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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인(Jane)의 비극과 우리의 비극

15.05.20 0


제인(Jane)이라는 이름, 여기저기서 많이 들어봤을 거다. 우리나라의 ‘영희’ 정도로 영미권에선 흔한 이름이라 얼핏 스치는 인물들만 해도 엄청 많다. (제인 에어, 지 아이 제인, 제인 구달, 제인 버킨, 제인 오스틴, 그리고 레이디 제인 등) 영화나 소설 속 가상 인물이든, 실제 존재하는 인물이든 간에 참 많은 ‘제인이’들이 사고회로 속에서 앞다퉈 줄을 선다. 그 중에서 우리가 오늘 만날 제인은 ‘9일의 여왕’, 제인 그레이(Lady Jane Gray, 1536~1554)다.


- 제인 그레이의 왕실 공식 초상화, 작자 미상, 1590년대 , 출처 : http://en.wikipedia.org/wiki/Lady_Jane_Grey

 

 


런던에 가면 내셔널 갤러리를 꼭 들러야 하는 이유가 있다. 그 곳에 소장된 어마어마한 명작들 때문은 물론이요, 무엇보다 화장실이 공짜라는데 있다. 맥도날드에서마저 화장실에 가려면 영수증을 들이밀어야 하는 유럽의 가혹한 화장실 정책(?)이 박물관이나 미술관에선 비껴나가는 것이다. 그 엄청난 대작들과 함께 ‘교양은 채우고 빵빵해진 배는 비우자!’는 아이러니라고나 할까. 그렇게 ‘어쩔 수 없이’ 내셔널 갤러리를 뻔질나게 드나들다 보면 유난히 눈에 들어오는 작품이 하나쯤은 있다. 어느 통로를 지나다 보면 항상 시야에 박히는 한 아가씨의 희고 긴 손가락이 있는데, 여기에 이끌려 그림의 이름을 찾아보면, 그녀가 바로 제인 그레이라는 것을 확인할 수 있다.


영드 <튜더스(The Tudors)>나 영화<천일의 스캔들(The Other Boleyn Girl, 2008)>을 본 독자라면 아마 쉽게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제인 그레이는 ‘바람둥이 왕’ 헨리 8세(Henry VIII, 1491~1547)의 조카로서 그가 사망할 당시 왕위계승서열 4위에 빛나는 영애(令愛)였다. 그녀는 당시 사람들이 아름다웠다고 기록했을 만큼 예쁜 얼굴에 조용하고 기품 있는 성격을 가졌다. 게다가 4개 국어를 구사했으니 그야말로 ‘엄친딸’이었다. 그녀에게 딱 한가지 흠이 있다면 권력욕에 찌든 부모였다. 파티와 사냥을 취미로 즐겼던 팔팔한 부모에게 내성적인 딸은 영 마음에 차지 않았다. 그래서 그녀는 어렸을 때부터 밀실에 갇혀 종종 매를 맞았다고 한다. 조금의 실수라도 저지르면 바로 매가 가해지는 혹독한 환경에서도 제인 그레이는 아름다운 아가씨로 자랐다. 그러나 결혼 역시 부모의 뜻대로 이뤄져 행복하지 못했는데, 시아버지는 만일 왕위를 계승 받는다면 남편에게 양위하길 종용했고 남편도 그녀를 학대했다. 그러나 제인 그레이의 부모는 여전히 그녀가 왕위에 오르기를 눈이 벌겋도록 고대했다. 마침내 에드워드 6세가 세상을 떠나자 일방적으로 왕위에 올랐음을 ‘통보’받은 제인 그레이는 그 자리에서 실신했다고 한다. 그러나 정확히 9일 째, 헨리 8세의 장녀로서 왕위 계승권 1위였던 메리(Mary I, 1542~1587)가 사람들의 환대 속에 왕위에 올랐고 그녀는 런던탑으로 옮겨졌다. 그리고 사형이 결정되는 순간, 그녀를 사지에 몰아넣은 장본인인 부모는 재빨리 런던을 탈출했다. 16세밖에 되지 않은 제인을 안타깝게 여긴 메리 1세는 마지막까지 그녀를 구하기 위해 애 썼지만 제인 그레이는 안타깝게 생을 마감하고 만다.

- 제인 그레이의 처형, 폴 들라로슈, 1833, 출처 : http://en.wikipedia.org/wiki/Lady_Jane_Grey

 

 

 

 

앳된 ‘9일의 여왕’이 짧은 삶을 마치는 순간, 사람들은 탄식했다. 죽어서야 부모의 야욕에서 벗어난 그녀를 안타까워하는 사람이 꽤나 많았던 모양이다. 프랑스의 폴 들라로쉬(Hippolyte Paul De la Roche, 1797~1856)는 고전적인 주제를 드라마틱하게 창조해내는 절충주의 화가로 유명하다. 역사적 주제 역시 작품의 소재로 선호했던 그는 어린 여왕의 비극을 자신의 캔버스로 옮겼다. 눈을 가린 제인 그레이가 처형대를 찾지 못해 당황하는 모습이 손가락을 통해 나타난다. 오갈 데를 모르는, 유난히도 고운 손이 왜 그녀에게 이런 비극이 가해져야만 했는지 보는 이에게도 안타까움을 전한다. 두 시녀는 슬픔에 아예 고개를 돌렸고 사형 집행수 역시 난감해하며 이 상황을 지켜보고 있다. 실제 그녀의 죽음과는 배경도 등장인물도 판이하게 다르지만, (반역죄로 처형되는 왕족이었기에 모두가 지켜보는 가운데 광장에서 참수형에 처해졌다고 한다) 제인 그레이 주위의 인물들에게 퍼져나가는 슬픔은 관람자에게까지 전달될 정도다. 어린 제인이 메리 1세의 뜻대로 개종을 했다면, 혹은 아이라도 가져 사형을 피할 수 있었다면 어땠을까.


역사는 항상 이렇게 안타까운 몇 가지 사실 때문에 마음이 아프지만, 또 그것이 변하지 않는 ‘사실’ 이기에 반면교사(反面敎師)로 삼을 수 있다. 하지만 요즘 세상은 이런 당연한 논리와는 다르게 옳지 못한 과거는 미화시키고 파내어 고쳐야 할 일은 덮어버린다. 들라로슈가 그린 <제인 그레이의 처형>역시도 어떻게 보면 단순한 과거를 ‘비극’ 이라는 예술작품 그 자체로 미화시키는 ‘도구’에 지나지 않을 수도 있다. 5월의 열 여덟 번째 날을 보내며 이렇게까지 뒤틀린 우리의 역사는 어디서부터 다시 고쳐나가야 하는 건지 막막하면서도, 서글픈 마음이다.

 

 

김월

나의 글이 사람들에게 즐거움과 영감이 되길 바랍니다.
예술과 친근한 세상을 만들거예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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