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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씨에서 목소리가 들리는 그날까지 – 캘리그라퍼 다자란 소년

13.11.12 2

누구나 부러워할 만한 광고대행사 아트디렉터에서 캘리그라퍼로 전업한 '다자란 소년' 신동욱 작가. '어짜피 밤 샐 거  좋아하는 일로 밤 새자'라는 생각으로 시작한 그의 작업들은 어느새 광고, 영화 등 다양한 곳에서 심심치 않게 발견할 수 있다. 소년의 감성을 간직하며 글씨에서 목소리가 들리는 그날까지 정진하겠다는 그의 이야기를 듣기 위해 대학로의 작업실로 찾아갔다. 


간단한 소개를 부탁한다.

안녕하세요. 캘리그라피 작가 다자란 소년 입니다.

작가명 '다자란 소년'의 의미가 궁금하다.

글씨를 쓴다는 것, 사진을 찍는 다는 것 모두 감성을 담아내는 작업이기 때문에 비록 아저씨이긴 하지만 마음만은 소년으로 살자 라는 의미로 지었습니다. 실제로 좀 철없기도 하구요. (웃음)

 

캘리그라피를 시작하게 된 계기

광고 회사에서 아트디렉터를 하다가 전업 작가의 길을 택했어요. 처음 다녔던 광고회사에 캘리그라피를 하는 굉장히 감각적인 이사님이 계셨는데 어느 날 회사에서 비쥬얼 작업이 너무 안 풀려 다들 고민하던 중에 그분께서 글씨를 직접 써서 넣어보았죠. 그랬더니 심심했던 디자인이 완성되더라구요. 정말 멋있었어요. 그때 처음으로 ‘아 글씨의 힘이 생각보다 강하구나’라고 몸소 느끼고 더 열심히 공부하기 시작했어요. 어떻게든 제 글씨를 회사 프로젝트 시안에 넣어보려고 애쓰기도 하고 (웃음). 그러다 독학하는데 한계를 느껴서 강병인 선생님을 찾아 뵙고 직접 배우면서 글씨라는 것이 알면 알수록 해야 할 것이 많다는 걸 알았죠.

- 광고 일을 했던 것이 현재 활동에도 큰 도움이 되고 있다는 다자란소년 작가

그렇게 일과 글씨를 병행하다보니 점점 광고에 대해 회의감이 들더라구요. 그때는 점심 시간에 식사도 안하고 글씨 쓰고 철야 작업 중 다들 쉬는 시간에도 몰래 빈 회의실 가서 글씨 쓰고 그랬거든요. 그런 제 모습을 마주하니 ‘아 어차피 어차피 밤 샐 거 내 거 해보며 새보자’ 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적은 나이도 아니니 지금이라도 열정을 불살라보자 했던 거죠.

그래도 광고 일을 했었던 것이 작가 활동을 하면서도 강점이 되는 것 같아요. 비주얼 작업을 맡아서 했었기 때문에 광고 관련 의뢰를 받으면 전체적인 감을 잡는 것이 조금 더 수월하거든요.

 


클라이언트 작업과 개인 작업의 다른 점

광고 일을 할 때나 지금이나 클라이언트 작업을 주로 하니까 ‘컨펌’에 익숙해져 버렸어요. 일러스트레이터로 활동하는 후배와 얼마 전에 우스개 소리로 얘기를 나누었는데.. 개인 작업을 할 때도 왠지 컨펌을 받아야 할 것 같은 거에요(웃음).

클라이언트 일을 할 때는 가이드 라인이 있으니까 빨리 끝내고 내 마음대로 개인 작업 하고 싶어지는데 막상 개인 작업에서 엄청 다른 것을 하지는 않아요. 클라이언트 작업을 할 때는 조금 더 깔끔하게 하려고 하고 개인 작업에서는 다양한 붓 터치를 실험해보는 정도? 때로는 감동적인, 때로는 재미있는 글씨로 보는 사람들에게 마음의 평온을 주는 작업을 하고 싶은데 그런 메시지를 생각하는 것이 어려운 것 같아요.

