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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동과 결합한 예술, 길종상가

17.11.20 0

일요일을 마무리 하면서 웹툰을 보곤 한다. 중학교 때부터 만화에 빠져 살았던 내게 웹툰은 일상을 잠깐 잊게 하는 즐거운 취미이다. (물론 잠깐 보지 않는다는 것이 함정이지만) 어쨌거나 웹툰을 보면서 10대의 감성도 느끼고 가끔은 병맛을 느끼기도 하면서 즐거움을 얻는데, 최근에 굉장히 신선한 웹툰을 발견했다. 바로 <오늘도 핸드메이드!>라는 소영 작가의 웹툰이다.

<오늘도 핸드메이드>, 출처: 네이버 웹툰

 

이 웹툰은 작가가 직접 만든 핸드메이드 소품을 보여준다. 웹툰의 내용은 서두에 소품을 만들게 된 이유와 감정을 제시하고, 이후 소품을 만드는 과정과 결과물을 보여주는 방식이다. 작가는 강아지 인형과 양말, 베갯잇, 담요 등, 일상의 소품을 만드는 과정을 보여주는데, 이렇게 물건을 선정하고 만드는 과정이 인위적이지 않은 느낌을 준다. 작가의 생각을 따라서 웹툰을 읽다 보면 어느새 마지막 장면에서 작가가 만든 작품을 사진으로 접하게 되는데, 이를 통해 우리는 작가의 감정을 입체적으로 이해하고 공감하게 된다. 작가의 감성은 여느 20대의 감성과 크게 다르지 않다. 미래를 고민하기도 하고, 좋아서 한 일이지만 힘들다는 것을 표현하기도 하며 짝사랑을 하는 감정 등, 소소한 일상의 모습을 웹툰으로 그려낸다. 그와 동시에 공예품을 만드는 과정을 통해 그 감정을 모두 집약해서 보여준다. 의외로 2D와 3D(?)의 조합은 굉장히 따듯한 시너지를 만들어내는 듯싶다.

 

길종상가, 주문자 : 아르코미술관

 

이러한 작가의 작품은 요즘 붐이 일고 있는 전시의 성격과 크게 다르지 않다. 예를 들어, 2015년 국립현대미술관에서 진행한 <사물학II: 제작자들의 도시>展과 2016년 소마미술관의 <지독한 노동>展, 그리고 국립민속박물관에서 진행했던 <쓰레기X사용설명서>展 및 현재 북서울미술관에서 진행 중인 <메이크 잇(Make it)> 에서도 ‘손으로 진행하는 노동’을 전시의 주제로 삼고 있다. 또한 카카오의 ‘카카오 메이커스(Kakao Makers)’ 역시 대규모로 생산되는 제품이 아닌, 소비자가 자신의 니즈에 부합하는 상품을 선택하여 주문하는 방식을 취하고 있다. 이런 흐름은 우리 사회의 기류를 보여주고 있는 것일까? 그렇다면 사회의 어떤 현상과 이어질 수 있는 것일까?

 

 

길종상가, 주문자 : 아르코미술관

 

이러한 흐름은 ‘덕후의 시대’와도 맞물려 있다. 사실 덕후들은 일찌감치부터 존재했다. 아주 오래 전부터 TV 프로그램인 <생방송 세상에 이런 일이>에는 자신만의 세계를 구축하면서 취미활동을 갖거나, 그 취미를 가지고 개성 있는 삶을 살아가는 사람들이 출현했다. 또한, <능력자들>이라는 프로그램 역시 덕후들이 자신의 개성과 실력을 보여줄 수 있는 장을 만들기도 했다. 마찬가지로, 선정성의 논란이 있지만 아프리카TV나 YOUTUBE에서도 이처럼 자신의 덕후 능력을 선보이는 1인 방송들이 주축을 이루고 있다. 즉, 이제는 자신만의 고유한 개성을 지닌 컨텐츠로 자신의 정체성을 만드는 시대가 도래한 것이다.

