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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치고, 떠들고, 생각하라 完 : 나는 나만의 것

15.06.24 1

 


연애를 아주 ‘잘’ 하는 친구가 하나 있다. 여기서 잘 한다는 말은 ‘매번 남자가 끊임없이 넘쳐나더라’ 뭐 이런 뜻이 아니라 정말로 연애 자체를 즐기며 행복하게 사랑한다는 얘기다. 친구들끼리 모여 앉으면 항상 하는 고민들, 애인과의 연락문제부터 시작하는 각종 연애 트러블이 우후죽순으로 오고 가는데도 그 친구만큼은 아주 평화롭다. 비법을 물었다. 대답은 생각보다 간단했다. “글쎄, 나한테도 상대방한테도 최선을 다 하면 되는 것 같은데?” 알쏭달쏭한 답변을 내 놓은 그녀가 떠오른다. 생각해보면, 그녀는 단지 연애뿐만 아니라 모든 사람들과의 관계와 맞닥뜨리는 모든 일에서도 당당함과 활기가 뿜어져 나왔다. 이제와 생각해보니, 그랬구나! 그녀를 이토록 충만하게 하는 것은 바로 자기 자신을 사랑할 줄 아는 ‘자존감’ 이었음을 깨닫는다. 현대 여성들이 롤모델로 삼는 여러 여성들의 공통점도 아마 이와 같을 것이다. 오늘 마지막으로 소개할 작가는 비극적인 현실 속에서도 자신의 목소리를 내는 것을, 스스로의 온전한 삶을 만들어 가는 것을 멈추지 않았던 자존감으로 똘똘 뭉친 여자다.



 

 

 

한 줄로 길게 이어 붙은 눈썹, 하면 떠오르는 작가 (순악질 여사가 생각났다면 본인의 연식이 드러나는 것이니 살짝 모르는 척 하기로 하자)가 있다. 멕시코 코요아칸에서 나고 자란 프리다 칼로(Frida Kahlo de Rivera, 1907~1954)는 일찌감치 예술적 기질이 눈에 일렁이는 여자였다. 학교에 다녀오던 십대의 프리다는 버스 안의 쇠 파이프가 척추와 골반, 허벅지를 관통하는 큰 교통사고를 겪게 된다. 그리고 이 경험은 프리다에게 평생 고통이자 붓을 잡게 한 계기가 됐다. 수술은 평생 30여 차례나 반복됐고 무엇보다도 프리다를 절망하게 한 것은 ‘아이를 가질 수 없는 몸’이 된 것이었다.

- <Henry Ford Hospital (The Flying Bed)>, 프리다 칼로, 1932, 출처 : http://www.wikiart.org/

- <The Wounded Deer> 프리다 칼로, 1946, 출처 : http://www.wikiart.org/

 

 


프리다의 절망은 그림 속에서 그대로 전해진다. 20살 연상의 디에고 리베라(Diego Rivera, 1886~1957)를 불같이 사랑했던 그녀에게 (디에고 리베라가 ‘식인귀’라는 별명을 가진 미친 바람둥이였음에도 불구하고!) 그의 아이를 가지지 못한다는 사실은 도저히 받아들일 수 없는 비극이었다. 유산은 계속됐고 그녀는 침대에 누워 계속해서 그림을 그렸다. 

 

프리다 칼로의 그림은 강렬한 색감과 관람자가 불편해질 정도의 적나라함이 특징이다. 하지만 이러한 ‘강한’ 묘사는 어찌 보면 프리다의 살아남고자 하는, 프리다의 생명력을 쏟아내는 행위 그 자체다. 신기한 점은 비록 현실의 육체는 석고 붕대 안에 갇힌, 그야말로 ‘상처 입은 사슴’ 이었을지라도 그녀가 택한 스스로의 삶은 자신의 그림과는 전혀 달랐다는 사실이다.

 


- 프리다 칼로, 출처 : https://en.wikipedia.org/?title=Frida_Kahlo


- 프리다 칼로, 출처 : http://www.dailymail.co.uk/


- 프리다 칼로, 출처 : http://pokingsmot.net/archives/8118


- 프리다 칼로, 출처 : http://fmopa.org/explore/

 

 

 

프리다는 항상 화려한 색의 긴 원피스를 입었다. 여섯 살 때 앓은 소아마비의 흔적(의자에 앉은 사진을 보면 한쪽 다리를 뒤로 빼 숨기고 있다)과 사고로 남은 수술 자국을 가리기 위해서였지만, 그녀는 스스로 항상 아름답게 꾸몄다. 그렇지 못한 날은 수술을 하거나 오래 입원하게 되었을 때뿐이었을 정도로 프리다는 항상 구두를 신고 화관을 썼다. 디에고 리베라와 사이가 소원해졌을 때도 양성애자였던 그녀는 당대 최고의 무용수였던 조세핀 베이커(Freda Josephine McDonald)를 비롯해 이사무 노구치(Isamu Noguchi), 레온 트로츠키(Leon Trotsky) 같은 여러 사람을 사랑했다. 항상 완벽한 모습으로 사진 속에서 행복하게 그리고 생생하게 살아있는 그녀의 모습을 보면 이 여인이 정말 그 끔찍한 사고를 당하고 만신창이가 된 ‘몸만 남은 사람’이 맞나 싶을 정도다. 다만 그녀가 살아남기 위해 악착같이 붙잡은 것은 그림이었다. 유독 프리다 칼로의 작품에는 자화상이 많은데, 자신의 얼굴을 그리고 또 그려내며 무너지는 자기 스스로를 붙잡고 싶었던 것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든다. 마치 자화상 하나에 꺼져가는 생명력의 불씨 하나를 맞교환 하는 셈 이랄까.


