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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65 ART ROAD] 파나마시티를 향한 치열했던 3차 전투

15.02.12 0

 

 

Central America
[ Panama ]
 

 

‘파나마시티를 향한 치열했던 3차 전투’

Panama

 

 

 

 

 

 

아침 6시에 일어났다. 카프르가나에서 파나마로 넘어가는 날이 왔다. 오늘의 계획은 카프르가나에서 배를 타고 파나마 국경 오피스를 거쳐 파나마로 넘어간다. 그리고 4일 전에 예약한 비행기를 타고 파나마시티로 가는 것이다. 배낭을 메고 배를 타기 위해 선착장으로 나오는데, 갑자기 비가 쏟아진다. 추적거리고 흐린 아침 날씨가 오늘의 일진을 예고했음을 알아차리지 못했다. 불행 중 다행으로 배를 타자 비가 그쳤다. 지붕도 없는 작은 배에 사람들이 세 명씩 한 줄로 앉았다.

 

‘이 배를 타고 가야한단 말이야? 무슨 전쟁 통에 피난 가는 것 같네.’
파나마시티로 향하는 전쟁 같은 항해가 시작됐다.

 

 

 

 

 

 

 

# 1차 전투, 해전

 

 

 

 

 

 

 

 

작은 보트가 달리기 시작하는데 폭우가 쏟아지는 것 같았다. 그게 아니면 보트가 잠수함일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다. 배가 파도를 가르며 달리는데 물이 그대로 튀었다. 나를 포함한 승객 모두는 어떤 방어도 하지 못한 채 바닷물에 무참히 전멸됐다. 머리부터 발끝까지, 심지어 속옷까지 다 젖어버렸다.

 

아침에 깨끗하게 샤워까지 하고 나왔는데, 바로 이 짭짤한 소금물에 절여진 힘 빠진 배추 꼴이 돼 버렸다니. 이제 빨간 양념만 치면 딱이다. 그렇게 40분을 쉬지 않고 바닷물을 만끽했는데 육지에 도착하자마자 바닷물에 제대로 빠지면서 확인사살을 당했다. 그렇게 1차 해상전투는 패하고 말았다.

 

 

 

 

 

 

# 2차 전투, 육전

 

 

파나마 국경오피스에서 짐 검사를 했다. 짐 검사는 뭐 국경을 넘을 때면 흔히 하는 것이니, 그러려니 생각했다. 그런데 짐 검사를 하는 줄이 시간이 지나도 줄지 않았다. 무슨 문제가 있나 싶었더니 국경을 넘는 사람들의 짐을 바닥까지 탈탈 털 정도로 짐검사를 철저히 했다.

 

‘젠장’

 

내가 캐리어 여행자라면 예민해질 문제는 아니었다. 하지만 나같은 배낭여행자들은 한 번 짐을 쌀 때 정말 정성을 들인다. 배낭에 한 치의 틈도 남지 않게 꾹꾹 눌러가며, 퍼즐을 맞추듯 공을 들인다. 캐리어는 지퍼를 열면 넓게 열리지만 배낭은 굴처럼 깊기 때문에 짐을 꺼내고 싸기가 여간 까다로운 일이 아니다. 그런데 이렇게 짐 검사를 하고나면 그 짐을 다 꺼내야 한다는 말인데, 정말 하고 싶지 않았다.

 

검사를 까다롭게 하는 이유는 마약 때문이다. 이윽고 내 순서가 됐고, (물론 나는 마약에 ‘ㅁ’조차 없기 때문에 당당하지만) 국경 짐 검사관들에게 마약 같은 건 없으니 통과시켜달라고 백 번 말해도 먹히지 않을테니 배낭을 순순히 내놔야 했다. 연이어 처참한 광경이 시작됐다. 배낭에 있는 짐을 다 꺼낸다. 작은 주머니까지 속속 뒤지며 나조차 모르는 짐까지 꺼낸다. 가방이 뒤집혀지는데, 내 속이 더 뒤집힌다.

 

마치 적군이 들이닥쳐 날카로운 칼로 배를 갈기갈기 난도질한 것 같다. 결국, 혈흔이 낭자한 채 가방이 죽는 것을 확인하고 나서야 검사에 통과할 수 있었다. 2차 육상전투는 패배라고 할 수 없지만 적군은 멀쩡한데 나만 피투성이가 됐다.

