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ome  /  Column  /  십사

기억을 저장하는 남다른 방식, 쑹둥(Song Dong)의 <버릴 것 없는>

17.06.15 1

Waste Not, Song Dong, Courtesy of Tokyo Gallery + BTAP, 2005

자신이 가지고 있는 짐들을 아주 간소하게 정리하며 사는 ‘미니멀리즘적인 삶’이 한동안 인기를 끌었다. 많은 사람들이 자신이 가지고 있는 물건을 버리지 못하는데, 당장 사는데 있어 불필요한 것들을 버리면 ‘현재에 집중할 수 있다’는 내용이었다. 물건을 버리고 나서 단정한 삶을 시작했다는 사람들의 증언도 많았다. 소소한 물건을 잘 버리지 못하는 나는 그들의 이야기를 듣고 어질러져 있는 집안을 치우며 겸사겸사 ‘버리기’를 시도했다. 그러나 막상 버리려고 하면 눈 앞에 보이는 물건이 모두 추억이었다. 그래서 버릴 수가 없었다. 예를 들면 초등학교 때 살던 단독 주택의 열쇠, 중학교 때 처음 받은 ‘친하게 지내자’던 편지, 일기를 썼던 수첩과 친구들의 롤링페이퍼, 국토대장정에 갔을 때 썼던 모자와 RCY의 손수건 같은 것들 말이다. 내가 사용했던 물건들에는 그 당시에 지녔던 나의 감정과 나의 시간이 존재한다. 물론 잘 들춰보지는 않지만 그래도 그것들을 아직도 버릴 수 없는 것은 미련함때문일까? 아니면 나라는 존재를 잃지 않기 위한 몸부림일까?



<Projects 90> Song Dong, June 24–September 7, 2009, MoMA

미니멀리즘의 삶을 주창하는 사람들은 편지든 옷이든 결국 보지 않을 것이기 때문에 그것들을 버리는 것이 맞다고 이야기한다. 어차피 추억이란 머리 속에 저장되어 있고, 그래서 꺼내보지 않는 것들은 짐이 된다고 말이다. 틀린 이야기는 아니다. 하지만 손으로 만질 수 있는 물건이 남아있는 경우와 아닌 경우에는 추억의 크기가 다르다는 게 나의 주장이다. 그래서 많은 것들을 모은다. 정리가 되지 않은 채 옷장 속 편지와 예전의 교복과 명찰, 공책 등이 아무렇게나 모아져 있지만 아직은 버릴 수가 없다. 아무래도 나는 현재에 충실하지 못하고 과거에 대한 미련이 많은 사람인 것 같다.


그래서 나는 관계도 잘 버리지 못한다. 나를 사랑해준 사람들의 말, 나를 아프게 한 사람들의 말과 생각, 그들의 표정, 그 순간의 기억들이 문득문득 떠오른다. 그것은 내가 원해서 나오는 생각들이 아니고, 무의식적으로 길을 걷다가 잠시 노래를 듣다가 문득 떠오르는 것이다. 그러나 대부분은 좋지 않았던, 내게 상처로 남았던 것들을 기억하게 된다. 그렇게 어느 상념에 신경을 많이 쓰다 보면 체력이 방전되고, 머리가 혼미해지는 경험을 하게 된다. 머릿속의 생각들이 정신 없이 휘몰아치곤 하는 것이다. 법륜스님은 그렇게 무의식에 휘청거릴 때면 ‘아 내가 지금 상념에 빠져있구나. 다시 돌아와야지.’라고 생각하고 얼른 그 생각에서 깨어나라고 하셨는데 그게 쉽지가 않다.


