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소한 일상의 실천] 1. 현실과 이상의 기로에서 : 일상의 실천 비긴즈

14.09.05 1

 

크리에이티브 네트워크 <노트폴리오>에서는 세상에 존재하는 다양한 디자인 스튜디오의 작업 비하인드 스토리를 담은 <디자인 뒷간>을 기획했습니다. 앞으로 진행되는 <디자인 뒷간> 프로젝트를 통해 그간 궁금했던 스튜디오 작업 후기와 에피소드를 생생히 접해보세요. 담당 디자이너를 통해 보다 더 자세한, 보다 더 생생한 디자인 철학을 느껴보시길 바랍니다.

 

 

디자인. 참 멋스러운 단어다. 외래어기 때문일까. 아무래도 디자인은 딱 잘라 한마디로 단정지을 수 없는, 마음이 붕 뜰만큼 환상을 던지는 단어다. 고된 입시미술을 관통하면서도, 떡진 머리와 삼각김밥으로 밤샘 야작(야간작업)을 하면서도 꿋꿋이 버틸 수 있었던 건 그만큼 디자인이 매력 있어서다. 내 목소리를 쓸모 있는 조형으로 재해석하는 동안, 나는 다분히 디자인이라는 행위에 매료될 수밖에 없었다. 적어도 대학생 시절에는 말이다.

대학 시절, 항상 품고 다닌 의문이 있다. ‘왜 사회에 있는 디자이너들은 저렇게 밖에 못할까’. 졸업 후 사회에 나와보니 이유는 분명했다. 그것은 불가항력의 현실. 개인의 능력과는 무관한 상사의 취향, 클라이언트의 선택, 공감되지 않는 프로젝트와 빡빡한 일정. 마치 잘 짜인 방정식처럼 이 모든 이유가 개입되는 순간, 나 역시 똑같은 ‘직장인’으로 변모해 버렸다.

2005 년에 졸업한 나는 4학년인 2004년부터 6년 가까이 회사 생활을 했다. 광고대행사의 인턴부터 디자인문구회사, 그리고 브랜드 디자이너까지. 실로 다양한 경험으로 6년의 시간을 보냈다. 어떤 의미에서 상업디자인의 최전방을 경험한 셈이다.

광고대행사 인턴 시절, 입사한 지 한 달도 안 돼 내 시안이 신문 지면광고에 실렸다. 모 이동통신 회사의 지면 광고였는데, 같은 팀에 근무했던 상사들은 신문에 실린 내 디자인을 보고 ‘어진이 기분 좋겠다.’며 흐뭇해 하셨다. 하지만 정작 나는 그게 좋은 일인지 아리송했다. 몇 일 밤을 꼬박 지새워 물건 찍어내듯 만든 결과물이 마음에 들지 않기도 했지만, 신문에 실린 광고가 도대체 무엇을 의미하는지 이해되지 않았다. 그렇게 채 두 달도 못 돼, 불도저 같은 철야에 도망치듯  인턴을 그만 뒀다.

그 후 브랜드 에이전시에 입사한 나는 아이덴티티 분야에 흥미가 생겼다. 어떤 유려한 시처럼, 다양한 의미를 명확한 조형 안으로 녹여내는 과정에 사로 잡힌 것이다. - 지금도 존경하는 - 당시 사장님에게 브랜드의 개념을 체계적으로 배워가며 성장하는 것 또한 즐거웠다. 공부하듯 일을 했고 연애하듯 회사를 다녔다. 

 

그렇게 열심히 회사생활을 하던 어느 날, 클라이언트로부터 의뢰가 들어왔다. K전자 CI 리뉴얼. 그때까지만 해도 나는 K전자를 그저 평범한 중소기업 정도로 알고 있었다. 하지만 자료 조사를 하던 중, 그 회사가 ‘문자통보’로 노동자를 부당 해고한 기업이며, 해고 노동자들이 회사를 상대로 수 년간 투쟁하고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됐다. 포털 사이트에는 실제 ‘해고통보’에 쓰인 문자 사진까지 발견할 수 있었다. 이쯤 되니 클라이언트의 의뢰가 기업 이미지 제고를 위한 CI리뉴얼이 아닌, 이미지 세탁에 가까워 보였다. 비록 여러 이유로 프로젝트는 무산됐지만 내심 다행이라 생각했다. 그러다 문득 한가지 의문이 들었다.

