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할머니의 그림일기

18.03.20 0

순천 할머니들의 서울나들이 전시 <그려보니 솔찬히 좋구만>展

커다란 눈동자와 촌스러운 색감의 치마, 삐뚤빼뚤하게 그린 두 명의 소녀. 그림을 보고 사촌 동생이 그린 세일러문인줄 알고 ‘뭐야~ 되게 못 그렸네. 내가 더 잘 그리겠다!’고 생각했다. 당시에 나는 서울에서 가장 큰 미술학원에 다녔고, 글씨도 잘 쓰는 어린이였으니까. 그래서 일부러 동생을 놀려줄 마음으로 그 촌스럽디 촌스런 그림을 집어들고 "아빠, 이거 누가 그린거예요?"라고 물었는데 예상치 못한 답이 돌아왔다. "응~ 그거 할머니가 그린 거야". 아직도 의문이지만, 나는 아빠의 대답을 듣고 펑펑 울었다. 이상하게 그림 속 두 소녀가 너무 슬퍼보여서, 6살인 나보다 못쓴 글씨와 삐뚤어진 그림이 너무나 슬퍼보여서 엉엉 울었다.

 

<나의 꿈>  

어릴때부터 처녀 때까지 꿈은 경찰, 여군, 시내버스 안내양이 되고 싶었습니다. 이모부 도시락을 들고 경찰서에 몇 번 갔습니다. 경찰복을 입은 이모부가 멋져보였습니다. 경찰이 되고 싶다는 꿈을 꾸었습니다. 여군이 되어 씩씩하게 나라를 지키는 사람이 되고 싶었습니다. 배우지 못해 경찰도 여군도 될 수 없었습니다. 버스에 매달려 오라이하는 모습에 반했습니다. 그래서 버스 안내양이 되고 싶었습니다. 가족들 반대로 꿈을 이루지 못했습니다.지금 내 꿈은 공부를 많이해서 무엇이든 척척 잘하는 사람이 되고 싶습니다. - 김명남 

 

순천 할머니들의 서울나들이 전시 <그려보니 솔찬히 좋구만>展

 

성인이 된 지금도 마찬가지다. 여전히 6살, 할머니의 그림을 보았던 순간을 떠올리면 눈물부터 난다. 정확한 이유는 알 수 없다. 김명남 할머니의 글을 읽고서도 마찬가지였다. 마음이 너무 아파서, 고작 몇 줄 되지 않는 문장 속에 할머니의 고된 인생이 고스란히 담겨있어서 직접 할머니의 글과 그림을 봐야겠다고 생각했다. 

 

순천 할머니들의 서울나들이 전시 <그려보니 솔찬히 좋구만>展


한달음, 경복궁에 위치한 갤러리우물에 방문했다. 전시장에 빼곡한 할머니들의 그림과 글씨가 관람객을 맞이하고 있었다. 나이가 들면 되레 아이가 된다는데, 그게 정말 사실인지 할머님들의 글과 그림에는 순수가 묻어나왔다. 특유의 밝은 색감과 러프한 선, 그럼에도 각자의 진정성을 담은 그림은 그야말로 예술 그 자체였다.

 

어릴 때 꿈은 친구들하고 밖에 나가 놀기도 하고 멀리 가서 나물을 캐보는 것이었습니다. 아버지가 밖에 못나가게 했습니다. 초등학교 때 꿈은 맘 놓고 우리 글을 배우는 것이었습니다. 왜놈들이 못하게 방해했습니다. 백마 탄 남편을 만나는 것이 꿈이었습니다. 첫날밤 남편을 처음 보았습니다. 백마 탄 왕자가 아니었습니다. 꿈은 실망으로 바뀌었습니다. 남편과 함께 낭만의 삶이 꿈이었습니다. 남편은 여행 다니는 것도 극장에 가는 것도 싫어했습니다. 오직 가정을 돌봐야 한다는 생각뿐이었습니다. 지금 내 꿈은 악기를 하나 배우는 것입니다. -권정자 

 

어릴때는 가방 메고 학교 가는 것이 꿈이었습니다. 아버지는 학교가 멀다고 안 보내줬습니다. 내 생각에는 핑계를 된 것 같았습니다. 시집살이 하면서 내 꿈은 밥을 배불리 먹어보는 것이었습니다. 시어머니가 밥을 못먹게 했습니다. 시어머니와 남편이 세상을 떠났습니다. 시어머니가 없으면 밥을 실컷 먹을 줄 알았습니다. 그런데 가난해서 늘 배가 고팠습니다. 돈을 모아 조그만 식당을 했습니다. 그때서야 밥을 배불리 먹었습니다. 그런데 뇌졸중으로 쓰러졌습니다. 한글 교실을 다닌 뒤로 많이 건강해졌습니다. -임영애

 

저는 선생님이 되고 싶었습니다. 우리 집은 공부할 형편이 아니라서 포기했습니다. 결혼해서 꿈은 미장원을 해보는 것이었습니다. 돈이 없어 미장원은 차리지 못하고 미용가방을 들고 이집 저집 다녔습니다. 애들을 키우면서 꿈은 식량이 없어 애들이 빼빼 말랐습니다. 배불리 먹이는 게 꿈이었습니다. 산지기집으로 들어갔습니다. 아이들을 배불리 먹일 수 있어 좋았습니다. 길고긴 고생에서 벗어나려 했는데 남편이 교통사고로 불구가 됐습니다. 지금 내 꿈은 남편이 건강해지는 것입니다. -김경자 

 

순천 할머니들의 서울나들이 전시 <그려보니 솔찬히 좋구만>展

 

할머니들의 공통된 바람은 ‘공부’와 그것을 통해 ‘무언가 되는 것’이었다. 단지 여성이라는 이유로 많은 것을 포기해야했던 삶의 고단함과 아픔이 묻어나와서 가슴이 아팠다. 그나마 지금이라도 이렇게 한글을 배워 자신의 세상을 글로 표현했다는 게 다행이었다. 우리가 수많은 책을 읽고 수 없이 많은 글을 써야하는 이유는 여기에 있다. 자신이 겪지 않으면 모를 세계를 미묘하게 분절된 단어로 표현함으로써 아픔을 위로하고 경험을 공유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일까. 할머니들의 글과 그림은 마음 속 어딘가 고이 숨겨진 눈물 버튼을 콕 하고 눌렀다. 다른 관람객들도 마찬가지였는지, 전시장 한 편에 마련된 의자에 앉아 할머니들의 그림일기를 읽으며 눈물을 훔쳤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인상 깊게 읽은 일기 속 할머님의 노트를 찾아 메시지를 적기도 했다. 

 

전시장 한 편에는 할머님들의 이름이 적힌 노트가 마련되어있다. 관람객은 그림일기 속 주인공에게 편지를 쓸 수 있다. 

갤러리를 나와서도 여운은 계속됐다. 6살에 보았던 우리 할머니의 글과 그림이 자꾸 떠올랐다. 우리 할머니도 오래 사셔서 자신의 세계를 내게 표현해주었다면. 할머니는 돌아가실때까지 문맹이었기에 두 소녀의 의미는 정확히 알 수 없다. 추측하건대, 아마 그림 속 두 소녀는 할머니가 꿈꿨던 자화상은 아니었을까. 그 대신이라도, 그림일기 속 순천할머니들이 모두 행복해졌으면 좋겠다. 

김해인

읽는 사람이 즐거운,
언제나 유쾌한 글을 쓰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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