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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65 ART ROAD] 그리며 하는 세계일주: 내 손으로 느낀 아프리카, 마다가스카르 완결편!

14.04.10 1
[365 ART ROAD] 그리며 하는 세계일주 7화
마다가스카르 완결편.

 

 

‘EBS세계테마기행 촬영 팀을 만나다.’
- Ranohira, Madagascar

 

망길리에서 다시 톨리아라를 거쳐 라노히라 마을로 향했다.
라노히라는 이살로 국립공원에서 가장 가까운 작은 마을이다.

라노히라에 온 이유는 단 하나, 이살로 국립공원을 가기 위해서이다. 이살로 국립공원은 워낙 크고 복잡하기 때문에 가이드가 없으면 돌아다니기가 힘들다. 그렇게 때문에 이동차량을 포함해서 가이드를 구해야 했다. 하지만 3, 4명이 모이면 훨씬 저렴할 차량과 가이드비용을 혼자 다 짊어져야 했다.

그래서 이곳저곳 알아보며 최대한 저렴한 가격을 찾아 헤매었다. 그러다가 투어를 함께 하는 한 숙소에 들어가게 되었다. 그리고 주인이 소개 시켜주는 가이드를 만났다. 처음에는 하루 가이드 비가 113,000아리아리, 국립공원 하루 입장료가 25,000아리아리 그리고 차량대여가 40,000아리아리라고 한다. 너무 부담되는 비용이었다. 그래서 그 조정의 결과, 입장료는 따로 국립공원에 내는 것이기에 흥정이 불가한 부분이고, 흥정이 가능한 가이드 비는 80,000아리아리까지 내리고, 국립공원까지의 왕복 이동은 차량 없이 왕복 3~4시간을 도보로 하기로 했다.

‘제대로 운동 좀 하겠군!’


아침 일찍 일어났다. 라노히라 마을에서 국립공원까지 걸어서 가기로 했기 때문이다.
오늘 나를 가이드 해줄 친구의 이름은 마치 선물을 가져다줄 것 같은 이름. ‘산타’였다. 산타와 나는 걷기 시작했다. 걸으면서도 주변의 잔잔한 풍경들과 저 멀리 보이는 웅장한 협곡의 자태가 걸어가는 그 몇 시간을 지루하게 만들지 않았다. 그때 동양사람 몇몇이 전문가용 카메라를 세워두고 촬영을 하고 있었다. 가까이 지나가면서 대화하는 소리를 들어보니, 한국 분들이었다.

“안녕하세요. 한국 분들이신가 봐요?”
나는 평소처럼 먼저 인사를 했다.

“촬영 왔습니다. 혼자 여행 오신 거예요?”
“네, 혼자 여행 중이예요”

그 촬영 팀은 담당피디 탁재형 피디님, 보조피디 박성환피디님, 출연자 자연사박물관 이정모관장님 그리고 현지 가이드 두 명. 총 5명이었다. 자연스럽게 이런저런 얘기가 오고 갔다. 그리고 알게 된 사실은 이 분들은 EBS 세계테마기행 촬영 팀이라는 것이다. 이번에 ‘마다가스카르 편’을 찍기 위해 오신 것이었다.

‘이런 만남이 있다니! 세계테마기행 촬영 팀을 여기서 만나다니.’ 그저 너무 신기했다.
그리고 여기서 한번 스치고 끝이 날 것 같았던 우리의 만남은 탁피디님의 한마디로 계속 이어질 수 있었다.

“수로씨. 내일 안타나나리보 방향으로 이동한다고요? 우리도 같아요. 같이 이동할래요? 차에 자리야 만들면 되지.”

그날 저녁, 촬영팀 숙소와 내가 묵는 숙소 중간에 있는 작은 식당에 모였다. 식사로 배를 채우고 난 뒤에도 맥주를 한 잔 씩 하며, 밤 12시까지 수다를 떨었다. 라노히라의 밤은 기대치 않았던 감사한 인연들과 함께 무르익었다.

