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니들이 그건 알아서 뭐하게? 가장 쓸모 없는 인포그래픽

17.01.06 1


<항생제의 역습, 오·남용으로 인한 부작용> 인포그래픽, 출처: 조선닷컴 더스토리

 

인포그래픽 정보, 데이터, 지식을 시각적으로 표현한 것으로 정보를 빠르고 쉽게 표현하기 위해 사용된다. 출처: 두산백과

인포그래픽은 언어와 지식의 수준이 달라도 함께 소통할 수 있는 정보형태이며 언어적 표현으로는 불가능한 문화적 요소를 전달할 수 있다. 또한, 의미 있는 정보를 감성적으로 전달하는 도구다(조태영, 남용현, 2015)

 

태생적으로 문자에 친숙하며 숫자, 그것도 통계라면(!) 몸서리 치는 사람들에게 인포그래픽은 수치를 효과적인 시각정보로 전달한다는 점에서 의미가 있다. 최근에는 다양한 미디어에서 이를 활용하기 시작했는데, 인포그래픽은 단순히 숫자를 가시화했을 뿐만 아니라 디자인적인 요소까지 포함하여 디자이너의 창의성을 살필 수 있는 분야가 됐다. 때문에 평소에 신문이나 잡지, 혹은 그 외의 관심 있는 디자이너들의 인포그래픽을 자주 찾아보곤 한다. 뿌리부터 문과생다운, 활자 중독자인 내게도 인포그래픽은 ‘예쁜 외모’덕분인지 어쩐지 큰 거부감이 없다. 특히, 최근에는 아기자기한 인포그래픽도 늘어나 이토록 간단한 이미지로 의미 있는 수치와 그에 따른 정보를 효과적으로 전달한다는 사실이 신기하기만 하다. 

 

내일로지도 인포그래픽, 출처: 노트폴리오

 

그런데 며칠 전, 세상에서 가장 쓸모 없는 인포그래픽을 접했다. 이름하여 <대한민국 출산지도>. 처음에는 한 해 동안 태어난 아이들의 수치나 산부인과의 수를 통계화했나 보다 싶었으나 관련 정보를 접하고 빡이 치는 데는 30초도 채 걸리지 않았다. 인구 고령화와 저출산 대책의 일환으로 20살부터 44세에 이르는, 그들이 말하는 바에 의하면 소위 ‘가임기 여성’에 해당하는 수치를 지역 별로, 그것도 숫자 1단위까지 세세하게, 핑크색 명도까지 조절해가며 만들어놨다. 게다가 아주 친절하게 가임기 여성의 수치를 지역별 순위로도 제공한다. 아, 어쩜 이딴 쓰레기를 이리도 정성스럽게 만들었을까! 본의 아니게 서울지역의 ‘가임기 여성 18,721번’쯤 된 나는 ‘정성스러운 쓰레기’를 보고 욕지거리부터 먼저 나왔다. 아주 이것들이 나중에는 지역별 여성들의 학력과 스펙(키, 몸무게, 집안), 나아가 생리주기까지 수치화해서 제공하겠구나! 통계의 제목은 <좋은 난자를 가진 여성의 지역분포도>가 되겠지! 그 중에 난 몇 위쯤 되는 난자를 가졌으려나!

 

행정자치부가 2016년 12월 29일에 공개한 <가임기 여성지도> 및 가임기 여성 수 지역별 순위, 출처: 행정자치부

 

이런 개인적인 생각이 단순 기우이길 바라는 바지만, 지난해만 돌이켜봐도 대한민국은 영화보다 더한 현실이 존재하는 나라다. 나라 돌아가는 꼴 역시 ‘돌려 돌려 나라 꼴!’이지만, 이 나라의 여성들은 각종 그런 ‘중요한 담론들’에 밀려 그 어디서도 보호받을 수 없는 듯하다. 오죽하면 각종 정책을 수립한다는 행정자치부에서 <가임기 여성 인구수>라는 제목부터 할말을 잃게 하는 지도를 만들었을까. 이 이상으로 대한민국 사회가 여성을 단순히 ‘아이를 낳는 공공재’쯤으로 생각한다는 증거도 없다.

출처: 행정자치부 트위터 

 

불편함이 드는 이유로 무엇부터 대야 할지 몰라 난감하다. 하지만 그런 불편함의 ‘이유들(웬만해서 복수표현을 사용하지 않지만 여기서는 꼭 사용하고 싶다)’을 모아 크게 두 가지로 분류하자면 첫 째, 해당지도를 행정기관에서 만들었다는 점, 둘 째, 지도를 만든 정확한 ‘의도’를 모르겠다는 점이다.

