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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사랑해야만 했던 도시 - 혼자 남산 산책로를 걷다

14.03.18 0

혼자 남산 산책로를 걷다


그녀가 말 했다.
'생각해보니 이렇게 좋은 곳들을 늘 혼자 다닌 것 같아.'

나는 혼자 다니는 일에 대해 익히 알고 있어서 그녀에게 이렇게 말했다.
'혼자 다녀보기도 해야, 누군가와 함께 할 때 데려갈 수 있지.'

그녀는 빙그레 웃으며 말했다.
'그래 맞아. 바로 그거야.'

 

- 남산 산책로

감기 기운이 스멀스멀 올라오는 날 이었다. 매번 새로운 계절이 오면 그 좋은 계절을 만끽할 새도 없이 나는 감기에 걸려버리기 때문이다. 검은 코트를 가방에 걸쳐놓고, 남산 서울 성곽길을 따라 걷기 시작했다. 빛에는 그림자가 있지만, 빛 자체도 그림자가 되기도 한다. 그런 시각적 경험은 잠시만 그림자를 들여다보면 발견할 수 있는 좋은 경험이다. 그런 빛 그림자가 아름답게 떨어지는 오후였다. 나는 철저히 혼자였다. 물론 개인적인 일정이었지만, 이런 좋은 산책을 누군가와 함께 할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나는 남산 산책로 방향으로 방향을 다시 잡았다. 사람들은 움직이는 일광욕을 하고 있었다.

휘ㅡ익 푹! 평화로운 언덕길에 익숙하지 않은 소리가 들렸다. 흡사 동네 부동산에 모인 어르신들이 바둑판에 수를 놓는 소리처럼. 그런 격정적인 고요함이 어디선가 들려왔다. 석호정이었다. 석호정은 남산 중턱에 있는 작은 활터다. 활을 놓는 모습에서 느껴지는 팽팽한 긴장감. 활을 놓고 난 뒤에 갑자기 찾아오는 정적. 침을 꿀꺽 삼키게 하는 그런 모습을 하염없이 지켜봤다. 이렇게 좋은 날 좋은 주말의 시간이 온통 나 혼자만의 것 이었기 때문에 나는 석호정에 오래 머물렀다.

 

- 석호정, 활을 놓는 어르신들

활터에서 나와서 다시 산책로로 걸었다. 활터에서 어떤 아저씨와 대화를 하게 되었는데, 그 분은 멋진 선글라스를 쓰고 풍채가 좋았다. 은퇴하고 유유자적하며 산다고 했다. 말씀에 두꺼운 심지가 느껴졌다. 스스로를 은연 중에 과시할 줄 아는 분 이었다. 그 분과 같이 산책로를 잠깐 걸었다. 그 분의 괄괄한 말씀을 들으면서 걷다가 남산타워가 아주 잘 보이는 곳에서 발 걸음이 멎었다.

 

- 남산N타워.

'혼자 다녀보기도 해야, 누군가와 함께 할 때 데려갈 수 있지.' 내가 그녀에게 했던 말 이다. 하지만 지금 이 순간 이 길 위에 나 혼자 있음에 많이 아쉬웠다. 겨울이 물러가고 봄이 성큼 다가왔다. 나는 독한 감기에 시달렸고, 혼자 산책을 했다. 나는 이 순간 떠오르는 사람이 있었다. 멋진 곳, 좋은 것을 보며 떠오르는 사람이 있다면, 함께 해야한다. '혼자 다녀보기도 해야ㅡ'라는 말 속의 그 순간. 바로 지금이다. 오랜 시간동안 혼자 다닌 당신이라면 떠오르는 사람도, 좋은 곳들도 알고 있을테니 말이다.

 

 

김포포

일종의 미술치료로 시작했던 사진이, 지금은 나의 전공이 되어버렸다.
소중한 것들을 기록하는 일이 좋다.
언젠가 내 이름으로 된 책을 가지고 싶단 꿈이 있고, 심야 라디오를 좋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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