- <Self Portrait as a Tehuana> 프리다 칼로, 1943, 출처 : http://www.wikiart.org/en/

-<Detroit Industry, South Wall> 디에고 리베라, 1933, 출처 : http://www.wikiart.org/en/

 

 


프리다 칼로의 불 같은 성정은 남편 디에고 리베라와 함께 한 멕시코에서의 혁명활동에서도 드러난다. 자유와 평등의 가치를 깨달은 멕시코 민중들을 위해 그녀가 선택한 방법은 미술이었다. 벽화 작업으로 유명했던 디에고 리베라의 영향을 받은 프리다는 조금 더 원시적이고 멕시코 원주민들의 일상 그 자체를 관능적으로 드러내는 작품을 만들었다. 그리고 직접 공산당에 가입하며 정치 활동을 이어갔고 혁명 예술가 국제연맹의 거처까지 본인의 집에 마련할 정도로 그 어떤 건강한 사람보다 더 활발한 삶을 살았다.

- 출처 : https://en.wikipedia.org/?title=Frida_Kahlo



부부관계는 디에고 리베라와 프리다 칼로의 여동생의 불륜으로 잠시 파국을 맞은 때도 있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프리다는 결코 자기 자신을 잃어버리지 않았다. 오히려 디에고를 통해 더 강하게 생에 대한 의지를 갈구하고 획득하며 그녀는 온전한 스스로를 만들어갔다. 프리다가 오직 디에고만을 위해 희생하거나 뒤에서 조용히 내조하는 부인으로만 남았다면 지금 우리가 볼 수 있는 강렬한 그림들은 아마 이 세상에 존재하지 않았을 것이다. 부부 이전에 서로의 삶을 완성하는 키(key)플레이어로서 그들은 평생에 걸쳐 함께 있을 때 삶에 대한 열정이 두배 세배로 타오르는 소울메이트이자 애증(愛憎)의 관계였다.

 

 

나는 나 자신의 세계를 건설하겠다.
그것은 내가 살아가는 동안 다른 모든 세계들과 조화를 이룰 것이다.
내가 살아갈 날과 시간과 분은 내게 속한 동시에 모든 사람들에게 속할 것이며

(중략)…

불안, 고통, 쾌락, 죽음은 존재를 유지할 유일한 방법이고 결국은 하나이다.

 

 

 

결국 그녀가 마지막에 이르러 깨달은 것은 삶의 고통 조차도 자신의 세계 속으로 끌어들여 삶 그 자체로 만드는 것이었나 보다. 프리다 칼로의 승리다.



 

 


어렸을 때부터 자주 들어온 말은 ‘여자는~ 이래야지’ 였다. 그건 지금도 유효하고 아마 오늘 어디선가에서 직접 말하고 전했을지도 모르는 일이다. 그 말은 쌓이고 쌓여 나라는 존재 스스로가 마치 잘못된 행동을 하는 것처럼 느껴지게 한다. 한마디로 우리의 자존감을 다 깎아먹는다는 얘기다. 지금 내가 나 스스로를 부둥부둥하기도 모자란 와중에 어째서 남의 눈치나 보며 그 기준점에 맞추려 노력했는지, 지금 와서 생각해보면 우습다. 기준점에 맞춘다고 해서 행복한 주체가 100퍼센트 내가 되는 건 아닌데도 말이다. 오늘 하루쯤은, 이번 한번만큼은, 여태껏 ‘남이 나를 재단하려 했던 목소리’ 말고 내가 내 삶을 만드는 아주 작은 목소리라도 내 봤으면 좋겠다. 거기서부터 내 삶이, 내 자존감 회복이 시작되는 거니까.

 

한 아이돌이 결혼체험을 하는 리얼리티 프로에 나와서 수줍게 말했다. ‘여자는 맨발 보이는 거 아니랬어요~’ 샌들 모양대로 갈변하고 있는 나의 자랑스러운 맨발을 내려다본다. 왜 맨발이면 안 돼? 이렇게 자유롭고 편한데? 그 ‘여자 아이’는 재빨리 가방에서 흰 양말을 꺼내 신었지. 하지만 ‘나’는, 내 갈 길을 가련다! 이건 내 발이니까! 이게 내 목소리다! 자존감 회복! 피스!

 

 


중간에 삽입된 일러스트는 
모두 집시(ZIPCY)작가의 작품입니다.
출처 : http://www.notefolio.net/zipcy

 

김월

나의 글이 사람들에게 즐거움과 영감이 되길 바랍니다.
예술과 친근한 세상을 만들거예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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