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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술 말하기] 인생의 허망함을 이겨내는 관계에 대하여

17.08.08 0

앞으로 노트폴리오 매거진에 게재할 <미술 말하기>는 필명 ‘십사’로 활동하고 있는 박주원의 평론글입니다. 평론을 통해 미술사학적 관점에서 살펴보는 다양한 작품 속 이야기와 그녀만의 해석을 만나보세요. 글의 원본은 ‘대안공간 눈’에서 확인하실 수 있습니다.  

 

인생의 허망함을 이겨내는 관계에 대하여

 

<Vanitas Vanitatum(바니타스 바니타툼)> 우무길

 

찬란한 것들은 모두 순간에만 존재한다. 순간이 지나면 시간이 지녔던 빛은 모두 무채색의 빛으로 바래 버린다. 지금 이 순간에 생기는 오해와 인생에 대한 회한, 그리고 다양한 존재에게 내뿜고 싶어지는 미움과 허망함과 화는 조금만 지나면 없어지기 마련이다. 시간은 그만큼의 힘을 지니고 있다. 좋은 것도 나쁜 것도 모든 것이 조금씩 희미해지기 때문이다. 삶도 마찬가지다. 지금의 찬란함은 조금 있으면 모두 꺼져버릴 불씨이다. 우리 인생의 불꽃놀이가 영원하지 않은 것은 누군가가 말하지 않아도 다들 알고 있을 것이다. 아주 오래 전부터 인간은 이 허망함을 알고 있었고, 그 허망함은 “Vanitas Vanitatum (바니타스 바니타툼)”, 헛되고 헛되니 모든 것이 헛되다는 말로 표현되어 왔다. 우무길 작가는 이 “Vanitas Vanitatum (바니타스 바니타툼)”을 주제로 작업을 진행했다. 작가는 작업노트에서 인간의 집착과 욕심은 권력과 명예와 부귀영화를 가지나 세월이 지나면 모두 사라진다고 말하면서, 그래서 인간은 서로 나누고 돌보며 아끼며 사는 사람이 되어야 한다고 말한다. 누구든 자신의 인생이 헛되지 않기를 바라는 마음에 오늘 내일 모두 욕심을 내며 살지만, 결국 인생은 이렇게 흘러가는 것이다. 우리가 노력한 것의 반의 반도 되지 않는 흔적을 남기면서 말이다.


흥미로운 점은 그가 생각하는 바니타스의 개념이 원래 우리가 알고 있던 수동적인 ‘헛되다’라는 의미에서 멈추지 않는다는 점이다. 작업 노트에 무심한 듯 숨어있던 ‘인간은 서로 나누고 돌보며 아끼며 사는 사람이 되어야 한다’는 문장이 바로 그 단서이다. 작가는 모든 것이 헛되고 헛되지만,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모두 보듬고 서로를 돌보며 살아야 한다고 말하고 있다. 이러한 작가의 생각은 그가 사용한 ‘철, 캔버스, 물’이라는 재료에서 잘 나타난다.

 

<Vanitas Vanitatum> 우무길, 가변 크기, steel+water, 2016


눈 여겨 보아야 할 부분은 썩어버린 철보다도 캔버스 위에 남겨져 작품이 된 녹의 모습이다. 작가는 작업 노트에서, ‘철판을 캔버스에서 부식시키는 방법을 통해 철판으로 이미지를 만들고 캔버스에 물을 뿌리고 붙인 뒤 어떤 인위적 개입도 하지 않고, 자연적인 부식이 되도록 기다린다’고 자신의 작업을 설명한다. 이 과정에서 철의 본래의 색은 없어지고, 새하얗던 캔버스에 철의 흔적이 남게 된다. 즉, 철이 지녔던 고유의 특성은 물을 만나 없어지고, 결국 본래의 성질은 새로운 것이 되어 캔버스에 흔적으로만 남게 되는 것이다. 이처럼 작가의 작업은 재료들끼리 돌고 도는 관계 속에서 이뤄지는데, 어느 것 하나 피해보는 것이 없다. 재료들은 자신의 역할을 수행하면서, 다른 재료가 가지고 있으나 드러나지 않았던 장점들을 서로서로 이끌어내어 준다. 이러한 과정을 통해 작가가 진짜 말하고 싶었던, 바니타스를 뛰어넘는 ‘관계’라는 단어가 모습을 드러낸다.

그들은 관계를 맺고 있다. 관계를 맺는다는 것은 철과 캔버스가 서로 만났을 때 둘 다 서로를 받아주었기 때문에 가능했던 일이다. 어느 한 쪽이라도 받아주지 않는다면 캔버스에 흔적이 남겨지는 것은 어려웠을 것이다. 캔버스가 철과 물의 시간을 최대한으로 받아주었기에 철은 캔버스 내에 자기 자리를 찾아서 흔적을 남길 수 있었다. 그러니 이들은 얼마나 최선을 다해서 그들이 붙어있었던 시간을 이겨낸 것일까? 서로를 붙잡고 있던 철과 캔버스, 그리고 그들을 이어준 물이라는 세 가지 재료를 통해 작가는 이 헛된 세상을 이겨내는 법이 무엇인지를 말해주고자 하는 듯 하다. 그 방법은 바로 위에서 언급했던 ‘관계를 맺는 것’이다.


우리는 우리 존재에 대한 불안과 허망함을 매 순간 느끼지만, 그 생각들이 우리가 의도해서 생긴 것이 아니라는 것을 안다. 그 생각들은 때로는 흘러가는 물처럼, 때로는 바람처럼 우리에게 다가와 근원에 대한 불안함 만을 남기고 사라진다. 그 자발적이지 못한 불안함을 억누를 수 있게 해주는 것이 바로 다른 사람과 맺는 자발적인 관계인 것이다. 서로에게 악착같이 매달려 서로의 흔적과 그림자를 안아줄 수 있는 상대를 원하는 것 역시 인생의 허망함과 허무함을 이기기 위한 우리만의 미약한 조치이다.

 

<Vanitas Vanitatum> 우무길, 가변 크기, steel+water, 2017


날 것 그대로 캔버스와 마주한 철이 부식되어 가는 과정을 보여주는 작가의 작업은 우리의 인생을 그대로 보여주는 듯 보인다. 심신이 나약한 우리와, 우리의 인생에 대한 허망함과, 그리고 그것을 이기고자 서로가 살을 맞대고 만들어 가는 악착 같은 관계 말이다. 우무길 작가는 우리에게 잊고 있던 관계를 다시금 떠올려보도록 하고자 했는지도 모르겠다. 찬란한 오늘, 아주 조금 빛이 바랜 어제, 이제는 기억이 나지 않는 어느 예전에 우리의 허무했던 생을 잡아준, 그러나 지금은 흔적만이 남은 관계와 앞으로 또 허망함을 이겨내며 살아내야 하는 인생과 또 다시 다가올 관계에 대해서 말이다.

십사

안녕하세요, 십사입니다.
미술, 만화영화, 춤, 피천득님, 법정스님을 좋아합니다.
살아있음을 기쁘게 여기며, 지혜롭고 성실하게 살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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