내가 하고 있는 일이 부도덕한 기업이나 집단의 이미지 세탁을 위해 쓰인다면, 그것은 과연 누구의 책임인가. 나는 그저 매달 월급만 기다리는 직장인일 뿐인데, 프로젝트가 들어오면 열심히 디자인만 하는 디자이너일 뿐인데, 그럼에도 책임의 연장선에서 얼마만큼 자유로울 수 있는가. 생각지도 못한 질문이 큰빗이끼벌레처럼 징그럽게 커져만 갔다.

2008년과 2009년은 지옥 같았다. 광화문의 명박산성과 용산의 망루를 목도하며 이길 수 없는 무기력감에 빠져들었다. 그것은 커다란 열패감과 맞닿아 있었다. 마음이 다잡아지지 않는 사이, 엎친 데 덮친 격으로 회사를 그만 두게 된 사건이 발생했다. 회사에서 국책 사업 경쟁 PT로 4대강 사업의 일환인 ‘아라뱃 길’ 프로젝트를 수주한 것이다. 상업디자인 최전선에 있는 브랜드 에이전시로써 억 단위의 프로젝트는 매우 중요했다. 일이 진행되는 수개월 동안, 나는 술만 마시면 프로젝트를 욕하기 바빴다. 동의할 수 없는 프로젝트를 수주한 회사가 원망스럽기까지 했다. 

당시 나는 틈날 때마다 광장에 나갔다. 머리가 크고 나서 처음 겪는 부조리에 분노하며 시민단체에 메일도 보냈다. 활동가를 만나 이야기도 나눴지만 돌아오는 열패감은 쉽게 사그라 들지 않았다. 그러던 사이, 한번 읽어보라며 건네 받은 리플릿이 눈에 띄었다. 마땅한 디자이너가 없어 보이는 ’시민단체 리플릿’은 조형적인 완성을 떠나 가독(可讀)마저 어려운 ‘불편한 디자인’이었다. 그러면서 드는 생각. ‘왜 시민단체의 디자인은 이렇게 밖에 못할까’. 

앞 뒤 잴 것 없이, 리플릿을 나눠 준 활동가에게 장문의 메일을 보냈다. 상업디자인에 대한 풀리지 않는 의문점과 광장에서의 사그라 들지 않는 분노를 잔뜩 담았다. 마치 투정부리는 아이처럼 두서 없는 메일을 보낸 것이다. 그리고 글의 말미에는 내가 가진 ‘디자인이’라는 도구로 함께 참여하고 싶다고 적었다. 그것은 길거리와 술자리에서 느꼈던 무기력감에 대한 다분한 저항이었다. 이렇게 내가 가진 도구로 사회에 참여할 수 있다면 내가 느꼈던 부도덕한 기업의 그것과는 다른, 진심으로 투신할 수 있는 디자인을 할 수 있겠다고 생각했다.

다니던 회사는 4년이라는 시간을 뒤로 한 채 마감했다. 회사를 그만두는 이유를 사장님께 솔직하게 말씀 드렸고, 사장님은 나를 응원해 주셨다. 하지만 스스로에 대한 불확신과 불투명한 앞날을 이겨낼 자신이 없었다. 믿을만한 동지가 필요했다. 그렇게 생각난 사람은 경철이 (김경철/현 일상의실천 구성원). 회사를 다니던 시절, 경철이와 나는 신사역 4번 출구와 7번 출구를 사이에 두고 매일 밥 먹고 술 마시며 이야기를 나눴다. 그만큼 믿을 수 있는 동지였다. 우리는 몇 개월 동안 작업실을 꾸리는 것에 대해 의견을 모았다. 그렇게 2009년 겨울, 가난한 작업실을 꾸릴 수 있었다.