- 한화그룹 인쇄광고 작업

- 개인 작업 ‘오늘 같은 날에는'



글씨를 쓴다는 것에 있어서 생각해야 할 점은 무엇일까?

요즘에 캘리그라피에 관심 있는 사람들이 많아진 것을 느껴요. 블로그나 페이스북 등 SNS에 작업을 올리시는 분들을 자주 보게 되거든요. 그런데 단지 ‘잘 쓴’, ‘멋있는’, ‘귀여운’ 자신의 필체를 그대로 쓰거나 혹은 조금만 바꿔 쓰는 것을 캘리그라피로 아는 분들이 많아요. 저도 깊게 공부하기 전에는 그랬는데 사실 그건 자신의 손글씨일 뿐이에요. 그런 손글씨 마저 유행하는 스타일을 따라 써서 변별력도 없어 보여요.

캘리그라피의 뜻이 ‘아름다운 글씨’ 지만 단지 아름다운 것에 그치지 않고 특정한 컨셉을 어떻게 글씨에 담아내느냐가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멋있게 쓰는 것이 다가 아니라는 거죠. 별도의 설명 없이도 글씨 자체에서 카피의 톤, 목소리가 들리는 것처럼 작가의 의도를 녹여내는 것이 한 발짝 더 발전한 캘리그라피라고 생각해요.

- 작가의 다짐. '글씨에서 목소리가 들리는 그날까지...'



자신의 필체가 아니라 새로운 것을 만들어 내려면 상당히 힘들겠다.

아무래도 그렇죠. 자음과 모음 한 획 한 획 잘 어울리게 써내야 하니까요. 물론 편하게 자신의 원래 필체를 사용하는 일도 있어요. 하지만 작업의 처음부터 끝까지 생각해야 하는 일이라면 컨셉을 어떻게 담아낼지 등 많은 고민이 필요해요. 그냥 쓰는 것이 아니라 조형성 등 이론적인 것들을 토대로 써나가는 것이죠.



특이하게 포토샵 서적도 쓰셨다. 특히 문방육우라는 말이 인상적이더라.

문방육우(文房六友)는 문방사우(文房四友)에서 스캐너와 포토샵을 추가한 말이에요. 글씨를 하나하나 크게 쓰고 포토샵으로 붙이기도 하는 등 활용해야 할 때가 굉장히 많거든요. 글씨 쓰는 사람들이 농담처럼 하는 말이죠(웃음). 

- 디지털 스캔을 위해 잘라놓은 글씨들, 스캔된 글씨들은 적당한 크기로 리사이징된다.



강의도 하시고 커피, 사진, 글쓰기 등 다방면에 관심이 많으신 것 같다. 

다 좋아서 하는 일인데요. 그것들이 따로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작업에 모두 연결되어 있다고 생각해요. 사진을 찍을 때도 글 쓰는 것을 생각하며 찍거든요. 그리고 글씨를 쓸 때 다른 사람의 글을 옮기는 것 보단 직접 글을 쓰는 것이 더 의미 있다고 생각해요. 그러고 보니 글을 쓰는 걸 좋아하는 것도 광고계에서 일할 때 카피를 썼던 경험에서 영향을 받은 것 같네요.

카메라도 20D부터 시작해서 5DMarkII까지 쓰다가 최근에 다 정리했어요. 언제 뭐가 나올지 모르니 출퇴근길에 항상 챙겨 다녔는데 너무 무거워서 점점 잘 안 들고 다니게 되더라구요. 예전에는 사진의 화질 등 세세한 부분을 많이 신경 썼는데 결국 다 부질없고 담아내는 장면이 가장 중요하다는 생각이 들기도 했고... 그래서 요즘에는 필름카메라만 들고 다녀요. 언젠가는 사진과 글을 책에 담아 짧게나마 에세이를 만들어보고 싶네요.

- 작업실 한 구석에 진열되어있는 카메라들

 

- 사진, 글, 캘리그라피를 함께 작업한 '일탈'



활동하시는 분야마다 특징적으로 잡는 컨셉, 특히 고심하시는 부분이 다를 것 같다. 작품을 끌어내는 과정이 궁금하다.

