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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65 ART ROAD] 두 번째, 그림 권태기 극복

15.04.13 0

 

 

 

[ Cuba ]

 

 

‘시가하면 생각나는 나라’

Havana, Cuba


- No.315 Cigar Cuban, Havana, Cuba

 



‘시가’하면 생각나는 나라 쿠바.
쿠바하면 생각나는 것 중 하나인 ‘시가’가 아닐까 싶다.

 

우리나라에서는 시가를 피는 사람들은 쉽게 만날 수 없지만 쿠바에서는 이곳저곳에서 굵고 긴 시가를 입에 문 사람들을 쉽게 만날 수 있다. 거리의 아저씨와 할아버지, 할머니들은 이미 능숙한 얼굴을 하고 시가를 물고 있다. 이 모습을 보고 있노라면 그들에게 수많은 사연이 있을 것만 같다.

- No.317 Making Cigar, Vinales, Cuba

 

 



쿠바에서 가장 유명한 시가 브랜드는 '코히바'다. 시가대회에서 최고 점수를 받은 시가 역시 바로 코히바라고 한다. 하지만 여타 많은 브랜드도 시가로서 인정받는다.몬테크리스토, 로미오와 줄리엣, 베가스 로바이나 등. 가치와 용도에 따라 포장과 용기가 천차만별이다. 시가는 케이스에 공을 많이 들인다. 나무로 조각한 상자에 온도계가 붙어 있기도 하고, 낱개로 소유할 수 있는 개별 가죽 케이스까지 종류도 가격도 다양하다. 한번 피면 사라지는 시가에 이런 공을 들인다니! 내가 시가 마니아가 아닌 게 천만다행이다.

 

 

 

 

‘인터넷 없이 한 달’

Havana, Cuba

 

 

쿠바는 인터넷 환경이 열악하기 때문에 수도 시내에서도 인터넷을 사용할 수 없다. 만약 사용한다 한들, 비용이 굉장히 비싸다. 그래서 쿠바에 있는 한달 간 인터넷을 사용하지 않았다. 와이파이가 되는 곳이면 몇 시간이고 넷 북을 붙잡고 있었는데, 이제 1분도 인터넷을 사용하지 않겠다고 생각하니 싱숭생숭했다.

 

한 낮에는 햇살이 뜨겁고 그만큼 더워서 숙소에 있는 게 최선이다. 방에는 에어컨도 있어서 뜨거운 공기로 가득 찬 밖에서 안으로 들어오면 천국이 따로 없다. 대부분 시원한 방 침대에 앉아서 시간을 보냈다. 그림도 그리고, 한국여행자들이 숙소에 두고 간 책도 읽고, 일기도 쓰고, 수다도 떨었다.

 

인터넷이 없는 곳에서 지내면 답답하지 않을까 했는데, 이렇게 할 게 많을 줄이야. 오히려 마음이 더 편하다. 가끔은 이렇게 외부와 아무런 접촉 없이 오로지 나에게만 집중할 시간이 필요함을 느꼈다.인터넷은 소통공간으로써 나의 범위를 넓히는 것 같아 보이지만 사실은 되레 나에 대해 집중하지 못하게 만드는 도구일지도 모른다.

 

 

 

‘두 번째 그림 권태기 극복’

Havana, Cuba


-No.318 Real pork sandwich, Trinidad, Cuba

이것만큼이나 확실한 돼지고기 샌드위치가 있을까 싶다.
트리니다드의 뭔가 불편하면서도 궁금한 거리의 샌드위치다.

 

- No.319 A woman who sells flowers, Havana, cuba

 

- No.320 Beautiful boy, Santa Maria beach, havana, cuba


해변에서 눈이 구슬처럼 빛나던 소년을 만났다.
9살인 그 소년은 해변에 누워서 밀려오는 파도와 놀고 있었다.
참 예뻤다. 아니 아름다웠다.

