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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사랑해야만 했던 도시 - 청춘의 갈림길, 서교동

13.12.11 0

청춘의 갈림길, 서교동

청춘은 본디 촉촉한 성질인 것. 젊은 우리들은 그 습함을 견디지 못해 차라리 활활 불태워버리기를 소망한다. 우리나라 청년문화의 현주소에서 과연 홍대인근, 흔히 홍대 앞이라 부르는 서교동을 빼놓을 수 있을까. 밤과 낮을 불태워 청춘을 맞바꾸던 그이들. 그들은 홍대 앞을 지나서야 정숙하고 차분한 청춘에 눈을 뜨게 된다. 화려하고 열정적이었지만 생의 수분을 빼앗기는 일을 반복하는 곳. 하지만 누구나 한 번 쯤은 그럴 수 있다며 담담히 미소 짓는 곳. 청춘이 갈라지는 곳, 서교동이다.

누구나 한 번쯤은 소년, 소녀의 티가 사라지기도 전에 홍대 앞의 밤거리를 서성이면서 가득히 취해보거나, 클럽에서 두근거리는 가슴과(아마도 무식하게 큰 소리의 스피커 때문이겠지만) 타인과의 불쾌한 거리감에 온통 정신이 없어 봤을 테다. 청춘들의 밤은 그렇게 저물곤 했다.

서교동의 낮은 과제에 찌든 미대생들과, 그 모습들을 동경으로 바라보는 미술학원 아이들, 그리고 조용한 표정으로 홀로 바쁘게 걸어가는  몇몇의 어른들이 채운다. 나도 홍대 앞에서 많은 젊음을 소비하였다. 상공을 비행할 수 있을 만큼 벅찬 마음으로 셀 수 없는 데이트를 하며 이곳의 낮을 채웠다. 만약 젊음과 관련된 우리의 일들이, 우리보다 더 큰 모두의 일들이 분명 서교동을 거쳐 갔을 것이란 것. 그런 생각을 해보았는데, 이건 참 기가 막힌 일이었다. 마치 우리들이 걸음마 이전까지 보행기나 유모차를 당연히 거쳐 갔던 것처럼, 홍대 앞은 그저 하나의 동네에 불과함에도 우리의 젊음을 보내는 곳으로 자리매김 한 것이니까. 

- 2013. 08 서교동 가네야마제면소 옆 골목길.


보통 전신주란 것은 이렇게 곁에 놓이지 않는다. 일정한 방향으로, 여기부터 저기까지 높은 기둥과 전선뭉치를 통해 이곳저곳으로 전기를 보내기 마련. 사진 속의 쌍둥이는 필시 무언가의 갈림길이었던 게 분명하다. 중앙에 놓인 것이 변압기 같은 것일 수도 있고, 그래서 전기의 수송로의 갈림길이던가, 길이 갈라지는 삼거리였을지도 모른다.

나는 서교동을 청춘의 갈림길이라 썼다. 분명 한 길로 가다 길목에서 두 갈래로 갈라지는 갈림길에 빗댄 표현이 아니었다. 우리는 서교동이란 동네를 통해 A길에서 B길로 그야말로 횡으로 전진해 가로로 가만히 걸어갔을 것이라고. 우리 모두 여기서 길을 잃어. 청춘을 보낼 곳을 찾아, 갈림길의 A길과 B길을 왔다-갔다 했던 것이라고...

그런 모든 일들이 바로, 서교동에서 일어났다. 우리 모두에게 말이다.

 

김포포

일종의 미술치료로 시작했던 사진이, 지금은 나의 전공이 되어버렸다.
소중한 것들을 기록하는 일이 좋다.
언젠가 내 이름으로 된 책을 가지고 싶단 꿈이 있고, 심야 라디오를 좋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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