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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미 있는 공회전을 위하여 - 안규철, 『모든 것이면서 아무것도 아닌 것』

15.05.15 0

- 『모든 것이면서 아무것도 아닌 것』 (위)과 작품 <모든 것이면서 아무것도 아닌 것> (아래)

 

 

 

All and but Nothing. 서점에서 좀처럼 소설/시 코너를 벗어나지 않는 나를 잡아 끄는 제목이었다. 참 시적(詩的)인 문장이라고 생각하며 두꺼운 책을 구매했다. 지난 겨울에 전시가 끝났기에 가보지 못했지만, 텍스트만으로도 실제로 오브제를 보는 듯한 느낌이다.

 

‘역설에 대한 질문’이라는 말이 붙은 그의 작업은 적어도 나에게는 성공적이었다. 예를 들면, ‘노력의 반복이 우리에게 주는 것은 어쩌면 모두 공회전일 뿐’이라는 그의 작품에서 허무함을 느낀 나는 반복해서 공회전에 대해 고민했다. 더불어 분명 노력이 주는 교훈이나 가치가 있을 것이라고 되뇌면서. 분명 그는 온점으로 글을 마무리 지었지만 읽고 난 후의 느낌은 물음표였다. 이 물음표들이 희망과 절망의 기로에서 헤매지 않기를 바라며, 특히 절망에 가까운 것이 아니기를 바라며 워크북을 열심히 뒤적거렸다. 이 또한 무(無)의미한 과정이, 결과적으로 실패가 될 수 있다는 점을 상기하며.

 


-<세 개의 분수> plastic baskets, electric motor & water & ceramic tiles & iron plates, 출처 : http://www.artmuseums.kr

 

 

전시 이전의 작업에서도 그랬듯, 안규철은 오브제가 전하는 메시지의 한계를 부정하지 않는다. 그는 언어를 오브제를 설명하는 ‘도구’로 사용하지 않는다. 안규철의 작업이 특별하게 느껴지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그는 텍스트와 오브제의 단순한 관계를 해체하고 활발한 대화가 가능하게 만든다. 덕분에 우리는 텍스트와 오브제를 번갈아 가며 둘의 의미를 밀접하게 연결시킬 수도, 광활하게 넓힐 수도 있다.

 

작품에 대한 이해 부족 탓에 종종 이해할 수 없는 작품을 맞닥뜨리곤 한다. 그런 작품을 마주할 때마다 길을 잃고 방황하는 어린아이가 된 기분이다. 하지만 그렇게 길을 잃었던 여느 전시와는 다르게 그의 작품을 보는 일은 마치 지도를 보고 찾아가는 여정 같았다. 그가 나에게 길을 잃지 말라고 ‘텍스트’라는 지도를 주었다. 안규철이 작품을 통해 전하는 메시지는 무척 복잡하고 어려웠지만, 그가 덧붙여 놓은 텍스트를 통해 작가가 빚어 넣은 의도를 찾아가는 일은 무척 흥미로웠다.  그는 텍스트와 오브제 간의 관계를 능숙하게 활용할 줄 아는 사람이었다. 그가 적절한 농도로 섞어놓은 텍스트는 오브제를 쉽게 이해하기 위한 지름길이 돼주었다.

 


-<두 벌의 스웨터> wool, hangers, dimensions variable.출처 : http://www.artmuseums.kr

 

 


-<완성되지 않는 건축> 

 

 


<모든 것이면서 아무것도 아닌 것>展에 관한 그의 글은 비교적 짧은 편이지만 오브제는 그 이상의 이야기들을 서술한다. 허황된 어딘가를 헛돌고 있는 듯한 그의 작품들 (A스웨터를 풀은 실로 B스웨터를 다시 짜는 <두 벌의 스웨터>와 한쪽 벽을 헐어서 다른 쪽 벽을 쌓는, 무한히 반복되는 노동과 영원히 완성되지 않는 <완성되지 않는 건축>등)을 감상하다 보면 꿈이나 희망에 대해 생각하지 않을 수 없다. 꿈과 희망에 완전함은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 어딘가 항상 결핍된 상태로 ‘더 나은 미래’의 주변을 맴도는 것이 일상이라는 것. 평소 삶에 대한 나의 생각이, 또 그 생각을 하고 있는 내 모습이 오브제 안에 담겨있는 느낌이었다.

 

- 안규철 인터뷰, 출처 : ARTMUSEUMS

 

 

 

우리의 일들은 왜 실패하는가.
목표에 이르지 못하고 물거품처럼 사라진 우리의 선한 의도와 그 일들에 바쳐진 시간들은 다 어디로 가는가.
그것은 나 자신을 향한 질문이고 우리의 한계에 대한 질문이다.
그것은 궁극적으로 우리의 일이, 우리가 무언가를 간절히 도모하는 것이
과연 의미가 있느냐는 질문이 될 것이다.

