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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계 맺음, 율리어스 포프(Julius Popp)

16.07.12 0

 출처: http://www.drift-london.co.uk

 

결혼 준비를 하고 있다. 새로운 관계를 맺을 준비를 하고 있는 시기다. 결혼 준비가 이 딱 떨어지는 4글자처럼 간단하면 좋으련만, 생각보다 쉽지 않다. 하지만 둘이어서 이것들을 모두 해낼 수 있구나 싶기도 하다. 원래는 학생이 더 시간이 자유로워야 하는데, 실습과 수업, 그리고 그 모든 것이 겹쳐 너무나도 어렵던 순간들이 있었다. 만약, 남편이 될 사람이 도와주지 않았다면 지금까지 아무 것도 해내지 못했을 것이다. 그러니 ‘결혼’, ‘육아’처럼 글씨로 쓰기는 쉽지만 직접 하기에는 어려운 것들을 차근차근 해나가는 게 인생이려니 싶다. 결혼 준비를 하면서 가장 많이 받는 질문은 “어떻게 결혼까지 생각했어?”다. 어떻게 라니. 뭐라고 말을 해줘야 할지 모를 때가 많다. 결혼을 하기로 한 것은 자연스러웠다. 그 사람과 있을 때 편하고 좋았다. 그러나 그런 질문을 받을 때면 굳이 생각해보지 않았던 ‘결혼을 결심한 이유’를 뇌 속에서 찾아본다. 그래서 저 마음 깊은 곳을 들여다 보니 이 사람은 나를 아주 깊게 이해해주는 사람이라는 것이 생각났다. 누군가를 이해한다는 것은 그만큼 그 사람을 알아준다는 것인데, 부모님 다음으로 온전히 나에게 그런 마음을 전달해준 사람인 것이다.

 

 출처: http://www.drift-london.co.uk

 

그동안 학생이라는 이유 때문에 자존감이 많이 떨어져있었다. 사실 그게 별 게 아닌데, 참 많이 화를 냈고 자격지심 때문에 삐지고는 했다. 이 자본주의 사회에서 일을 안하고 살고 있다니! 나 자신도 그게 참을 수 없던 것 같다. 하지만 자세히 들여다보면, 그 본질은 ‘나도 인정받고 싶어’였다. ‘나 이렇게 열심히 사니까 나를 인정해줘!’라고 말하면서 모두가 나를 이해해주기를 바란 것이다. 하지만 누울 자리를 보고 다리를 뻗으랬다고 그 누구도 나의 이런 어린이 같은 철부지의 모습을 받아주지 못했다. 그래서 더 자존감이 낮아졌던 것 같다. 그런데 남편이 될 사람은 그런 나를 인정해주었다. 나라는 사람을 낳아준 부모도 나에게 비수를 쏟아낼 때, 남자친구는 나를 이끌기도 하고 호되게 혼내기도 했다. 물론 남자친구의 말이 더 아플 때도 많았는데, 관심이 없으면 해줄 수 없는 그런 이야기들이었다. 이 험한 세상에서 나를 이해해주고자 하는 한 사람이 있다는 것이 참 마음이 놓였다. 관계를 맺는다는 것은 누군가를 알아주고 인정해주고 이해해주는 것이 본질이 아닐까.

 

 

 

 

영화 <500일의 썸머>에서는 뜨겁게 사랑한 연인이 마지막에 헤어진다. 이것이 이 영화의 골자다. 그런데 솔직히 영화를 처음보고 너무 이해가 되지 않아서 네이버를 찾아보니 나 같은 사람이 많았는지 지식인과 블로그에 영화에 대한 다양한 해석들이 많았다. 그 중 제일 공감을 많이 얻고 ‘이 글에 추천을 하기 위해서 네이버에 로그인을 했다’라는 말이 많았던 지식인의 내용은 ‘그들이 헤어진 이유는 남자가 여자를 이해해주지 않아서, 혹은 남자의 사랑만을 강요해서’였다. 이 글을 보고 영화 내용을 곱씹어 보니 적극적으로 다가오는 여자에 비해서 남자는 항상 혼자 결정 내리고, 여자의 취향을 존중하지 않았다. 여자가 자신에게 여자의 진짜 이야기를 할 동안, 남자는 자신의 마음을 모두 내비치지 않은 것이다. 즉, 온전히 그 마음을 여자에게 주지 않았던 것이다. 영화 마지막에 여자는 자신의 취향을 존중해주는 남자와 결혼한다. 500일이라는 시간이 있었음에도, 누군가를 알아갈 500일이라는 시간이 주어졌음에도 남자는 여자에게 자신을 보여주지 않은 것이다. 여자는 말한다. 사랑은 운명이라고. 그러나 운명만으로 지속되는 관계는 없을 것이다. 자신을 보듬어주고 자신을 인정해주고, 알아주는 그 사람과 관계를 이어나가는 것이다.

