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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식을 잡아먹는 사투르누스(Saturn)와 두려움

16.09.23 0

<Médaillon ovale : Saturne> Courteys Pierre, 1559, 출처:http://www.photo.rmn.fr



디즈니에서 큰 매출을 올렸던 <겨울왕국>을 다시 보게 되었다. 사정상 한국어가 지원되지 않아 영어로 만화를 봤는데 <FROZEN>이라는 제목이 눈에 띄었다. ‘겨울왕국’과 ‘FROZEN’이 주는 느낌은 전혀 달랐다. 한국에서 선택한 제목은 어딘지 모르게 소녀 감성이 짙게 묻어있었고, 원제는 말 그대로 정말 ‘얼어붙어 있는’ 그 자체였다. 제목이 전달하는 느낌이 가장 강렬하게 다가왔던 장면은 안나가 엘사의 마법에 맞아 머리가 하얗게 세었을 때, 숲 속에 사는 정령인 트롤이 안나의 상처를 쓰다듬어 주는 부분이었다. 트롤은 엘사의 힘이 커지면 위험한 일이 생길 것이라 충고한다. 그리고 엘사는 이 사건을 계기로 자신의 힘을 두려워하게 된다.


겨울왕국 포스터

 

결국 엘사는 자신의 힘을 숨기기로 한다. 자신이 어떤 능력을 가졌는지, 이 힘으로 무엇을 할 수 있는지는 전혀 중요하지 않다. 단지 사람들에게 들키지 않고, 그들에게 피해를 주지 않는 선에서 살아가기로 한 것이다. 하지만 안나를 다치게 했으니 엘사의 마음은 얼어붙게(Frozen)된 것 같다. 때문에 손 끝에서 뻗어나간 얼음은 아마도 엘사 자신의 마음 속에 가지고 있던 칼날이었을지도 모른다. 생각해보면 주변 사람들(아빠,엄마) 역시 엘사에게 자신의 힘을 숨기라고만 했다. 사람들이 더 이상 많은 것을 알지 못하도록, 자신들만의 영역에서 사람들을 내보내고 문을 걸어 잠군 것이다. 하지만 이러한 행동은 두려움만 남길 뿐이었다. 결국, 엘사는 자신의 힘을 온전히 믿지 못하게 되어 무엇이든 기피하게 됐고, 힘을 감추게만 됐다. 그래서 엘사가 <let it go>를 부르는 장면에서 많은 사람들이 해방감을 느낀 것이다.

 

<Saturne>, 17c, 출처: http://www.photo.rmn.fr


때문에 <frozen>이라는 원제가 단순히 ‘겨울’과 ‘눈’에 국한한 것이 아니라 굳게닫힌 엘사의 마음과 그것을 바라볼 수 밖에 없었던 안나의 마음까지 표현한 단어라는 생각이 들었다. 엘사와 안나가 서로에게 가지고 있던 두려움은 그 감정만으로도 수많은 것들을 얼어붙게 했다. 그만큼 두려움은 사람들의 용기를 슬픔으로 바꾸고, 희망을 녹슬게 하며 눈 앞에 있는 사실을 거짓과 선동으로 바꿀 수 있다.

하지만 인간이라면 흔히 두려움에 굴복한다. 때로는 두려움이 가늠하지 못할 정도로 커질 때가 있기에 우리는 신(神)을 믿는다. 그러나 가끔은 신(神)조차 사람들의 말에 의해 만들어진 경우가 많다. 그래서 신(神)을 믿으면 믿는 만큼, 두려운 것이 더욱 많아지는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하지만 두려운 것들이 더욱 많아지기에 우리는 신(神)을 위해서, 신(神)이 원하는 방향대로 살수 있는 것은 아닐까. 그러니 인간만큼 아이러니한 존재는 없다. 누구든 항상 선할 수 없고, 항상 악할 수는 없는 것처럼 말이다.

 


<Saturne dévorant un de ses enfants>, Ec.1806, 출처: http://www.photo.rmn.fr/



많은 화가가 그렸던 <자식을 잡아먹는 사투르누스>를 보면, 인간의 광기가 무엇인지 돌이켜보게 된다. 물론 등장하는 인물은 신(神)이지만 그는 인간의 모습을 하고 있다.

 

사투르누스는 고대 로마의 농경신으로 그리스에서는 크로노스라고 일컫는다. 그는 아들 중 한 명에게 왕좌를 빼앗길 것이라는 예언을 듣고 자신의 아들을 차례로 잡아먹는다. 이 작품은 사투르누스 신화를 출발점으로 삼고 있지만, 단순한 신화의 재현이라기보다는 인간성의 타락, 전쟁의 폭력성, 젊은 세대와 나이든 세대 간의 갈등, 모든 것을 삼켜버리는 시간으로서의 사투르누스를 상징하는 의미가 더 크다. 또한 세상과 단절한 채 병마와 싸우고 있었던 당시 고야 자신의 죽음에 대한 공포를 보여주는 것이기도 하다.

 

고야에 앞서 루벤스가 그린 바로크 풍의 《아들을 삼키고 있는 사투르누스》(1636)에서도 제 아들을 먹는다는 충격적인 이야기를 다루었다. 두 작품 모두 세로로 길고 크기도 거의 비슷하여 아마도 고야가 루벤스의 그림을 의식해서 이런 형태의 화면을 택한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몸의 상당 부분이 화면 밖으로 튀어나가고 명암이 극적으로 대비되어 있으며, 인물의 윤곽이 일그러져 있는 등 고야의 작품은 다른 누구의 작품보다 강렬하고 역동적이다. 더군다나 부릅뜬 두 눈은 광기를 내뿜으며 자신이 저지르고 있는 끔찍한 행위에 대해 인식조차 못하고 있는 것 같다. 원래 그림에서는 발기한 남근까지 그려져 있었다는 증거도 있다.

출처: 네이버 지식백과

 

 <Saturn Devouring His Son> Goya, c. Oil mural transferred to canvas, 1819–1823c, 143cm x 81cm. Museo del Prado, Madrid, 출처: 네이버 캐스트

<Saturn, Jupiter's father, devours one of his sons> Rubens, oil on canvas, 1636-1638, 출처: 네이버 캐스트


자신의 목숨을 지키기 위해서 아들을 차례로 잡아먹는 사투르누스. 그가 가졌던, 그리고 말년의 고야가 느꼈던 두려움이 얼마나 컸을까? 어릴 때는 이런 광기가 나와는 관계없는 사람들의 일처럼 느껴졌는데, 나이가 들면 들수록 그게 인간 본연의 모습인 것 같다.

많은 것들이 발전해 우리 인생이 더욱 풍요로워졌지만, 그만큼 내면 속 두려움과 무서움이 함께 자라났다. 그래서 이 그림들은 너무나도 얼어붙은 (frozen) 우리의 모습을 반영하는 것만 같다. 하지만, 한 가지 기억해야 할 사실은 두려움은 남이 아닌 우리 스스로가 만드는 것이라는 점이다.

 

십사

안녕하세요, 십사입니다.
미술, 만화영화, 춤, 피천득님, 법정스님을 좋아합니다.
살아있음을 기쁘게 여기며, 지혜롭고 성실하게 살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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