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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은 국가에서 자유로울 수 있는가?, 백현주 작가 <낭패 (狼狽)>

17.03.17 0

<함께 부르는 노래> 백현주

대한민국에 태어나 국민으로 산다는 건 어떤 의미일까? 국가와 나의 관계란, 보이지 않는 혈연관계와 같다. 평소에는 별로 상관이 없지만, 어느 순간에는 돌연 나의 정체성이 모두 국가에 의해서 만들어졌다는 것을 깨닫기 때문이다. 내가 먹는 것, 내가 생각하는 것, 내가 느끼는 모든 것들이 실은 국가의 영향아래 있다는 것을 우리는 알고 있다. 그렇기에 지금 이 순간, 내가 가진 선입견이 누구에 의해 형성된 것인지 항상 고민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아무런 의심 없이 모든 것이 진실이라고 생각하며 살아가기 때문이다.

 

사저 앞 지지자 900명 집결 … 박근혜, 눈물 글썽인 채 미소, 출처: 중앙일보

 

최근, 우리나라에서 새로운 세계에 대한 갈망이 표출된 사건이 있었다. 바로 대통령의 탄핵이다. 촛불집회가 시작됐던 지난 11월, 집회와 관련된 글을 쓰기도 했는데 그때 시작된 촛불집회가 해가 바뀌고 달이 세 번 바뀔 때까지 이어졌다. 이는 국가가 국민이 모여서 형성된다는 것을 스스로 증명한 일이다. 그러나 같은 시각, 시청에는 ‘태극기’를 들고 사람들을 선동하는 무리가 집회를 열었다. 이유는 대통령을 지켜야 한다고, 우리의 대통령을 지켜야 한다고 말이다. 그들은 탄핵 후에도 박근혜씨 사저 근처에서 계속 그녀를 보호하고 있다. 그리고 박근혜씨는 탄핵이 되어 자택으로 돌아가면서도 “진실을 밝히겠다”라고 말하며 미소를 지었다. 순식간에 태극기를 우습게 만드는 그들의 모습과 대한민국을 우습게 만든 그녀에게 미안함과 수치심이라고는 찾아볼 수가 없었다. 과연 무엇이 이 나라를 이렇게 만들었을까?

 

네이버 화면

 

신문에서만 보던 ‘빠른 경제성장으로 인해 나타난 국가의 잘못된 모습’은 여전히 우리 곳곳에 숨쉬고 있다. 젊은 층을 위주로 그 분위기가 바뀌어 나가고 있다고는 하지만, 아직도 우리는 과거의 잘못을 답습하고 있다. 경쟁주의와 물질만능주의, 결과주의 등 아직도 전 지구적인 목표와는 다른 믿음을 계속 신봉하며 나아가고 있기 때문이다. 물론 이러한 요소들이 세상을 살기 위한 발판을 마련하기는 한다. 그러나 발판만 마련하고 그쳤어야만 할 여러 가지 악습들이 그대로 남아 대한민국을 우습게 만드는 건 아닐까.

하지만 정작 사회를 비판하고 있는 나 역시 이 나라가 중요하게 여기는 가치들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 나 또한 경쟁하고, 이기적이며 결과를 중시하고, 물질이 만능이라고 생각하는 때가 많기 때문이다. 아무리 홀로 바른 생각을 한다고 하더라도 대한민국의 국민이기 때문에, 어릴 때부터 체득한 국가의 사상은 모두 내게 흡수되어 있다. ‘대한민국’이라는 국가적인 요소가 몸과 정신을 가득 채운 것이다.

 


요즘 발생하는 여러가지 일을 통해, 개인과 사회의 관계에 대해 생각해 봤다. 현재 아라리오갤러리에서 전시 중인 백현주 작가의 전시는 꼭 한번 생각해봐야 할 이야기다. 작가는 앞다리 두 개와 뒷다리 두 개만 있는 낭(狼)과 패(狽)라는 이리들이 서로 공생하며 지내는 이야기를 소재로 작업한다. 그러면서 개인과 개인이 어떻게 이어지는지, 개인과 사회는 어떤 이음새를 갖추게 되는지 작품을 통해 풀어낸다. 결국 작가는 개인과 사회가 연결되어있고, 서로는 서로의 영향을 받아 이어진다는 것을 말하고자 함이다.

앞다리 두개와 뒷다리 두개가 이어져 '낭패(狼狽)'라는 온전한 이리가 되듯 개인은 사회를 구성하는 사람들이며 또한 그 사람들은 사회에 영향을 받을 수 밖에 없는 상황이 오는 것이다.

