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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e too, and with you

18.03.09 0

 


성폭력 피해자 '민영이'로 살았던 9년을 그려낸 서도이 작가의 전시제목 

 

어렸을 적, 엄마는 종종 나를 불러다 비밀스러운 이야기를 하곤 했다. ‘자리에 앉을 땐 다리를 꼭 오므려라’, ‘누군가 너의 다리와 소중한 곳을 만지면 꼭 얘기해라’, ‘남성은 조심해라’라는 것이었다. 이런 훈육은 ‘낯선 남성’뿐만 아니라 가까운 일가친척과 지인에게도 해당하는 이야기였기에 어린 나에게는 그 훈육이 참 이상하고도 ‘엄마는 예민한 사람’이라는 인상을 심어주었다.


<죽은 민영이의 장례식>은 서도이 작가의 첫 개인전 제목이다. 작가는 성폭력 피해자로서 이번 전시회를 준비하며 서민영에서 서도이로 개명을 했다. 자신만의 특별한 방법으로 '미투'에 동참한 것이다.

언젠가는 그 교육의 연유가 궁금해져 엄마에게 물으니 “성(性)문제는 가장 가까운 사이에서 일어나는 법이야. 가족도 믿으면 안 돼.”라는 답변이 돌아왔다. 7살, 아주 어렸던 내 뇌리에는 ‘아니 아빠랑 오빠마저 믿지 말라고? 우리 엄마 엄~청 이상한데?’라는 감상이 먼저 떠올랐다. 그리고 어른이 된 지금, 어째서 내가 먼저 행동을 조심해야하는지 모르겠으며(성폭행을 안 하면 될 일이다) 그런 일을 당하더라도 엄마에게 쉽게 말할 수 없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동시에 엄마가 어렸을 적 ‘여성의 몸에 함부로 손대지 마라’, ‘여성에게 문제가 될 만한 언행은 삼가라’라는 비밀스러운 훈육을 오빠에게도 했는지 문득 궁금해졌다.

 

"이번 전시는 성폭력을 겪었던 제 삶에 대한 장례식입니다. 힘들었던 일들을 오랫동안 마주하면서, 그 일들을 떠나보내기 위해서 치렀던 장례식이고요. '미투'가 "나도 당했다"인데 저는 이 전시를 통해서 "나도 당했다, 그래서 이렇게 살았어", 왜 제가 피해자라는 정체성 안에 갇혀 있을 수밖에 없었는지, 그런 것들을 표현하려고 했던 거 같아요."

그리고 대개 우리 사회에서 성(性)문제를 바라보는 시각도 동일하다. 유명 정치인의 성폭력을 폭로해도, 유명 남배우의 성추행을 폭로해도, 충격은 잠시일 뿐 화살은 곧바로 피해자에게로 향한다. 이는 ‘다리를 오므리고 있어라’, ‘너부터 먼저 조심해야한다’는 ‘이상한 교육’과 맥락을 같이한다. 이러한 인식구조는 ‘네 번이나 강간을 '참았다'고?’, ‘아니 싫다고 똑바로 말했어야지. 막말로 소리 지르고 저항하면 되는 거 아니야?’, ‘그렇게 했는데도 따로 불러냈을 때 또 만난걸 보면 뭐, 수가 틀려서 그런 거겠지.’라는 막말로 이어진다. 이런 말씀을 하시는 분들은 최소 명예강간이라도 당해본 걸까 문득 궁금해지지만, 가해자이입이 공감의 최대치를 발휘하는 우리나라에서 피해자에 대한 현명한 처우를 기대하기는 어려운 실정이다.