 

 

 

 

거리에는 끊이지 않는 음악과 정열의 살사댄스, 밝은 아이들의 모습, 시가를 피우는 할아버지, 꽃 파는 아줌마, 맛있는 길거리 음식들로 가득했다. 덕분일까. 쿠바에서 두 번째로 찾아온 그림 권태기가 자연스레 없어졌다.

 

정말 특별한 이유가 없었다.
그림을 다시 그리고 싶어졌다.
그리고 정말 즐겁게 그림을 그렸다.
선을 그을 때마다 엔도르핀이 돌았고, 색을 입힐 때마다 흥분이 됐다. 새로운 나라로의 이동 때문일까. 이유가 뭐든 그건 중요하지 않았다. 종이 앞에서 행복해 하는 내 모습을 다시 찾았으니 말이다.

 

 

 

‘메신저가 되어 드릴게요. 기꺼이요’

Vinales, Cuba


쿠바의 한 도시, 비냘레스를 방문했을 때 생긴 일이다. 저녁으로 간단히 피자를 먹으러 작은 주유소 뒤편, <El Rapido>라는 편의점에 들어갔다. 싸구려 피자를 사 먹고, 아이스크림을 사서 묘진언니와 나눠먹고 있는데, 나이 지긋한 현지인 아저씨가 다가와 한국에서 왔느냐고 물으신다. 우리가 '꼬레아 델 수르(남한)'라고 하니, 갑자기 흥분하시면 한 아주머니를 데리고 오셨다. 두 분 다 영어를 전혀 못하고, 우리는 스페인어를 잘 못하니, 대화가 쉽지 않았다. 대충 이해하기로는 자신의 아들이 한국여자와 결혼해 한국에서 살고 있다는 얘기인 것 같았다. 결국, 아주머니는 그 늦은 밤에 우리를 집까지 데리고 가셨다. 사실 둘 다 너무 피곤한 상태였지만 우리도 이 상황이 신기하고 왠지 모를 반가움에 흔쾌히 아주머니 집으로 향했다.

 

집에서 아주머니는 아들 사진과 결혼식 사진, 애기사진을 보여주신 뒤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신다. 그런데 마음이 아팠던 건, 아들 분에게 딸이 하나있는데 딸은 한국여자와 결혼 전 다른 여자 사이에서 생긴 아이였다. 아들이 한국인과 결혼해 한국으로 넘어가면서 딸은 비냘레스에 할머니와 단둘이 남게 된 것이다.

 

초등학생처럼 보이는 소녀. 아무렇지 않은 것처럼 보였지만, 그 어린 아이가 받았을 상처가 얼마나 클지 감히 짐작해 보았다. 그래서 떠올린 아이디어가 카메라로 가족 동영상을 담아 한국으로 돌아갔을 때 전달하는 것이었다. 아주머니는 아들의 전화번호와 이름을 알려 주셨다.

 

할머니와 딸을 소파에 앉히고, 아들과 아빠에게 할 말을 전하라고 했다. 아주머니의 울컥울컥하는 모습에 정말 마음이 짠했다. 어린 딸은 싫다며 투정을 부리기도 했지만, 결국엔 카메라 앞에 앉아 사랑한다는 마음을 전했다. 우연히 만나 우연히 알게 된 이야기, 안타까우면서도 내가 크게 해줄 수 있는 것은 없었지만 부디 이 메시지가 가족에게 조금이나마 위안이 됐으면 좋겠다.

 

‘걱정 마세요. 이 메시지 꼭 전해 드릴게요. 기꺼이요’

 


 

김물길

스물넷에 떠난 컬러풀한 세계일주 '아트로드' 저자

이름처럼 사는 것을 목표로 하고 있다.
22개월간 그림을 그리며 세계 이곳저곳을 여행하고 돌아왔다.
계속 이번 여행에서처럼 드라마, 코미디 그리고 로드무비의 주인공으로 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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