그러나 이 질문마저도 모든 것을 질문하면서
실은 아무것도 질문하지 않는 결과에 이를 수 있음을 잊어서는 안 된다
 

 

 

일의 결과가 제로가 되는 것, 헛수고, 공회전(空回轉), 목적을 이루는 데 실패하는 일을 작품으로 내보이며 우리가 ‘실패한 일’에 들인 노동과 시간을 적나라하게 드러낸다. 이렇듯, 안규철은 ‘실패’로 가는 과정에서 생기는 의문을 가감 없이 던진다. 의문은 현실과 본인이 충돌할 때 스스로에게 던지는 지극히 비극적인 (‘대체 왜 나에게 이런 일이!’와 같은) 감정이다. 그러나 깊은 고민을 통해 생긴 의문이 실은 ‘아무것도 질문하지 않는 상태’와 같을 수도 있다는 점, 즉 질문하기 전과 후가 별반 다를 게 없는 ‘무의미한 공회전’이 될지도 모른다는 것을 우리는 알아야 한다.

 

보이는 것과 보이지 않는 것의 관계를 질문함으로써 나는 우리의 삶을 지배하고 있는 기본적인 매커니즘을 다루고자 했다. 우리는 어떤 사건의 진실을 시각에 근거해서만 판단하는 세상에 살고 있다. 어떤 명백한 진실도 눈으로 볼 수 있는 증거나 증인이 없으면 입증되지 않는다. 바꿔 말하면 우리는 눈으로 볼 수 없는 진실을 인정하지 않는 세상에 살고 있다는 것이다. 이 작품들은 눈으로 볼 수 없는 진실이 있을 수 있음을 환기시키거나, 반대로 눈으로 볼 수 있어도 진실이 아닌 것이 존재함을 환기시킴으로써 우리 삶에서 결여된 무언가에 관해 말하고 있다. 과학의 힘으로 우리는 모든 것을 볼 수 있는 세상 속에서 살게 되었다. 그러나 인간이 이 세상에 볼 수 없는 것이란 없으며, 보이지 않는 것이란 곧 없는 것이라는 믿음은 분명 우리에게서 중요한 무언가를 박탈하고 있다.

 

눈에 보이는 것에 의존하는 미술계에 몸담고 있으면서도 그는 보이지 않는 것이 떠오르는 오브제를 만든다. 나아가 보이는 것에 허무함을 느끼게 하는 텍스트를 제공한다. 안규철이 작업에 이용하는 소재는 일상에서 흔히 볼 수 있는 물건이다. 작품이 된 오브제는 낯설기만 하다. 이렇듯 익숙한 존재가 상식적이지 않은 모습으로 재현되고, 예상치 못한 장소에 존재함으로써 작품을 접하는 독자들은 다채로운 의문을 갖는다. 아무것도 아닌 것이라고 생각했던 것들이 시계가 째깍대고 바퀴가 굴러가는 것처럼 꾸준히 존재해왔으며, 우리가 끊임없이 존재를 증명하고자 노력한 것들이 한 순간에 부질없음으로 귀결될 수 있다. 안규철은 자신의 작품을 ‘아무것도 아닌 것’과 ‘일상을 가득 채우고 있는 모든 것’이 가지는 경계를 흩뜨려 놓는다.

 


- 안규철, 출처 : http://www.artmuseums.kr/admin/?corea=video&no=156

 

 


미술가로서 살아온 그의 행적을 읽고 살피다 보니, 늘 ‘왜’라고 묻던 소설 <은교>의 시인 이적요가 떠올랐다. ‘이루어 질 수 없는 사랑’이라는 비극에 대해 ‘왜’라고 묻던 이적요, 반복되는 공회전과 실패에 대해 그 ‘근원’을 고민하던 안규철. 끊임없이 사색하는 그 둘의 모습은 묘하게 닮아있다. 물론 그가 시적(詩的)인 사람이라고 느낀 건 나뿐만이 아니었다. 평론가 이건수는 안규철을 ‘조각의 현실 속에서 산문적 사물의 언어를 시적 정신의 언어로 바꾸어 준 작가’라고 설명한다. 그가 예로 들었던 ‘시인은 자신의 사고를 대상으로서 제시, 즉 사고가 대상의 모습을 띠도록 해야 한다’는 프랑시스 퐁쥬의 말은 언어적 성격을 띠는 안규철의 작업을 잘 드러내고 있다.

 

그는 스스로를 미술과 비(非)미술의 경계를 배회하는 ‘회색분자’라고 칭한다. 오브제와 텍스트 사이에서 끊임없이 대화하고 일상과 무의미의 경계를 해체했다는 점에서 자신을 흰 곳도 아니고 검은 곳도 아닌, 그 어중간한 어디쯤이라고 표현한 것은 고개를 끄덕이게 만든다. 이처럼 ‘우리의 일들은 왜 실패하는가’는 질문을 통해 그가 전하고 싶은 메시지 또한 각자 겪은 실패에 따라 다른 색을 띠고 있을 것이다.

 

끊임없는 도전과 모험을 단순히 실패한 채로 결론짓는다면 우리는 아무 의미 없는 존재가 될 수 있다. 도전했던 일이 결국 실패로 끝나 ‘의미 없는 과정’이 될지라도, 우리 모두 더 나은 내일을 위한 실패를 ‘계속 반복’할 것이다.

 

 

 

정미 (Jeongmee)

일상 속의 작은 것들을 놓치지 않는, 큰 손을 가진 작가를 꿈꿉니다.
정(情)과 미(美)를 찾아 정미(精微)하게 그려내는 글쓰기를 희망합니다.
instagram,com/leejeongmeee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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