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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과 죽음의 경계, 윤진영

17.01.04 0

 <분해자(Decomposer)> 윤진영, 출처: 일우 스페이스 

 

할머니께서 새로 담가주신 김치를 먹으려고 김치통을 여니 냄새가 시큼하다. 아주 맛있는 냄새다. ‘여든 넷 여성의 인생이 담긴 김치가 이렇게 한 번 더 만들어졌다’는 생각에 어서 먹어보고 싶어졌다. 냉장고에는 2주 전에 받은 새 김치와 다섯 달 전에 받은 김치가 있다. 하나는 너무 쉬었고 하나는 알맞게 익었다. 김치가 쉬어버린 건, ‘익는 정도’를 제대로 파악하지 못하고 관리하지 못한 내 잘못이 크다. 그래도 ‘김치를 맛있게 해주는 균들이 자신의 일을 최선을 다해 하고 있나 보다’라고 생각했다. 내 탓을 하는 것보다 그 편이 섭리에 옳은 일이겠거니 한 것이다.

 

 

<나, 다니엘 블레이크> 출처: 네이버 영화 

 

그리고 마치 유산균처럼 보이지 않는 곳에서 자신의 일을 묵묵히 해나가는 그런 사람들이 있다. 최근 <나, 다니엘 브레이크>를 보았는데, 영화는 평범한 사람들이 -아니 조금은 덜 평범하지만 우리 주변에서 흔하게 볼 수 있는- 자신의 삶을 살기 위해 고군분투하는 모습을 그렸다. ‘댄’이라고 불리는 우리 주변의 이웃사촌은 평범하고 책임감 있게 자신의 일을 하다 ‘심장이 좋지 않다’는 의사의 소견을 받는다. 그래서 실업급여를 받기 위해 관공서를 방문하지만, 그 과정에서 관료들의 ‘권위적인 태도’에 부딪히게 된다. 사람들은 다니엘을 밀어내고 그에게 실업수당을 받을 수 없다고 통보한다. 덕분에 다니엘의 생활은 날로 궁핍해지지만 그럼에도 우연히 만난 이웃을 아주 찬찬히, 그리고 따뜻하게 도와준다. 무뚝뚝함 속에서 새어 나오는 정(情)이라고 해야 할까. 마치 내가 김치 통을 처음 열었을 때 스윽 풍기던 냄새 같았다.

 

<나, 다니엘 블레이크> 출처: 네이버 영화 

 

때때로 굉장히 지루한 영화였지만 나는 평범하게 자신의 삶을 이끌어나가는 사람들의 모습이 마음에 와 닿았다. “사람이 자존심을 잃으면, 다 잃은 거요.”라고 말하는 다니엘 브레이크의 모습에서 ‘인간은 자신의 등뼈를 믿고 살아간다’던 법정스님의 말씀이 떠올랐다. 어떻게 보면, 공무원에게 다니엘은 ‘삶의 균’일 수 있다. 공무원들의 평범한 일상을 방해하고 불편하게 만들었기 때문이다. 또한, 공무원으로서는 다니엘 같은 사람들을 모두 받아줄 수 없었을 것이다. 하지만 그 평범하고도 악착같이 사는 ‘균’들이 모여 사회를 이룬다. 김치통의 ‘균’과 다니엘 브레이크라는 ‘균’은 살아있는 생명체라는 점에서는 같지만, 하나는 자존심이 없고 하나는 자존심이 있다. 자존심과 자신을 세우는 자존감은 생명체 하나를 죽일 수도 살릴 수도 있는 것이다.

 

광화문 시위 전경, 출처: SBS News


작년 한 해는 개인적으로도, 사회적으로도 참 많은 일이 있었다. 개인적으로는 너무나도 큰 인생의 이벤트가 생겨 환희와 걱정 등, 수많은 감정이 교차되었다. 사회적으로는 우리 모두가 ‘옳은 것은 무엇인가’에 대해 끊임 없이 고민했던 한 해였다. 그리고 스스로가 권위 있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은 질문의 답을 찾는 우리의 모습을 ‘곰팡이’ 혹은 ‘균’처럼 바라봤을 것이다. 아마도 위에 계신 분들은 스스로에게 필요한 것들은 최선을 다해서 이뤄냈을 것이다. 모두가 시민이고 이 나라를 구성하는 사람들이지만, 곰팡이나 균에도 좋은 것과 나쁜 것이 있다. 사람이라면 응당 무엇이 옳고 그른지를 제대로 파악해야 하는데 그들의 최선은 우리에게 최악으로 남았다.

