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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술이 존재하는 이유 <마크 로스코 Mark Rothko>展

15.04.15 2

 

처음 로스코(Mark Rothko, 1903~1970)의 그림을 마주했던 때를 기억한다. 런던의 템즈 강변에서 한참을 걷다 마주친 큰 건물은 테이트 브리튼 갤러리였다. 조금 쉬었다 가자, 싶어 지친 다리를 끌고 안으로 들어갔다. 갤러리에서는 마침 로스코의 작품을 전시 중이었고, 로스코 룸(Rothko Room)안에 들어서자마자 의자에 털썩 주저앉을 수 밖에 없었다. 책이나 도록, 슬라이드에서는 경험할 수 없던 영적인 분위기에 압도당한 것이다. 붉고 검은, 노랗고 하얀 색 면(面)이 거대한 캔버스를 둥둥 떠다니며 뭐라 표현할 수 없는 기(氣)를 내뿜고 있었다. 지금 와서야 든 생각이지만 ‘스탕달 신드롬(Stendhal syndrome)’이 아닐까 싶다. 위대한 예술작품 앞에서 느끼는 흥분과 자아상실, 말로 표현 못할 감정의 소용돌이 말이다.

 


- 자신의 작품 앞에 선 로스코, 출처 : http://www.huffingtonpost.com

 

 

 

르네상스와 바로크, 로코코, 그리고 시대를 훌쩍 넘어 낭만주의와 인상파, 현대미술까지. 많은 작가를 접하며 그들의 작품을 나만의 언어로 표현할 수 있게 됐다. 하지만 로스코는 유난히, 그리고 유일하게 험준한 산이었다. 모든 감각을 다 빼앗긴 그 경험을 어떻게 표현할 수 있을까. 넘을 수도, 시도조차도 할 수 없던 작가가 바로 마크 로스코였다. 2011년 로스코를 주인공으로 한 연극 <RED>가 동국대 이해랑극장에서 초연된 이후, 재연 삼연이 올라오는 동안 빠지지 않고 극장을 찾았다. 그리고 그가 붉은 물감을 미친 듯이 캔버스에 칠해대는 모습을 멍하니 바라봤다. 담배연기가 매캐한 작업실 속 로스코는 스스로의 그림에 혼연일체 된 것만 같았다. 그리고 2015년, 드디어 예술의 전당에서 국내 최대규모의 전시가 열렸다.


전시장에 들어서자마자 간단한 전시소개와 로스코의 예술철학을 공유할 수 있는 다큐멘터리 영상이 흘러나온다. 입에서 떨어질 줄 모르게 연신 담배를 피워대는 로스코의 모습과 시작되는 전시 섹션 1은 로스코의 초기 작품으로 신화와 전설을 다룬다. 2차대전 이후, ‘전쟁의 경험’은 이 시기 작가들에게 많은 영향을 미쳤다. 그들은 전쟁을 통해 인간 본연의 폭력성과 야만성을 발견했다. 자연스레 ‘그렇다면 인류의 근원(根源)으로 돌아가보면 어떨까’는 의문을 품은 채, 작품의 소재로 신화와 전설, 비극을 선택한 것이다. 로스코 역시 이러한 움직임에 동참했고 특히 초기작 중 대표라고 할 수 있는 <지하철> 시리즈에서는 인간의 야만과 폭력을 넘어 경제공황을 마주한 메마른 도시인의 모습을 확인할 수 있다.

 


-<지하철 입구 (Entrance to Subway)>, 1938, 포틀랜드 미술관 소장, 출처: http://www.orartswatch.org

 


-출처 : http://www.vosizneias.com

 

 

 

특이하게 전시장 안에서는 모차르트와 바그너, 드뷔시의 음악을 내내 들을 수 있다. 이는 ‘그림과 관람자 사이에는 아무것도 없어야 한다’는 철학 아래 모든 잡음을 소거하기 위해 음악을 택한 로스코의 생각을 반영한 것으로 보인다. 더불어 장중한 첼로 연주 덕분에 로스코의 거대한 색면들이 더욱 더 성스럽게 관람자를 마주할 수 있는 듯 하다. 실제로 전시장 안의 많은 관람객들은 중간중간에 배치된 벤치에 앉거나 그림 앞에 서서 한참을 응시하고 있었다. 로스코 작품을 보면 이유도 모른 채 엉엉 울고 나가는 사람이 많다고 한다. 그저 손님을 더 모으기 위한 부풀려진 에피소드가 아닐까 생각하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그렇다면 직접 확인해보길 바란다.

 

이상하게 들릴 수도 있겠지만 (그리고 로스코가 사이비 교주처럼 느껴질 수도 있겠지만!) 가슴 속에서 무언가가 치밀어 올라오는 듯한, 왜인지 자꾸 울고 싶어지는 느낌을 꾹꾹 눌러 참느라 많이 힘들었다. 아마 관람객이 적었다면 정말로 주저앉아 오열했을지도 모른다. 그리고 이게 바로 로스코가 의도한 바다. 로스코는 자신이 결코 ‘예쁜 그림’을 그리는 화가가 아님’을 역설했다.


관람자가 그림 앞에 섰을 때 관람자 스스로의 내면을 마주하고 속에 담아뒀던 모든 감정을 쏟아내기를 원한 것이다. 그러니까, 자신의 그림을 매개로 관람자가 무언가 체험하고 느낄 수 있기를 바라며 -섹션 3의 주제인 <Golden Age 황금기>라는 이름처럼- 로스코는 더욱 더 자신의 그림세계에 침잠했다.