#
꼭 아침은 먹어야 한다는 이관장님의 말씀에 따라 아침 7시에 어제 맥주 한잔을 기울였던 그 식당 앞에서 다시 만났다. 너무 이른 아침이었는지, 메뉴를 시켜 먹을 수가 없어서 간단하게 빵과 과일을 사먹었다.

 

- 바라족 촬영 중인 테마기행팀

오늘 촬영지는 바라족이 사는 바라마을이었다.
차를 타고 바라 마을에 도착했다. 바라족은 아프리카 동단의 섬 마다가스카르 중남부에 사는 부족으로 소를 치면서 반 유목 생활을 한다고 한다.

 

No.155
Children, Madagascar

 

No.156
A boy-Ⅱ, Madagascar

 

- 바라족 아이들과 함께

 

바라족 아이들

세계테마기행 촬영 팀은 현지 가이드의 통역으로 현지인들과 인터뷰를 하며 그들의 모습을 카메라에 담았다. 나는 그 사이에 그 마을 아이들과 장난을 치고 사진을 찍으며 시간을 보내고 있었다. 외국인이 와서 촬영을 하는 모습에 마을 아이들 모두가 신기해하고 작은 장난에도 까르르 웃으며 즐거워하던 굉장히 순수한 아이들이었다. 그런데 그런 아이들 중 눈에 들어오는 한 소년이 있었다. 낡은 빨간 티셔츠를 입고 웃음기 없는 얼굴에 목에는 직접 만든 것 같이 보이는 나무 새총을 걸고 있었다.

 

No.153
쏘다

Bara village, Madagascar

그 소년의 모습은 마치 답답하게 막혀버린 머리가 새총에 달려 쏘아질 돌맹이가 되어있는 느낌이 들었다.

‘네가 가지고 그 답답함이 무엇이든지 간에 멀리 쏘아버려. 그 새총에 달아.’

 

#
바라족 촬영을 잘 마치고, 우리는 모두 무사히 마다가스카르 수도인 안타나나리보에 도착했다. 그리고 오후 3시 비행기에 늦지 않게 공항으로 이동했다. 나는 배웅을 하기 위해 함께 차를 타고 공항까지 같이 갔다.

헤어지기 전에 어젯밤 안치라베에서 그렸던 초상화를 선물로 드렸다. 그리고 따뜻한 포옹과 함께 한국에 돌아가서 다시 만나기로 약속을 했다. 이관장님께서는 마다가스카르 화폐가 남았다고 나에게 20,000아리아리를 용돈으로 주셨다. 그리고 독일에서는 20유로가 행운을 준다는 미신이 있다면서 행운을 빈다며 20유로를 또 챙겨주셨다.

우연히 이살로 국립공원에서 마주치면서 이렇게 인연이 되어 촬영도 따라다니고 함께 긴 시간을 함께 이동하고, 맛있는 밥도 같이 먹고, 술도 한잔 하면서 정이 많이 들었다. 세계테마기행 촬영 팀을 만난 덕분에 내 마다가스카르 여행이 더욱 입체적이 되는 기분이었고, 너무 즐거운 시간이었다.

이관장님이 주신 20유로가 정말 나에게 행운을 가져다주길 바라며.
나는 마다가스카르에서 남은 여행을 이어갔다.

 

 

 

‘비 오는 날’
- Andasibe, Madagascar

 

No.157
비오는 날
Andasibe, Madagascar

숙소에서 나와 점심을 먹으러 근처 식당으로 갔다. 식당도 많아야 고르지, 원래 몇 개 안 보이던 식당들 중에 지금 시간에 연 곳은 더 없었다. 작은 식당 안에 두 사람정도가 밥을 먹고 있는 뒷모습을 보고 그 식당으로 들어갔다. 대충 메뉴를 보고 아무거나 시켰다.

