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ome  /  Column  /  김월

All you need is LOVE

15.09.22 0

 


이제 막 어린애 티를 벗어가던 교복 시절의 어느 날, 어디선가 우연히 한 장의 그림을 마주쳤다. 그림은 막연하게 ‘사랑이라는 걸 그리면 저런 느낌일까’, 하고 호기심과 설렘을 남겨주었다. 그리고 시간이 지나 진짜 사랑을 하고 있는 어느 날, 다시 꺼내 본 그 그림은 아직도, 여전히, 끊임없이 사랑을 발하고 있었다.

<Couple Riding> 칸딘스키, 1906
출처: http://www.wikiart.org/en/wassily-kandinsky/couple-riding-1906


혼자 짝사랑했던 교회 오빠(노래를 부르거나 악기를 연주하면 백 프로다)나 몰래 쪽지를 쓰게 만들었던 그 녀석, 뭣도 모르던 대학 신입생 시절에 좋아했던 선배를 떠올려 보면 저 그림이 주는 느낌 대신 있는 힘껏 이불을 걷어차고 싶다. 그런데 문득, 지금 내 옆에 있는 친구를 떠올려보니 그림과 아름답게 합치되는 느낌이다. 모스크바의 궁전을 배경으로 애타게 서로를 끌어안고 있는 그림 속 커플은 아마 함께 있을 때야 비로소 반짝이는 세상을 발견했을 것이다. ‘차가운 추상’을 그리는 칸딘스키(Wassily Kandinsky, 1866~1944)는 어릴 때부터 색과 음악을 한꺼번에 느낄 수 있는 공감각자였다고 한다. 감정과 영혼을 캔버스 위에 재현하고 싶어했던 칸딘스키가 그린 <말을 탄 연인>은 칸딘스키가 표현하는 ‘사랑’의 모습이었을 것이다. 그래서 사랑하는 이와 몸을 맞대고 있을 때의 충만함을 떠올려본다. 단지 그것만으로도 여의도의 불꽃놀이가 부럽지 않을 지경이다.



 

<Garden of Love> 루벤스, 1634
출처: https://commons.wikimedia.org/wiki/


이 그림 속에는 늦은 나이에 새로운 사랑을 만난 노(老)화가의 기쁨이 가득하다. 바로크 시대를 주름잡았던 벨기에 화가(이자 학자. 또한 외교관이었으며 심지어 온 나라의 왕들에게 귀족 칭호를 받은 그야말로 대성한 예술가였다.)인 루벤스(Peter Paul Rubens, 1577~1670)는 53세의 나이에 16세의 새 아내를 맞이했다. 전처인 이사벨라(루벤스는 이사벨라 역시 무지하게 아끼고 사랑했다고 한다. 원래 사랑꾼 체질이었나 보다.)가 세상을 떠난 지 4년 만이었다. 이미 중년의 나이에 이르러 온갖 세상의 더러운 꼴에 질려버린 루벤스에게 어린 새 아내 엘렌 푸르망은 하늘이 내려준 천사이자 뮤즈였다. 그는 지인들에게 보내는 편지에서도 감격과 행복을 감추지 않았다. 사랑꾼 루벤스는 아내에 대한 사랑을 기반으로 본인의 재능을 아낌없이 발휘한다. 급기야는 고전 신화를 주로 그림의 주제로 차용했던 루벤스의 화풍에 엘렌이 여신으로 등장하기 시작했다. 그림 속 ‘사랑의 정원’은 큐피드와 커플로 가득하며 그들 각자의 가정과 사랑의 신인 헤라와 비너스까지. 이 그림은 온통 사랑의 감격으로 넘쳐난다. 이제 막 연애를 시작했거나 사랑을 얻어낸 연인들이라면 루벤스의 기쁨이 그대로 전해지지 않을까 싶다. ‘눈에 분홍색 필터를 끼웠다’ 라고 표현할 정도로 분홍분홍한 나날들이라니!



 

<삼미신> 루벤스, 1639 
출처: http://www.wikiart.org/en/peter-paul-rubens/the-three-graces


새 장가를 든 늙은 남편의 주책이라고 생각할 수도 있지만, 루벤스는 근 20년을 함께했던 전처 이사벨라 역시 평생 존경하며 잊지 않았다. <삼미신>속 두 여신의 얼굴에 각각 이사벨라와 엘렌의 얼굴을 그려 넣어 여신으로 추앙한 걸 보면, 이 남자야말로 진정한 팔불출이자 사랑꾼이 아니었나 싶다.

 

 

 

<Over the Town> 샤갈, 1918 


커플, 하면 자연스레 머릿속에 떠오르는 작가가 있다. 바로 샤갈(Marc Chagall, 1887~1985)이다. 현 벨라루스 지역에서 러시아 계 유대인으로 태어난 샤갈은 하늘을 나는 연인을 그린 그림으로 유명하다. ‘그녀의 침묵도, 눈동자조차도 모두 내 것이고 그녀는 나의 모든 것을 다 꿰뚫어본다.’ 라고 남길 정도로 사랑했던 연인 벨라는 샤갈에게 하늘을 나는 기분을 느끼게 할 정도로 큰 사랑이자 행복이었다. 그러나 부르주아였던 벨라에 비해 가난한 집안 출신이었던 샤갈은 부모들의 반대에 직면하는데, 그는 사랑을 쟁취하기 위해 파리와 베를린에서 연달아 성공적인 전시회를 선보였고 드디어 벨라를 아내로 맞이할 수 있었다. 

 

 



<The Birthday> 샤갈, 1915

<The Bride and Groom of the Eiffel Tower> 샤갈, 1938-39
출처: http://www.wikiart.org/en/marc-chagall

 

가끔씩 ‘보고싶어’ 라는 네 글자에 지금 당장 자리를 박차고 일어나 연인이 있는 곳으로 가고 싶은 때가 있다. 샤갈은 그 마음을 아주 낭만적으로 그려냈다. 설거지를 하거나 산책을 하는 아주 평범한 일상도 샤갈이 그린 커플들은 공중에 둥둥 떠있다. 현실과는 동떨어져있는 표현이지만 어떻게 보면 가장 사실적인 표현이 아닐 수 없다. 실제로 연인과 함께하는 모든 일상은 땅에서 한발자국 정도 붕 떠 있는 행복한 나날이니 말이다. 주위에서 아무리 ‘안 생겨요(ASKY)~’를 외쳐도, ‘커플지옥! 솔로천국!’을 외쳐도 다들 열심히 사랑은 하고 있는 모양이다.

 

주말마다 번화가가 꽉꽉 들어차는 걸 보면 그렇다. 지금 마음속에 누군가가 들어차 있는 사람도, 곧 누군가가 생길 사람도. 어느 날, '정말 이게 사랑이구나!' 하는 날 이 그림을 떠올려주길 바란다. 그러면 이 그림들도 어느 날 뜻 깊게 다가와 ‘인생그림’이 될 지니! 

 

 

 

0 Comment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