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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울을 이기는 방법

18.08.22 0

러빙 빈센트 (Loving Vincent), 2017


풍족하고 부유했던 피카소와 이름만 떠올려도 마음이 짠해지는 반고흐 중에서 누구 한명을 꼽으라면 고흐를 꼽고 싶다. 기분 탓인지 모르겠으나 그의 작업을 마주할 때마다 밝은 색채 뒤에 숨겨진 깊은 음울이 전해져서다. 몇 년 전, 그의 전시를 관람하고 나서 우울을 느낀 일 역시, 작품 안에 녹아있는 그의 고된 인생을 간접적으로나마 느껴서였을 것이다.

개인적으로 반고흐가 깊은 우울증과 정신병을 앓았던 만큼, 그에게는 세상을 느낄 수 있는 아주 섬세하고 작은 촉의 감각이 있다고 생각했다. 일반 사람이 느낄 수 없는 아주 작고 섬세한 촉수. 그렇기에 그는 세상을 다양한 스펙트럼으로 해석할 수 있었고, 이는 그의 작업적 동기가 되었다. 또한 작업을 이어가면서 그는 세상 사람들이 알아주지 않는 자신의 마음을 위로할 수 있었다. 

<별이 빛나는 밤에> 빈센트 반 고흐, 캔버스에 유채,  73.7 x 92.1 cm, 1853

<아이리스> 캔버스에 유채,  71 x 93cm, 1889

그리고 여전히 현대에도 비슷한 맥락의 작업들은 이어지고 있다. 물론, 편견이 가득하긴 하지만 ‘우울증’이란 키워드는 과거에 비해 쉽게 접할 수 있는 일상의 용어가 되었다. 그래서 과거의 반 고흐처럼, 자신의 음울을 다양한 작업을 통해 표출하고 스스로를 위로하는 사람들이 있다. 그들은 각자의 글과 그림을 통해 자신과 타인의 감정을 달래준다.



<어차피 내 마음입니다> 서늘한 여름밤


작가 ‘서늘한 여름밤’은 어금니처럼 생긴 캐릭터를 통해 ‘마음’과 ‘감정’에 관한 이야기를 전한다. 처음엔 단순히 일기형식으로 그리던 그림들이 그가 전공한 심리학과 결부되면서 많은 이들의 공감과 이해를 자아냈다. 그가 심리 문제를 지닌 사람들을 마주하는 전문가가 아니라 작가 자신의 마음을 솔직하게 털어놓음으로써 내담자인 동시에 치료자가 된 것이다. 그의 그림일화에는 2030세대가 충분히 공감할 수 있는 의제(진로, 미래, 한국에서 여성으로 산다는 것, 사회문제 등)로 가득 차 있기에 심리문제에 대해 쉽게 접근할 수 있다.

 


F/25: 폐쇄병동으로의 휴가, 김현경, 출처: 다시서점

 

<F/25: 폐쇄병동으로의 휴가>는 작가의 특별한 경험을 담았다. 제목의 F는 ‘female’, 25는 ‘나이’를 의미한다. 말 그대로 만 25세의 여성 환자가 폐쇄병동에 입원해 있으며 쓴 일기장이다. 주제가 주제이니만큼 깊은 우울감이 느껴지지만, 보통 사람들이 쉽게 상상하기 어려운 경험과 감정의 기폭을 느낄 수 있다. 그리고 그가 세상을 느끼는 방식과 그곳을 빠져나오는 과정을 통해 삶의 의미를 다시 반추해볼 수 있다.


만 스물 다섯, 정신과 폐쇄병동에서의 일기를 모았습니다.

"휴대폰은 사용이 안 되고 바깥과의 소통은 티비, 가족에게만 전화할 수 있는 공중전화가 전부인 곳이다. 술은 물론이고 담배도 피울 수 없고 죽거나 해를 끼칠 가능성이 있는 물건도 금지되어 수건도 반으로 잘라 쓴다. 끼니를 먹고 줄을 서서 약을 먹고 옥상 정원에 나갈 수 있는 삼십 분이 세번 반복되고 그 사이에 간간히 굳이 참여하고 싶지는 않는 프로그램 시간이 있다. 나는 빈 시간마다 피아노를 치고 탁구를 치거나 책을 읽었으나 시간은 아주 느리게 흘렀다."




폐쇄 병동에 가게된 이유는 원래 가지고 있던 조울증과 알콜 중독 때문이었습니다. 술에 쭉 취해 있으면서도 술에 취하면 죽겠다 하다, 찾아간 의원에서 큰 병원으로 옮겨졌습니다. 그렇게 술을 마실 때부터의 기록, 병원에 찾아다니던 때의 기록, 그리고 폐쇄 병동에서의 시간, 다녀와서의 얼마간의 기록을 담았습니다.

 

<우울증이 있는 우리들을 위한 칭찬책> 조제, 출처: 다시서점

 

작가 조제 역시 ‘우울’을 키워드로 다뤘지만, 우리가 쉽게 떠올리는 우울과 상반되는 이미지를 차용해 감정을 위로한다. 사실, 이러한 귀여운 이미지와 짧은 텍스트 연출에는 숨은 전제가 있다. 우울이 심해지면 주의집중력이 떨어져 긴 글에 집중할 수 없기 때문이다. 작가는 이렇듯 러프한 그림과 짧은 텍스트, 그리고 담담한 어조로 우울을 위로한다. 그 대상에는 우울을 앓는 타인뿐만 아니라 작가 자신도 속해있다. 그래서 그의 글을 읽다보면, 삶이란 숨을 쉬는 것 자체만으로도 대단한 일이며 별것 아닌 일에도 나 자신을 칭찬하고픈 생각이 든다.

 


우울증은 씻기, 밥먹기, 자기 등 일상의 일들을 못하게 만드는 병이고 그래서 그걸 했을 때 이런 작은 일을 힘들어하면서 하다니 하고 자책하긴 보단 '힘든데도 했네!' 하고 칭찬하자고 만든 책입니다. 우울증이 있는 우리가 침대에서 일어나 씻고, 밥 먹고, 잘 자기만 해도 정말 엄청나게 힘을 들여야 하고 그것만 해도 충분히 칭찬받을 이유가 되지요.

<우울증이 있는 우리들을 위한 칭찬책>을 함께 읽으면서 조금씩 조금씩 자신을 칭찬하고 서로를 응원하길 빕니다. 저는 우울이 심할 땐 긴 글을 보기 힘들 때가 많았습니다. 그래서 짧은 글과 그림으로 책을 만들었습니다. 이 작은 책이 저와 여러분들에게 힘이 되길 빕니다.

 


세 작가의 공통점이 있다면 글과 그림, 즉 자신만의 작업을 통해 마음을 들여다보고 스스로를 위로했다는 점이다. 때문에 이들의 작업을 보고 있노라면, 어딘가 빛깔 좋고 전문성이 도드라지지 않아도 스스로를 위로할 수 있는 예술이 우리 삶에 꼭 필요한 요소라는 생각이 든다. 어쩌면 삶이란 그리 어려운 것이 아닐지도 모른다. 러프한 선과 간략한 텍스트, 길고 복잡하지 않은 이들의 문장처럼 말이다.

김해인

읽는 사람이 즐거운,
언제나 유쾌한 글을 쓰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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