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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사랑해야만 했던 도시 - 마지막 방문, 용문동

14.04.02 3
마지막 방문, 용문동


나는 6호선 효창공원역에서 내려 누군가를 몹시 기다렸다. 때로는 바래다 주는 길 이기도 했다. 용문동은 용산구에 속해있는 작은 동네다. 언덕이 많고 오래된 동네다. 활기 없는 해가 뉘엿뉘엿지는 그런 동네였다. 이 이야기는 서울에 관한 글을 쓰게 되면서 이미 기획 되었던 이야기다. 쑥스럽지만 구(舊) 연애 이야기의 종착역이다.


- 용산역 광장

연애라는 것이 깊어지면 말하자면 어떤 동네가 생긴다. 그 사람이 사는 동네. 대체로 살아가면서 올 일이 없던 동네. 그리고 나중엔 가면 안되는 동네. 내게 그런 곳이 용산이었다. 노트폴리오를 통해 글을 쓰게 될 기회가 생긴 후. 나는 막연히 언젠가 이 동네의 이야기를 써야겠다고 생각했다. 그것은 어떻게 보면 이 연재를 관통하고 있는 상실의 코드를 스스로 마무리 하려는 생각이었다. 중앙선 지하철을 타고 용산역에 내렸을 때 어쩐지 그 곳이 낯설게 느껴졌다. 익숙하지 않았다. 익숙할 것 같았는데, 익숙하지 않았다.

 


- 신용산 지하차도

신용산 지하차도를 가로질러 전자상가가 밀집된 쪽으로 걸음을 옮겼다. 오래 전 그 무렵 기억하고 있었던, 아니 사진으로 찍어보고 싶었던 곳 들을 사진에 담으며 용문동으로 계속 발 걸음을 옮겼다. 나는 아주 올바른 길로 가고 있었다. 기억이 흐려져 조금 헤매였지만, 확실히 길을 잃지 않았다. 어쩌면 나와 연애했던 그 사람과의 관계에 대한 내 상황도 이렇게 올바른 길로 가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는 올바른 길을 따라서 확실히 그 사람을 잊었다. 그 시절엔 잃어버렸고, 어떻게든 잊지 않으려고 노력했었지만,  용문동으로 가는 길이 가물가물 해진 것 처럼 그 연애는 나에게 담담하게 잊혀졌다.

 


- 미림 꽃집

그 동네엔 작은 꽃집이 있었다. 미림 꽃집. 용문시장의 옆 길로 쭉 나오다 보면 대로변에 보이는 가게였다. 10월 가을 꽃들이 한창 일 때, 나는 그 곳에서 한 다발의 꽃을 샀었다. 노란 소국. 되돌아 보면 그 선물은 참 좋았다. 주는 마음이 행복했고, 하루 온 종일 그 꽃다발을 끌어 안고 다니는 그 사람의 모습도 보기 좋았다. 그 무렵의 미림 꽃집에는 울긋 불긋 노란 꽃, 주황 꽃 가득 팔았다. 그런데 한 가지 나를 놀라게 한 사실이 있었다. 이별 통보를 받고 가을 보다도, 아니 겨울 보다도 더 작별에 가까운 생활을 했던 어느 날 노란 소국의 꽃말을 찾아 본 적이 있었다. 내가 선물했던 노란 소국의 꽃말은 '실망, 짝사랑' 이었다. 나는 그 사람에게 내가 실망스러운 사람으로 남을 까 두려웠고, 내가 홀로 사랑을 하게 될 것이 두려웠었는데. 나와 내가 선물했던 노란 소국은 묘한 운명처럼 닿아있던 것 이었다. 난 정말 웃어야 할지 울어야 할지 몰랐었다.

 


- 돌아 온 봄

봄 봄 봄. 봄이 찾아왔다. 2년이 흘렀고, 미림 꽃집의 색채도 알록달록 변해 있었다. 머리가 희끗희끗한 사장님은 그대로 였지만, 지금 이 순간 그대로인 건 사장님과 이 동네 뿐 이었다. 나는 흘러가는 시간을 먹고 만개한 철쭉꽃 처럼 환하게 폈다. 나는 잊어버린 것 이었다. 2년 전 가을을. 아니 곰곰히 생각해보면 흘러 살아 온 것 이다. 흘러 흘러 여기까지 살아 온 것 이다. 나는 떨어지는 낙엽들 처럼 울고, 눈 쌓이는 겨울을 지나. 두 번을 지나서, 이 봄으로 왔다. 우리 모두 다 '이 봄에 도착했다.'. 참 다행이다. 나도 여러분도 계절을 지나서, 옛 연인이 살던 동네를 지나서, 이 봄으로 왔다.


산다는 건 정말로 살아보고 볼 일 이다. 우리에게는 아직 새로운 자신으로 살아갈 수 있는 기회가 정말 많다. 비록 오랜 겨울을 견뎌야하는 지금의 당신이 너무나도 힘 겨울 지라도, 우리는 새로운 계절처럼 새롭게 살아나갈 것 이다. 우리 삶에 아직 환절기가 많이 남았다. 이것은 참 희망적인 일 이다.

 

김포포

일종의 미술치료로 시작했던 사진이, 지금은 나의 전공이 되어버렸다.
소중한 것들을 기록하는 일이 좋다.
언젠가 내 이름으로 된 책을 가지고 싶단 꿈이 있고, 심야 라디오를 좋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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