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무장갑, 그리고 비닐봉지

18.05.23 0

Pink Rubber Gloves, Calvin Klein https://www.ssense.com

Plastic Shopping Bag, Celine, https://hypebae.com

 

맞다. 고무장갑과 비닐봉지다. 놀랍게도 이 두 아이템은 캘빈 클라인(Calvin Klein)과 셀린느(Celine)에서 새롭게 출시한 신상품이다. 설거지나 화장실 청소를 할 때, 마트에 장을 봤을 때 사용하는 고무장갑과 비닐봉지가 명품로고와 어우러진 모습이 이질적이다. 특히 셀린느의 pvc 백을 실물로 접했을 때는 ‘이게 명품이 맞나’ 싶기도 했지만 왠지 모르게 ‘비닐백’에서만 느껴지는 특유의 매력에 ‘명품이 괜히 명품은 아니구나’는 생각이 들기도 했다.

 

Plastic Shopping Bag, Celine

 

물론, 가격도 명품스럽다. 캘빈 클라인의 고무장갑이 42만원, 셀린느의 비닐백이 80만원대다. 다소 터무니없는 가격 탓에 실소가 터지기도 하지만 문득 ‘명품이 뭐 길래’라는 생각이 든다. 그런데 평소에는 그저 소모품에 지나지 않을 고무장갑과 비닐백이 특별해 보이는 것은 ‘명품’이라는 브랜드 가치 때문일까, 아니면 상품자체가 정말 ‘명품’이기 때문일까.

 

Pink Rubber Gloves, Calvin Klein

 

Plastic Shopping Bag, Celine

명품의 사전적 의미는 ‘뛰어난 물건이나 작품’이지만, 명품이라는 우리말에 대응하는 영어의 럭셔리(Luxury)는 사실 호사품이나 사치품이라는 의미가 강하다. 최근 들어 명품은 모든 제품 중에서 최고중의 최고, 가장 품질이 좋은 제품, 꼭 그런 것은 아니지만 같은 제품 중에서 가장 비싼 제품을 뜻하는 말로 쓰이고 있다. p4. <패션과 명품>


평균 직장인 월급을 웃도는 비싼 값에도 명품이 꾸준히 소비되는 이유는 명품 속에 내재한 고유한 ‘상징’때문일 것이다. 명품을 소유함으로써 자신의 능력을 대외적으로 쉽게 입증할 수 있고, 주변으로부터 ‘선망의 대상’이 될 수 있어서다. 때문에 사회적 시선을 배제한다면 명품이 필요 없을지도 모를 일이다. 하지만 이러한 담론이 지겨운 듯, 최근에는 오히려 명품 로고를 전면에 내세운 상품과 진짜 명품일지 의심되는 신상들이 쏟아져 나오고 있다. 얼마 전, 논란이 되었던 구찌의 고무 가방도 마찬가지다.

Gucci logo top handle tote, $ 980, https://www.gucci.com


프랑스의 사회학자인 장 보드리야르(Jean Baudrillard)는 현대사회를 소비사회로 규정하고 있다. 그는 현대 사회의 소비 형태가 단순히 제품을 소비하는 데 그치는 것이 아니라 제품이 가진 기호, 즉 상징을 소비하는 것이라고 설명한다. 이처럼 소비사회에서는 이미 필요한 것들을 충분히 가진 소비자에게 특정 제품의 소비를 통해 ‘당신은 특별한 사람, 선택받은 소수’라는 상징으로 감성과 욕구를 자극하여 필요 이상의 것, 즉 ‘더 나은 것’에 대한 소비를 부추기고 있는 것이다. 때문에 소비자는 제품 그 자체의 실용성보다는 제품이 상징하는 환상에 이끌려 소비를 하게 되는데, 결국 이러한 소비행위는 소비의 고급화를 추구하며 곧 명품 소비로 이어진다. p6. <패션과 명품>

 

물론, ‘욕망’을 소비하는 명품의 특성을 비판하는 사람들도 많다. 이들은 단순히 명품 브랜드의 로고만 박히면 쉽게 지갑을 여는 사람들의 심리를 비판하기도, 그런 소비자의 심리를 이용해 매출을 올리는 명품업계를 비판하기도 한다. 특히, 이처럼 황당한 신상이 출시되고 나면 더욱 논란이 가중된다. 흥미로운 지점은 ‘그럼에도’ 해당 상품이 돈이 있어도 사지 못하는 ‘품절대란’ 사태에 이른다는 점이다.

 


대체 왜 캘빈 클라인이라는 유명 브랜드가 이런 걸 내놨을까 궁금하다면 일단 디자이너 라프 시몬스의 설명을 들어볼 필요가 있다. 그는 이번 컬렉션에 대해 “미국 자본주의에 대한 두려움과 희망의 혼재에서 영감을 얻었다”고 밝힌 바 있다. 중앙선데이

 

또한, 노출효과 덕분에 처음에는 이상하기만 했던 상품이 자꾸 보니 매력적이고 힙(HIP)해 보이는 착시가 일기 시작한다. 그건 또 그 방식대로 명품에 새로운 가치를 부여하는 셈이다. 이와 같은 맥락에서 생각해보면, 명품은 현대미술과도 닮아있다. 그래서 누군가는 이런 논란을 두고 이를 ‘명품이라고 부르지 말자!’고도 하지만, 각자의 기준에서 해석하는 명품의 의미가 신선하기만 하다. 앞으로 또 어떤 명품이 탄생할지 기대된다. 

 

김해인

읽는 사람이 즐거운,
언제나 유쾌한 글을 쓰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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