 

출처: http://brand.hyundai.com

 

나는 관계를 맺어간다는 것이 율리어스 포프(Julius Popp)의작품과도 같다고 생각한다. 현재 국립현대미술관 서울관에서도 볼 수 있는 그의 작품은 떨어지는 물의 속성을 이용해 낙하하는 물에 글자를 새긴다. 펌프로 물이 나오고, 정보를 가진 단어가 아래로 내려오는 방식이다. 단지 몇 초의 정보인 글이 보일 때 이미 그 형체는 사라지고 만다.

 

 

독일인 미디어 작가 율리어스 포프(42)의 작품이다. 그의 '비트. 폴 펄스(bit.fall pulse)' 시리즈 작품 하나가 서울 소격동 국립현대미술관 서울관에 10일 소개됐다. 같은 시리즈 작품 가운데에서는 최대 규모다. 작가는 독일 라이프치히 시각예술 아카데미를 졸업, 뉴욕현대미술관•리옹현대미술관•빅토리아앤드알버트미술관 등 해외 유수 기관 기획전에도 참여했다. 특히 2012년 런던 올림픽을 기념해 선보인 작품 '비트. 폴'로 주목을 받았다. 예술과 기술의 경계에 위치한 그의 작품들은 정보의 특성에 초점을 맞춰 디지털 시대의 정보와 인간의 상호관계를 표현한다.

 

"12~13년전 쯤부터 정보가 변하고 쉽게 사라지는 속성에 주목해 이를 이미지화하고 싶었다. 물은 떨어지면서 형태가 어그러지고 사라진다. 물방울을 사용해서 단어를 뿌릴 수 있는 기술도 알게 돼 이것을 작업에 접목시켰다"고 했다. 그렇게 해서 만들어진 '비트. 폴 펄스'는 데이터의 최소 단위 정보 조각(bit)의 떨어짐(fall)', 즉 쏟아지며 짧은 순간만 존재할 수 있는 정보의 ‘일시성’과 전 세계적으로 빠르게 전파되는 정보의 활발한 맥(pulse)을 상징한다. 사회를 덮고 있는 미디어와 디지털 시스템이 과연 어떠한 정보를 ‘선택적’으로 제공하며 확산하는지와 함께 이러한 ‘필터링’에 대해 자각 없이 수용하는 현대인에 대해 비판적이고 냉철한 시선을 던진다.

- 출처: 아시아 경제

 

 

율리어스 포프의 작품들은 정말 ‘순간’이다. 그러나 이 순간의 모습을 만들기 위해서 수많은 펌프와 컴퓨터 프로그램이 동시에 돌아간다. 만약 펌프 하나가 고장이 난다면 그 글씨는 깨져버릴 것이다. 처음에는 잘 모를 수 있으나 나중에 펌프가 여러 개가 고장이 나면 처음부터 모든 것을 다시 해야 할 것이다. 그리고 만약 컴퓨터 프로그램이 고장 난다면 모든 것을 새롭게 만들어야 할 것이다. 그의 작품은 “‘필터링’없이 문화를 수용하는 현대인에 대한 시선” 일 수 있으나, 나는 그의 작품을 보면서 관계를 이어나가는 것에 대한 중요성이 무엇인지를 새삼 깨닫게 되었다. 영상을 보면 바람이 부는 곳에서는 떨어지는 물들도 함께 휘어 내려오면서 글자를 만든다. 그리고 실내에서는 조용하게 수직으로 떨어지면서 글자를 만든다. 순간순간 환경에 따라 움직이며 새로운 순간을 만들어내는 것이다. 이렇게 각자의 자리에서 각자의 역할을 하며 일치하는 순간을 만들어 가는 것. 그것이 바로 관계의 지속을 위해 필요한 중요한 마인드가 아닐까 싶다.


출처: http://brand.hyundai.com

 

글을 쓰면서 혹시나 해서 우리의 만남이 얼마나 되었는지 계산해본다. 정말 몰랐는데 결혼식 이 우리의 1000일이다. (진짜 몰랐다!!!!!) 우리가 만들어간 ‘두 번의 500일’ 동안 참 많은 일이 있었다. 하지만 앞으로 더 서로를 이해하고 생각하며 만들어갈 새로운 관계가 기대된다.

 

십사

안녕하세요, 십사입니다.
미술, 만화영화, 춤, 피천득님, 법정스님을 좋아합니다.
살아있음을 기쁘게 여기며, 지혜롭고 성실하게 살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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