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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사랑해야만 했던 도시 - 세종로 하늘 보기

14.02.12 0

 

세종로 하늘 보기

 

오랜 시간 한자리를 지키는 일을 해본 사람이라면, 시간이 흐르기를 바라면서 여러 가지 일에 집중해보려고 한 경험이 있을 것이다. 다른 일에 집중하는 일은 더디게 흐르는 시간을 무두질한다. 내가 군대에 있던 시절, 시간을 도둑맞은 핏기 없는 눈을 둘 곳이 되어주었던 세종로의 하늘에 대해 이야기하려고 한다.

 

- 눈 내리던 밤의 세종로


굳이 표현하자면 광화문부터 동화면세점 부근까지 뻗은 세종로는 전장과도 같은 곳이었다. 끝없이 이어지는 출동. 깊은 밤을 접고 접어야 해가 뜨고, 그제야 쉴 수 있었던 장소. 나뿐 아니라 동료들, 나아가서는 종로 관내의 모든 대원들의 얼굴에는 그 밤보다도 더 깊은 검은색이 드리워져 있었다. 저마다 다른 생각들을 하는 우리들은 어떤 공통점을 가지고 있었는데. '시간에 고통받는다는 사실'과 '운신의 폭이 좁은 우리 신분을 되새김질한다'라는 사실이었다. 밤이 퇴근하고 새벽이 출근 도장을 찍으면, 선임들은 땅을 바라보거나 하늘을 바라봤다. 하염 없이. 나도 어느 정도 짬이 차고 난 뒤 그렇게 되었다. 우리들은 다들 그럴 수밖에 없었다. 나약해지는 우리들의 마음들은 가족에게도 애인에게도 이해할 수 없는 생떼일 수밖에 없었기에. 우리들에게는 차라리 땅이나 하늘에 시선을 두고 하소연하는 쪽이 아름다운 일이었다.

그러던 어느 겨울. 흔하디 흔한 일이 일어났다. 거식, 불면, 컨디션 난조는 군대에서 이별한 모든 청년들에게 흔하게 일어나는 현상이다. 나에게도 그런 흔하디 흔한 일이 일어났고. 주한 미 대사관 앞에 서서 하늘을 바라보는 일 이외에는 아무것도 할 수 없었던 그런 시절을 겪고 있었다. 방울뱀보다도 길고 위험한 밤 들이었다. 차라리 밤을 새워 하늘만 바라보고 싶었다. 차라리 그 편이 나았다. 작은 화장실 칸 막이 안에서 울지 않아도 됐다. 대답해야만 하는 말을 거는 선임들도 그럴 수 없었으니까. 온전히 괜찮은 척을 하지 않아도 되는 때였다. 어항 속에 머리를 넣고 숨을 쉬는 것 같았던 나에게는 산 바람 같은 시간이었다.

광화문의 기왓장보다도 어두운 그늘이 지던 세종로에서. 일본 소설에서 묘사될 법한 눈 송이가 바짝 구워진 듯. 바삭바삭한 눈이 세종로 하늘 위에서 내리고 있었다. 마치 은하수가 지구 위로 내려 앉는 것 같았다. 지구 위에서도 서울, 그 위에서도 세종로 위에 말이다.

“아!” 외마디 탄성이 흘러나왔다. 모두의 입에서 말이다. 우리 이런 미천한 신분에, 대여해주고 돌려받지 못한 도서관의 연체 도서 같은 우리의 신분에. 이 밤에 하늘이 그렇게 화답했다. 우리들이 하늘과 나눴던 눈빛 하나하나에 대답해주는 모습처럼. 수 백 겹의 층을 이루고(아니 어쩌면 수만 겹의) 내려오는 작은 은하수들은. 우리들의 연체된 청춘들 위로. 소복이 내린 위로였다.

 

- 1년 뒤 아침의 세종로


따사로운 아침이었다. 시립미술관에 들렸다가 서촌까지 걸어가는 중이었다. 제법 날씨가 좋았다. 발길을 재촉하는데 어디선가 외 마디 총성이 들렸다. '땅!' 스포츠 브랜드 N사에서 주최한 도심 달리기대회였다. 수많은 사람들이 스테인리스보다도 더 밝은 빛을 내면서 내가 걷는 반대 방향으로 달리기 시작했다. 그 사람들이 내뿜는 밝은 에너지는 차라리 물 소떼들 같기도 했다. 인파의 변두리를 조심스럽게 걸었다. 세종 문화예술 회관. 나는 파블로프의 개처럼 반사적으로 하늘을 바라봤다. 이제는 자유로운 신분의 나였다. 제법 완벽한 아침이었고, 하늘엔 빨간 AD-벌룬이 떠 있는 풍경이었다. 마음이 들뜰 것 같았다.

그저께 세종로를 지나며 놀랄 만큼 쌓여있는 눈 무더기들을 봤다. 실은 그건 눈이 쌓인 눈 덩이는 아니었다. 2년 여간 쌓인 청춘의 그늘이 녹지 않아 생긴 마음의 무더기였다. 가슴이 아팠습니다만은 비로소 고개를 끄덕이며 지나갈 수 있었다고 할까. 은하해방 전선이라는 인기 없는 영화를 보면 이런 대사가 나온다. '내가 은하 3호가 되어있을 때면 넌 아마 영재 8호나 9호쯤 되어있을 거야.' 사람들은 세월 위에 자기 스스로를 악보처럼 적어내는데, 그러니까 나는 지금 포포 5호에서 포포 8호쯤 되어있는 것이다. 그런 이유로, 지금 9호쯤 되어있을 당신도, 8호쯤 와 있는 나도. 우리들의 5호쯤이던 시절을 담담하게 바라볼 수 있는 것이다.

 

김포포

일종의 미술치료로 시작했던 사진이, 지금은 나의 전공이 되어버렸다.
소중한 것들을 기록하는 일이 좋다.
언젠가 내 이름으로 된 책을 가지고 싶단 꿈이 있고, 심야 라디오를 좋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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