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의 연속선, 어글리 돌(Ugly Doll)

19.05.15 0

Ugly Doll

대학시절에 우연찮게 방문했던 숍에서 못생긴 인형을 만난 적이 있다. 삐죽한 이빨에 울퉁불퉁한 얼굴, 그럼에도 귀여운 색감과 외관은 어디선가 많이 본 외국 캐릭터 같은 느낌이었다. 무엇보다 내 마음을 사로잡았던 건 이 친구들의 탄생일화 때문이었는데, 우리나라 말 그대로 ‘못생긴 인형’이라 불리는 이 ‘어글리 돌(Ugly Doll)’들이 어느 국제커플의 연애편지에서 탄생했다는 소식을 들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커플 중 한 분이 같은 한국인인 것을 알고 왠지 모를 유대감과 치솟는 구매욕을 자극하기도 했다.





태평양을 뛰어넘은 청춘남녀의 사랑으로 탄생한 어글리 돌의 사연을 이렇다. 1997년 파슨스 디자인 스쿨에서 처음 만난 두 사람은 2001년 김선민씨가 학교를 졸업하고 귀국하면서 국제 편지로 사랑을 키워야 했다. 호바스씨는 ‘바비 인형’이나 ‘파워 레인저’보다 더 놀랄 만한 장난감을 만들겠다는 꿈을 가지고 있었다. 그러나 자신이 만든 캐릭터를 들고 여러 완구회사 문을 두드렸지만 번번이 퇴짜를 맞았다.

화가 난 그는 선민씨에게 보낸 편지에 날카로운 송곳니에 약간 화난 표정을 짓고 생뚱맞게 앞치마를 두르고 있는 캐릭터를 그려 보냈다. 선민씨는 남자 친구를 응원하기 위해 직접 손바느질로 그 캐릭터를 인형으로 만들어 크리스마스 선물로 보냈다. 첫 번째 어글리 돌인 앞치마를 두른 인형 ‘웨이지’(Wage)의 탄생이었다. 출처: <한국일보>


 

무엇보다 메마른 감정에 비를 내려준 대사가 있었으니, 남자친구인 ‘데이비드 호바스’가 그의 아내이자(당시엔 여자친구) 어글리 돌의 창시자인 ‘선민’씨에게 “당신이 떠난 후로 되는 일이 없어요. 하지만 내가 그린 이 캐릭터처럼 앞치마를 두르고 열심히 일해서 당신을 만날 거예요” 라고 말한 진심어린 메시지다. 그런데 이 달달한 대사 옆에는 달달함과 다소 어울리지 않는 앞치마 차림의 기괴한 생물체가 그려져 있었는데, 선민씨는 이를 그냥 지나치지 않고 기지를 발휘하여 지금의 ‘어글리 독’을 손 인형으로 제작한 것이다. 지금처럼 통신기술이 발달하지 않았던 당시에 두 사람은 사랑이 담긴 아날로그 편지를 계속해서 주고받으면서 편지 속의 다양한 ‘어글리 독’을 점차 늘려갔다.

ugly dolls

캐릭터마다 이름도, 성격·특기도 다르다. 여러 친구를 거뜬히 껴안아줄 만큼 품이 넓은 인형의 이름은 한국어 ‘바보’. 김씨는 “바보란 단어가 순수하고 때 묻지 않음을 나타내고, 친근하고 정감 있어 쓰게 됐다”며 “캐릭터마다 개성이 달라 자신이나 가족·친구와 닮았다고 재밌어하는 분들이 많다”고 했다. 이런 인기에 대해 호바스는 애니메이션 제작사를 통해 “선민이 지은 ‘어글리 돌’이란 이름과 인형의 부드러운 느낌에 사람들이 매료된 것 같다”며 “인형마다 곁들인 캐릭터 설명도 즐거움을 줬다”고 전했다, 출처: <미주 중앙일보>

 



그리고 그로부터 18년이 지난 지금, 우연찮게 지하철역에서 어글리 독을 재회했다. 한 승객의 가방고리에서 아슬아슬하게 메달려 있던 삐뚤빼뚤한 인형을 발견한 것이다. 순간 머릿속 깊은 저 어딘가에서 ‘어글리’, ‘편지’, ‘국제커플’이라는 단어가 떠올랐다. 아마도 이런 감상이 누구에게나 전해졌는지 ‘어글리 돌’은 출시 후 미국에서만 1000만개 이상이 팔렸다고 한다. 그리고 당시 20대였던 커플은 슬하에 딸을 둔 부부가 되어 여전히 함께하고 있다. 최근에는 <어글리 돌>이라는 같은 이름의 애니메이션을 개봉하여 인기를 끌고 있다.

 

 

물론, 세상에는 사랑하는 연인이나 둘의 사랑을 오마주로 탄생한 많은 작품들이 있다. 하지만 호바스와 선민씨의 어글리 독이 특별한 건, 사랑을 주고받는 둘의 편지 속에서 생명을 얻어 세상에 나왔을 뿐만 아니라 그 사랑이 지금도 계속해서 이어지고 있음을 확인할 수 있어서일지도 모른다. 앞으로도 둘의 사랑에서 비롯한 어떤 ‘어글리 돌’들이 탄생할지 기대된다.

김해인

읽는 사람이 즐거운,
언제나 유쾌한 글을 쓰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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