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지가지하는 가지공장] 1. 가지공장의 탄생 (prologue)

14.08.26 3



크리에이티브 네트워크 <노트폴리오>에서는 세상에 존재하는 다양한 디자인 스튜디오의 작업 비하인드 스토리를 담은 <디자인 뒷간>을 기획했습니다. 앞으로 진행되는 <디자인 뒷간> 프로젝트를 통해 그간 궁금했던 스튜디오 작업 후기와 에피소드를 생생히 접해보세요. 담당 디자이너를 통해 보다 더 자세한, 보다 더 생생한 디자인 철학을 느껴보시길 바랍니다.



가지공장의 탄생비화

어릴 적 학생기록부의 희망진로를 보면 초등학생 때는 화가, 중학생 때는 디자이너, 고등학생 때는 패션 디자이너였다. ‘예술’이라는 장르가 나를 통해 구체화되는 과정이 재미있긴 했지만 실상 나의 첫 직업은 컨설턴트였다.

공부를 곧잘 했던 나는 늘 미대입시를 못마땅해하는 선생님과 부모님의 반대를 겪었다. 하지만, 황소고집보다 센 성격 탓에 원하던 대학의 학과를 진학했고 꿈에 그리던 패션 디자이너에 한 걸음 다가간 내 자신이 자랑스러웠다. 하지만 압구정에 그 용하다던 사주카페의 사주풀이처럼 나의 "예술운"은 대학입학과 함께 싸그리 소멸됐고 애써 입학한 대학생활은 생각만큼 즐겁고 행복하지 않았다.

물론 좋은 친구들과 빗장 풀린 놀고먹고는 재미있었지만 수업은 재미없고 따분했다. 예쁜 옷을 좋아하는 것과 예쁜 옷을 만드는 것이 다르다는 걸, 대학에 들어가서야 깨닫게 된 것이다. 결정적으로 별 생각 없이 선택한 마케팅 수업에 푹 빠진 나를 보며 적성이 다른 곳에 있음을 알게 됐다.

 

 

 - 지금 모습과는 많이 다른 대학생 때의 나

결국 다른 대학동기들과 달리 첫 직장으로 ‘트렌드 컨설턴트’라는 직업을 택했다. 이후 10여 년의 직장생활을 마케터, 혹은 브랜드 매니저로 일했다. 그리고 일에 회의를 느껴 진학한 대학원에서 또 다른 전환점을 맞이했다. 바로 ‘스타트업’이다. 트렌드 컨설턴트로서 감각을 잃지 않기 위해 우연히 지원하게 된 한 트렌드 미디어에서 벤처, 스타트업, 스몰 비즈니스를 처음 접한 것이다. 그리고 지금까지의 모든 경험이 창업가들에게 많은 도움을 줄 수 있음을 알았다. 당시, 인력과 자금상의 문제로 브랜드 전략 구축을 놓치는 작은 기업들이 많았다. 디자인 전공 마케터로서 이러한 사실이 너무나 안타까웠다.

무엇보다 대기업 마케팅 부서를 정년퇴직 한 은퇴자의 이야기는 충격적이었다. 브랜드와 디자인에 대한 중요성을 너무나 잘 알고 있지만, 회사를 나와 본인이 직접 무언가를 하려고 하니 자신이 알던 업체들은 대기업만 상대해 부담스러웠단다. 그래서 소규모 업체에 의뢰하니 네이밍 따로, 디자인 따로, 홈페이지 따로, 인테리어 역시 모두 ‘따로’였다. 퀄리티 마저 안 좋았다. 그동안 브랜드 디자인이 엉망인 곳들을 보며 “참 생각 없다. 저러다 망하지.”라고 생각했던 나의 좁은 생각들이 산산이 부서졌다.

생각의 전환을 하고 거리를 바라보니 거리에 널린 프랜차이즈 브랜드가 안타까웠다. 가까운 일본만 해도 골목마다 개성이 살아 있는 숍들이 많다. 3대째 운영하는 우동집이지만 세월의 흔적만큼 잘 만들어진 브랜드 아이덴티티는 절대 촌스럽지 않다. 대기업의 횡포에 대한 기사가 하루도 끊이지 않는 우리나라에서 스몰 비지니스들은 제힘을 발휘할 수 없는 걸까?

대학을 졸업한지 10년이 넘은 지금, 나는 스몰 비지니스를 대상으로 하는 작은 브랜드 디자인 회사를 운영한다. 청년창업, 동네 가게, 작은 중소기업, 스타트 업이 우리 회사의 주 고객이며, 클라이언트의 나이가 대부분 또래거나 나보다 어리다. 어릴 적 꿈꾸었던 화가는 아니지만 비로소 내가 원하는 일이 무엇이고, 내가 잘하는 것이 무엇인지 분명히 알았다. 디자이너로서의 대학생활, 10여 년의 트렌드 컨설턴트와 마케터로서의 직장생활은 다양한 경험과 디자인적 센스가 요구되는 현재 일에 많은 도움을 준다.

특히, 건축을 전공하고 현재 회사 내 인테리어 팀을 이끄는 남편이 든든한 조력자다. 처음 창업했던 회사를 친구들에게 넘기고 지금의 <가지공장>을 꾸릴 수 있게 된 데는 남편의 역할이 컸다. 인테리어까지 도맡아야 하는 일이 들어오면서 자연스레 남편과 함께 일하게 됐다. 이로써 우리 <가지공장>은 브랜드 전략부터 브랜드 디자인, 공간 디자인까지 모두 아우르는 토털 브랜드 컨설팅 회사로 거듭났다.

