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적(私的)감상] 코끼리를 바라보는 14개의 시선

15.04.10 1

 

 

 

삶은 서로 다른 공간 속에서, 서로 다른 속도로 흘러간다. 세상의 모든 존재들은 각자 고유한 시공간 속에서 살아간다. 같은 시공간은 존재하지 않는다. 존재마다 공간에 대한 다른 인상을 가지고 있으며 다른 템포로 시간을 감지하기 때문이다. 이렇듯 세상은 각자의 뒤섞인 경험들로 이뤄졌다. 때문에 우리는 절대로 세상을 알 수 없다. 그저 장님 코끼리 만지듯 다른 존재들의 시공간을 훔쳐보며 가늠해볼 따름이다.

 

창신동에 위치한 공간 <지금여기>에 세상을 가늠하는 14개의 ‘시선’이 전시되고 있다. 시선의 주체들은 자신의 시공간을 토대로 다양한 존재들을 포착한다. 카메라를 든 경찰들, 어린 시절 자신의 사진, 북한 사람, 돌, 유모차를 끌고 다니는 할머니, 주택들 사이의 나무, 얼어버린 일기장, 민주화운동 기록, 대북 전단, 통일전망대, 물과 얼음, 빈 광고판, 아버지의 물건, 원시림의 나무가 베어진 가리왕산 등……. 특별하다면 특별하고, 특별하지 않다면 특별하지 않은 것들이다. 그러나 이 ‘시선이 담긴 사진들’은 또렷한 목소리를 지니고 있다.

 

 

“윤태준은 자신의 기억을 담고 있는 사물들을 얼려서 사진으로 다시 박제하고,”

 

 

 


“정정호는 얼음이 녹는 장면에서 사(死)에서 생(生)으로 회기하는 윤회를 떠올린다.”

 

 

 

 


“김재연은 자신의 어머니의 육아일기를 차용해 작물을 키우고 사랑을 떠올린다.”

 

 

 

 


“최요한은 아버지의 물건들을 바라보며 관계에 관해 고민한다.”

 

 

 

 


“오보람은 노모차에 의지한 노년 여성의 초상을 담담하게 마주하고,”

 

 

 

 


“변상환은 오래된 골목 한 켠에 놓인 돌덩이들에 빛을 비추고 이름을 부여한다.”

 

 

 

 


“유리와는 도심에서 자라는 나무들을 관찰하며”

 

 

 

 


“조재무는 텅 빈 광고판만을 응시한다.”

 

 

 

 


“이의록은 민주화 시절 보도사진 속의 익명의 존재들을 소환하고,”

 

 

 

 

“임태훈은 관광 상품으로 개발된 분단의 현실을 바라본다.”

 

 

 

 


“임진실은 남에서 북으로 날려 보낸 풍선들에 담긴 삐라와 물품들을 수집하고,
김홍지는 북에서 남으로 넘어온 물건들과 사람들을 기록한다.”

 

 

 

 

“김민은 시위대 채증용 카메라를 반대로 채증하며 사진의 폭력성과 이중성을 폭로하고,”

 

 

 

 


“허란은 가리왕산의 잘려나간 나무들을 응시하며 강정, 밀양으로 이어지는 중심과 주변부의 간극을 살핀다.”

 

 

 

 

 

또한 사진들은 서로 다른 크기와 형태로 공간 안에 전시되어 새로운 시공간을 만들어낸다. ‘그때 그곳’에서만 존재하던 고유한 인상은 ‘그때 그곳’의 관람객들에게 형태와 느낌을 전달할 것이다. 세상이 재미있는 건 각자의 존재들이 가진 시공간이 얽히고설켜있다는 점이다. 어쩌면 세상은 시공간들의 덩어리 대신 이들의 연결점을 찾음으로써 이해할 수 있는 것일지도 모른다.

 

14개의 시선은 보는 관점에 따라 서로 관련이 없어 보이기도, 긴밀히 연결되어 있는 것처럼 보이기도 한다. 토마토 줄기와 경찰이 든 카메라는 동떨어진 것으로 보이지만 동시에 ‘젊은 사진작가의 시선’이라는 맥락을 지닌다. 이렇듯 우리는 연결점을 통해 세상을 이해할 수 있게 된다.

 

공간 <지금여기>에서 전시하는 14개의 시선과 이들의 연결점을 찾는 과정을 통해 새로운 형태의 코끼리를 그릴 수 있다. 14개의 조각으로 새로운 코끼리를 창조해보자. 코가 엉덩이에 달리고 등에 상아가 달린 코끼리, 머리에 꼬리가 달린 코끼리를.

 
- 이미지 모든 출처 : <지금여기> http://space-nowhere.com





작가들은 제각각의 방식으로 코끼리에 대해 이야기한다.
내가 만진 이것이 코끼리의 모양이라 주장하는 이도 있고, 만져보았더니 이것은 코끼리가 아니라는 이도 있다. 어떤 이는 코끼리 자체가 없다고 이야기하고 또 어떤 이는 코끼리가 있든 말든 그것이 뭐가 중요하냐고 묻는다. 중요한 건 모두가 코끼리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다는 것이다.
누구의 말이 옳은지는 알 길이 없지만 이 발언자들의 말에 우리가 귀 기울일 필요는 있어 보인다.
이들의 파편적인 짐작이라도 없다면 우리는 코끼리에 대해 아무 것도 알 수 없을지도 모르기 때문이다.

 

- 인용 : <지금 여기, 장님 코끼리 만지듯> 전시 소책자

 

 

 

 

<지금 여기, 장님 코끼리 만지듯>展

기간 2015.3.31 - 4.30 (월요일 휴관)
시간 pm 01:00 - 07:00
장소 지금여기 (서울시 종로구 창신동 23-617)
참여작가 김민, 김재연, 김홍지, 변상환, 오보람, 유리와, 윤태준, 이의록, 임진실, 임태훈, 정정호, 조재무, 최요한, 허란
기획 지금여기 

 

 

김종소리

늘 주변을 살핀다. 그 중 눈에 띄는 것을 모은다.
키스하는 커플 옆에서 노상방뇨 하는 아저씨, 부러진 우산 살에 기대 자라고 있는 고추와 같은 것들이다.
그리고 이것들을 모아 하나의 이야기로 만든다.
이야기를 통해 이야기하고 싶은 이야기는 중요하지 않다고 생각한다.
이야기를 통해 이야기하고 싶은 것을 이야기하지 않더라도 이야기는 스스로 이야기를 가진다고 믿는다.

http://waterain.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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