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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정이라는 이름, 오인환

17.07.14 0

<우정의 물건(Things of friendship)> 오인환, 2000-2008

새로운 사람을 만나 이야기를 나누다 보면, 상대방과의 공통점과 차이점, 좋은 점과 싫은 점을 찾으며 관계를 이어나갈 것인지 아닌지를 판단하게 된다. 그렇게 여러 번의 만남을 통해 공통점이 많고, 좋은 점이 많이 보이는 사람을 옆에 두고자 (서로 혹은 혼자) 노력하는 게 관계를 맺는 과정이다. 그리고 이러한 과정의 농도가 짙어진 단계를 우리는 ‘우정' 혹은 '사랑'이라고 명명하곤 한다. 사전에 게재된 정의를 보면, 우정은 ‘친구 사이의 정’이다. 그렇다면 친구는 무엇일까? 친구(親舊)는 ‘가깝게 오래 사귄 사람’을 말한다. ‘정(情)’은 마음의 작용이라고 하니, 결국 우정은 ‘가깝게 오래 사귄 사람 간에 일어나는 마음의 작용’이라고 볼 수 있다.

 

<우정의 물건(Things of friendship)> 오인환, 2000-2008

 

그러나 나의 경우, 오랜 기간 동안 알고 지냈다고 해서 상대를 항상 이해하고 받아들일 수 있었던 것은 아니다. 때문에 서로 알아온 기간에 기대어 우정을 정의할 수는 없다고 생각한다. 우정의 요소에서 중요한 건 오래 사귄 것보다 그 관계에서 마음의 작용이 일었는지 아닌지가 우선이다. 당시의 서로를 이해할 수 있는지, 당시의 서로의 마음을 읽어낼 수 있는지, 그래서 서로의 존재가 당사자들에게 위안이 되는지가 우정의 중요한 요소라고 할 수 있다. 또 다른 우정의 요소는 ‘동질감’이다. 이 ‘동질감’은 위에서 언급했던 우정의 정의 중 ‘가깝게’에 해당한다. 타인은 나와는 다르기에 모두 다른 사람에게 이질감을 느낀다. 타인이 지닌 이질감을 얼마나 이해해줄 수 있는지의 폭은 우정의 깊이로 변환된다.

 

<우정의 물건(Things of friendship)> 오인환, 2000-2008

 

즉, 우정이라는 단계에 있는 관계가 되기 위해서는 ‘가깝게’지내 ‘마음의 작용’이 일어난 후, 그것을 숙성시키는 ‘기간’이 필요하다. 마음의 작용이 없다면 기간이 길고 짧은 것은 별로 중요하지 않다. 왜냐하면 서로 이해하고자, 알아가고자 하는 마음이 없다면 오래 알아 봤자 겉면만 훑는 관계로만 이어질 수 있기 때문이다. ‘기간’만이 우선이 되는 관계는 스쳐 지나갈 수도 있는, 여차하면 쉽게 끊어질 수 있는 관계다. 그것은 사회를 둥글게 살아가기 위한 ‘마주침의 지속’에 지나지 않는다.

 

<우정의 물건(Things of friendship)> 오인환, 2000-2008

 

오인환의 <우정의 물건(Things of Friendship)>(2000-2008)이라는 작업을 보면 함께 안 기간보다는 서로 가깝게 지낼 때, 공동의 관심사가 있을 때 우정이 성립된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오인환 작가는 친구의 집에 방문해 자신이 가진 비슷한 물건들을 사진으로 찍는다. 집의 배경은 다르지만 둘이 가진 것들은 미묘하게 같다. 이는 관심사가 비슷하고 소통할 수 있는 지점이 있기 때문에 가능할 것이다. 관심사가 비슷하다는 것은 서로를 이해할 수 있다는 말이고, 이해를 할 수 있기에 관계가 깊어지는 것은 어찌 보면 당연한 순리이다. 작가의 작품들은 왠지 모를 울림을 준다. 작품을 통해 '우정'이라는 굉장히 크고 눈에 보이지 않는 개념이 손에 잡히는 느낌을 주기 때문이다 옹기종기 모여 있는 좌/우의 비슷한 물건들이 두 사람의 생각 또한 비슷하다는 것을 보여준다. 친구 사이에 다른 말을 많이 하지 않아도 상대방의 고민과 감정을 알 수 있는 것은 그만큼 서로 공통점이 많기 때문일 것이다.

 

지난해 그는 자신과 특별한 관계의 사람과의 관계를 탐구한 <우정이라 불리는 것들>(2000)을 작업했다. 이 작업은 친구의 집에서 시작된다. 친구가 가진 물건 중 자신의 것과 똑같거나 유사한 물건들을 찾아내 이를 가지런히 배열한 후 사진을 찍는다(오른쪽). 그리고 나서 집으로 돌아와 친구의 물건들과 똑같거나 비슷한 것들을 골라 친구의 물건들과 대칭되게 배열해놓고 사진을 찍는다(왼쪽). 이 작품에서 우리는 대량생산•대중매체 환경 속에서 각자의 소유물을 통해 두 친구의 상호 동질성을 엿볼 수 있다. 그러나 동질성을 보장하는 환경과 조건 속에서도 두 사람은 완전히 같을 수 없다. 그가 찾아낸 소유물에도 다소 차이는 있으며, 더욱이 동일한(유사한) 물건들의 대칭적인 배치는 친구이면서 개별적인 두 사람의 필연적인 동질성과 불가피한 이질성의 공존을 암시하는 듯하다. 출처: 태현선, 「오인환」,『아트스펙트럼 2001』리움, p. 68

 

<우정의 물건(Things of friendship)> 모든 사진출처: http://www.inhwanoh.com

 

작가는 작품 소개에서 ‘물건/상품의 소비와 소유의 문화적인 의미들을 탐구한다.’고 말했다. 그러나 나는 꼭 이 작품을 소비와 연결시키지 않아도 된다고 본다. 그저 비슷한 삶을 공유하는 사람에 대한 감정을 불러일으키는 것만으로도 이 작품의 의미는 크다. 비슷하면서도 다른 삶을 살지만 같은 감성과 가치관을 공유하는 사람을 우리는 친구라고 부른다. 세상을 살아간다는 것은 험난한 투쟁이기에, 항상 꽃길을 걸을 수 없는 우리는 우리를 이해해줄 사람들을 찾아 헤매곤 한다. 그런 와중 만난, 이런 생각을 하고 사는 내가 돌연변이가 아니라는 것을 알게 해주는 친구라는 사람은 소중할 수밖에 없지 않을까?

“나를 낳은 이는 부모님이지만 나를 알아준 이는 포숙이다 (생아자(生我者) 부모(父母), 지아자(知我者) 포숙아야(鮑叔兒也)).”

관포지교(管鮑之交)가 떠오르는 밤이다.

 

십사

안녕하세요, 십사입니다.
미술, 만화영화, 춤, 피천득님, 법정스님을 좋아합니다.
살아있음을 기쁘게 여기며, 지혜롭고 성실하게 살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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