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ome  /  Column  /  김포포

우리가 사랑해야만 했던 도시 - 덕수궁 돌담길의 이별전설

14.01.29 0
덕수궁 돌담길의 이별전설


입에서 입으로 전해져 오는 재밌는 이야기가 있다. 덕수궁 돌담길을 걷는 연인은 헤어지게 된다는 이야기. 낭만 어린 이야기지만, 설득력은 없다. 모든 만남에는 끝이 존재하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 이야기는 꽤나 널리 알려지고 사랑 받았다. 그래서 돌담길을 걷는 연인들은 다들 만남의 끝을 표정 속에 숨기고 걷는다. 아무렇지 않은 척 먼저 이야기를 꺼내도 본다.

 

덕수궁 돌담길, 2013년 가을

 

그런 사람들 사이에서 혼자 걸었다. 소나기가 내렸다. 

구름 사이로 볕이 새어 나왔다. 큰 일 이라고 생각했다. 발 닿는 길 위로 양지가 피어나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늘이 사라지더니 가을볕에 완전 포위되고 말았다. 그 날 햇살은 돌담에 녹았고 가을의 정취는 비를 맞았지만 여전히 좋았다. 시선을 피할 수가 없었다. 비 맞은 길은 담담하게 빛이 났고, 사람들은 눈부시고 행복 하였다. 그런 풍경과 내가 비교되고 있었기에 나는 시선을 자꾸 돌렸다. 돌담길 이별전설은 없다고 자신 있게 이야기 했지만, 이 세상에 이별이 없는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덕수궁 돌담길엔 사계절 그 어느 때라도 기억에 남을 만한 아름다움의 뼈가 있다. 기억에 새겨지는 날카로움이 있다. 적어도 두 명 이상의 발소리가 어울리는 그런 곳이다. 정말 그래야만 하는 곳이다. 

어느 계절의 정동을 좋아 하는지 스스로 물었다. 가을. 나는 가을의 정동이 좋다. 대한문에서 점점 멀어져 프란치스코 수도회 방향으로 걸으면 일순간 발소리가 들릴 만큼 고요해진다. 사람들의 말소리가 금세 흩어져 공중에 녹아버리는 것 같다. 돌담에 햇살이 녹아든다. 가만히 내려앉은 가을 단풍의 정취는 따뜻하고 밝은 빛들이 반사되는 환경을 만드는데, 그런 현상은 옆에 나란히 돌담길을 걷는 사람의 모습을 한층 더 눈부시게 만든다. 이런 섬세한 묘사로 나마 내가 좋아하는 가을 정동을 전달할 수 있을까? 아니. 이 글을 읽어주는 사람들이 눈으로, 귀로, 감촉으로 직접 느끼길 간절히 기도한다.

다시 한 번 강조하건데, 돌담길 이별전설은 없다. 다만 세상의 이별한 인연들 중에 돌담길을 걸어 본 사람들과, 그렇지 않았던 사람들이 있을 뿐이다.

 

김포포

일종의 미술치료로 시작했던 사진이, 지금은 나의 전공이 되어버렸다.
소중한 것들을 기록하는 일이 좋다.
언젠가 내 이름으로 된 책을 가지고 싶단 꿈이 있고, 심야 라디오를 좋아한다.

0 Comment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