그런데 갑자기 소나기가 내리기 시작했다. 놀랄 일은 아니었지만, 안다시베에 와서 본 가장 무거운 소나기였다. 지금 마다가스카르는 우기라서 시도 때도 없이 비가 내리고 그치고 반복한다. 그러다보니 사람들도 우산 들고 다니지 않고 비가 오면 잠시 피해 있거나, 짧게 내리는 비이려니 하고 맞고 다니는 경우가 많다. 나도 매일 우산을 들고 다니기엔 번거로워서 외출을 할 때 방수되는 바람막이 옷을 손에 챙겨 나오는 것이 보통이었다.

식당에서 나와 처마아래에 섰다.
이미 한 바탕 뛰 논 어린아이들이 빗물에 쫄딱 젖어서 뛰어다니는 모습 그리고 몇몇 주민들은 나처럼 집 처마에 서서 비가 그치기를 기다리는 모습을 보았다.

그리고 그 좁은 골목길로 우산을 곱게 쓴 숙녀가 걸어왔다.
‘아..!’

모래바닥에 떨어지는 빗물은 바로 진흙탕이 되어버리는 바람에 그 빗물이 얼마나 맑은지 알지 못했다.
오염되지 않은 이곳에서 내리는 비가 숙녀의 분홍 우산에 떨어져서 또르르 흘러 내려가는 모습을 보았다.

‘맑다. 참 맑다.’

나는 하늘에서 내리는 물이 맑다라고 생각했던 적이 있었던가.
회색 도시에 사는 나에게 하늘에서 내리는 물은, 공기 중 모든 먼지를 부여잡고 무거워서 어쩔 수 없이 떨어지는 그런 느낌이었다.

그래서 더 기억에 남았을까. 하늘에서 내리는 물이 맑다라는 생각을 한 그 때가.

 

 

 

‘사람의 향기'
- Sainte Marie Island, Madagascar


선착장에서 배를 기다리고 있었다. 세인트마리 섬으로 가기 위해서이다. 북동쪽에 위치한 세인트마리는 유럽인들이 휴양지로 손꼽는 섬이다.

10시 배를 기다리는데, 배가 영 안 온다. 선착장에는 나 말고도 세인트마리로 가기위해 같은 배를 기다리는 것으로 보이는 현지 사람들이 꽤 있었다. 물론 외국인은 나뿐이었지만.

기다란 나무 의자에 앉아있었는데, 내 옆에는 한 아저씨가 앉아 계셨다.

“안녕하세요. 아저씨도 세인트마리 가는 배 기다리시는 거죠?”
혼자 멍 때리는 것도 심심하니, 옆에 아저씨에게 말을 걸었다.

아저씨는 영어를 전혀 못하시는 분이셨다. 아저씨가 내 질문의 뜻을 알고 싶으셨는지, 선착장 주변 사람들에게 영어하는 사람 없냐고 묻는다.

그리고 영어를 아주 조금하시는 다른 아저씨가 도와주신다. 그렇게 시작한 아저씨와 나의 대화는 건너편에 앉아계신 아줌마 그리고 그 옆에 앉은 아기엄마 그리고 뒤에서 놀던 꼬마들까지 번져갔다. 아침부터 뭐가 그리고 신이 났었는지 사람들과 신나게 얘기하며 시간을 보냈다. 그러다보니 아침도 못 먹은 내 배가 출출하다며 신호를 보냈다. 잠시 대화가 잔잔해 졌을 때, 근처 구멍가게로 갔다. 원래는 아침이 될 만 한 빵을 살까 고민했다. 그런데 그 옆에 기다란 막대 초콜릿이 보였다.

‘빵 하나 사서 나 혼자 먹는 것 보단, 그 돈으로 저 막대 초콜릿을 여러 개 사서 선착장 사람들이랑 나눠 먹는 게 더 낫겠다.’

왜 갑자기 그런 기특한 생각이 들었는지 나도 모르겠지만, 나는 그 막대 초콜릿 여러 개를 손에 쥐고 다시 선착장으로 돌아왔다. 그리고 사람들에게 하나씩 나눠주었다. 굉장히 작고 싼 불량식품이었지만, 사람들은 환하게 웃으며 고마워한다. 나도 기분이 좋았다.