 

길종상가, 주문자 : 의외의 조합

 

아마도, 현대 사회가 중요하게 여기는 담론이 무엇인지 지속적으로 공부하고, 그것을 전시로 풀어내는 미술관이 이러한 기류에 주목했을 것으로 여겨진다. 무엇보다 예술이 존재하는 세계는 진짜로 ‘덕후들이 밀집된 세계’라고 할 수 있다. 미치지 않거나 관심을 기울이지 않는다면 해낼 수 없는 세계가 바로 예술의 세계이기 때문이다


이처럼 ‘덕후’와 ‘손의 노동’, 그리고 ‘소규모 생산’이 결합한 것은 인간이 태어나고 생활하면서부터 지속적으로 존재해왔으며, 이는 박물관이나 미술 속 ‘공예 섹션’에서 만나볼 수 있었다. 1900년대 초반에는 ‘아름다움(美)’과 ‘쓸모(用)’가 조화된 사물을 최초로 생산한 윌리엄 모리스를 기리며 곱덴 센더슨(T.J.Cobden-Sanderson)의 전공 논문인 <미술 공예 운동>이 출간되기도 하였다. 예술 수공예 운동(Art and Craft)의 주축인물인 모리스에게 영향을 준 러스킨은 자신의 책에서 산업혁명으로 기계처럼 일하던 사람들을 당연하게 생각한 사회를 비판했고, 나아가 인간이 단순한 분절로 분할되었다고 언급하였다. 이러한 러스킨의 이야기는 사회가 돌아가는 매커니즘(즉 기계화, 산업화)과는 반대의 이야기로, 그는 예술과 인간, 그리고 사회의 유기적인 관계를 지향했다. 동시에 러스킨은 노동자로서의 예술가, 예술가로서의 노동자(즉, 창조자로서의 예술가)에 의미를 두었다. 또한, 그는 이러한 ‘예술-인간-사회’를 잇는 진실된 노동이 사회적인 선(善)을 이룩할 수 있다고 보았다.

 

길종상가 , 주문자 : 도란, 밑그림


노동과 결합된 예술을 통해 공공의 선(善)을 이룰 수 있다고 본 러스킨의 이야기는 현재 진행 중인 메이커스, 혹은 노동의 예술과 무관하지 않다. 결국, 노동과 손으로 하는 작업이 중시되는 이러한 흐름은 대량생산 및 기계화로 개성을 잃은 사람들과 누군가에 의해 자신의 정체성을 잃은 사회에서 자신을 지키기 위한 사이클의 일부라고 볼 수 있다.

 


길종상가 , 주문자 : 도란, 결과물

 

결국 이러한 사이클의 종점에는 ‘자아’가 있다. 이 세계를 주체적으로 살아가기 위한 하나의 방식으로 우리는 남이 만들어준 것이 아닌 ‘스스로 만드는 세계’를 선호한다. 내가 중요하다고 판단한 것에 끊임없이 파고들어 독자적인 세계를 구축하는 것이다. 그러나 요즘에는 단순히 자신만의 세계를 구축하는 것 이상으로 다른 사람들과 공유하기에 이르렀다. 이런 과정을 통해 인간은 정체성을 회복하고, 적극적으로 인생을 탐구하게 되며, 이것이 사회적 선을 이루는 다양한 물줄기가 되어 풍부한 사회로 연결되는 것이다.

 

길종상가, 주문자 : 서울시립미술관


같은 맥락에서 <길종상가>의 박길종 작가를 소개하고 싶다. 2014년경, 우연한 기회로 박길종씨의 작업실에서 그의 수업을 들은 적이 있다. 당시 작가는 예술이 전혀 상관없는 사람들과 만났을 때 그들의 행복을 느꼈고, 오히려 미대에 다니는 사람들이 우울해 보였다고 했다. 때문에 ‘왜 이렇게 살까’를 많이 고민하면서, 예술에서 개념과 단어가 정말 중요한지에 대해 의문을 품었다고 한다. 고민의 끝에 그는 옛날 사람들이 만들어놓은 방식을 따라 하지 않겠다는 생각이 들었다고 한다. 그리고 아마도 이러한 그의 방식들이 <길종상가>의 기반이 된 것이 아닐까 생각해본다.