상념과 좋은 생각의 분류도 제대로 되지 않는 나는 미니멀리즘의 삶이 멀게만 느껴진다. 분류도 잘 되지 않는데 버리기까지 하는 것은 무의미한 일이다. 내가 느끼는 감정들이 무엇인지 알지도 못하는데, 먼저 버리려고 하니 무리하는 느낌이었다. 그래서 기억을 분류하는 것은 정말 어려운 일이었다. 혼돈에 휩싸인 생각을 정리하기 위해서는 눈 앞에 보이는 물질이 필요했다. 그 물질은 과거의 나를 불러 오고, 존재했던 나를 마주치게 하기 때문에 어떤 감정이었는지를 확실히 알 수 있게 한다. 그 감정이 고통이든 행복이든, 감정을 눈 앞에 마주할 수 있기에 손에 잡히는 물건들은 안정감을 준다.


<Projects 90> Song Dong, June 24–September 7, 2009, MoMA

 

중국 작가 쑹둥(Song Dong)의 <버릴 것 없는>(2003)이라는 작품은 나와 비슷한 마음을 가진, 그 어떤 것도 버릴 수 없었던 그의 어머니의 삶일 것이다.


전시장 바닥에 서 있는 목조 가옥의 뼈대를 중심으로 상상할 수 있는 모든 종류의 가사 집기 1만여 점이 어마어마한 규모로 쌓였다. 빨래판과 빨랫비누, 옷가지, 장난감, 종이상자, 단추, 볼펜, 비닐봉지, 화분, 대야, 치약 튜브 등의 일상 용품과 일일이 열거하기도 힘든 잡동사니는 모두 작가의 어머니 자오샹위안이 지난 50년 동안 모아놓은 것들이다.

자오샹위안은 1938년에 비교적 부유한 가정에서 태어났다. 그녀는 1950년대에서 1960년대 사이중국 현대사의 격동기에 수많은 비극적인 가족사를 겪으며 고난과 빈곤, 불안과 궁핍의 세월을 견딘 여인이었다. 따라서 수년 동안 쓸 일이 없었더라도 사소한 물건들을 결코 버리지 못하고 쌓아두는 습관은 절약을 지상 과제로 알고 살아왔던 이라면 세대와 지역을 불문하고 어느 정도는 공감할 것이다, 출처: 우정아, 『남겨진 자들을 위한 미술』, p.34. 

 

<Projects 90> Song Dong, June 24–September 7, 2009, MoMA


송동은 1966년 베이징에서 태어났다. 그는 1957년에 태어난 아이웨이웨이보다 10년가량 늦은 세대이지만 그의 성장 환경에 문화혁명과 정치적인 상황의 영향이 짙게 남아 있다는 점에서는 아이웨이웨이와 공통점을 가진다. 송동의 외조부는 국민당 간부였기 때문에 그의 어머니는 유복한 유년 시기를 보냈다. 결국 1953년 반동분자로 분류되어 송동의 외가는 큰 탄압을 받게 되었다. 이 시기부터 겪기 시작한 가난의 기억은 송동의 어머니에게 일종의 트라우마로 자리 잡게 되었고 이로 인한 물건을 버리지 못하는 습관이 생겼다. 이 습관은 2002년 부친이 사망한 이후 더 심해졌고 그녀는 우울증을 심하게 겪으며 그저 작은 방 안에서 ‘수집품’들을 보면서 시간을 보냈다고 한다. 송동은 사실 이런 어머니의 수집벽에 어떠한 관심도 가지지 않았다. 하지만 송동과 누나가 어머니의 우울증을 해결하고자 여행을 보내고 집을 정리해 버린 뒤 어머니는 충격을 받고 매일 울며 세상과 단절해 버렸다. 이후, 그는 어머니의 수집벽과 수집품에 대해 다른 태도를 가지게 되었다, 출처:  김도연, 김홍중,「중국 현대미술 작품에서 문화 유물의 재탄생 - 아이웨이웨이와 송동의 작품을 중심으로 -」,홍익대학교 예술학과, 2016, p.123.