클라이언트 작업을 할 때는 카피만 받는 것이 아니라 최대한 이미지 시안 등 전체적인 느낌을 함께 가져갈 수 있는 자료도 받으려고 해요. 이미지 시안이 아직 정해지지 않았을 때도 최대한 많은 커뮤니케이션을 통해 오류를 줄이려고 하고요. 분야마다 따로 가져가는 특정한 것은 없지만 작업에 사용할 재료, 느낌 등은 글 내용이 어떠냐에 따라 바뀌는 것 같아요. 영화 ‘감시자들’과 얼마 전부터 집행되고 있는 ‘롯데리아’ 작업을 보면 분야는 다르지만 가져가는 느낌은 비슷하다고 할 수 있어요.

 

 

- 롯데리아 와일드쉬림프버거, 영화 <감시자들> 작업



광고 모델로 데뷔한 것을 보았다. 굉장히 멋있게 나왔더라.

베가 아이언과 아트 콜라보레이션 개념으로 원래 각인 서비스를 진행한 적이 있어요. 홈페이지에서만 사용한다고 해서 간단하게 사진 한 장 찍는 줄 알았는데 배너광고에까지 나왔더라구요. 덕분에 지인들에게 사진발이 너무 심하다고 연락 많이 받았죠(웃음).

- 직접 모델로 등장한 베가 아이언 시그니처 갤러리 온라인 광고

- 작가의 캘리그라피가 각인된 베가 아이언



다자란 소년만의 특징, 개성은 무엇인가

저는 전통서예를 전공한 사람은 아니지만, 그래서 오히려 더 전통 서법(붓을 운용하는)을 중시하는 것 같아요. 메시지를 글씨 안에 담는 것도 중요하지만 붓을 잘 사용하여 좋은 획을 만들어야 한다는 생각이 강해요. 그래서 대충 혹은 편하게 쓰려고 하지 않고 최대한 필법에 맞게 쓰려고 합니다. 아무도 알아주지는 않겠지만 조금 더 좋은 획을 만들기 위해 세세한 부분에 신경을 많이 써요. 그러고 보니 제 글씨 스타일에 관하여 얼마 전 수강생 분들께 들은 이야기가 생각나네요. 남자 글씨도, 여자 글씨도 아닌 조금 묘하면서 생동감 있는 글씨라는 이야기를 종종 들어요. 디자인을 했었기 때문에 글씨를 쓰는데 있어서의 레이아웃도 조금 더 디자인스럽게 작업하기 때문에 그런 것 같아요.

- 그는 좋은 획을 만들기위해 전통 서법을 중시한다고 한다.

 

강의에 대하여, 그리고 캘리그라피 공부에 대하여.

배우러 오시는 분들 중에는 직접 일로써 해보고자 하시는 분들도 계시고 취미로 배우시는 분들도 계세요. 제 생각에는 어떤 목적이든 사람들이 점점 더 ‘감성적’인 것에 끌려서 배우고자 하시는 분들이 많아지는 것 같아요.

캘리그라피는 기본적으로 전통서예도 공부해야 하고 획과 붓을 다루는 방법, 한글에 대한 깊은 이해가 필요해요. 그리고 감정에 치우쳐 글씨를 왜곡하거나 가독성을 해치는 것을 조심해야 합니다. 서예와 캘리그라피 모두 미적인 작업이지만 특히 캘리그라피는 디자인적인 감각을 끊임없이 쌓아야 한다고 생각해요.



말씀 들어보니 다자란 소년의 강의는 왠지 쉽지 않을 것 같다.

실제로 제 강의를 수강하시는 분들이 약간? 처음에는 힘들어하세요(웃음). 쉽고 재미있게 멋있는 글씨를 쓰고 싶어서 오시는 분들이 많은데 생전 처음 듣는 용어들이 나오니까.. 이게 뭐지? 라는 느낌을 받으시나 봐요. 저는 그렇게 멋지게 쓰는 방법은 가르치지 않거든요. 그런 걸 배울 단계도 아니고. 기본기에 대한 주입을 많이 해요. 그래도 시간이 지나면 수강하시는 분들께서도 잘 배웠다고 말씀해주세요.