 

 - 부부가 같은 일을 한다는 건 장점도 단점도 가진 양날의 검이다

사실 <가지공장>이라는 이름 역시 남편의 아이디어다. 컨설턴트로서 살았고, 또 직장생활을 하며 컨설팅을 받는 입장이 되니 “정말 쓸데없는 것 = 컨설팅”이라는 것을 알게 됐다. 문제와 솔루션은 누구나 안다. 하지만 그것을 실행할 수 있는 시간과 사람, 그리고 환경이 안 된다는 게 문제인데 컨설턴트는 그저 “솔루션이 나왔으니 이제 해결하시오.” 하고는 떠나버린다. 문제 발견부터 해결, 그리고 관리까지 함께 하는 방법은 없을까? 특히 디자이너와 브랜드 매니저가 없는 작은 회사에서 갑과 을의 관계가 아닌 파트너로서 브랜드를 함께 만들어 가는 건 절대 불가능할까? 나의 이런 작은 고민은 브랜드 컨설팅 혹은 브랜드 디자인 회사가 아닌 브랜드 인큐베이팅이라는 컨셉을 떠오르게 했고, 남편은 인큐베이팅에 가장 많이 사용되는 ‘달걀’과 ‘재배하다’, ‘가꾸다’의 의미를 지닌 egg와 plant란 단어를 회사 이름에 넣어보자고 했다. 그런데 가만 보고 있자니 두 단어의 합성어인 eggplant가 존재했고 그 의미는 ‘가지’ 였다.

처음 창업을 하는 클라이언트가 많은 회사의 특성상 "가지가지 한다"라는 말이 나올 정도로 우리는 다양한 일을 한다. 나는 이 단어가 너무 마음에 들었고 “브랜드를 만들어 세상에 내어놓는다.”라는 의미까지 더해 Eggplant Factory, 일명 <가지공장>이라는 회사를 탄생시켰다. 그리고 회사의 브랜딩을 옛날 공장의 포스터 느낌으로 디자인하고, 직원 각자의 업무에 맞는 도구를 명함에 넣어 <가지공장>에 어울리는 디자인을 했다. 지금에야 <가지공장>의 작업을 많은 분들이 좋아해주셔 다행이지만 처음 작업을 시작했을 땐 이렇게 막 나가도 되나 싶었다.

 

 - 여의도 사무실 현판

 

<가지공장 브랜드 디자인>

이렇게 특별한 <가지공장>은 다른 브랜드 디자인 회사와 달리 첫 미팅 시 ‘왜 창업을 했는지’ 에 대해 집요하게 물어본다. 단순히 예쁜 디자인을 던져주는 것이 아닌, 3대가 운영할 수 있는 작은 우동집이라도 그들만의 개성이 배어나는 브랜드를 만들고 싶어서다. 그래서 그런 준비가 되어있지 않은 클라이언트에게 적반하장으로 “다음에 준비되면 오세요.”라고까지 말하는 조금 재수없는(?) 회사이기도 하다. 9월 1일부로 딱 1년이 되는 <가지공장>은 인생에 있어 새로운 도전이자, 정말 내가 하고자 하는 일을 하는 즐거운 곳이다. 지금까지 30여군데의 스몰 비지니스들과 함께하며 울고 웃는 추억들이 가득하다.

 

- 클라이언트와 첫 미팅시 보여드리는 체크리스트

처음 노트폴리오에서 원고를 의뢰 받았을 때 많은 고민을 했다. 과연 내가 무슨 이야기를 들려줄 수 있을까. 한달 벌어 한 달을 살아가는 작은 디자인 회사의 특성 상 글을 쓸 시간이나 있을까 싶었다. 하지만 많은 분들에게 <가지공장>이 어떤 회사고, 어떤 프로세스로 일을 하는지, 더불어 우리의 클라이언트에 대해 알리고 싶어 선뜻 원고 청탁을 수락했다.

앞으로 2주에 1번씩 <가지공장>의 이야기 혹은 <가지공장>의 클라이언트에 관한 이야기가 가감 없이 펼쳐질 것이다. 행복하고 즐거운 에피소드도 있지만, 스몰 비지니스에 대한 안타깝고 슬픈 이야기도 준비 돼 있다.

100세 시대라고 한다. 앞으로 살아갈 날이 너무 많은데, 우리는 너무 일찍 일을 그만둔다. 나는 우리나라의 모든 사람들이 자신의 브랜드 하나쯤은 만들었으면 좋겠다. 아주 작은 일이라도 말이다. 미국의 경우, 어릴 적부터 <레몬에이드 스탠드>라고 하는 창업가 교육을 받는다.

우리나라 학생들이 패스트푸드점에서 아르바이트를 할 때 그들은 직접 재료를 사고, 원가를 계산하고, 홍보를 해서 레몬에이드를 판다. 차별화를 위해 레몬에이드에 예쁜 스티커를 붙이거나 손으로 직접 그림을 그리기도 한다. 나 하나로 세상을 바꿀 수 없지만, 이 공간에서 펼쳐질 스몰 비지니스의 이야기를 통해 많은 분들이 자신만의 브랜드를 꿈꿨으면 좋겠다.

 

이지윤

뜨거운 디자이너의 피와 차가운 전략가의 머리가 공존하는 이상야릇한 정체불명의 여자
스몰 비지니스 전문 브랜드 인큐베이팅 회사 <가지공장>을 운영중이다.
www.facebook.com/jeyounle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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