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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와 나의 차이, 블루(blue)

16.12.16 1

Blue Is The Warmest Color, 2013

 

때론 상대방의 모든 것을 알고 있다 생각했던 자신이 초라해질 때가 있다. 나와 함께하는 순간에는 볼 수 없던 상대의 모습이 내가 아닌 타인과의 만남에서 드러날 때가 그렇다. 이럴 때면, 사람들과 섞여있어도 공허감이 밀려온다. 그리고 익숙했던 상대가 낯설게 느껴지면서 더 이상 내 사람이 아닌 것만 같아 조바심이 든다. 사랑을 해봤다면 누구나 한번쯤은 느껴봤을 이 감정을 아주 잘 캐치한 영화가 있다. 바로 <가장 따뜻한 색, 블루>에서 예술가에게 둘러싸인 엠마를 보는 아델의 시선이다. 개인적으로 아델이 엠마를 바라보는 불안한 시선과 이후 조바심을 느낀 아델이 엠마의 사랑을 확인받고자 하는 순간, 그리고 엠마가 아델을 거부한 채 서로의 차이를 다시 한 번 확인하고 잠자리에 드는 씬이 가슴깊이 와 닿았다. 말로는 이루 표현할 수 없는, 둘 사이의 미묘한 순간을 적절하고도 타당하게 표현했기 때문이다.

 

 

Blue Is The Warmest Color, 2013

 

문학을 좋아하는 아델과 타고난 감각으로 순수예술을 전공한 엠마는 둘 사이의 예술적인 감수성을 공감하며 사랑을 시작한다. 둘은 자신이 가진 세계를 공유하며 둘만의 세계를 넓혀가지만, 어쩐지 자신을 드러낼수록 서로에게 불편한 존재가 된다. 서로를 갈구하는 열정이 둘 사이를 연인으로 만들었지만, 열정만큼이나 각자를 구성하는 세계의 차이가 분명했기 때문이다. 그도 그럴 게, 자유롭고 개방적인 부모님 밑에서 창의적으로 자란 엠마와 보수적인 부모님 밑에서 현실감각을 일깨우며 자란 아델 사이에는 물리적인 노력으로 극복할 수 없는 ‘태생적인 한계’가 존재한다. 아는 화가라곤 피카소밖에 없는 아델이 클림트와 에곤 실레의 화풍에 대해 이해할리 만무했고, 이상을 좇아 자신을 실현하는 일이 행복이라고 여기는 엠마가 대학대신 유치원 교사의 길을 택할 수밖에 없는 아델의 현실을 이해하기에는 무리였다. 그리고 둘은, 아델이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유치원 교사가 되면서 엠마가 작가로서 본격적인 작업을 하면서 점차 틀어지기 시작한다. 아델을 사로잡았던 엠마의 파랑빛 머리가 점차 붉어지는 것도 바로 이 시점이다.

 

Blue Is The Warmest Color, 2013

 

엠마: 너도 정말 좋아하는 걸 해야지

아델: "일이 있잖아"

알아. 그 뜻이 아니라 예를 들면 글을 잘 쓰잖아. 뭔가 써보는 거 어때? 단편이라도

“나를 위해서만 써와서...”

재능을 썩히는 건 아까워

“나의 경험을 쓰는 건데 널리 공개하긴 싫어"

공개가 아니라 창작을 해

“방법을 몰라”

이야기 지어서 애들 잘 들려주잖아, 그걸 즐기고.

“애들이니까 하지. 스토리 구상에 소질 없어”

그래, 네 선택이지. 난 그저..너도 뭔가 이뤘으면 좋겠어서

“뭘?”

글쎄. 자아실현 말야.

“난 만족해”

날 위해 요리하는 것도 좋지만, 네가 행복하길 바라

“난 행복해. 이렇게 너랑 있는 게 내 행복의 방식이야”

그렇다면야, 뭐.