 

 

분해자 (Decomposer) 윤진영, 출처: 일우 스페이스 

 

그래서 이번에는 곰팡이로 작업하는 윤진영 작가의 작품을 소개하려고 한다. 그는 직접 곰팡이를 배양하여 작품을 만든다. 그 중에서도 <분해자(decomposer)>시리즈는 곰팡이의 성격을 가장 잘 나타내는 듯하다. 모든 것을 분해시키는 곰팡이는 서로가 모여 새로운 것을 만든다. 작가는 ‘죽음과 삶의 경계’를 곰팡이로 표현하고자 했는데, 곰팡이를 이용해 죽음을 통해 새로운 삶을 얻는 과정을 표현했다.


윤진영(47)씨는 ‘곰팡이 작가’라 불린다. 곰팡이를 직접 배양해 사진을 찍는다. 그가 물감처럼 구사하는 곰팡이는 부패와 발효로 생태계 안에서 분해자의 구실을 한다. 대부분 사람에게 곰팡이는 두렵고 혐오스런 대상이다. 윤 작가는 “위협적으로 느껴지는 부패와 같은 부정적 현상으로 인해 곰팡이의 본질적 가치가 쉽게 드러나지 않는” 점에 매혹되었다. 강한 생명력과 인간이 느끼는 불편함을 동시에 지니고 있어 그로테스크하지만, 그 양면성의 경계 지점에서 작가는 곰팡이의 아름답고 긍정적인 측면을 바라보고자 했다. 그것이 곧 삶과 죽음의 경계이기도 하기 때문이다. 곰팡이처럼 인간이 완벽하게 통제할 수 없는 것은 위협적이고, 그래서 죽음을 상기시킨다.

“내가 집중하는 부분은 우연이다. 우연은 죽음처럼 불안한 것이고 인간의 인식 영역 밖에 있어서 신비롭다. 인간이 죽음의 본질을 안다면 죽음은 더 이상 두려운 영역이 아닐 것이다. 죽음과 고통 앞에서의 생명력이 더 강하고 아름답게 인식된다”고 그는 말했다.

- 출처: 중앙일보 <곰팡이 통해 본 삶·죽음, 생명력>

 

 

< Reversal of Dominance 302 > Digital C Print, 120×180cm, 2015

 

<His Will> 영상, 사운드 설치(8분4초) 2015

 

< he Last Breath> Digital C Print, 500×120cm, 2013, 모든 사진 출처: 월간미술 

 


윤진영은 인간이 불필요하고 징그럽다고 느끼는 생명체인 생선 내장, 돼지껍질, 곰팡이 등을 작업의 모티프로 삼는다. 작가는 이 생명체를 변형한 후 사진과 영상으로 기록하여 거기에서 새로운 의미를 탐색한다. 과학자인 아버지의 영향으로 대학에서 생물학을 전공한 작가는 자연스럽게 생물학의 실험 대상들을 작품의 오브제로 삼았다. 윤진영은 예술에서 낯설고 거북스러운 이 과학적 오브제를 통해 무엇을 말하고자 할까? 작가는 사람들이 혐오스럽다고 인식하는 생명체를 새로운 차원의 오브제로 변형시켜 이를 통해 그로테스크의 ‘긍정성’ 혹은 ‘이면’을 드러내고자 한다. 작업의 출발점은 그로테스크이다. 하지만 작가가 궁극적으로 지향하는 것은 그로테스크한 생명체에 숨은 비가시적인 세계이다.

- 출처: <월간미술> ARTIST REVIEW 윤진영 

  

<분해자(Decomposer)> 윤진영, 출처: 일우 스페이스 

 

죽어있던 국민들은 좀먹은 나라를 새롭게 만들고자 스스로 곰팡이가 되었다. 그리고 ‘자존감과 자존심’을 얻은 사람들은 권력자들이 지닌 균보다 더욱 큰 힘을 발휘하고 있다. 국민들 스스로 분해자가 되어 새로운 세계를 만들어가고 있는 것이다. 그리고 그 세계는 권력자들이 방해할 수 없으며 제어할 수 없는 공간이다. 또한, 그 세계에 대한 열망은 ‘이전 삶의 죽음’을 통해 새로운 삶을 살고자 하는, 12월 31일까지 모인 1000만명이 말해주고 있다. 이보다 더 큰 혁명이 있을까 싶다.

십사

안녕하세요, 십사입니다.
미술, 만화영화, 춤, 피천득님, 법정스님을 좋아합니다.
살아있음을 기쁘게 여기며, 지혜롭고 성실하게 살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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