‘오독오독’
순식간에 선착장의 사람들이 똑같은 막대 초콜릿을 들고 먹기 시작했다.


세인트마린으로 가는 배는 1시간 30분이 지연 된 시간. 11시 30분에 선착장으로 들어왔다. 모두가 배로 짐을 옮겼다. 나의 무거운 배낭은 어느 새 배에 실려 있었다. 너무나 자연스럽게 내 배낭을 들고 옮겨주신 분은 내 옆에 앉아계셨던 그 아저씨였다. 배에 타고 플라스틱 의자에 앉아서 나눠주는 구명조끼를 입었다.

배는 파도에 뒤뚱거리며 섬을 향해 달렸다. 그런데 몇 분 뒤, 한 여자 분이 조심스레 내 옆자리로 와서 앉는다. 그리고 나에게 먼저 말을 건다.

“헬로우”

그녀의 이름은 바네사. 바네사는 영어를 잘했다. 그 이유는 바네사는 세인트마리에 있는 면세점에서 일을 하기 때문이었다. 그래서 우리는 많은 대화를 큰 어려움 없이 이어갈 수 있었다. 갑자기 옆자리로 와서 말을 건 이유가 내심 살짝은 궁금하기도 했지만, 그 궁금증은 잠시 뒤로 접어두었다.

그것이 인연이 되어 나는 베네사의 집에서 지낼 수 있게 되었고, 나의 세인트마리여행은 착한 베네사와 함께 하게 되었다.

 

No.161
I and Vanessa
Sainte Marie, Madagascar

내가 세인트마린에서 지내는 며칠 동안 바네사는 하나부터 열까지 챙겨주었다. 작게는 모든 식사에서부터 크게는 섬 관광까지 말이다. 남자친구와 장거리 연애를 한 뒤로부터 살이 찌기 시작했다며 다이어트를 하고 싶어 하는 그녀를 데리고 나가서 조깅을 함께 하기도 했다. 그리고 같이 시장에 가서 싱싱한 생선을 사서 집에서 구워먹기도 했다. 함께 배를 타고 근처 섬으로 놀러가기도 했다.

바네사를 통해 알게 된 동네 친구들과 함께 해변으로 소풍을 가기도 했고, 랍스타도 먹었다. 그리고 모두 함께 클럽을 가서 밤새 춤을 추며 놀기도 했다.

세인트마린에서의 4일은 참 금방 갔다.
마지막 날, 잠시 잊고 있었던 질문을 베네사에게 했다.

“바네사, 너는 그때 왜 나를 도와 준거야? 배에서 짧게 대화한 게 다였는데 말이야.”

그리고 바네사는 말했다.
“네가 선착장에서 사람들과 어울리는 걸 멀리서 봤어. 이미 그때부터 너에게 마음이 열렸던 것 같아. 멀리서도 느껴졌어, 네가 좋은 사람이다 라는 것 말이야. 그래서 배에서 네 옆자리에 가서 먼저 말을 걸었던 것도 그 때문이야.”

소름이 돋았다.
그렇다. 그때 내가 사람들과 얘기하며 놀 때, 바네사는 내 시야에는 없었던 사람이었다.

‘아무리 멀리 있어도 그 사람은 향기 혹은 냄새를 풍긴다.’

나는 이것을 ‘사람의 향기’라고 부른다.
아는 사람이 없다고, 외국이라고 마음대로, 예의 없이 행동한다면 그것은 찾아 올 좋은 인연도 행운도 자기 발로 다 뻥하고 차버리는 일이다. 항상 매 순간에 최선을 다하고 사람을 진심으로 대하고, 향기롭게 행동한 다면, 그 향기는 나의 미래의 길도 좋은 길로 데리고 갈 원천이 될 수 있는 것이었다.

나도 좋은 향기가 나는 사람에게 더 다가가고 싶고, 더 도와주고 싶고 더 쉽게 마음을 열게 된다. 그와 마찬가지로 나 스스로가 좋은 향기가 나게 행동한다면 기대치 못한 행운과 인연을 만날 수 있는 것이다.