 

<26개의 영정> 부분, pencil on paper, 2016, 모든 사진 출처: 예술공간 땅속

 

나 또한(Me too) 그랬다. 입학하면서부터 시작된 고학번 선배의 성추행은 그로부터 몇 년 후 ‘여동생같이 예뻐서 그랬다.’는 말로 종결됐고, 안내원 아르바이트 시절 ‘아가야’라며 사적인 연락을 해대던 60대 상사도 있었으며 수습기자 시절에는 ‘언니(팀장과 사수)들한텐 비밀로 하고 우리 둘이 치맥하러 가자’던 40대 유부남도 있었다. 나는 그들의 언행이 끔찍하게도 싫었지만, 더욱 두려웠던 건 그들이 나보다 권력이 높은 사람이었다는 사실이었고, 자칫 잘못하다가는 지금의 생활이 무너짐과 동시에 ‘이상한 소문’(그것도 온전히 ‘내 탓’이라는 늬앙스의)이 나돌 수도 있다는 생각 때문이었다. 무엇보다 역겨웠던 건 그들은 사회적으로나 경제적으로나 꽤 인정받는 자리에 있다는 것이었고, 그들이 일상으로 돌아갔을 때는 그 누구보다도 평범한 아빠와 오빠로 존재할 거라는 사실이었다. 시간이 흐른 지금에야 부디 그들의 딸들이 자신과 같은 남자들 틈에서 무사하길 바랄뿐이다.

 

"사람들이 자신의 일이 아니라는 이유로 많은 말들을 굉장히 쉽게 한다고 저는 느꼈어요. ― 그러니까 왜 밤 늦게 돌아다니냐. 아무나 만나지 말라 그랬지. 더 큰일 없어서 다행이다…."

"아, 그러면 저 사람들을 설득하기 위해서 내가 정말 더 큰일을 당했어야 하는 건 아닌가? 들었을 때 그냥 먹지 못하는데 억지로 삼켜야 하는 말이었어요. 그거를 이제 저는, 상대방의 어떤 진실된 사과나 공감 없이 저 혼자서 태워야했었거든요. 그리고 타지 않았어요. 제 기억 속에 오랜 잔상으로, 거의 제 마음에 꼬매졌던 거죠, 그 말들이." 서도이

사실 이 글을 쓰는 지금도 내가 언급한 그들이 ‘자신’임을 알아채고 어떠한 행동을 취할까봐 두렵다. 반대로 이제는 너무나 일상적이어서, 이토록 나의 자존감을 갉아먹고 수치심을 주었던 그들의 행동을 기억조차 하지 못할까봐 억울하다. 때문에 특히 자신의 신상까지 공개하며 미투를 외치는 여성들의 외침을 존중한다. 혹자는 어째서 얼굴을 공개하지 않고 미투에 동참하냐지만, 그의 의견에 정면으로 반박하고 싶다. 그건 정말 쉽지 않은 일이다.

 

"저는 멈추지 않고 계속 얘기할 거예요. 계속 얘기하고 계속 말하면 바뀔 수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다른 분들도 관심을 가져주시고 하셨으면 좋겠어요. 이것이 뭔가 하나의 그냥 순간적인 이슈로 끝날 문제가 아니라 지속적으로 얘기 됐으면 하고, 제가 이렇게 동참하는 것도 분명 어떤 분들께는 힘이 될 수 있겠다고 생각을 해서. 저도 마찬가지로 성폭력 피해자이지만 굉장히 응원하고 지지하는 마음으로 저도 동참하는 거라고 생각하거든요. 얼마나 아프셨을지 저는 공감하고 이해한다고. 그리고 바뀔 수 있다고 희망의 메시지를 드리고 싶어요." 서도이 

그럼에도 많은 여성들이 자신의 신상을 공개하며 미투운동에 동참하는 건, 이제는 정말로 남성들이 바뀌어야하기 때문이다. 부디 이제라도 ‘일부 남성들’이 자신이 가진 지위가 곧 자신의 성적매력이자 모든 여자와의 섹스로 가는 프리패스가 아님을 깨닫기를 간절히 바랄뿐이다. 동시에 지금도 두려움에 맞서 미투를 외치고 있을 모든 여성들을 응원한다.


사진&텍스트 출처

http://kbs.co.kr/news

김해인

읽는 사람이 즐거운,
언제나 유쾌한 글을 쓰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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