논란이 일자, 행정자치부는 <대한민국 출산지도>홈페이지를 폐쇄하고 공지문을 게재했다. 그러나 지도에 대한 사과도 해명도 없다. 출처: http://birth.korea.go.kr/

 

공공기관에서 해당 지도를 만들었다는 것은 의미가 크다. 모르긴 몰라도 소위 말하는 머리 좋은 공무원들이 모여 ‘저출산 및 고령화’ 대책으로 해당 지도를 제작해야겠다고 생각했다는 건데, 이는 우리 사회가 여성을 바라보는 그릇된 시각을 단적으로 드러낸 사례다. 적어도 여러 절차를 걸쳐 이게 과연 저출산에 실질적이고 의미 있는 정책인지 고민했을 터인데, 그 과정에서 해당 지도가 문제가 될 거라고 아무도 생각하지 못했다는 점이 신기하다. (고민 안하고 만들었으면 더 문제고.) 가장 큰 원인은 논의 과정에서 ‘여성에 대한 이해’가 배제되었다는 점인데, 가임기 여성의 정의를 20살부터 설정하고 연령별 정보를 제시함으로써 ‘섹스가 가능한 여성’으로 보이도록 임의 분류했다든가 ‘저출산’의 책임을 특정 성별에만 지운다는 것이 문제다. 당장의 언어선택만 봐도 ‘가임의 여성인구수’ = ‘임신 가능한 자궁의 수’이니 뭐 어쩌라는 건가. 이는 여성을 하나의 인격체로 존중하기 보다 ‘아기를 낳는 자궁’쯤으로, 나아가 국가발전에 이바지해야 할 ‘공공재’쯤으로 생각하는 것이다.

 

임신과 출산의 자유는 개인의 선택에 있다. 지난 몇 년 간, 정부는 ‘저출산’을 운운했고, 출산에 ‘자율경쟁 제도를 도입’하고 ‘전국적인 출산 붐 조성’을 위해 해당 지도를 제작했다고 한다. 그러나 지금 진짜 필요한 건 연령별, 지역별 순위를 세워 임신 가능한 여성의 수가 어디가 많은지 나타내는 게 아니라 일자리 창출과 임금 인상, 노동시간 단축, 여성의 유리천장 완화, 임신출산휴가에 대한 사회적인 합의, 여성인권에 대한 이해다. 단순히 ‘부농부농한 인포그래픽’으로 저출산 문제를 해결할 수는 없다.

 

<가임기 여성인구수>지도와 <성범죄 발생건수> 출처: 한국스포츠경제

 

가장 화가 나는 포인트는 지도 제작의 ‘정확한 의도’를 모르겠다는 점이다. 이미 일부 커뮤니티는 입에도 담기도 싫을 명칭으로 해당 지도를 부르고 있다. (궁금하다면 ‘포켓몬GO 지도’용어를 참고하여 검색하면 된다.) 누군가는 해당 기사에 “참고하라는 거지. 전국 매장 검색하는 것처럼.. 출산율 높이자는데 왜이리 열을 내세요?”라는 인권감수성이라고는 찾아볼 수 없는 댓글이 달리기도 했다. 무엇보다 우려되는 것은, 해당지도가 성범죄에 악용될 수 있다는 점이다. 실제로 <가임기 여성인구수>지도는 2012년 서울지방경찰청에서 발표한 <성범죄 발생건수>지도와 일부 일치한다. 지도는 정녕 ‘여기 이렇게 임신할 수 있는 여성들이 많습니다! 임신시키세요!’라고 말하고 싶었던 걸까.

 

한 기사에 달린 댓글 

 

하루아침에 서울지역 가임기 여성 284,504번으로 전락한 나는 생각해본다. 행정기관이 설마 이렇게 바보 같은 짓을 했을 리가! “한국사회에서는 이토록 여성으로 살기 힘듭니다, 출산하지 마세요!”라는 메시지를 전하고 싶은데, 공공기관이라 대놓고 말은 못하니 일부러 그랬겠지. 긍정적으로 생각해보지만 아무래도 국민신문고에 글을 쓰러 가야겠다. 하긴. '페미니즘'이란 단어만 봐도 부들부들 치를 떠는 나라에서 무슨 기대를 하랴. 하지만 사회는 분명 옳은 방향으로 바뀌어야 하고, 모르면 배우는게 답이다. 

김해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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