잘 쓴 글씨란 무엇인가?

예전에는 말 그대로 아름답고 화려한 글씨가 잘 쓴 글씨라고 생각했어요. 누가 봐도 그 사람만이 쓸 수 있는 흉내 낼 수 없는 그런 글씨요. 그 생각도 맞지만 조금 더 지나고 보니 뭐랄까.. 정말 진심이 담겨서 보는 사람이 그것을 느낄 수 있는 글씨가 있더라구요. 엄청난 획이 있는 것도 아니고 예쁘거나 멋을 부린 것도 아닌데 그저 단순하고 소박한 글씨에서 그런 느낌을 받는 경우가 있어요. 그렇게 쓰기는 정말 힘들죠. 예를 들면 웰컴 투 동막골의 글씨를 보면 화려하기보다 동막골의 느낌을 정말 잘 표현하고 있거든요. ‘ㄹ’을 거꾸로 써서 여일(강혜정 분)의 상태를 나타낸 것 같기도 하고 ‘ㅁ’을 크게 써서 동막골의 모습을 보여준 것 같기도 하고. 그런게 참 대단한 것 같아요. 물론 기본을 잘 익혀서 앞에 말씀 드린 ‘잘 쓴’ 글씨를 먼저 습득해야 가능한 일이죠.

- 영화 <웰컴투 동막골> 포스터. (출처 : 네이버 영화)



아까 말씀하신 글씨에서 목소리가 들리는 그날까지.. 라는 다짐이 인상적이다.
작가에게 ‘정진’한다라는 것은 어떤 의미인가

다른 분야도 비슷하겠지만 글씨라는 것이 끝이 없는 것 같아요. 공부할 것도 정말 많아서 내가 다 섭렵하겠다! 라는 마음을 먹을 엄두도 못 낼 정도에요. 평생을 해도 모자라죠. 어쨌거나 힘이 있을 때까지는 계속 공부하려구요. 글씨 역시 유행이 있기 때문에 계속해서 다양하게 발전시키는 것, 글씨를 통해 할 수 있는 또 다른 일들을 만들어내는 것도 다 정진하는 과정이라고 생각해요.

- 전시작 '누구를 위하여 종은 울리나', 무쇠에 레이저컷팅, 부식처리 후 종에 매달아 고재(200년 된 쌀뒤주 칸막이)에 부착



캘리그라피와 글씨에 관심 있는 분들에게 조언의 말씀

실수의 과정을 겪어본 경험을 토대로 말씀 드리자면. 얕게, 겉핥기로 흉내만 낸다면 나중에 더 힘들어 집니다. 깊은 분석을 통해 기본기부터 탄탄히 공부하시길 추천합니다. 좋은 글씨를 많이 보고, 많이 써보면 자연스럽게 몸에 배어들어 캘리그라피를 바라보는 눈을 높일 수 있습니다. 그리고 독학은 어느 순간부터 한계에 부딪히기 때문에 좋은 선생님을 만나는 것도 중요하구요.

 



목표, 꿈

글씨를 통해 사람들과 소통하고 싶어요. 제 글과 글씨 그리고 사진을 통해 그것을 보는 분들과 다양한 감정의 교류를 할 수 있는 작품을 많이 만들고 싶습니다. 그렇게 좋은 작품을 많이 만들어 해외(특히 유럽)에서 한글의 아름다움을 알릴 수 있는 전시도 하고 싶어요.



독자들에게 한 말씀

예전보다는 나아졌지만 아직은 캘리그라피라는 분야에 대해 생소하게 느끼는 분들이 많은 것 같습니다. 알고 보시면 재미있는 분야랍니다. 주변에서 볼 수 있는 캘리그라피들에 많은 관심 부탁 드립니다. 그 글씨를 쓰기 위해 노력하는 사람들의 마음도 알아주시면 좋겠습니다.

 

다자란 소년
http://adismind.blog.m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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