㅇㅇ대학교”를 드러내는 것 이상의 애정이 녹아있다. 

 

학생들의 굿즈 인증샷, 출처: @ewha_photo

특히 이화여대의 경우, 굿즈의 제작부터 생산까지 온라인 피드백을 통해 민주적인 과정으로 이루어져 인상 깊다. 때문에 좋은 아이디어가 있다면 누구나 굿즈 제작에 참여할 수 있고, 타인의 디자인을 도용하거나 제작 과정 동안 발생할 수 있는 불미스러운 일도 자정 되는 효과가 있다.

 


공구를 진행하는 이유는 개인차가 있겠지만 학교와 학생들(이하 벗들)에 대한 사랑이 가장 큰 동기라고 할 수 있다. …(중략)… 아무리 공식적인 절차를 통해 진행한다 하더라도 총대 벗이 상장 기업들만큼 신뢰성이 높지는 않다. 또한, 실물이 나온 것이 아니라 시안만을 보고 입금하는 것이기 때문에 품질을 보장할 수 없다. 하지만 공구는 다채로운 색상의 옷과 다양한 품목의 학교 굿즈를 가질 기회이며 ‘이화인 인증’ 절차가 이러한 위험성을 상쇄할 만큼의 끈끈한 힘을 가지고 있다.

공구를 통해 배울 수 있는 점도 많다. 공구는 학생들에게 리더쉽을 갖게 한다. 어떠한 그룹 내에서 반드시 눈에 띄는 사람이 아니더라도 스스로 기획하고 실행하는 피드백을 반영하는 일련의 절차를 진행할 수 있다. 또한, 많게는 300만 원 정도의 돈을 청렴하게 관리해야 하는 책임감을 키울 수 있고 미처 생각하지 못했던 상법에 대한 자각도 키울 수 있는 것이다, 출처: 영현대매거진 

 

숙명여자대학교 캐릭터 눈송이 출처: 숙명여자대학교 

 

그 외에 숙명여대의 ‘눈송이’도 눈에 띈다. 숙명여대의 캐릭터인 ‘눈송이’는 말 그대로 눈송이 머리모양을 한 캐릭터다. 1906년생인 기존의 눈송이는 다소 딱딱한 인상을 가지고 있었지만, 2013년 미대 재학생의 재능기부로 성형설(?)이 제기될 만큼 새롭게 탄생했다. 리뉴얼한 ‘눈송이’로 디자인한 굿즈들이 단숨에 완판되었다고 하니 그만큼 귀여움이 한층 더해진 ‘눈송이’는 학생들의 마음을 사로잡기에 충분했다. 물론, 재학생이 아니어도 구매욕을 자극하는 퀄리티의 다양한 굿즈(배지, 보틀, 인형, 파우치, 이어캡 등)도 눈에 띄지만, 재미있는 건 학생들이 제작한 ‘눈송이 짤’이다. 대학생활을 해봤다면 누구나 공감할 수 있는 눈송이의 찰진 멘트가 웃음을 자아내서다.

눈송이 굿즈와 눈송이짤, 출처: @sookmyung_women.s_univ

 

여러 방면으로 날로 진화하는 재학생들의 능력과 공구문화가 신선하기만 하다. 물론 일반학교에도 굿즈 문화가 없는 것은 아니지만, 학교에 대한 애정과 연대감을 이토록 아기자기하고 귀여운 방식으로 풀어낸 이들의 시도에 감탄하고 싶다. 동시에 어린 시절 가지고 있던 ‘여대에는 빛이 있다’는 환상이 ‘여대에는 예쁜 굿즈가 많다’로 치환되었다. 부디 앞으로도 귀엽고 사랑스러운 굿즈를 많이 생산해주었으면. 아니, 그게 아니라면 한 번 더 학교를 다니는 게 나을까. 생각해보건대 모름지기 굿즈란 홍보수단의 접점에 있는 마케팅 기법이 아닐까 싶다. 

김해인

읽는 사람이 즐거운,
언제나 유쾌한 글을 쓰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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