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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생의 언어를 알아듣기, 척 클로스(Chuck Close)

16.08.02 0

Untitled (Brad) Archival pigment print, 74.9 × 57.2 cm, Edition of 25, 2009



영어 번역을 배우고 있다. 미술사학을 하기 위해서는 영어를 읽는 일도 많고, 영작문 또한 할 수 있어야 하기 때문이다. 그래도 이것도 공부라고 하고 싶지 않을 때가 많다. 내가 원해서 시작했어도 쉽지 않다고 느낄 때가 많다. 그렇다고 없던 실력을 갑자기 높일 수도 없고 선생님이 알려주신 대로 글이 나오는 일이 적기 때문이다. 그래도 이렇게 계속 하면 나아지겠지 하는 마음으로 살고 있다.


그런데 번역을 배우면서 번역은 단지 A를 B로 바꾸는 것이 아니라 A가 B로 바뀐 여러 정황과 배경, 그리고 A가 하고자 하는 바가 무엇인지를 고려해야 하는 매우 어려운 일이라는 걸 알게 됐다. 즉, 번역은 A가 하고자 하는 말을 이해하는 과정인데 이 과정에서 번역자가 자신의 뜻대로 해석하는 순간 A의 뜻이 완전히 변질되고 만다. 때문에 번역을 한다는 건 글쓴이의 사고의 흐름과 감정을 따라가는 일이라고 볼 수 있다. 이 과정은 절대로 쉽지 않다. 모두의 생각이 모두 다르고 번역자의 생각이 맞는지 아닌지도 확인할 수 없기 때문이다. 이렇게 하나의 글에 담긴 글쓴이의 언어를 모두 파악하는 것도 어려운데, 모든 사람들의 언어를 이해하는 것이 가능한 것일까? 나는 이렇게 번역 공부를 하면서 의사소통 역시 번역과 마찬가지라고 생각하게 되었다.

 

Untitled (Kate - 16),From the series Kate Moss series, Archival pigment print, 50.8 × 40.6 cm, Edition of 25, 2005


첫 대면한 사람과 대화를 이어나가기 위해서는 상대의 언어가 무엇인지 파악해야 한다. 그리고 나와 다른 사람의 언어를 알아가는 것이 바로 의사소통의 첫 걸음이라는 생각을 했다. 사람은 각자 자기만의 표현언어를 가지고 있는 듯 하다. 예를 들어, <또 오해영> 속 예쁜 오해영은 자신의 상처를 숨긴 채 멋진 여자로 살아가고자 하는 마음으로 그에 맞는 언어를 쓴다. 그녀는 자신이 정말로 사랑했던 남자에게도 자신이 지금까지 지켜온, 무너지면 안 되는 기준을 두고 말을 한다. 또 다른 오해영은 자신의 감정을 있는 그대로 이야기 한다. 남들이 그녀의 언어를 알아듣든, 알아듣지 못하든 그녀만의 솔직한 감정표현을 하는 것이다. 물론 시청자들도 처음에는 그들의 언어가 무엇인지를 알지 못한다. 그러나 시청자들은 매 회가 지날수록, 그들의 언어가 무엇인지를 알게 되어 더욱 감정이입을 하게 된다. 따라서 번역을 할 때나 의사소통을 할 때 중요한 건 대상에 대한 애정과 시간이다. 그 사람의 언어가 무엇인지를 아는 것이 바로 애정의 시작이자 감정의 공유이기 때문이다.

 


Study for Nancy, 1968, Gelatin silver print, Parrish Art Museum, Water Mill, 35.6 × 27.9 cm


그런 점에서 보면, 타인은 외국이다. 물론 나 자신도 외국 같을 때가 있다. 머리에서 가슴까지, 머리로는 이해가 되지만 가슴으로는 이해가 안 되는 일을 겪을 때면, 나 조차 외국이구나 싶다. 나 자신을 이해하기 위해서도 나를 알기 위한 시간이 필요하고 나를 애정 어린 시선으로 바라보아야만 나를 이해할 수 있게 된다. 어찌보면 이런 노력 없이 나를 알게 된다는 건 정말 어려운 일이다.
이런 관점에서 인생은 누군가의, 혹은 어떤 분야의 언어를 알아가는 과정이다. 나와 남의 언어를 이해하고 다른 나라 사람의 언어를 공부하고, 또 내가 가고자 하는 길의 언어를 익히는 과정이 바로 학습이자 공부인 것이다. 그리고 그곳의 언어를 얼마나 빨리, 제대로 익혔는지에 따라 전문가로 가는 길이 더욱 빨라진다. 그러나 그건 누가 알려주는 것이 아니기에 언어를 익히는 것은 평생 지고 가야 할 일이다.


