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ome  /  Column  /  김포포

우리가 사랑해야만 했던 도시 - 변하지 않는 것은 없다, 상수동

13.11.26 0

 

변하지 않는 것은 없다, 상수동


언제나 외출이라는 단어를 떠올리며 잔뜩 설레곤 한다. 일이나 학업을 위해 세상 밖으로 떠밀려 나가는 외출이라 하더라도, ‘일상의 장소(집)를 벗어날 것이다.’ ‘어디에 들려 무엇을 하고, 누구를 만나야지.’ 같은 상상은 기분을 좋게 만든다. 우리의 외출에는 언제나 출발지와 목적지, 그리고 경유지가 정해진다. 아침에 회사로 출근을 하더라도 오늘은 정시에 퇴근할 것을 확신하는 순간, 이른 저녁 무렵부터 나에게 주어진 이 금 같은 시간을 어떻게 보내면 좋을까 하고 설레는 것이다. 이런 경우 회사라는 목적지에 작별을 고하고 우리의 하루는 온통 저녁이라는 경유지로 달려가는 것이다. 여름이 여물어가는 어느 8월에 나는 합정역에서 6호선으로 환승하기 위해 천천히 발걸음을 옮겼다. 이것은 변화에 관한 작은 깨달음과, 내가 사랑하길 마다하지 않았던 상수동에 대한 이야기다.

 

2013.09 상수동, 첼로켜는 남자 (사진 : 김포포)



몇 해 전인가 홀로 시간을 보내는 사람이 불행해진다는 주장에 관한 글을 읽은 적이 있는데, 그런 것에 무심하다 싶을 정도로 나는 혼자 많은 일들을 한다. 나는 많이 걷고, 많이 앉아 있는 것을 좋아하는 사람인데. 그런 면에서 걸을 곳도, 시간을 보낼 찻집도 많은 상수동은 적합한 장소였다. 작년 겨울에는 당인리 발전소 굴뚝에서 끝도 없이 피어오르는 연기를 보는데 많은 시간을 쏟기도 했고, 첫 사랑과의 연애가 끝난 후 몰아닥친 심정의 소용돌이를 견디기 위해 모색했던 곳도 상수동이었다. 이 사적인 이야기의 타래를 조금 더 풀어본다면, 상수동은 내 첫 사랑의 중앙무대였다. 누구에게나 첫 사랑에 대한 기억이 있다. 그것들을 불러오는 매개체 또한, 있다. 나의 경우에도 다양한 매개체들이 있겠으나, 연애의 끝에 쫓겨난 조연배우처럼 내 몫의 추억을 짐 가방에 챙겨 거리로 나오게 되었던 것이다. 심정의 소용돌이 속에 마음이 온통 흔들리던 날들 속에서, 상수동은 태풍의 눈처럼 고요하고 어딘지 외롭기만 했었다. 이 곳 마음의 보루에서 얼마나 많은 상실의 탄환들을 받아낼 수 있었는지 대단하기만 했다. 내 개인의 역사에 기록 되어진 상수동의 거리들과 몇몇의 가게, 그리고 모든 시간마저 막연히 이곳에 머물러있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이곳이 변할 것 이라고 생각하지 못했다.

BLADE 카페 앞의 공사장이 더욱 시끄러워졌다. 녹색광선은 사라져버렸고, 빵집 LEVAIN은 이질감이 느껴질 만큼(가게이름 빼고는) 모두 바뀌어 버렸다. 물론 빵 맛 까지도. ‘맙소사 모든 게 바뀌어 버렸잖아.’ 라며 실망감을 감추지 못하고 걷고 있던 나는, 사진 속의 남자가 짓는 표정을 들여다보게 되었다. 드문드문 벽이나 전신주에 붙어있던 포스터. 초연하고 분명하기까지 한 그 표정에서 나는‘나의 행복을 위해서 나는 연주합니다, 삶도 또한 그렇지요. 같은 노랫말이 들리는 듯 했다. 변치 않으리라 믿었던 것들이 변한 것을 보며 허탈해하는 나에게‘그것 또한 자연스러운 일이라네.’하면서 조롱하는 것 같았다. “나쁜 할아범! 남의 일 이라고.” 라고 화가 난지 채 10분도 지나지 않아, 내가 잘못되었다는 것을 인정했다. 따지고 보면 내가 서 있는 이 상수동 거리에서 변하지 않은 것은 나 혼자 뿐이라는 것을. 이것은 어리광이었다. ‘모든 건 변해.’ 라는 말은 냉정하지만 맞는 말이다. 그렇지만 “많은 것들이 변하지 않았으면 좋겠어.” 같은 나의 바람도, 또는 많은 사람들의 개인적인 바람도 또한 이해해 줘야할 솔직한 인간상이기 때문에, 나는 변하지 않는 장소를, 그리고 나다운 장소를 사랑하지 않을 수 없다. 많이 걷고, 많이 생각하고, 많은 시간을 보낼 수 있다. 그리고 쉽게 변하지 않는다. 이것은 나를 설명하는 이야기이기도 하지만, 분명히 상수동에 대한 예찬이다. 나는 내가 사랑하는 모든 것들이 변하지 않을 수 없다면, 조금은 천천히. 천천히 변한다면 좋겠다고 늘 생각했다. 내가 외출의 전야부터 손가락을 접으며 고민하는, 내가 사랑하는 장소들, 내가 사랑하는 사람도 또한. 부디 아주 천천히 변해가기를.

 

김포포

일종의 미술치료로 시작했던 사진이, 지금은 나의 전공이 되어버렸다.
소중한 것들을 기록하는 일이 좋다.
언젠가 내 이름으로 된 책을 가지고 싶단 꿈이 있고, 심야 라디오를 좋아한다.

0 Comment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