 

<Projects 90> Song Dong, June 24–September 7, 2009, MoMA

 

2002년 쑹둥의 아버지가 심장마비로 숨을 거두었을 때 쑹둥의 어머니인 자오샹위안은 강박적으로 물건을 모으며 남편의 부재를 이겨냈다. 그녀는 남편에 대한 기억을 물건을 통해 이겨내고자 했다. 손에 잡히지 않는 기억은 사람을 더 지치게 할 수 있기에 추억이 남은 물건들로 그를 회상하는 방법을 택한 것이다. 그리고 우정아 교수님의 말씀처럼, ‘미술품’이라는 상징으로 그녀의 물건들이 전환되었을 때, 비로소 자오샹위안은 숨을 쉴 수 있게 되었다.


개념미술은 기억의 재구성이다. 아니, 미술이란 기억의 재구성이다. 선적으로 흐르던 기억들이 어느 순간, 예술이라는 이름으로 집적될 때 그 기억들은 하나의 작품이 된다. 강처럼 흐르던 기억들이 시간의 압축으로 ‘미술품’이라는 이름 하에 남겨지는 것이다. 압축된 시간은 원래 갖고 있던 기억과는 다른 기억을 만든다. 그 기억을 갖고 있던 사람에게도, 그것을 보는 사람에게도 기억은 재구성된다.


작품은 인간이 가지고 있던 다양한 기억의 조각을 맞추게 한다. 이 순간, 이 장소, 이 흐름, 이 시간에 원래는 맞지 않던 여러 기억의 조각들을 ‘지금, 여기’에 꼭 맞게 만들어내는 것이 바로 개념미술이라고 할 수 있다. 쉽지 않은 분류의 분류를 거쳐 명확한, 작가가 생각한 주제에 맞게 그 기억들이 정리되는 순간, 한 인간의 기억은 문화가 되고 역사가 되어 작품이 된다. 켜켜이 쌓여온 시간의 집적들이 한 공간에 모여 새로운 내러티브를 만드는 것이다.


쑹둥의 작업은 단순히 그와 그의 어머니, 그의 아버지가 겪었던 일이 아닌 그 시대를 함께 살았던 중국인들의 기억을 모으는 작업이다. 개인은 사회의 일원이므로, 개인의 기억은 그 시대의 사회와 맞물려 흘러간다. 그러니 그 작품을 본 사람들은 과거의 중국을 떠올릴 수밖에 없다. 그렇게 쑹둥의 개념미술은 이 시대를 살아가는 사람들에게 과거 중국의 이야기를 들려주는 기억의 조각이 될 수 있는 것이다.

 

<Projects 90> Song Dong, 모든 사진출처: MoMA

 

분류되고 정리된 기억은 우리를 명확하게 한다. 명확한 눈으로 세상을 볼 수 있게 하며 너무 많은 감정과 기억이 쌓이고 얽혀서 흐리멍텅해진 정신을 바짝 세울 수 있게 한다. 미니멀리즘적인 삶은 그래서 필요할지 모른다. 과거에 얽히지 않으며 ‘현재’에 집중하고, 지금 소중한 것이 무엇인지를 깨달으라는 메시지를 주면서 말이다.


그러나 인간은 누구나 가슴 속에 가장 안전한 동굴을 마련해놓기 마련이다. 내가 힘들 때, 나를 이끌어주고 나를 다시 잡아주는 추억과 다시 오지 않을 시간들이 우리가 쓰는 물건에 녹아있다. 버려야 할 감정은 없다. 현재가 소중하면 과거도 소중한 법, 기억을 저장하는 누군가의 방식에 대해 우리는 왈가왈부 할 가 없는 것이다. 쌓여있는 쑹둥 어머니의 물건은 그녀의 삶이었다. 쑹둥의 작업을 보면서 나는 꼭 기억이 분류되고 정리되지는 않아도 될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가슴에 박힌 추억이 꼭 명료하지는 않아도 되니까 말이다.

십사

안녕하세요, 십사입니다.
미술, 만화영화, 춤, 피천득님, 법정스님을 좋아합니다.
살아있음을 기쁘게 여기며, 지혜롭고 성실하게 살고 싶습니다.

1 Comment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