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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술 말하기] 기억의 조합, 이송희 작가

17.12.14 0

앞으로 노트폴리오 매거진에 게재할 <미술 말하기>는 필명 ‘십사’로 활동하고 있는 박주원의 평론글입니다. 평론을 통해 미술사학적 관점에서 살펴보는 다양한 작품 속 이야기와 그녀만의 해석을 만나보세요. 글의 원본은 ‘대안공간 눈’에서 확인하실 수 있습니다.  

 

기억의 조합

 

도판 1. <Untitle>, 2016, acrylic and marker on canvas, 112.1 x 162.2 cm

우리의 일상은 기억의 조각이다. 누구의 이야기로 만들어져 있는지 모르지만 우리의 일상은 모두 누군가와의 이야기나 어떤 사람과의 추억, 그리고 기억과도 같은 생각들의 끈으로 연결되어 있다. 그러나 다른 사람의 속에 들어가서 남의 이야기를 들어볼 수 없으니 우리는 우리들이 기억하고 생각하고 있는 것만을 가지고 이야기를 조합해낸다. 마치 머릿속에 날짜 별 폴더 혹은 기분 별 폴더를 만들어 그 안에 차곡차곡 매일의 파일을 넣어놓는 셈이다. 이처럼 매일 모아진 파일들은 자신의 머릿속에서 새로운 이야기를 만들어낸다. 시간에 따라 스스로가 만든 기억들은 각기 다른 조합들을 통해 또 다시 새로운 이야기를 만들어낸다. 어느 날은 기분에 따라, 날씨에 따라, 또 듣는 대상이 누구인지에 따라 우리의 기억은 새롭고 새롭게 조합되는 것이다. 이렇게 기억이 만들어지는 과정은 논문을 쓰는 과정과도 비슷하다고 볼 수 있는데, 나의 개념을 체계화하고 자료를 정리, 조합하면서 스스로의 독창적인 이야기를 만들어 나가는 과정이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자신과 타인의 이야기는 항상 다를 수밖에 없다. ‘아’ 다르고 ‘어’다른 것만으로도 결과가 달라지는데, 하물며 사람의 머릿속에서 정리되는 일들의 결과가 같을 수는 없을 것이다. 그래서 우리는 항상 서로를 오해하고 가까워지지 못한 채, 정리되지 못한 관계를 가지고 끝을 맺어 버린다. 안타깝지만 서로의 기억이 단어 하나까지 동일시되기란 쉽지 않기 때문이다.

이송희 작가는 다른 사람과 대화를 했을 때 서로의 기억이 다른 지점, 그리고 기억이 서로의 생각 속에서 조합되었다는 점을 작품에 표현하였다. 사실 많은 사람들은 다른 사람과의 기억이 다르면 단순하게 넘어가는 경우가 많거나 자신이 옳고 타인의 기억이 틀렸음을 지적하는데, 작가는 개개인의 머릿속에 존재하는 기억의 조각들이 달랐음을 인지하고 작품을 시작하였다는 점이 흥미롭다. 그래서인지 작가의 작품에는 모든 것이 분할되어 있고, 모아져있다. 그래픽 적으로 꽉 찬 화면 내에서 우리는 작가의 기억을 엿본다. 그러나 그것을 보는 우리는 작가가 아니기에 무엇을 나타내는지는 정확히 알 수 없다. 어쩌면 우리의 기억도 작가의 작품처럼 조각나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에만 다가갈 수 있다.

 

도판 2. <기생>, 2016, acrylic and marker on canvas, 112.1 x 162.2 cm


도판 3. <일침>, 2016, acrylic and marker on canvas, 89.4 x 145.5 cm

작가는 이런 우리를 위해서 작품 곳곳에 힌트를 준다. 예를 들어 <기생>(2016)(도판 2), <일침>(2016)(도판 3)이라는 작품을 보면, 이 작품이 <Untitle>(2016)(도판 1)이라는 작품의 세부 모티브를 따와서 그린 것이라는 것을 알 수 있다. 작가는 이처럼 무의식의 깊은 곳에서 자리 잡고 있던 기억들을 하나하나 끌어 올려 풍성한 기억의 재조합을 보여주면서도 세부에서 중심이 되는 기억을 따로 끄집어내어 작품으로 만들어냄으로써 기억이 또다시 다른 것들과 조합될 수 있음을 보여주는 듯하다. 다시 말해 이미 만들어진 기억이 또 다시 어떤 외부적 상황에 의해서 변할 수 있음을, 그러나 그런 와중에도 중심이 되는 기억들은 변하지 않음을 작가는 작품을 통해서 말해준다고 볼 수 있다.

이송희 작가는 어린 시절 어머님 아버님께서 일하러 가셔서 집에 혼자 있을 때 텔레비전을 많이 보면서 그 매체의 특성에도 관심을 가졌다고 한다. 매끈한 아크릴로 칠해진 작가의 화면은 그런 부분을 대변해주는 듯 보이기도 한다.

작가가 만들어낸 기억의 조합은 어쩌면 우리의 정체성을 만들어가는 과정일지도 모른다. 현실이라는 세계에서 만들어진 생각의 조각들이 머릿속에서 가공되어 기억으로 마주하게 될 때 우리는 그 새로운 이야기에 등장하는 주인공인 자신의 모습을 마주한다. 그리고 우리는 그 자신을 데리고 또 새로운 이야기를 만들어 나간다. 그렇게 매 순간 만들어지고 조합되는 기억을 형상화한 이송희 작가의 작업은 바로 그런 점에서 오늘 작가와 같은 순간을 살아가는 우리에게 긍정과 공감을 이끌어낸다.

십사

안녕하세요, 십사입니다.
미술, 만화영화, 춤, 피천득님, 법정스님을 좋아합니다.
살아있음을 기쁘게 여기며, 지혜롭고 성실하게 살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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