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ome  /  Column

상처를 치유하는 방법

17.04.17 1

Tear drops for New York, Dalton M. Ghetti, 출처: designoftheworld

 

911 테러가 일어난 다음날, 눈물 조각을 만들기로 결심했어요. 그날 꽤 울었거든요. 그 건물을 해변에서 바라보고 있었어요. 희생자 한 명에 하나의 눈물, 제 평생 못 끝낼 거라고 생각했어요.

잿빛의 동그란 눈물 방울. 예술가 달튼 게티는 911테러 희생자를 추모하며 연필심을 깎고 또 깎았다. 한눈에도 눈물을 상징을 상징하는 이 작업은 직관적으로 내면의 슬픔을 담고 있다. 하나의 연필심을 깎는 동안 희생자 한 명의 일생을 기리며 자신만의 추모식을 행한 것이다.

흔히 우리는, 감기에 걸리면 병원에 가듯 마음이 아픈 때엔 그 상처를 치료하는 의사를 만나라고 한다. 이제는 정신과나 심리상담센터를 방문하는 일이 사람들의 눈총을 받는 일이 아니라고 강조하면서, 마음의 상처가 있다면 꼭 치료를 받을 것을 권한다. 개인적으로 이런 절차가 당연 옳은 것이라 생각했고, 때문에 ‘정신과 방문이나 심리상담, 심리치료 받는 것을 부끄러워하지 마세요!’라는 사회적인 흐름이 반갑기도 했다.

 

팽목항에서 위기심리상담부스, 출처: 당당뉴스


하지만 정혜신 박사의 강의를 듣고부터는 과연 이러한 절차와 사회적인 흐름이 옳은가에 대한 의구심이 들기 시작했다. 이미 알려졌다시피, 세월호 사고가 발생한 뒤 사람들이 가장 우려했던 부분은 피해유가족들에 대한 심리적인 지원이었다. 때문에 팽목항에 많은 부스가 설치됐고, 트라우마를 치료하는 분야의 손꼽히는 전문가들이 유가족들의 방문을 기다렸다. 하지만 몇 날 며칠이 지나도 부스는 텅텅 비어있었다.(관련기사: ‘상담하러 오세요’라면 누가 오겠나)

 

이러한 현상은 전문가들이 그간 습득한 이론적인 지식과는 다른 흐름이었다. 때문에 이번에는 되레 전문가들이 발벗고 나서 유가족들을 찾았으나, 이들을 반기는 사람은 없었다. 자식을 잃은 사람에게 지금 당장 중요한 건 ‘내 자식을 잃었다’는 사실뿐, 그 상처를 치유해야겠다는 인지적인 단계까지는 감히 이를 수 없던 것이다.

 

뜨개질을 배우는 영석 아빠 오병환씨, 출처: 오마이뉴스

 

그리고 엄마들은 뜨개질을 하기 시작했다. 상처를 치유하는 방법 중의 하나로, 달튼 게티가 연필심을 깎아 911테러 희생자를 기렸듯, 수없이 무언가를 반복하는 행위로 아픔을 잊고자 한 것이다. 엄마들은 모여 앉아 서로의 아픈 마음을 달랬고, 그렇게 서로를 다독이며 실을 뜨는 순간만큼은 슬픔에 빠지지 않으려 했다. 하지만 그 뜨개질이 어찌나 필사적이었던지 실 값으로 수천 만원이 필요했고, 그렇게 필사적으로 완성된 작품들은 올 2월 서울시청에 전시를 올렸다.


<그림움을 만지다>展 전경, 출처:세월호, 뜨게질하는 엄마들

 

물론, 이러한 시도가 치유의 일환이 될 수 있었던 건, 뜨개질모임이 같은 아픔을 지닌 사람들로 구성된 ‘자조그룹’이었다는 점과 ‘단순반복’이라는 뜨개질의 특성이 결합했다는 이론적인 이유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단순히 뜨개질을 했기 때문이라기보다 실 한 올 한 올을 뜨며 자신의 슬픔을 가시적인 행위로 전환하고, 그렇게 완성된 작품이 눈에 보기에도 좋은 결과물이 되어 (역으로) 자신을 위로했기 때문은 아닐까. 아무리 생각해도 내면의 상처가 실을 뜨는 단순반복행위를 통해 긍정적인 결과로 치환될 수 있다는 사실이 놀랍다. 모든 예술은 슬픔에서 비롯된다는 어느 예술가의 말이 떠오르면서, 다행히도 그 예술을 통해 상처받은 이가 위로 받을 수 있다는 사실에 예술의 역할을 반추해본다. 그도 그럴게, 처음에는 어둡기만 했던 실의 색깔이 점차 밝은 색을 띄며 알록달록해졌기 때문이다.

 

전시물 중 <기도하는 마루>는 지름 4m짜리 한 개와 지름 2m짜리 두 개로 된 대형 마루로아이들이 잘 있기를 바라는 기도와 염원을 담았다, 출처: 세월호, 뜨게질하신 엄마들

 

연인과의 이별, 가족 혹은 반려동물의 죽음 등, 살면서 우리는 가슴 아픈 이별을 겪곤 한다. 물론, 슬픔을 치유하는 가장 효과적인 방법은 아픔에서 벗어나고자 하는 ‘개인의 의지’다. 아무리 뜨개질을 하고 심리상담을 받는다 하더라도 스스로 극복하고자 하는 의지가 없다면, 우리는 계속 상처받은 그 때에 계속 머물러있다. 그렇다면 상처받은 이의 주변인들은 가만히 있어야만 할까? 팽목항에 부스를 설치하고 찾아오지 않는 유가족들을 직접 발로 찾아갔던 심리전문가들의 행동은 분명 선의에서 비롯된 것이나, 유가족들에게 또 다른 형태의 폭력이 되었을 수도 있다. 그럼 우린 어떻게 해야 할까?


세월호 엄마 뜨개질 전시회 마지막날


평생 동안 해야 할 일이 하나 있다면 그것은 슬픔에 대한 공감일 것이다. 타인의 슬픔에 대해 ‘이제는 지겹다’라고 말하는 것은 참혹한 짓이다. –신형철

 

맞다. 생각해보건대 이 시점에서 우리가 할 수 있는 ‘상처받은 이의 상처를 치유하게 하는 방법’은 그들의 슬픔에 대해 배우고 공감할 줄 알며, 떠나간 이를 계속 기억하는 일일 것이다.

김해인

읽는 사람이 즐거운,
언제나 유쾌한 글을 쓰고 싶습니다.
blog.naver.com/haen17

1 Comment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