-< Black in Deep Red> 1957, 출처 : http://www.markrothko.org

 


-<Blue and Gray> 1947, 출처 : http://www.wikiart.org/en/mark-rothko/blue-and-gray

 


-<무제 (Yellow, Orange, Yellow, Light Orange) 1955, 출처 : http://www.markrothko.org

 

 


이전까지 우리가 접한 유럽 회화들과 달리 로스코의 시대라고 할 수 있는 ‘추상표현주의’의 특징은 캔버스의 스케일이 벽면을 뒤덮을 정도로 커졌다는 것, 그리고 기법과 주제가 이전의 사실적 표현과는 정 반대라는 것을 들 수 있다. 특히 로스코는 색면이 마치 살아있는 것처럼 캔버스 위를 부유하는 화풍이 특징이다. 마치 2% 모자란 미완성의 상태로 느껴지는 것은 작품에 (앞에서도 언급했던)관람자의 영적 체험을 2% 더해야 하기 때문일 것이다. 사진으로서의 역할을 했던 회화가 아니라 관람자를 작품의 한 요소로 끌어들이는 현대미술의 가장 중요한 특징을 잘 보여줬다.


로스코, 하면 유명한 일화가 있다. 연극 <레드>에서도 언급하는 ‘시그램 벽화 사건’인데, 뉴욕 시그램 본사의 레스토랑에 그려질 벽화를 비싼 값에 계약한 로스코는 어느 날 직접 장소 답사를 간다. 그런데 레스토랑에서 신나게 먹고 마시는 부유한 이들에게 자신의 그림은 전혀 어울리지 않음을, 단지 예쁜 그림이 돼버릴 것임을(여기서 주체를 확실히 해야 한다. ‘그림’이 장소에 맞지 않는다는 얘기다!) 깨닫는다. 로스코는 계약금을 그대로 돌려주고 작업을 고사한다. 그에게 그림은 단지 장식품이 아니라 심리적 감응을 일으키게 하는 추상의 ‘세계’ 였던 것이다. 그랬기에 로스코는 사람과 풍경을 그리는 대신 자신의 사색과, 고뇌와, 우울 그리고 모든 감정을 색면에 담아냈다.

 

- <시그램 벽화 시리즈>의 모습, 출처 : http://www.portlandstage.org

 

 

 

갑자기 드라마의 한 장면이 생각난다. <인어아가씨>의 주인공은 독에 가득 차 소리친다. “이게 다 내 피고름으로 쓴 원고야!!!!” 아마도 로스코에게도 이 모든 작품은 그의 피고름(!)으로 만들어낸 게 아닐까, 한다. 결과적으로 로스코는 사람의 마음을 꿰뚫어보는 색면 회화로 유명세를 타는 비싼 작가가 되었다. 실제로 아직까지 그의 작품은 가장 비싼 가격으로 거래되고 있으며, ‘로스코 채플’은 2001년에 국립유적등록기관에 등록되기도 했다.

 

그러나 아이러니하게도 그가 바란 것은 자신의 그림을 통해 보는 이로 하여금 마음 속에 평화와 안정, 치유를 얻는 것이었다. 그 바람을 형상화한 ‘로스코 채플’이 전시장 안에 재현 됐는데, 공간 안에 방석을 배치해 간접적으로나마 체험을 할 수 있다. 또한 회색의 가벽과 강하지 않은 조명 역시 로스코의 작품을 내면적으로 가깝게 체험할 수 있게 해 준 요소가 아닐까 싶다. 특히 감탄했던 점은 날카로운 노란 조명을 종이 갓으로 덮어 부드럽게, 마치 공간을 감싸는 듯한 분위기로 연출한 점이다. 국내 최대의 규모이며 역대급 전시가 될 것을 공표했던 주최 측의 자신감이 어느 정도 느껴지는 데는 역시 이유가 있다.

 


- 전시장 내에서 유일하게 촬영이 가능했던 작품. <Red> 라는 이름을 달고 있는 이 무제 작품은 1970년 로스코가 자살로 생을 마감하기 전 마지막으로 남긴 그림이다. 예술가로서 그 무언가의 끝을 찾아가려는 처절함이 고스란히 느껴졌다.

 

- 로스코 채플, 텍사스 주 휴스턴 (1964~1967), 출처 : http://artsandfacts.blogspot.kr

 

 

 

 

화면으로, 사진으로 보면 대체 이 네모난 색띠들이 무슨 영적(靈的) 어쩌고 하는 체험을 하게 하는지 의문이 들 것이다. 실제로 그림의 가격을 듣고 ‘이딴 거 나도 그릴 수 있겠다’라는 이야기도 주위에서 많이 들었다. 하지만 로스코 작품이 대단한 이유는 역시 직접 가 봐야 깨달을 수 있다. 아마 이번 전시가 끝나고 나면 한국에서는 그를 만나기가 쉽지 않을 것이다. 전시는 6월 말까지 여유 있게 진행하니 꼭, 한번, 가보시길! 추상표현이니 인간의 본질이니 하는 이야기가 갑갑하고 어렵다 하는 분들은 유지태의 목소리로 오디오가이드도 대여가 가능하다. 한 마디로 마무리하자면, ‘그래, 이게 바로 예술이 존재하는 이유지!’

 

 

전시기간 2015년 3월 23일 – 2015년 6월 28일   
장소 예술의전당 한가람미술관 (서울시 서초구 서초동 700)
요금
 성인 15,000, 청소년 10,000, 어린이 8,000
문의 http://www.markrothko.co.kr

 

* 더 깊게 로스코를 알고 싶은 독자들은 곧 올라올 예정인 연극 <Red레드>를 추천합니다!




 

김월

나의 글이 사람들에게 즐거움과 영감이 되길 바랍니다.
예술과 친근한 세상을 만들거예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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