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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사랑해야만 했던 도시 - 서울의 첫 인상과 굴뚝에 관하여

14.01.08 0

 

서울의 첫 인상과 굴뚝에 관하여 _ 김포포


나는 열일곱이 되고 나서야 굴뚝이란 것을 처음으로 봤다. 내가 살던 지역이름에 붙은 시(市)가 무색했구나 생각했다. 작은 도시와는 달리 큰 도시의 지평선은 다른 눈높이로 바라봐야 했다. 높은 스카이라인 사이로 뭉게뭉게 구름이 폈다. 이 글은 굴뚝에 관한 이야기다.


- 당인리 발전소, 제일 좋아하는.


서울에 관한 글을 써가면서. 마치 ‘하나의 도시를 도축하고, 지역마다 분류하여 등급을 나누고, 부위의 특성을 이야기하고 있는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그래서 언젠가는 서울의 ‘첫 인상’에 관한 글을 써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만약 이 연재물이 축산학 개론이었다면, 이번 글은 일종의 요리 프로그램이라고 해두려고 한다.

서울에서 알게 된 사람들 중엔 지방 사람들도 많다. 고향에 대한 그리움을 이야기하기 보다는 서울의 ‘다름’을 이야기하다 보면 재미있는 사실을 알게 되는데, 사람들의 생각은 그렇게 천편일률적이지 않다는 것이다. 친구 A는 남산타워의 위용(도쿄, 베를린, 파리에 있는 탑들처럼) 에 관해 이야기하는가 하면, 어떤 친구는 하천 단위의 강만 바라보다가, 처음 올림픽 대교를 건너갈 때 봤던 한강의 거대함에 대해서 말하기도 했다. 내 차례가 되어 호기심 어린 눈빛들이 나에게 모이면, 나는 “굴뚝이 참 좋더라.”라고 말했다.

 

 

- 목동 발전소, 연경장으로 사용된 안양천에서 매일 봐야했던.

교과서로 배운 굴뚝에 대한 사실: 굴뚝은 대체로 파괴, 오염, 도시간 성장 불균형으로 인한 지역적 박탈감에 기댄 그런 상징이었다. 어떤 편 이었냐 물으면, 좋은 편은 아니었다.

어느 날 당인리 발전소의 굴뚝을 본 날. 나는 굴뚝으로부터 살아있다는 느낌을 받았다. 차갑고 죽어있는 느낌일 줄 알았는데, 그렇지 않은 모습에 매료 되었다. 어린 시절 나쁜 것이라고 배웠던 도시의 상징. 하지만 굴뚝은 꾸역꾸역 수증기를 토해내고, 그게 구름이 되고, 구름은 살아있는 것처럼 뭉게뭉게 움직였다. 그게 굴뚝과의 첫 만남이었다.

 

 

- 중앙대학교 2캠퍼스, 서울은 아니지만.


대도시 서울을 구성하는 커다란 도시의 상징들. 그런 것들에 어쩐지 정을 못 붙인 것인지 도시의 풍경은 어색하기만 했다. 하지만 서울 살이는 점점 대수롭지 않아졌다. 살다보니 서울은 회색 빛 냉정한 도시는 아니었다. 정 붙일 곳은 내가 사는 곳이라더니 정도 많이 들더라. 지금도 나는 굴뚝이 뭉게뭉게 입김을 내는 걸 볼 때마다, 가슴이 두근거린다. 서울에 대한 지식적인 선입견이 무너지게 해줬기 때문이다. 그래서 굴뚝은 서울에 붙은 내 정나미 같다. 어머니도 아버지도, 동네 친구들도 여긴 없지만. 내가 지례짐작 알던 사실들과 도시의 삶에 대한 나의 상상들은 굴뚝을 통해 활활 타올랐다. 그 무렵부터 서울에서 마음을 붙이고 ‘살’게 되었다.

 

김포포

일종의 미술치료로 시작했던 사진이, 지금은 나의 전공이 되어버렸다.
소중한 것들을 기록하는 일이 좋다.
언젠가 내 이름으로 된 책을 가지고 싶단 꿈이 있고, 심야 라디오를 좋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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