이 전 여행에서도 그리고 이번 여행에서도 많이 느꼈던 것. ‘사람의 향기’

그리고 감사하게도, 이번엔 나에게도 향기가 났었나보다.

항상 느낀다. 그리고 나는 정말 믿는다. 그 ‘사람의 향기’의 힘을.
그리고 이제 있을 더 멀고 머나먼 나의 여행길에 이 마음을 항상 품고 지낼 것이다.

가끔은 ‘지혜롭게’보다 ‘향기롭게’가 더 강한 힘을 가지고 있다.
왜냐하면 ‘향기’는 머리가 아니라 마음을 움직이게 하니까.

마지막 날 밤, 바네사의 얼굴을 그렸다.
나보다 더 아름다운 향기를 가진 그녀를 말이다.

 

- 베네사의 초상화

 

 

 

‘여행 중 장사에 도전하다 - Part.1 그 준비’
- Antananarivo. Madagascar

 

마다가스카르 일정을 모두 마치고 마지막으로 안타나나리보로 돌아왔을 때였다.

나는 시내에 있는 수공예 시장을 구경하고 있었다. 직접 손으로 만든 너무나 예쁜 수공예품들이 내 눈길을 사로잡았다. 천연 재료를 사용해서 만든, 작게는 아기자기한 장식품부터 지갑, 가방 그리고 크게는 간단한 가구들까지. 물론 내 마음에 드는 것들은 많았지만, 수공예시장을 한 바퀴 돌고 나올 때는 결국 빈손이었다. 산다한들 가지고 다닐 수가 없으니 말이다. 당시 내 배낭이란 아이는 다른 불청객들을 들이는 일에 인심이 후한 놈이 아니었다.

그런데 숙소에 돌아와서도 실과 나뭇잎으로 엮어 만든 가방이 머릿속에서 잊혀 지지가 않았다. 하루 이틀 지나면 자연스럽게 잊혀 질 줄 알았는데, 시간이 갈수록 그 이미지는 더 선명해 졌으며, 구매욕은 더 불타올랐다. 약간 과장해서 말하자면, 여행을 많이 다녀봤지만 이렇게 나를 끌어당기는 가방은 처음이었다.

‘내가 이렇게 푹 빠져 있을 정도면 다른 사람들도 분명 이 가방을 사랑하지 않을까?’
언제부터 내 안목에 대해 이렇게 자신감을 가지고 있었는지는 모르겠지만, 괜한 확신이 들기 시작했다.

‘그래, 다른 사람들도 좋아할 거야. 이 가방을 보면 사고 싶어 할 게 분명해.’
그리고 난 결론을 내리게 된다. 이 가방으로 장사에 도전해보기로.


그 다음 날, 나는 바로 수공예 시장으로 다시 갔다. 가방을 잔뜩 구입하기 위해서다. 내가 이렇게 추진력이 있었던 사람이었는지 나 스스로도 놀랐다. 그렇게 나는 마다가스카르를 떠나기 전, 3일간은 안타나나리보에서 시장을 돌며 가방을 사들이는데 거의 모든 시간을 보냈다.

그리고 이 가방을 어떻게 보내야 할까.

우선, 국제 배송업체 DHL로 찾아갔다. 그런데 밀라노의 피아네 집으로 보내는 배송료를 물어보니 내가 감당 할 수 있는 정도가 아니었다. 보낼 무게로 계산해 보니, 그 배송료가 족히 600달러에 달했다. 이건 배보다 배꼽이 더 크고, 600달러를 들여서 밀라노에 보낸다고 하면, 도대체 얼마나 비싸게 팔아야 이윤이 남는다는 말인가. 이렇게 보낼 바엔 차라리 안 보내는 것이 더 나을지 모르겠다 싶었다. 그리고 보내는 물건이 수공예품이기 때문에, 그에 맞는 서류가 필요하다고 한다. 이 가방을 만든 사람의 인증서가 필요하다고 나에게 설명을 해주는데, 도대체 그런 서류가 있기는 한 것이며, 있다고 해도 내가 지금 그걸 어떻게 구하겠는가.

