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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치고, 떠들고, 생각하라 上: 페미니즘 미술의 등장

15.06.03 1


- 출처 : http://www.notefolio.net/youjino/32814


사실 시작은 장동민이 아니었다. 그 전에 스타벅스가 있었고, 명품백이 있었고, ‘된장녀’가 있었다. 장동민과 그 무리의 발언은 이 사회에 암묵적으로 깔려있던 생각이 드디어 때가 돼 터져버린 것뿐이다. 푹 익은 여드름처럼 언젠가는 터져야 할 일이었다. 인터넷을 돌아다니다 보면 ‘여혐’ ‘여혐종자’ 라는 단어가, 그리고 차마 타이핑하기도 싫은 온갖 원색적인 표현들이 게시판을 가득 메우고 있다. 어딘가에선 아예 맨스플레인(Men+Explain, 설명하는 남자)이라는 단어를 만들었다. 애초에 여성을 약자, 자신들보다 못한 존재로 여기고 ‘친절하게’ ‘지식의 자비를 베풀어 주시는’ 남자들을 표현하는 단어란다. 운전자가 여자든 남자든 사고를 내는 건 ‘김여사’며 더치페이를 하는 내 여친은 이른바 ‘개념녀’다. 여교수, 여선생, 여기사, 여의사, 여검사, 여직원… 연예인들 기분이 이럴까? 가슴을 달고 있다는 이유로 무슨 행동을 하던 프레임 안에 갇혀버리는 지금 이 순간이 바로 2015년이다. 싸우자는 글은 아니다. 여혐종자를 비난하는 글도 아니다. 지금보다 더 가혹했던 여성혐오의 시대에 살았던 선배 여성 여러분들은 어떻게 이 사태에 대응하셨는지를 알아보고 싶을 뿐, 단지 그 뿐이다.

 

거대한 색면과 액션페인팅으로 대표되는 추상표현주의 화가들의 움직임을 떠올려본다. 엄청나게 큰 캔버스를 커다란 붓으로 칠하는 로스코(Mark Rothko)와 이브 클라인(Yves Klein)이 있고, 아예 ‘액션 페인팅’ 이라는 이름으로 캔버스에 물감을 신나게 흩뿌려대던 잭슨 폴록(Jackson Pollock)이 있다. 제스쳐적인 면에서부터 이미 추상표현주의는 남성의 것으로 간주됐다. 때문에 동시대에 활동했던 여성 작가들은 주목 받지도, 아예 거론조차 되지 않았다. 대표적인 예로 잭슨 폴록의 부인이었던 리 크라스너(Lena Krassner 1908~1984)의 작품은 그저 남편의 작업을 따라 하는 것으로 취급 받았다. 유대인으로서 본인의 종교적, 문화적인 배경을 작품에 담아냈음에도 불구하고 그저 폴록의 아류로 여겨졌던 것이다.

 

 

 


- 잭슨 폴록과 리 크라스너, 1949년 그들의 스튜디오에서, 출처 : http://artistshomes.org

<Untitled> 리 크라스너, 1949, 출처 : http://thejewishmuseum.org/exhibitions/from-the-margins


그럼에도 불구하고 멋진 성과를 거둬낸 작가가 있다. 바로 헬렌 프랑켄탈러(Helen Frankenthaler, 1928~2011)다. 당시 콜라주, 개념미술, 앗상 블라주, 각종 조형과 표현을 거쳐 다시 캔버스로 돌아온 현대작가들에게는 풀리지 않는 고민거리가 있었다. 그들은 캔버스를 완벽한 2차원으로 만들고 싶어했다. 공간의 느낌을 아예 없애버리고자 한 것이다. 선과 선 사이에서 나타나는 공간감, 그리고 심지어는 오일 물감의 두께에서 느껴지는 공간감 (이 광적인 집착!)은 어떻게 해도 없앨 수가 없는 것이었다. 형태를 표현하되 공간을 없애야 한다는 어마어마한 숙제는 빈번히도 좌절되는 일이었다. 그리고 그녀는 드디어 이 수수께끼를 풀어냈다!

 

 

- 헬렌 프랑켄탈러, <Mountains and Sea>, 1952, 출처 : http://www.wikiart.org


제목처럼 풍경, 즉 여러 가지 형태와 색채가 등장하며 동시에 2차원성까지 획득했다. 어떻게? 해결책은 바로 채색방법에 있었다. 물감을 아주 묽게 만들어 캔버스에 칠한다. 대신, 캔버스에 밑 칠을 전혀 하지 않고 이 묽은 유화물감을 바르면 물감이 캔버스에 스며들어 마치 천을 염색하는 것 같은 효과가 나타난다. 이러한 방식은 다양한 색채와 형태 표현을 가능케 하며 동시에 납작한 2차원의 세상을 표현한다. 그리고 이것을 가능하게 한 기법은 여성의 영역이라 여겨졌던 ‘염색’ 이었다.

