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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시 리뷰] 신여성, 덕수궁에 도착하다.

18.01.24 0

국립현대미술관 덕수궁관, <신여성 도착하다>展

 

‘신여성’. 고등학교 문학시간에 스치듯 와닿았던 그 이름. 단어를 알게 된 후, 반 아이들은 명석하거나 똑똑한 여자아이들을 보면 ‘신여성 같아’라는 수식어를 붙이곤 했다. 신여성이 말 그대로 신식 교육을 받은 엘리트 여성이므로 유능함을 상징한다면, 전시의 제목에 쓰인 ‘신여성’은 어떤 의미를 담고 있을까.

1부, 신여성 언파레-드. 조선시대부터 근대에 이르기까지 ‘대상화된 여성’을 접할 수 있다. 

 

페미니즘이 중요한 사회적 담론으로 떠오르는 지금, 국립현대미술관에서는 근대기 여성으로 상징되는 ‘신여성’을 주제로 한 <신여성 도착하다>展이 진행중이다. 전시는 총 3부로 구성되어 있으며, 남성에 의해 대상화된 ‘신녀성’을 다루는 1부 ‘신여성 언파레-드’, 창조적인 주체로서 여성의 능력과 잠재력을 다루는 2부 ‘내가 그림이요, 그림이 내가 되어 : 근대의 여성 미술가들’, 남성중심사회에서 선각자 역할을 한 신여성 5인(나혜석, 김명순, 주세죽, 최승희, 이난영)을 다루는 3부 ‘그녀가 그들의 운명이다 : 5인의 신여성’으로 구성되어 있다.

 

<부인> 1922년 7월, <신가정> 1933 신동아

 

<신여성> 표지화 안석주, 1934년 1월 & 9월호 

 

<여성> 창간호, 1936년 4월호, <별건곤> 1933년 9월호

1부에서 눈에 띄는 것은 ‘여성’을 다루는 매체의 등장이다. 근대시기는 기존 조선시대에서 다루던 <열녀전>, <풍속화>, <미인도>에 등장하는 전통적인 여성상 외의 여성의 신체를 다루는 매체가 등장하는 시기다. 흥미로운 지점은 매체의 발달과 여성을 다루는 시각을 동시에 확인할 수 있다는 점인데, 한 가지 안타까운 점은 예나 지금이나 여성을 ‘성적대상’으로 다루는 시각이 지속되고 있다는 점이다.

 

<북악산을 배경으로 한 풍경> 김주경, 1929

그림을 자세히 들여다 보면, 빨간 양산을 들고 검은 하이힐을 신고 걸어가는 여성의 뒷모습을 확인할 수 있다. 역사상 우리나라에서 여성이 홀로 외출할 수 있던 시기는 신분제 철폐 이후인데, 이러한 차림(?)으로 홀로 길거릴 배회하는 여성의 모습을 통해 사회상의 변화를 확인할 수 있다고 한다. 

 

특히 1부에서는 여성에게도 다양한 직업군이 ‘주어지며’, 버스걸, 엘레베타걸, 티켓걸으로 대표되는 ‘걸들’을 그린 남성들의 삽화가 있다. 아주 오래된 자료라서 느껴지는 흥미 외의 찾을 수 있는 또 다른 의미있는 지표가 있다면, 아직까지도 ‘ㅇㅇ녀’라 이름 붙이기 좋아하는 미디어의 근간을 확인할 수 있다는 점이다. 또한, 하나같이 짧은 치마에 외설적인 외형으로 표현된 삽화 속 ‘모던-걸’들은 한 때 ‘김치녀’를 혐오했던 남성들의 시각과 매우 닮아있었다. 

 

 

<산보복> 손응성, 캔버스에 유채, 1940

 

<인물일대 탐구> 이유태, 종이에 채색, 1944

 

전시장 한편에는 이젠 정말 시대가 변했다며, 여성들의 지위가 달라졌다는 점을 상징하는 듯한 작품이 즐비하다. 산책을 나서는 여성을 그린 <산보복> 속 여성은 지금에도 뒤처지지 않을 패션센스를 갖고 있고, 작가가 직접 서울대 연구실에 방문해 작업했다는 작품 속 연구원은 기존 남성들의 전유물이었던 직업군에 여성 또한 진출했음을 시사한다. 이러한 지표는 자칫 여성들의 지위가 급변했음을 보여주는 것 같다. 적어도 <산보복> 속 여성이 자신의 개성보다 당시 유행하던 메이크업(하얀피부 연출과 붉은 블러셔)을 연출했고, 당시에는 여성연구원이 아주 극히 드물었으며 그녀가 입고 있는 가운 속 한복을 발견하기 전까진 말이다. 

 

2부, 근대기 여성의 교육과 주체로서 여성의 활약을 볼 수 있다. 

 

2부에서는 근대기 여성의 교육과 주체로서 목소리를 냈던 여성에 관해 다룬다. 19세기 말, 개화기 시절에는 여성의 교육에 대한 담론이 높은 시기였다. 때문에 ‘신여성’의 의미도 교육을 받았느냐, 받지 않았느냐는 여부로 가려졌다. 이 시기에 국가는 전쟁을 거치며 ‘나라가 잘되려면 가정이 잘 되어야 하고 가정이 잘 되려면 여성이 잘되어야 한다.’는 담론이 있었는데, 이는 근대 교육을 받은 상위1퍼센트의 아주 소수의 여성에게만 해당하는 이야기 였다. 그리고 아이러니하게도 당대 교육의 최종목표는 ‘현모양처 만들기’였다. 