 

핸드프린트. <일상의 실천>의 전신이라 할 수 있는 이 이름은 시민단체와 작업하고 싶은 열망으로 탄생했다. 돈이 없던 우리는 살던 방 한 켠을 대충 개조해 공간을 마련했다. 작업실을 만들고 나니 당장이라도 시민단체와 함께 일할 생각에 마음이 설렜다. 머리 속은 앞으로 하고 싶은 다양한 구상들로 꽃밭을 이뤘다. 하지만 아름다운 이야기는 여기까지. 슬프게도 진짜는 지금부터다.

시민단체와 함께 작업하고 싶던 우리는 여러가지 방법으로 만남을 시도했다. 메일을 보내기도 했고, 부족한 통장 잔고를 탈탈 털어 작업실을 알리는 책자를 인쇄해 발송하기도 했다. 그렇게 서른 곳이 넘는 시민단체에 연락을 시도했지만, 수취인불명으로 돌아온 두 개의 우편물을 제외하고 아무런 대꾸가 없었다. 마치 주인 없는 메아리 같았다. 그렇게 2년에 가까운 시간을, 870원의 통장 잔고와 실체 없는 고립감에 대항하며 견뎠다.

말로 설명할 수 없는 2년의 시간을 지나 우여곡절 끝에 시민단체와 연락이 닿았다. 녹색연합. 우리에게는 이미 익숙한 이 단체와의 만남으로 핸드프린트는 변곡점을 맞이했다. 우리의 디자인을 좋게 평가해 준 녹색연합을 시작으로 다양한 프로젝트를 진행했다. 우리는 디자이너와 활동가 이상의 신뢰를 구축할 수 있었다. 동의할 수 있는 작업들이 하나 둘씩 늘었고, 우리가 하고자 했던 디자인은 차츰 구색을 갖췄다.

 

 

- 2011 녹색연합 활동보고서

 

- 녹색희망 1차 리뉴얼

 

- 녹색연합 신입회원안내서

 

- 녹색연합 리마인드 카드

 

영국에서 공부를 마치고 돌아온 준호의 합류는 커다란 힘이 됐다. 2012년부터 계획한 <일상의 실천>은 1년 가까운 시간 동안 수많은 의견으로 만든 작업실이었다. 우리는 그동안 <일상의 실천>의 지향점을 더욱 명확히 했다. 세 명의 구성원은 단지 아름다운 조형이 아닌, 우리가 동의할 수 있는 ‘운동으로서의 디자인’을 공고히 했다.

 

<일상의 실천>은 이렇게 시작됐다. 의문에서 시작한 디자인의 역할은 몇 년을 걸쳐 확신으로 이어졌고 결국 지금, 우리의 깜냥으로 남았다. 혹자는 우리의 작업을 이야기할 때 ‘사회적 약자를 돕는 디자인’이라 일컫는다. 하지만 우리는 단 한번도 누구를 ‘돕는’ 디자인을 한 적 없다. 그저 대학생 시절부터 지금까지 우리가 할 수 있는 몫의 디자인을 하고 있을 뿐이다. 이제 막 1년을 넘긴 <일상의 실천>이 가야 할 길은 여전히 멀고도 험하다. 현실과 이상의 괴리는 결로현상처럼 커다란 온도차를 보이며 당최 섞일 줄 모른다. 현실과 이상 사이의 온도차를 얼마만큼 실체적 대안으로 만들어 내는가. <일상의 실천>이 풀어야 할 이야기는 이제부터 시작이다. 

 

 

김어진

불친절한 그래픽디자이너. 별로 착하지 않은데 이름때문에 착하다고 오해받을 때 부담스럽다.
권준호, 김경철과 함께 디자인 스튜디오 <일상의실천>을 공동 운영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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