Self-Portrait (Pink T-shirt), 2013, Jacquard Tapestry, 236.2 × 193 cm

 

척 클로스(Chuck Close)의 자화상을 보면 타인이 지닌 언어를 읽는 것이 무엇인지 알 수 있다. 자신의 지인들을 그린 <자화상>시리즈는 실제보다 더욱 진짜 같은 사진을 보고 그린 그림이다. 척 클로스는 ‘하이퍼리얼리즘’의 대가로 알려져 있다.

 

열한 살 때 아버지를 잃었다. 곧이어 어머니가 암에 걸렸다. 신장이 좋지 않았고 글자가 거꾸로 보이는 난독증으로 어린 시절 외톨이 신세였다. 시련은 멈추지 않아 안면인식장애로 사회생활에 고통을 겪는다. 가령 갤러리에서 본 사람을 다른 곳에서 마주치면 알아보지 못하는 것이다. 48세에 척추장애가 왔다. 팔과 다리를 쓰지 못해 입에 붓을 물고 그림을 그렸다. 지금은 휠체어에 앉은 채 붓을 손에 묶고 작업한다. 그는 미국의 극사실주의 화가 척 클로스(68)다.

밝고 낙천적이다. 손이 엄청 많이 가고 장시간을 요하는 작업을 즐겨 한다. 자신의 한계를 뛰어넘는 도전과 남이 가지 않는 길을 선택하는 데서 희열을 느낀다. 결과가 아닌 과정을 중시하기에 그에겐 실패도 미덕이다. 골방에 틀어박혀 혼자 하는 작업보다 여러 사람과 어울리는 협업과 대중과의 소통을 선호한다. 그래서 판화는 죽어가는 장르라거나, 대작을 만들 수 없다는 세간의 생각을 뒤엎고 기념비적 작품을 선보였다. 역시 척 클로스의 이야기다.

- 출처: 동아일보

 

Obama 2, Woodburytype, 35.6 × 27.9 cm, Edition of 10 + 0AP, 2013

 

Self-Portrait, Xylographie, 43 couleurs / 43 colour woodcut, 78.7 × 63.5 cm, Edition 55/60, 2002

 

척 클로스는 위의 기사에도 나와 있듯 인생의 여러 변주를 견뎌내고 체험한 사람이다. 그래서 일까, 그는 한 인터뷰에서 “나는 ‘경험’이라는 음악을 편곡하는 사람이라고 생각한다. 작품은 내 경험을 사람들이 구경할 수 있도록 만든 것이다.” 라는 말을 하기도 했다.

저 한마디를 통해 그가 자신의 인생에 내던진 수 많은 언어를 판독했을 것이고, 자신의 언어로 내용을 채웠으리라 짐작되었다. 그래서인지 그의 그림을 보면, 그림 속 인물이 누구인지 더욱 알고 싶어진다. 작가가 표현한 대상의 언어가 무엇인지 나도 알고 싶어지는 것이다. 사실, 관계라는 건 이렇게 시작되는 게 아닐까.

 

자세히 보아야 예쁘다
오래 보아야 사랑스럽다
너도 그렇다.

<풀꽃> 나태주

 


Robert,Daguerreotype, 21.6 × 16.5 cm, Parrish Art Museum, Water Mill



척추마비가 온 후, 척 클로스는 재활활동을 병행하며 아직도 대형 그림을 그리고 있다. 대단하다는 생각이 든다. 이런 미술가들을 보면 잊었던 나의 언어를 다시금 반추하게 된다. 내가 원하는 것들, 나를 지탱하는 것들, 나의 인생에 대한 언어를 다시 떠올리게 되는 것이다. 자세히, 오래, 그리고 열심히 내 인생에 펼쳐진 언어를 이해하고 알아듣는 것이 중요하다는 것을 다시 한 번 느낀다.

 

십사

안녕하세요, 십사입니다.
미술, 만화영화, 춤, 피천득님, 법정스님을 좋아합니다.
살아있음을 기쁘게 여기며, 지혜롭고 성실하게 살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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