DHL은 포기해야 했다. 공항으로 가서 보내는 방법밖에 없었다. 3일간 구입한 물건을 잘 모아 포장을 해서 시내에서부터 택시를 타고 공항으로 갔다. 내가 들고 갈 수 있는 무게는 아니었다.

공항에 도착해서 이 물건을 보낼 수 있는 방법을 찾아보니, 여기 마다가스카르에서 밀라노로 직항이 있는 에어모리셔스 항공사가 있다고 한다. 바로 그 사무실로 가서 물건을 보낼 수 있는 지를 물어봤다. 그리고 항공을 통한 해외 배송을 담당하는 사무실로 갔다.

에어모리셔스에 밀라노로 보내는 배송료를 물어보니, 150달러정도였다. 이미 DHL에서 600달러라는 가격을 듣고 왔더니, 150달러정도는 장난 같게 느껴졌다.

나는 고민 할 것도 없었다. 에어모리셔스를 통해서 보내면 해결되는 것이었다.

그런데 내가 생각하지 못한 것이 있었다. DHL은 받는 사람 집까지 배송이 되는 시스템이다. 하지만 여기 항공배송은 그 도시 공항까지만 배송되는 시스템이었다. 그것을 생각하지 못했다. 왜냐하면 공항으로 보내려면, 미리 피아에게 이 점이 가능한지 물어보고 진행해야 하는 상황이었기 때문이었다. 내가 알기로는 피아네 집에서 공항까지는 꽤나 먼 거리다. 사실 피아에게 미리 물건을 보낼 테니 받아달라고 말을 하기는 했지만, 집으로 보낸다고 했지 공항으로 보낼 테니 와서 받아가 달라고 양해를 구하진 않았다.

그런데 나는 선택의 여지가 없었다. 죽이 되던 밥이 되던 이 물건을 밀라노로 보낼 수 있는 기회의 시간은 지금 나에게 주어진 몇 시간뿐이었다. 왜냐하면 내일 새벽에 여기에서 케냐를 거쳐 에티오피아로 가야 하기 때문이다.

이제 두 시간 뒤면 여기 오피스도 문을 닫는다.
그래, 우선은 보내자. 어떻게든 되겠지.

집에 돌아와 미안한 마음을 가득 담아 A4용지를 가득 채우는 메일을 써서 피아에게 보냈다.
‘네가 공항에 가서 짐을 찾아줘야 할 것 같아. 상의 없이 보내서 미안해. 블라블라’

다행히 내가 마다가스카르를 떠나기 전에 그녀에게 답장이 왔다.
‘미리 나와 상의를 하고 결정했어야 하는 문제 아니었니? 너를 이해 할 수 없어. 나는 요즘 너무 바빠서 공항까지 갈 수 없어. 게다가 우리 집과 공항은 너무 멀다고. 블라블라’

너무나 차가운 메일이었다. 물론 귀찮아할지는 몰라도 이렇게 답장이 올지 몰랐다. 하지만 뭐 어쩌겠는가. 이미 물건은 보내졌다. 모든 것이 내 손에서 떠났고, 그녀가 날짜에 맞춰 밀라노 공항에 가준다면 정말 고마운 일이고, 못 간다면 어쩔 수 없는 일이다.


과연 나의 가방 장사 도전은 어떻게 될 것인가.

 

그 결과는
이탈리아‘여행 중 장사에 도전하다-Part.2 밀라노 길거리에서 가방을 팔다’ 편에서 계속.

 

김물길

스물넷에 떠난 컬러풀한 세계일주 '아트로드' 저자

이름처럼 사는 것을 목표로 하고 있다.
22개월간 그림을 그리며 세계 이곳저곳을 여행하고 돌아왔다.
계속 이번 여행에서처럼 드라마, 코미디 그리고 로드무비의 주인공으로 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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