 

<primary party> 백현주, 출처: 머니투데이 


장난을 치던 어린이들이 일제히 기립한다. 웃고 떠들다가도 정색한 채 경례를 한다. 초등학생들의 조회 모습을 주제로 제작한 영상 작품이다. 현대 미술가 백현주 작가(33·여)의 영상 작품 ‘프라이머리 파티’(primary party) 얘기다.

"사람이 (사회로부터) 주입을 받아 나타나는 행동 양식에 주목했어요. 어린 아이들이 너무나 자연스런 몸짓으로 같은 행동을 하는 상황에 대해 생각해 보자는 작품입니다." 보이지 않는 힘의 통제를 받는 개인의 모습을 부각한 장치로도 읽힌다. 그는 이같이 개인이 모여 한 학교의 학생이나 지역민 등 ‘우리’라는 정체성을 갖게 되는 과정에 주목한 작품을 선보여 왔다.

 

이 영상을 보면 우리가 초, 중, 고등학교를 다니면서 경험했던 ‘조회’시간의 아이들을 볼 수 있다. 아이들은 장난치다가도, 국기를 향한 경례를 할 때는 근엄한 표정으로 국기를 바라본다. 아마 국기에 대한 경례가 무슨 의미인지를 알고 있는 아이는 드물었을 것이다. 그러나 나 역시 어릴 때는 아무 생각 없이 하던 국기에 대한 경례가, 점차 ‘나는 잘 자라고 있다’, ‘어른이 되어가고 있으니 학교와 국가가 원하는 것을 최선을 다해 해야지’라고 생각했던 것 같다. 그래서 나 스스로 사회에 적합한 사람이 되어가고 있음을 증명하는 시간 같기도 했다. 그러나 이 역시, 사회가 원하는 것을 습득해나간 나의 모습이다. 피하고 싶어도 피할 수 없었던, 마치 미세먼지와도 같은 ‘국가’에 대한 경례를 했던 것이다.

 

<낭패(狼狽)> 백현주 

 

전시 동안 만들어지고 있는 작품 사진

 

이번 전시에 소개된 작업 중 설치물 <낭패(狼狽)>는 첫날 작가에 의해서 부서진 후 관객들이 전시 마지막 날까지 차례로 다시 조립하는 작품이다. 어떤 힘에 의해서 부서진 작품은 관객들에 의해서, 관객들이 의도한 대로 다시 한 번 만들어진다. 그리고 그것은 처음에 설치한 것과는 전혀 다른 모습으로 나타난다. 이러한 작업은 아마도 각자가 만드는 다양함이 하나가 되어 서로의 앞다리와 뒷다리 돼 새로운 세계를 만든다는 걸 보여준 게 아닐까.

 

<낭패> 건물 외벽 작품, 모든 사진 출처: 직접 촬영

 

3월 10일, 숨을 죽이며 탄핵방송을 본 사람들이 많아서였을까, 네이버에서 제공했던 언론사별 실시간 페이지는 오전 11시가 되며 먹통이 됐다. 그리고 탄핵이 발표되는 순간부터 사람들의 목소리가 커졌다. 다들 들뜬 기분으로, 오늘은 대한민국이 좋다고 이야기했다. 그때야말로 온전한 ‘낭’과 ‘패’가 이어진 느낌이었다. 아직 해야 할 게 많은 사회지만, 국민들은 진심으로 옳은 것을 위한 싸움을 알게 됐을 것이다. 또한, 계속 '루저'로만 남을 수 밖에 없다고 생각했던 사람들의 생각을 바꾸는 계기가 됐을 것이다. 그리고 지금까지 이미 세 명의 목숨이 하늘로 올라갔다. 왜곡된 이념을 위한 복종은 이토록 무섭다. 그렇기에 더욱 옳은 것과 그른 것에 대한 분간과 깨끗하고 명확한 시선이 필요하다.

물론 시간이 흐르면 개인은 자신의 이야기도 온전히 기억하지 못하기에 사회 또한 지금을 잊을 수도 있다. 그러나 또 어떤 일이 생기더라도 2016년-2017년 체감한 이 성공을 잊지 않고 불의에 맞설 것이라 생각한다. 작은 성공의 경험은 이어지는 법이니까 말이다.


전시명
wolf and wolf
전시기간 2017년 2월 9일 – 2017년 3월 26일    
장소 아라리오 갤러리 서울 (서울특별시 종로구 북촌로5길 84 소격동 C Gallery) 
문의 아라리오 갤러리

십사

안녕하세요, 십사입니다.
미술, 만화영화, 춤, 피천득님, 법정스님을 좋아합니다.
살아있음을 기쁘게 여기며, 지혜롭고 성실하게 살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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