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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술, 어떻게 읽을 것인가 -1

18.02.02 1

한 세기 이전의 작품을 연구하는 미술사 연구자로서 현재를 살며 몇 백 년 전의 작품을 발굴하고 연구하는 일에 종종 한계를 느낀다. 특히, 한국인으로서 ‘동양인’의 시선으로 미술의 원로인 서양화가를 공부하고 있다는 사실은 현재 살고 있는 장소와 시간에 대해 다시 생각하게 만든다. 그러나 아이러니하게도 내가 일하는 실무 공간은 죽은 작가들의 회고전을 되새기는 장소가 아닌, 동시대 작가들의 작품을 관리하고 판매하는 갤러리다.

이렇듯 예술이라는 큰 울타리에는 수많은 구분들이 내재해 있다. 때문에 막연하게 다가오는 '미술'이라는 단어는 시대와 공간의 구분을 모호하게 포섭하며 하나의 목표를 지향하는 고귀한 영역으로 인식되기도 한다.

 

현대예술 다이어그램, 알프레드 바, 1936,
출처: https://andreasartblog.wordpress.com

 

역사적 의의에 따라 임의적으로 시대를 구분하는 미술사조들, 또 그 안에서 나뉘는 서양과 동양(혹은 주류와 비주류라 구분하기도), 이를 중심으로 구분되는 국가, 혹은 작가의 성별 등, 작품을 둘러싼 자잘한 정보들은 미술을 감상할 때 작품에 따라오는 해석과 평가를 달라지게 만든다. 이러한 정보들은 그림을 그리는 주체와 그것을 감상하고 소비하는 객체 사이의 소통을 도모한다.

 

<Woman with a Parasol> 클로드 모네, 1875, 출처: https://en.wikipedia.org

모네의 작품들은 붓질만 봐도 그의 화풍이 어떠한지 가늠할 수 있을 만큼
자신만의 독특한 화풍을 고수하고는 했다. 

 

단편적으로 보면, 위와 같은 그림도 단순히 작가의 개인적인 취향이나 습관으로 완성된 작품처럼 보인다. 그러나 한 미술가의 작품에는 당대의 사회-문화적 영향이 고스란히 담겨 있기 마련이며, 우리는 작가 개인이 경험한 시대적인 특징에 주시할 필요가 있다. 때문에 "이 작품은 잘 팔리는가?", "얼마나 유명한가?" 라는 물음을 던지기 전에 몇 가지 감상 코드를 생각해 보면, 그림을 보는 시각이 달라질 수밖에 없다.


# 비주류를 향한 주류국가의 객체 소비 방식

피카소의 작품을 감상한다고 가정했을 때, 서양 백인 남성의 시각에서 동양인을 어떻게 바라보았는지 파악하는 것은 흥미로운 일이다. 우리가 흔히 알고 있는 피카소의 그림에서도 기법적인 특징 외에 주류/비주류에 대한 구분이 또렷이 들어가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그의 작품을 감상할 때, 단순히 '화가 피카소'라는 사실 이면에 존재하는 '서양 백인 남성 작가'로서의 태도를 읽어낼 필요가 있다. 이러한 태도가 그의 작품에 큰 영향을 미쳐서다.

 

<아비뇽의 처녀들> 피카소, 1907, 출처: https://en.wikipedia.org

 

피카소는 자신의 경험으로 타히티의 여성들을 그렸고, 자신이 느낀 공포감을 여성의 표정과 몸짓으로 표현했다. 그림을 보면 그가 창녀들에게 가진 두려움의 시선이 검게 칠한 얼굴과 괴기스럽게 묘사된 마스크로 드러난다. 우리는 그녀들의 조각난 몸과 어두운 색채로 피가소가 체감했을 감정을 파악할 수 있지만, 작품 속에 있는 여성들이 누구인지 파악하는 과정에서조차 우리는 피카소(자세히 말하면 서구 백인 남성으로서의 피카소)의 시각에서 벗어날 수 없다. 때문에 그가 관찰했던 여성들은 그에게 그림을 그릴 수 있게 하는, 영감을 주는 오브제로서의 존재로 그치게 된다.

 

<타히티의 여인들>, 고갱, 1891, 출처: http://www.gauguin.org


<타히티의 여인들>처럼 서양 백인 남성 시각으로 타히티 여성들을 그린 작품은 미술계에서 비주류로 밀려난 타 문명을 그저 작품 주제로 사용한 것에 지나지 않는다. 이들에게 비주류 문화권은 단지 이국적이고 신비로운 것, 작품에 영감을 주는 대상으로밖에 소비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이는 미술사적으로도 그들 위주의 시각으로 세상을 바라보는, 온전히 타 국가의 문물을 날 것 그대로 관철하지 않고 서구 입맛에 맞게 소비하는 잘못된 생산 방식을 확대 재생산하게끔 한다.

# 남성 작가의 시선으로 여성 모델 바라보기

<Two Young Girls at the piano> 루느아르, 1892,
출처: https://www.metmuseum.org

 

르누아르 작품 앞에 서면 자연스레 따뜻한 색감과 온화한 빛으로 표현된 감성, 그리고 그림 속 여성의 보드라운 살결에 집중하게 된다. 이러한 요소는 르누아르라는 작가가 남성의 시각으로 여성모델을 어떻게 바라보았는지, 혹은 남-녀 작가의 시선의 차이 같은 분석을 뒤로하게 한다. 아니, 아마 그런 설명은 작품을 전시하는 곳에서도 제공하지 않았을 것이다. 하지만 우리는 작가의 성별을 파악함으로써 당대를 지배했던 성(性)에 대한 관념을 읽어낼 수 있다. 르누아르는 19세기 남성 작가다. 19세기에 여성은 ‘가정적’이어야 하며, 그들이 있어야 할 공간은 외부가 아닌, 안전성이 보장된 실내 공간이어야 했다. 때문에 르누아르의 그림을 통해 가부장적인 사회 속에서 여성이 있어야 할 공간에 대한 인식을 확인할 수 있다. 

작품의 제작년도를 살피는 것에서부터 당대 화가가 활동했던 국가의 지정학적 위치와 성별, 계급이 당시에 어떤 의미로 통용되었는지 염두에 두면 그림을 보는 시각이 달라질 것이다. 또한, 작가가 살았던 시대와 사회의 특성을 되짚어 보면 단순히 그림을 감상하는 것 이상의 의미를 반추할 수 있을 것이다. 다음 화에서는 현대미술과 동시대미술이 전시되는 곳을 중심으로 그 둘의 경계를 구분하고자 한다.

이윤정(Lottie)

그림을 쓰고 글을 그린다.
아날로그를 사랑하다 디지털 시대의 위협을 받고 현대적인 것과 친해지는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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