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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격 대리만족 : 나는 여전히 마시고 싶다

14.11.18 0

 

최근 신드롬인 드라마 <미생>에서 눈길을 끌었던 장면이 있다. 신입사원 넷이 회사생활의 고충을 토로하는 자리에서 5:5로 정갈하게 가르마를 탄 친구가 화려하게 폭탄주를 제조하는 장면이다. 그 작은 디테일은 다이어트를 위해 술을 끊고 있는 사람에게는 침이 꼴깍 넘어가게 하는 유혹이자 고통이요, 애주가에게는 지금 당장 소맥을 말아먹고픈 충동을 선사했다. 여름 밤의 음주는 음주 후의 후끈거림이 싫어 어찌저찌 피할 수 있겠으나 온도가 내려가며 코 끝이 시려지자 자꾸만 생각난다, 술집에서 기울이는 소주 한 잔과 뜨끈한 국물!!!! 바야흐로, 얼큰한 국물의 계절이 당도했노라!

 

 

- <쓴 술 (Der bittere Trank)>아드리엔 브라우어, 1630 ~ 1640, 슈타델 미술관 소장

 

 

 

 

플랑드르 (현재의 북 프랑스, 벨기에, 네덜란드 지역) 출신이었던 브라우어(Adriaen Brouwer)는 우리나라로 치면 중2 때 가출을 감행했다. 그러고보면 중2병은 언제 어디서나 존재하나 보다. 어쨌거나 몇 년 후, 중2병을 퇴치하고 마음을 다잡은 브라우어는 농민들의 자연스러운 삶 그 자체를 그림의 주제로 삼았다. 그림을 보고는 정말 감탄했다. 어쩜 쓰디 쓴 술을 마신 순간의 표정을 저리 절묘하게 포착했는지! 한 모금 마신 후 내뱉었을 욕지거리까지 귓가에 선연히 들린다. 그런데 어째서 남자의 표정에서 시원함이 느껴지며, 어째서 갈색 병이 자꾸 우리네 초록 병으로 보이는 걸까. 아마 우리가 소주를 처음 접했던 순간이 저랬을 것이다. 정말 그랬다. 저렇게 독하고 쓴 술을 왜 마시는 건지 이해를 할 수 없었지만 곧 거부할 수 없는 초록 병의 매력은 루시퍼와도 같았다. 알콜 냄새가 거북하다면 맥주와 섞어 부드럽게 마시면 되니까.

 

- <포도주는 거만케 하는 것이라 (Wine is a Mocker)>얀 스틴, 1633, 미국 노튼 사이먼 박물관 소장

 

 

 

 

주사가 없는 사람들은 대부분 ‘남들 앞에서 흐트러지는 것이 싫어서’ 주사가 없다. 물론 이들은 주사가 시작되기 전 깔끔하게 잔을 내려놓기 때문에 본인의 주사가 무엇인지 모를 수도 있다. 하지만 대부분 속으로는 죽을 것 같아도 안 취한 척 집에 돌아와 빙빙 도는 침대에서 홀로 괴로워하는 타입이다. 그들에게 이 그림을 보여주면 아마 한심하다는 생각부터 할 것이다. 여러분이 익숙하게 보았을 그림 속의 광경은 몇 백 년 전에도 존재한다. 사람 사는 건 다 똑같다더니 빨간 스타킹을 신고 널부러져 있는 여자는 어쩐지 엊그제 홍대 길거리에서 봤던 사람 같다. 그림을 그린 얀 스틴 (Jan Steen)은 브라우어 (Brouwer)와 마찬가지로 플랑드르 출신이다. 작품 속에 유독 인간들의 적나라한 생활상이 그림의 소재로 쓰이는 특정 지역이 있는데, 그 중 하나가 바로 플랑드르다. 플랑드르의 작가들은 그림 속에 삶의 즐거움, 나아가 세속적인 쾌락까지 솔직하게 그려냈다. 그림은 보는 이에게 웃음을 선사하기도 하지만 궁극적으로는 “이렇게 우스꽝스럽게 살지는 말자”는 따끔한 교훈을 준다. 이런 그림들을 <플랑드르 풍속화> 라고 부른다.