 

단순히 물건을 만들고 파는 문제가 아니라 본인의 작업 스타일이 반영된 셈이네요. 그런 점에서 봤을 때 단순히 장사를 하려는 느낌은 아니에요. 하지만 정작 스스로는 ‘작가’라는 표현을 싫어한다고요.

싫어하지는 않고요. 다만 신경을 안 쓰는 편이에요. 어느 순간부터는 작가나 사장이나, 굳이 호칭을 정하는 게 무의미하게 느껴지더라고요. <길종상가>를 처음 만들 때 정했던 운영방침이 있는데, 스스로 배우고 느끼고 겪어온 것들을 토대로 무언가를 실행하자는 거였어요. 어떤 단어나 이론에만 빠져서 그 안에서만 생각하기보다는 스스로 행동하는 것이 더 중요한 문제 같았거든요. 예술성이나 돈, 또는 재미의 비중을 묻는다면 딱히 어느 쪽도 아니라고 말하고 싶어요. 처음에 이걸로 떼돈을 벌어야겠다는 마음도 아니었고 단지 홈페이지가 있는데 활용해보자, 하는 생각이 컸던 거니까요. 지금도 딱히 거창한 의미를 부여하고 싶지는 않아요. 출처: 어라운드 매거진

 

길종상가, 만화책 전용 장

 

<길종상가>의 작업들은 어쩐지 정의 내리기가 어렵다. 그러나 고유한 맛이 있다. 아마도 주문자와의 많은 대화를 통해서 만들어지는 작품이기 때문일 것이다. 짐작해보건대, 앞으로 미술관을 벗어나 대중과 호흡을 함께 하는 예술은 이런 형태가 되지 않을까. ‘생활에 지속적으로 스며드는 예술’ 말이다. 이러한 예술은 단순히 미술관이라는 공간에서 벗어나 삶의 다양한 모습까지 담고 있어 더욱 친밀하게 다가온다.

이처럼 <길종상가>의 예술은 사람들에게 그동안 잊고 지냈던 자아를 찾아준다. 그들은 우리가 원했던 것, 우리가 만들고 싶었던 가구를 대신 만들어주고 디자인해 우리의 개성을 되찾게 해주는 것이다. 이러한 특징이 <길종상가>와 <이케아>의 차이라고 볼 수 있다. "진실된 노동으로 인간의 피폐해진 존엄성을 일깨워주는 것", 이 말이 거창하지만 거창하지 않은 이유는 이것이 바로 인생의 본질이기 때문일 것이다.


uncommon, copyright © 2010 길종상가. All rights reserved.

지금도 많은 사람들이 자신의 자아를 찾고 있다. 그리고 자아를 찾고 싶어 한다. 어쩌면 노력하면 할수록 자아가 소멸되는 세상에서, 가시적으로 바로 확인할 수 있는 물건의 생산은 오히려 우리의 마음을 안심시킨다. 때문에 분절된 인간이 다시금 유기적인 육체를 찾을 수 있게 도와주는 것이 이 시대 예술의 기능이 아닐까 한 번 더 생각해본다.


참고문헌 
성윤정, 「존 러스킨의 예술사상에 나타난 '공공성'과 공공선의 의의에 관한 연구」, 『한국디자인학회』, 제 22호, 2009, pp. 159-168.

십사

안녕하세요, 십사입니다.
미술, 만화영화, 춤, 피천득님, 법정스님을 좋아합니다.
살아있음을 기쁘게 여기며, 지혜롭고 성실하게 살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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