 

1960년대, 드디어 미술계에도 페미니즘이 도래했다. 남성 작가들과 동일한 입지에서 작업 하고자 하는 여성 작가들의 주장을 ‘토론하고’ ‘시위함으로써’ 사회에 전달하고자 한 것이다. 평론가 린다 노클린(Linda Nochlin, 1931~)은 ‘왜 위대한 여성 미술가가 존재하지 않는가? 애초에 여성이 위대할 수가 없는 것인가?’는 기고를 통해 여성미술의 위상을 드러내고자 했으며 위에서 말했던 것처럼 오래 전부터 여성의 영역으로 치부됐던 ‘공예’에 대한 연구 역시 본격적으로 시작됐다. 한 사람의 개성이 뚜렷하게 나타나는 전통적인 미술가라는 개념을 깨부수기 위해 콜라보레이션 역시 진행되었는데, 여기에는 아주 대표적인, 우리의 게릴라 걸즈가 있다.

 

 


- 게릴라 걸즈의 포스터와 캠페인, 출처 : http://womenslibrary.org.uk


유럽의 여러 미술관을 돌며 활약한 게릴라 걸즈는 ‘여자가 메트로미술관에 들어가려면 누드여야만 하는가’ 라는 작품을 통해 자신들이 직접 전통적인 작품 속의 여성상이 되어 여성차별에 대한 퍼포먼스를 선보였다. ‘성공에 대한 압박감이 없다’ ‘남성들과 전시하지 않아도 된다’ ‘80대 이후 작품이 알려질 가능성이 있다’ (The Advantages of Being a Woman Artist) 라는 풍자 역시 이들의 작품이다. 이러한 공동작업과 함께 여성의 몸에 대한 관심은 1세대 페미니즘 미술의 특징이라고 할 수 있는데, 조지아 오키프(Georgia O'Keeffe, 1887~1986)와 주디 시카고(Judy Chicago, 1939~)의 유명한 꽃 작업이 바로 그 예다. 70년대 후반부터 전개되는 2세대 페미니즘은 ‘몸’을 넘어 여성의 경험, 여성의 감정에 집중한다. 여기서 ‘셀피의 여왕’ 신디 셔먼(Cindy Sherman, 1954~)이 등장한다. 그녀는 다양한 상황 속에 던져진 여성을 모두 자신으로 칭해 작가 자신의 정체성이 여자 그 하나뿐만은 아님을 내보인다. 바바라 크루거(Barbara Kruger, 1945~)의 작업 역시타인의 시선이 여성을 대상화시키고 있으며 그것에 대해 깨어있어야 한다고 주장한다.




 

- 조지아 오키프, <Grey Line With Black, Blue And Yellow>, 1923, 출처 : http://www.wikiart.org

 

- 자신의 작품(Dinner Party)앞에서, 주디 시카고, 출처 : https://artsandarchitecture.psu.edu

- 바바라 크루거, <Your Body is a Battleground> ,1989, 출처 : http://www.dazeddigital.com


숨죽여왔던 여성의 목소리가 점차 나오기 시작하던 시절의 이야기다. 페미니스트, 페미니즘. 어느 곳에 가서 들이밀어도 (왜 그렇게까지 부들거려야 하는 건지 이해는 안 가지만) 조심스러운 사안이기에 긴 언어 대신, 짧은 영상과 함께 작품 몇 개를 첨부한다. 이 글에 유독 사진이 많은 이유는, 아마 몇 문단의 설명보다 직접 보고 느끼는 것이 강렬하리라 믿기 때문이다. 장동민이 ‘특히’나 싫어한다던 여자의 특징인 ‘설치고, 떠들고, 생각하는’ 이 언니들의 작품들은 전해지는 울림이 꽤 강한 편이니 제목과 함께 천천히 음미하며 감상해 볼 것을 추천한다. 그리고 지금 우리는 어떤 대답과 반응을 구비해야 할 지도 생각해보자. 아직 그게 어렵다면, 다음주 글에서 시대를 더 거슬러 올라가 아버지의 뜻이 곧 내 뜻이었던 (이건 아직 저쪽 중동 땅에서는 진행 중인 이야기지만) 언니들을 더 만나보면 되겠다.

 


 

 

- Sandra Org, <Womanhouse (detail of linen closet)> 1971, 출처: https://www.studyblue.com

 

- Betye Saar <The Liberation of Aunt Jemima>, 1972, 출처 : http://www.the-art-minute.com/tag/feminist-art/

- Hannah Wilke, <Sweet Sixteen>, 1978, 출처 : http://www.hannahwilke.com/id2.html

- Hannah Wilke, <S.O.S.Starification Object Series>, 1974~82, 출처 : http://ixellian.be/2459

 

 

 

 

* 신디 셔먼의 <무제>자화상들

 

출처 : http://www.tate.org.uk/art/artworks/sherman-untitled-97-p77728

출처 : http://blog.danpontingstudio.com/?tag=cindy-sherman

출처 : http://artblart.com/tag/cindy-sherman-untitled-92/

 

출처 : https://intheloupetv.wordpress.com/2012/03/16/cindy-sherman-doesnt-thrill-me-2/

 

 

- Martha Rosler, <Semiotics of the Kitchen>, 1975, Video

 

 

김월

나의 글이 사람들에게 즐거움과 영감이 되길 바랍니다.
예술과 친근한 세상을 만들거예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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