 

여관과 함께 술집까지 함께 운영했던 얀 스틴(Jan Steen)으로서는 취한 채 드러누워버린 취객들이 어찌나 한심했을 지 눈에 선하다. 마치 정신 못 차리고 주는 술 다 받아먹고 먹은 것을 재차 확인한 후(= 토했다)에도 진상을 부리는 친구를 보는 기분이랄까. 아, 만약 주변에 이런 친구들이 없다면.. 그건 본인일지도 모른다. 고치도록 하자. 주사를 받아주면 절대 고치기 힘들다는 데 요즘 세상은 하도 험해 길가에 드러누운 친구를 버리고 갈 수도 없는 노릇이니 말이다.

 

물론 적당히, 기분 좋을 정도로만 마셔야 한다는 것은 너도 알고 나도 아는 사실이자 정답이다. 하지만 항상 마지막 기억 속 남아있는 힘찬 한마디는 이렇다. “우리 마지막으로 청하(혹은 매화수) 한 병만 시켜서 마무리하자!” 나름 고른다고 고른 가벼운 술인데, 이것들은 항상 매몰차게 기억을 끊어버린다. 정말 궁금한 일이다. 어디서 이런 필름 절단의 슈퍼파워가 발휘되는지 아시는 분은 제보 부탁한다.

 

- <압생트 (L’Absinthe)>에드가 드가, 1876, 오르세 미술관 소장

 

 

 

 

해장술이라도 한잔 하러 온 것일까, 압생트를 앞에 둔 여자는 밤에 얼마나 달린 건지 초점이 없다. ‘악마의 술’ 이라고 불리며 20세기 초에는 금지령까지 내렸던 압생트는 예술가들의 사랑을 독점했던 술로 유명하다. 압생트의 열렬한 팬으로는 로트렉과 고흐를 꼽을 수 있는데, 둘 다 압생트 중독으로 인한 정신착란이 원인이 되어 불행한 말년을 보냈다. 사실 ‘예술가라면 압생트를 마셔야 한다’ 는 썰이 있을 정도로 압생트는 엄청난 팬덤을 자랑했다.  쑥을 주재료로 만드는 이 초록 술은 싼 값과 70도에 달하는 독한 도수, 환각을 볼 수 있다는 이유로 인기를 얻었다. 도시가 번화하고 발전할수록 사람들은 도시 속의 소품이 됐다. 콘크리트 세계에서 괴롭고 고독한 마음을 달래주는 것 역시 술이다. 오죽하면 노래도 있겠는가. ‘난 늘 술이야! 맨날 술이야~’ 슬플 때 마시는 술은 독이라지만 울적한 날, 이자카야에 혼자 들어가 마시는 따뜻한 도쿠리 한 잔은 어떤 자양강장제보다 더 큰 힘이 된다.

 

- <Bar Mitzvah / Woodbury Jewish Center, Long Island>조안 졸킨,  2011 

 

 

 

 

- 출처 : TV 프로그램 캡처 (http://chosun.us )

 

 

 

오늘도 매트 위에서 구르고 기구들과 씨름했을 다이어터와 건강을 위해 당분간 술을 끊은 애주가여! 여태까지 유혹을 잘 이겨냈다! 그러나 이 한 장면에 여태까지의 다짐이 모두 무너질 것이다. 얼큰들큰한 국물은 “이모 여기 처음처럼 한 병이요!”를 당장이라도 외치고 싶게 만든다. 겨울비가 지나고 나서 아침 밤으로 찬 바람이 싸늘하게 얼굴을 스치는 계절이 찾아왔다. 오늘만큼은 누구에게라도 좋으니 “국물 땡긴다. 콜?” 이라고 전화를 걸어보자. 마지막으로 이 날씨에 딱 맞는 노래 하나를 첨부한다. 많이 들어봤을 거다. 심지어 엘비스 프레슬리가 원곡을 불렀다고 하는데 호빵 CF가 먼저 떠오르는 것은 어쩔 수 없다. 감기 조심하시길!

 

 

 

 

 


출처

http://commons.wikimedia.org, 아드리엔 브라우어
http://www.wikiart.org
http://commons.wikimedia.org, 에드가 드가

 

 

김월

나의 글이 사람들에게 즐거움과 영감이 되길 바랍니다.
예술과 친근한 세상을 만들거예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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