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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만나는 그날까지, 모견도(狗圖)

15.10.26 0

 

그녀는 유독 사람 손 타는 것을 싫어했다. 남들처럼 팔을 베고 잔다든지 배 위에 올라탄다든지 좋아서 폴짝폴짝 뛰며 걸음을 못 걷게 한다든지. 모두 먼 나라 이야기였다. 그녀에게 최고의 애정표현은 살며시 다가와 모른 척 엉덩이를 슥 붙이고 앉는 것이었다. 월드컵으로 온 나라가 들썩이던 해, 우리 집으로 온 그녀는 타고난 성정부터 아주 도도하고 앙칼졌다. 사료는 딱 한 종류만. 간식은 절대 입에 대지 않았고, 평생 1.5kg을 유지했다. 무엇이 맘에 안 들었는지 3살 되던 해에 집을 나갔다가 고고하게 다시 집으로 돌아오기도 했다. 그녀는 분명 고양이는 아니었다. 말티즈와 포메라니언이 섞인 누가 봐도 강아지, ‘개’였다.

출처: http://www.notefolio.net/Tteun-geum/34978



중학생 교복을 입고 처음 그녀를 받아 들었을 때를 아직도 기억한다. 하얗고 뭉실뭉실하던 그녀는 우리가 교복을 벗고 혼삿길을 걱정하는 나이가 될 때까지 항상 집 안에 마련된 자신의 자리를 지키고 있었다. 다만 천천히 눈과 귀가 어두워져 가고 이가 빠지고, 자신의 이름마저 잊은 채 한 자리에서 서클링(한 자리에서 계속 맴도는 것)을 하면서 그렇게 조용히 나이가 들어갔다. 그리고 가족들이 모두 분주한 아침, 그녀는 가족들을 한번씩 체크하고는 잠에 빠지듯 무지개다리를 건넜다. 참으로 그녀다운 마무리였다.

 

돌이켜보면 그녀는 동물이라기보다 가족에 가까웠다. 발음하면 사람 이름과 같기 때문에 동네에서는 딸이 하나 더 있는 줄 알 정도였다. 우리 집뿐만 아니라 반려동물을 키우고 있는 모든 가정이 그럴 것이다. 너무도 당연하게 가족의 자리를 내주고 행복과 위안, 뭐 그런 것들을 주고 받으며 지지고 볶는 것이다. 개의 역사는 어디까지 거슬러 올라가는지 문득 궁금해져 찾아보았더니 거의 3천년 이상은 되었다고 한다. 그래서인지 문헌이나 각종 오래된 자료 속에서 심심치 않게 등장하는 것이 바로 이 반려동물이다. 특히나 우리나라의 회화 속에 등장하는 견공들은 유난히 둥글고 부드러운 모습을 하고 있다. 그리는 이의 애정이 담겨서인지 보는 이로 하여금 가슴 한 구석이 따스해진다.


<모견도> 이암, 조선 16세기 중엽, 국립중앙박물관 소장, 출처: https://ko.wikipedia.org

 

<화조구자도> 이암, 조선 16세기 중엽, 호암미술관 소장, 출처: http://www.gosiga.co.kr/

 

 

해외에서 조선 초기 회화 전시가 열리면 가장 큰 호응을 얻는 그림이 바로 이암의 강아지 그림이다. 이암은 궁중화가 출신으로 특히 강아지 그림으로 유명했다. 단순한 배경과 윤곽선을 쓰지 않고 먹으로 표현하는 ‘몰골법’을 사용해 강아지와 어미 개를 크게 강조했다. 그림은 마치 만지면 폭신폭신할 것만 같은 느낌마저 들게 한다. 기품 있으면서도 막 태어난 강아지들의 정감 있는 표현은 옆 나라인 일본이나 중국과는 비교되는 조선만의 특징이었다.

 

<흑구도> 김두량, 조선 18세기, 국립중앙박물관 소장, 출처: http://201201.tistory.com/49

 

궁중화가들은 엄격한 규칙을 따라야 하는 국가의 관리 하에 회화를 그리면서도 실제 대중들에게 유행했던 화풍을 동시에 소화할 수 있었다. 이들은 국가공무원이라는 데에서 일종의 특권층이었지만 실제로는 자신이 그린 그림에 서명조차 할 수 없는 화가였다. 그래서 이들은 개인적인 그림을 그리기도 했다. 후기에 이르면 점차 중산계층의 문화활동과 함께 부의 흐름이 이동하게 되고, 조선 부르주아들이 문화를 향유하기 시작하면서 화단에도 조금 더 자유로운 바람이 불기 시작했다. 궁중화가들이 기존에 가지고 있던 보수적인 기술과 함께 새로 도입되는 신식 표현기술을 습득하고 표현하기 시작한 것이다. 그 예로 김두량의 <흑구도>는 위에서 봤던 이암의 강아지들과는 조금 다른 모습이다. 먹으로만 그리던 이암과는 달리 김두량은 세필을 사용해 털 한올한올을 아주 사실적으로 표현했다. 정지된 그림이 아니라 마치 지금 당장 움직이고 있는 듯한 모습을 사진으로 찍은 듯한 표현 역시 김두량의 특징이다. 당시 ‘사실성’을 표현한다는 것은 매우 파격적인 시도였다. 새로운 기법을 시도함과 동시에 한국적인 미감까지 놓치지 않았기에 작품은 명작으로 남을 수 있었다.

 

조상들이 남긴 반려동물의 그림을 보면 사실적 표현이나 기법에 감탄을 멈출 수 없다. 그렇지만 무엇보다도 이 그림들이 와 닿는 이유는 단지 관찰 대상으로서가 아니라 정다운 관계를 유지하고 있는 따뜻함이 그림 속에 그대로 남아 있기 때문이다. 동물 그림은 상징성을 가진 것이 많아 유독 많이 그려지기도 했지만, 어쩌면 그 시절 사람들에게도 동물이 가까운 존재였기 때문에 자주 모델로 등장하는 것은 아닐까는 생각이 든다.

<삽살개> 김두량 

 

다시 흙으로 돌아가기 전 마지막으로 보았던 그녀의 얼굴을 기억한다. 맨 처음 우리 집에 왔을 때 그 예쁜 얼굴로 눈을 꼭 감고 입을 꼭 다물고 있던 조용한 얼굴. 다른 집 개들처럼 주인을 반기지도 따르지도 않았던 독특한 성격의 소유자였지만 -요구하는 건 많은 주제에 자기 볼 일이 해결되면 금세 고개를 돌리던 츤데레이자 외골수였지만- 가끔 집에 오면 ‘왔니? 고생했네.’ 하고 쳐다봐주던 눈빛과 가끔 쓰다듬어주면 가만히 목을 늘어뜨리던 품이 잊히질 않는다. 우리 가족은 도도한 그녀 덕분에 매우 행복했는데, 함께 했던 15년이라는 시간 동안 그녀가 조금이나마 행복했길 바란다. 혹여나 우리가 귀찮고 피곤하게 굴었더라도 무지개다리 건너간 그 곳에서 다시 만날 때는 가끔 그랬듯 슬쩍 와서 엉덩이부터 붙여주길, 부디 편안히 잠들길.

 

김월

나의 글이 사람들에게 즐거움과 영감이 되길 바랍니다.
예술과 친근한 세상을 만들거예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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