 

 

 

 

 

# 3차 전투, 공중전

 

 

자, 이제 까다로웠던 짐 검사도 마쳤으니, 11:40분 출발 비행기를 타야했다. 그런데 비행기를 타기도 전에 가방 무게를 달고, 돈을 지불해야하고, 여권 검사도 또 해야 한다. 그런데 비행기가 지연됐다면서 사무실 밖에서 기다리고 한다. 공항은 도대체 어디 있는지도 모르겠고 이동하라는 말도 없고, 맨 길거리에서 속옷까지 젖은 채 바닥에 앉아 하염없이 기다렸다. 결국, 도저히 못 참고 골목으로 들어가 속옷을 갈아입었다. 그거라도 안 했으면 정말 돌아버렸을 것 같았다.

 

한 시간 정도를 밖에 있다가, 사람들의 짐을 실은 ‘수레’가 등장한다. 나를 포함한 비행기를 기다리는 사람들은 수레를 따라 ‘공항’이라는 곳으로 이동했다. 그리고 그 ‘공항’이라는 곳에는 그냥 텅 빈 작은 건물이 하나있었다. 짐을 건물 안으로 옮기고, 비행기가 도착할 때까지 기다리라고 한다. 의자하나 없는 빈 건물에서 승객들은 맨 바닥에 앉아 비행기를 기다렸다. 11시40분 출발예정이었던 파나마시티 행 비행기는 3시간 뒤인 오후 2시 반에 모습을 보였다. 비행기가 도착했다며 활주로로 나오라는 소리에 밖으로 나가니 예상치 못한 광경이다. 비행기는 작은 여객기였다. 몸과 마음이 지칠 대로 지친 나는 작은 비행기가 여기까지 잘 날아온 것만으로도 다행이다 싶었다.

 

2시가 넘도록 아무것도 먹지 못해, 내심 과자부스러기라도 주지 않을까 기대했다. 하지만, 역시나 기내식은커녕 에어컨 작동도 안 한다. 승객은 다 해봤자 20명 내외였다. 이제 왜 파나마시티로 가는 비행기가 쉽게 매진되는지에 대한 의문이 풀렸다.

 

 

 

 

 

 

 

파나마시티로 향하는 기내는 엔진의 심한 소음과 더운 날씨, 그리고 20여명의 승객이 내 뿜는 열이 합쳐져 찜통처럼 푹푹 쪘다.

 

 

최악의 비행기에 탑승해서 고통스러운 한 시간을 보냈다. 바닷물이 다 말랐다 싶었는데, 바로 온 몸이 땀으로 뒤범벅이다. 이번 3차전, 공중전도 내가졌다.

 

 

 

 

 

 

 

# 전쟁 종료

 

 

승객 20여명은 무사히 땅을 밟았다. ‘이제 모든 전투가 끝났구나.’ 생각했다. 하지만 슬프게도 전시상황은 아직 끝나지 않았다. 파나마 공항에 도착해 여권검사와 개인 인터뷰를 해야 한다며 작은 사무실로 데려간다. 그리고 서류를 나눠주며 작성하란다. 제출한 서류를 받은 직원이 ‘기다려주세요.’라는 말을 남긴 채 사무실로 들어간다. 이제는 ‘기다리라.’는 말이 제일 무섭다.

 

한명씩 사무실로 불러 인터뷰와 짐 검사를 또 다시 시작한다. 진짜 화가 너무 나서 소리라도 치고 싶었다. 결국 밖에서 한 시간을 넘게 기다린 후, 사무실에 들어가서 인터뷰를 하고 여권에 도장을 받았다. 전쟁은 종료됐다. 아침 6시부터 시작된 전쟁은 오후 4시 반이 되어서야 끝났다. 10시간 반이라는 시간은 해전, 육전 그리고 공중전에 이르는 3차전을 치루기에 절대 짧은 시간이 아니었다.

 

나는 평화주의자다.
더 이상의 전쟁은 단 한 시간이라도 치가 떨린다.

 

 

 

 

김물길

스물넷에 떠난 컬러풀한 세계일주 '아트로드' 저자

이름처럼 사는 것을 목표로 하고 있다.
22개월간 그림을 그리며 세계 이곳저곳을 여행하고 돌아왔다.
계속 이번 여행에서처럼 드라마, 코미디 그리고 로드무비의 주인공으로 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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