 

<교양교육> 1910년대, 이화역사관 제공

음악수업, 1920-30년대, 이화역사관 제공 

교육으로 딸의 더 나은 삶을 바라는 어머니들의 수업참관, 1900년대 초, 이화역사관 제공

 

한가지 재미있는 점은, 1900년대 들어 여성교육이 활발해졌고 여성학교가 생겼다는 점이다. 전시관에는 유독 교복을 입은 학생들의 우정사진을 많이 볼 수 있는데, 왠지 학창시절이 생각나면서도 꺼려진 건 당시 여학생들이 교복을 입은 이유 때문이다. 당시 어떤 한 남성이 투고글에 ‘요새 길거리에 기생인지 여학생인지 모를 여성들이 너무 많이 다닌다. 그래서 누가 누군지 모르겠다.’고 표현한 까닭이다. 사실 100년이 지난 지금도 이런 구설이 낯설지만은 않다. 어찌됐던 당시 이러한 이유로 여학생들은 교복에 철저히 단속받았고, 학교는 여학생의 소속을 알리기 위해 치맛단에 선을 넣거나 뱃지를 다는 등의 디자인을 선보였다고 한다.



<소녀좌상> 서동진, 종이에 수채, 1924, 출처: 대구미술관

당시 여성을 학교에 보내는 일은 흔치 않았다. 그러나 이화학당이 설립되면서 여성교육의 중요성이 대두되었다. 동시에 여성이 노동 외 목적으로 체력을 단련한다는 새로운 바람이 불었다.

 

<여권통문> 황성신문, 1898년 9월 8일

여권통문은 우리나라 최초의 여성인권선언문으로 양반여성 300명이 모여 남녀차별을 철폐하고 인간으로서의 여성의 권리를 주장했다. 이들이 주장한 권리는 참정권과 직업권, 교육권이었다. 



<신여성, 도착하다>展 전경 

3부에는 화가 나혜석, 무용가 최승희, 음악가 이난영, 문학가 김명순, 여성운동가 주세죽을 주축으로 각자의 분야에서 시대적 한계와 어려움을 극복했던 여성인물을 다룬다. 나혜석은 여성최초로 개인적을 개최한 화가이자 가부장제를 부정하고 페미니즘 글쓰기를 선보였던 여성해방론자다. 최승희는 여성 최초로 창작현대무용을 발표했으며, 이난영은 가수로서 민중의 심금을 울린 <목포의 눈물>로 주목받았다. 김명순은 1세대 여성 문학가로 활발히 활동했으며 제국주의와 자본주의를 비판했다. 주세죽은 조선여성이 겪어야만 했던 고통을 극복하려했던 사회주의 운동가이자 독립운동가였다. 이들의 행로는 전통적 사고가 만연했던 당대에 순탄할 수가 없었다. 안타까운 점은, 나혜석 외의 인물은 전시를 통해 거의 처음으로 접해봤다는 사실이었다. 우리 사회에는 이처럼 잊혀졌고, 잊혀지는 여성들이 많다. 

 

자화상 나혜석, 캔버스에 유채,60X48cm, 출처: 네이버 지식백과

 

<저것이 무엇인고> 나혜석, 목판, 1920년 2월, 출처: 네이버 지식백과


저것이 무엇인고. 시속 양금이라던가.
아따 그 기집애 건방지다.
저것을 누가 데려가나.
_두 양반의 평


고것 참 이쁘다. 장가나 안들었더라면... 맵시가 동동 뜨는 구나.
쳐다나보아야 인사나 좀 해보지.
_어느 청년의 큰 걱정

<저것이 무엇인고>는 여성을 바라보는 이중잣대(멸시와 성적(性的)욕망의 대상)를 드러낸다. 판화 속 여성은 바이올린을 들고 있는데, 노인 두 명은 그녀를 가리키며 “아따 그 기집애 건방지다”며 손가락질 한다. 반면, 청년은 그녀의 외모를 평가하며 ‘장가나 안 들었더라면...’하고 아쉬움을 표한다. 그로부터 100년이 지난 지금, 여성에 대한 시선은 과연 얼마나 변화 했을까, 출처: <왜 예민하면 안 되는데?>

 

전시 자체는 작품들과 재미있는 해석으로 충분히 흥미롭지만, 관람할수록 전시에서 다루는 현상들이 비단 과거의 일만은 아니기에 씁쓸하다. 언젠가는 여성에게 주어지는 각종 모순적인 잣대들과 억압된 욕구들이 타파될 날이 오길 바라며, 현대의 똑똑한 여성들이 또 다시 ‘신여성’으로 워딩되지 않는 날이 오길 기도하는 바다. 

(*따로 출처 표기하지 않은 이미지는 모두 국립현대미술관에서 제공하였음)



전시기간 2017년 12월 21일 – 2018년 4월 1일   
관람시간 AM 10:00 - PM 7:00 (*토요일은 ~PM 9:00) 
관람료 2,000원 (덕수궁 입장료 1,000원 별도)
장소 국립현대미술관 덕수궁관 (서울시 중구 세종대로 99)
문의 국립현대미술관

김해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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