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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로 잇고 피우고, 이음피움봉제역사관

18.07.11 0

창신동에 위치한 이음피움봉제역사관 

 

어렸을 적, 집의 맨 아래층에는 모자공장이 있었다. 엄마는 가끔가다 공장일을 도왔고, 일을 돕는 시간이 점차 늘어났다. 사는 집 맨 아래층에 공장이 있었던지라 학교가 끝나면 엄마를 바로 볼 수 있다는 사실이 좋았다. 그렇게 공장에 갈 때마다 모자를 만드는 아줌마 아저씨와 수다를 떨었고, 때때로 아르바이트도 했다. 고작 초등학생인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캡 모자의 꼭지를 기계로 찍는 일. 동그랗게 생긴 기계의 홈 위에 동그란 천을 덧대고 철로된 꼭지를 기계로 찍으면 되는 일이었다. 개당 100원씩이라 수입이 짭잘하기도 했지만, 시중에 팔리는 모자의 일부분을 내가 만들었다는 사실에 뿌듯함도 있었다. 

 

이음피움봉제역사관 입구
 

공장 입구에 들어서면 천을 가위로 짜르는 소리와 바쁘게 미싱돌리는 소리, 쾅쾅 모자꼭지를 찍는 소리와 라디오 소리로 항상 시끄러웠다. 하지만 그 소리는 어쩐지 정감이 있었다. 그래서 그 소리를 자장가 삼아 공장 구석에서 잠을 자기도 했고, 때가 되면 엄마아빠 아줌마 아저씨와 저녁 밥을 먹었다. 삼겹살에 된장을 찍어먹고, 오징어 회를 먹어본 것도 그때가 처음이었다. 시간이 흘러 세를 살던 아저씨와 아줌마는 집을 장만하셨고, 부모님도 더이상 세를 받지 않았다. 그 후로, 가끔 백화점에 들러 스포츠브랜드의 모자를 보고 있노라면 "예전에 저 모자꼭지 내가 찍었는데"하고 감상에 젖곤했다. 

 

봉제인 유기상, 이용율, 정태순, 김주현, 염선애, 김원석, 박진봉, 김미경, 김도영, 최승훈 님의 가위. 가위는 각자 손 쓰임에 맞게 변형되었다.  

몇 년 동안 잊고 살다 유년시절의 기억이 떠오른 건, 이음피움봉제역사관에서였다. 창신동에 즐비한 봉제공장의 현주소와 장인들의 작업을 보고 있자니, 어쩐지 기시감이 들어서다. 이음피움봉제역사관은 국내 최초로 봉제의 역사를 다룬 공간으로 ‘봉제’에 얽힌 다양한 의미를 다룬다. 이곳에는 봉제의 역사와 노동의 가치, 봉제인의 삶에 대해 이야기한다. 때문에 인간에게 아주 필수적인 조건이지만 ‘공기‘처럼 쉽게 잊는 의(衣)생활에 대해 반추할 수 있는 기회를 받는 느낌이기도 하다. 

이음피움봉제마스터 기념관 전경, 기획전시관으로 현업에서 활발하게 활동중인 10인의 봉제인을 선정하여 그들의 이야기와 직접 사용했던 가위와 도구를 함께 전시한다. 

 

3층 봉제마스터 기념관  

봉제인들을 만나며 그분들의 손을 보게되고 작업장마다 있는 오랜 기간 사용한 가위들을 보게 되었습니다. 재봉틀과 기계들은 세월과 함께 새로운 최신 장비들로 바뀌어왔지만 가위는 새것이 필요하지 않으셨나 봅니다. 낡고 닳았지만, 수십 년을 사용한 낡은 도구에는 모두 지난 시간이 담긴 아름다움이 베어 있었습니다. 그래서 첫 전시의 소개 내용에는 10분의 봉제인들과 그들의 가위로 이야기를 담아냈습니다. 

 

봉제마스터 기념관에서 눈에 띄는 건, 역시 봉제인 10인이 사용하는 가위다. 무엇보다 각자 손에 맞게 천을 정비한 모습이 인상깊다. 평생을 가위와 함께 왔을, 그리고 앞으로도 봉제인들과 함께 할 도구이기 때문이다. 동시에 봉제 산업의 역사를 한 눈에 살펴볼 수 있는 액자들도 눈에 띈다. 분홍과 갈색 프레임에 담긴 각종 장면들은 봉제 역사의 증거다. 흥미롭게도 프레임은 천을 재단할 때 사용하는 ‘자’의 형태를 하고 있다. 

 

 

특히, 봉제역사관은 산업화의 과정부터 여성 노동의 역사까지 다양한 사회문화적 의미가 담긴 ‘봉제’를 살펴본다. 개인적으로 가장 마음에 들었던 섹션도 이 부분인데, 산업화와 국내 경제성장에 일조했지만 주목받지 못한 ‘여성의 노동’을 다뤘기 때문이다. 최초로 여성의 노동권에 관해 언급한 전태일 열사의 이야기도 살필 수 있다. 또한, 전태일 열사가 봉제인들의 노동실태를 조사했던 실제 설문지도 전시되어있다.  

 

전태일 열사의 평화시장 실태조사 당시 실제 설문지. 여기에는 설문 참여자의 이름과 성별, 본적, 직종뿐만 아니라 "1개월에 몇일을 쉽니까?", "1개월에 몇일을 쉬기를 희망합니까?", "왜 주말마다 쉬지를 못하십니까?", "1일에 몇시간을 작업하십니까?", "몇시부터 몇시까지 작업을 하시면 적당하시겠읍니까?", "그만한 시간이면 당신 건강에 어떠한 영향을 줄 것 같은가?" 등의 질문이 적혀있다. 


 

또한, 전시공간 중앙에는 휠 모양이 특이한 재봉틀이 놓여져 있다. 한 눈에도 오래된 흔적을 보이는 이 재봉틀의 휠을 돌리면, 옷 한벌이 만들어지는 과정을 7단계로 체험할 수 있다. 물론 휠에 따라 재생되는 인터랙티브 영상도 흥미롭지만, 사이드에 놓여진 재봉틀도 눈에 띈다. 여기에는 지금은 쉽게 접할 수 없는, 시골 할머니 방에서 볼 법한 미싱들이 전시되어 있다. 

 

 

계절마다 옷을 바꿔 입고 시즌마다 옷을 구매하면서, 옷이 만들어 지는 과정에 대해 생각해 본적이 없다. 하지만 마치 내가 어린시절 모자꼭지를 찍어본 경험이 있기에 "이 모자는 누구에게 갔을까?" 생각했던 것처럼, 봉제 장인들도 자신의 옷이 누구에게 닿을지 궁금해 할 것이다. 이런 식으로 우리는 알게 모르게 서로에게 영향을 주고, 그만큼 서로의 삶에 연관되어 있다. 실은 별 생각 없이 방문했던 공간인데, 이곳이 꽤나 마음에 든다. 때문에 꼭 의류나 디자인 산업에 몸담고 있지 않더라도, 의생활을 누리는 모든 이들에게 이 공간을 추천한다. 

 




관람시간 AM 10:00 - PM 6:00/화~일 (*입장마감 PM 5:30)
휴관일 매주 월요일, 1월 1일, 설날·추석 연휴, 법정 공휴일
관람료 무료 
전시장소 이음피움봉제역사관 (서울시 종로구 창신동 창신4가길 26)
문의 이음피움봉제역사관 / 02-747-6471~2

김해인

읽는 사람이 즐거운,
언제나 유쾌한 글을 쓰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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