“강요하면 나 상처 입어”

강요가 아냐

“그런 느낌이야”

 

특히, 엠마의 첫 전시가 있던 밤에 나눈 둘의 대화는 다분히 현실적이다. 둘의 이야기를 가만히 들여다보면 어쩐지 ‘다 너를 위해서 하는 말이야’라는 부모님의 잔소리가 떠오른다. 누구나 한번쯤 서로를 위해 했다는 말들이 되레 큰 상처로 돌아왔던 경험이 있었을 것이다. 엠마와 아델의 대화도 그랬다. 그리고 이 장면에서 관객은 크게 두 부류로 나뉜다. 이를테면 도전정신 없이 그저 주어진 현실에 만족하는, 스파게티만 서빙하는 신세가 될지라도 ‘네가 곧 내 행복’이라 말하는 아델이 매력 없다거나 자신이 가진 틀로 상대방의 삶을 평가절하 하는 엠마가 재수 없다고 말이다. 둘 중 누구의 가치관이 옳다고 말할 수는 없다. 엠마가 대학에서 예술을 전공했고, 소위 말하는 가방끈 긴 친구들과 교양 있는 대화를 나눌 수 있는 식견을 갖고 있다 한들 그녀의 가치관이 전적으로 옳은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Blue Is The Warmest Color, 2013


그런 차이 때문인지, 아델은 아델만의 방식으로 외로움을 해소한다. 바람이라는, 다소 동물적인 방식으로 외로움을 해소했기 때문에 둘의 이별은 아델에게 전적인 이유가 있는 것처럼 보인다. 하지만 “바보짓인걸 알면서도 설명할 수 없어. 너무나 외로웠어.”라고 말하는 아델의 절규에는 ‘네가 나한테 소홀해서 섭섭했어.’라는 진짜 이유가 녹아있을 것이다. 둘의 관계에서 누가 잘못했는지 시시비비를 가르기엔 둘은 너무나도 다른 사람이다. 애초부터 아델은 관계의존적인 사람이었고, 아델은 그런 아델을 만족시켜줄 수 없는 기질을 가진 ‘서로 다른 사람’이었기 때문이다.

 

Blue Is The Warmest Color, 2013


영화 전반을 둘러싸던 파랑은 사랑의 소멸과 함께 사라진다. 이별 후에 아델은 파란 물에 잠겨 엠마를 느껴보려 하지만, 푸르게 빛나던 엠마는 이미 과거의 사람이 되었다. 어느새 엠마는 푸른빛에서 빠져나와 새로운 사람과 새로운 색채의 사랑을 시작했기 때문이다.

 

Blue Is The Warmest Color, 2013

 

영어를 막 배우던 시절, 우울함을 ‘blue’라고 칭한다는 말에 ‘아, 그럴 수 있겠다’ 싶었던 적이 있다. 아주 어릴 때부터 ‘파랑’이라 함은 깊은 바다와 같은 색이었고, 그런 깊은 감각은 침울함을 대변했기 때문이다. 거리를 걷다 우연히 파랑 장미를 마주했을 때조차도 “예쁘다”는 탄식을 잇따른 지인의 답변은 “파랑 장미는 꽃말이 좋지 않대”였다. -실제로 파란색 장미의 꽃말은 이루어 질 수 없는 사랑, 불가능, 얻을 수 없는 것을 의미한다고 한다.- 지인은 본디 장미는 빨강색이라 파란 장미는 화학적으로 만들어진 ‘인위의 것’이라고 말했다. 그리고 <가장 따듯한 색, 블루>를 본 대다수의 사람들은 영화를 통해 ‘파랑’이 본래 지닌 차가움의 이미지를 깰 수 있었다고 말한다. 물론 빨강으로만 표현하던 ‘사랑’을 그 반대의 이미지로, 그것도 차가운 색상을 따듯하게 표현했다는 점에서는 동의하는 바이지만, 어쩌면 ‘파랑’은 두 사람의 차이를 대변하는 색일지도 모르겠다.

김해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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